-INTERVIEW-
2022년 '수요 불교철학'은 특별한 강사분, 효암스님 모시고 그 이름 높은 <아비달마구사론>을 공부합니다.
불교철학의 개념의 정수를 담았다고 하는 <아비달마구사론>은 어떤 책일까요? 효암스님께 직접 여쭤보았습니다!
<아비달마구사론> 강의 맛보기, 함께 하시죠^^
Q. 효암 스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2022년 규문의 불교 철학 프로그램에서 <아비달마구사론>을 강의해 주신다고 들었습니다. 먼저 효암 스님을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
저는 한국에서 출가해서 운문사 강원을 졸업했습니다. 이후 선방을 다니며 참선을 했는데 참선만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행하는 방법일까라는 의구심이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법문을 듣게 되었고, 한국에 전승되지 않은 논장을 갖춘 삼장을 온전히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달라이라마 존자님께서 세우신, 인도 다람살라에 있는 티벳 불교 철학 대학에 들어가 14년간 공부를 했습니다.
제가 다니는 불교 철학 대학은 달라이라마 존자님께서 현대에 불교를 이끌 지도자를 양성하고 21세기에 맞는 불교를 펼치기 위해 세우신 학교입니다. 이 학교는 전 세계적으로 불교 논리 철학에서 최고수준의 교육기관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티벳 승원의 교육은 5-8세에 출가한 비구들을 대상으로 26년간 교육 과정을 밟지만, 불교 철학 대학은 총 16년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마친 졸업생들은 각국의 불교 단체에서 티벳 불교 경전을 번역하고 통역하며 현대인들을 위한 21세기에 맞는 수행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과정 중 14년을 마치고 건강검진 때문에 잠시 한국에 들어왔었어요. 그런데 코로나로 국경 봉쇄가 되는 바람에 다시 다람살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예상치 못하게 한국에 오래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여러분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도 주어졌네요. 그동안은 한국에 잠깐씩 들어와도 무언가를 하기엔 시간 제약 때문에 아쉬움이 많았는데, 이번에 이렇게 규문에서 함께 공부할 기회가 생겨 감사한 마음입니다.
Q. 효암 스님께서 가르쳐 주실 <아비달마구사론>은 한국 불교에서는 접하기 쉽지 않은 텍스트인데요, 불교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아비달마구사론>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구사론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시대적 요구라고 볼 수 있어요. 지금은 모든 정보가 오픈된 정보화 시대입니다. 그런데 밀려 들어오는 방대한 정보에 휘둘리지 않고 원하는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그 정보를 판별하는 능력이 요구됩니다. 불교만 해도 예전에는 그냥 앉아서 참선만 하면 되는 분위기였는데, 요즘에는 초기불교에서부터 남방불교와 대승불교, 티베트불교 스승들의 가르침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정보를 모두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기준이 없이 이런저런 가르침들을 접하다 보면 이것은 마치 이런저런 물건을 한 곳에 쌓아놓는 것과 같아요. 불교의 용어는 시대마다 학파마다 그것에 맞게 정의된 것들이 많아요. 가령 ‘마음’이라고 할 때 한글로 번역된 표현은 같지만, 이것은 학파마다 의미하는 바가 다를 수 있습니다.
가령 물건들이 제대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채 쌓여만 있으면 하나를 꺼내려고 할 때 나머지가 다 우르르 무너지거나, 하나를 꺼내기 위해서 다른 모든 것을 다 옮겨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됩니다. 그럼 그냥 포기하고 말 수도 있지요. 비유하자면 구사론은 물건이 차곡차곡 정리된 창고와 같은 역할을 해줍니다. 불교에서 이것저것 배우고 나면 산더미 같이 쌓인 말들을 짊어지고 다니느라 버거울 수 있어요. 구사론은 그 불교의 용어들을 쓰임새와 성질에 따라서 낱낱이 구분해서 차곡차곡 구획 정리를 해 놓았거든요. 그래서 구사론을 배우고 나면 이것을 바탕으로 소승과 대승 뿐 아니라 모든 불교의 가르침들을 차곡차곡 제자리에 꽂아 놓을 수 있어요. 구사론 공부는 그렇게 창고 혹은 도서관과 같은 역할을 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수행을 보다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입니다. 한국 사람은 뭐든 열심히 하는 성향이 있어서 하나에 꽂히면 정말 열심히 하지요. 그래서 불교 수행도 물불 안 가리고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수행의 바탕이 되어야 할 불교의 철학적 토대가 너무 없다 보니까 아무리 수행을 해도 성취를 얻기 어렵습니다. 성취를 얻지 못하면 나중에 기진맥진해서 포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 불교는 정말 어렵구나’ 하고 중도 포기하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구사론은 불교 철학의 일목요연한 가르침이면서 이 가르침을 수행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도록 합니다. 따라서 구사론은 수행의 차원에서도 근본 토대이자 바탕이 되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구사론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어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구사론을 공부하면 불교의 가르침을 차곡차곡 정리해서 내 안에 저장소를 마련할 수 있게 되고, 나아가 그것을 바탕으로 수행의 성취를 이룰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구사론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Q. 효암 스님께서는 불교 철학 대학에서 구사론을 공부하셨다고 했는데요, 티벳 불교 전통에서는 <아비달마구사론>을 어떻게 공부하는지 궁금합니다.
티벳에서는 구사론을 다른 공부를 하고 난 후 나중에 배웁니다. 그 이유는 구사론 공부를 통해 논리로는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방을 가르치고 품기 위해서예요. 그래서 중론과 같은 논리로써 세상을 다 잴 수 있다는 자만심을 일시에 내려놓게 하는 공부이기도 하지요. 구사론은 중론이나 유식과 같은 논리가 성립되기 이전에 아라한들에 의해서 전승되온 것을 집대성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무시하고서 논리를 편다면 논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티벳에서는 구사론을 공부하며 일반 사람들의 경험치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도록 하기 때문에 이것은 비논리적으로 사고하는 이를 깨달음의 세계로 이끌도록 훈련하는 방편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내려놓고 상대방이 알고 있는 수준에서 상대방을 이해시키는 노력을 하게 하는, 그런 바탕이 되어주는 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시대순으로 먼저 구사론을 배우고 나중에 대승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죠. 그러나 티벳에서는 구사론을 나중에 배우는 이유가 있습니다. 철학이나 앏이라는 것은 지혜를 동반하지 않으면 오히려 남을 재는 자로 쓰이고 차가운 지성은 남을 찌르는 칼로 쓰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티벳 불교에서는 먼저 논리를 통해서 지식을 지혜로 습득하는 방편을 익히고, 그 지혜를 바탕으로 세상의 모든 군상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중생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품기 위해 중론을 배웁니다. 그리고 이후에 구사론을 방편으로 배웁니다.
Q. 스님 말씀을 듣고 나니 <아비달마구사론>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여전히 망설이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이 귀한 공부에 도전해볼지 고민하시는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구사론을 공부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한역된 구사론을 보시면 매우 난감한 느낌이 드실 겁니다. 저는 티벳어를 통해 구사론을 배웠는데 티벳어로 보는 구사론에는 한자권에서 가지지 못한 선명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와 함께 공부를 하시면 한역의 답답함과 난감함에서 벗어나 보다 선명하게 구사론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건 제가 잘났다는 것이 아니라 티벳어의 선명함 때문에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참고로 스님과 공부할 <아비달마 구사론>은 한글로 된 텍스트입니다. ^^)
또한 구사론을 공부하시면 사람 관계에서의 어려움에 대한 해답을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불교적 논리를 이해했다고 해도 상대에게 그 논리를 들이댈 수 없지요. 어떤 사람이 거친 말을 하면 저 사람이 대체 뭐 때문에 저런 말을 할 수밖에 없는지 그 상황을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는 지혜를 구사론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나의 기준이 확실히 서 있으면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되고 나로 인해 주변도 안정을 얻게 되지요. 마음이 출렁이지 않고 안정될 수 있는 진정한 공부를 시작하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효암스님과 함께, <구사론> 공부해요~!
-p.s. INTERVIEW-
'수요 불교철학'이 특별한 이유는 불교 공부를 서양철학과 함께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죠.
'서양철학 곁들임 강의'의 강의를 맡으신 채운샘의 '덤 인터뷰'도 함께 보시겠습니다~
Q. 서양철학 곁들임 강의는 뭔가요?
채운 : 말 그대로 '곁들이는' 강의입니다. 음식으로 비유하면 에피타이저?... 후식인가?... 뭐가 됐든 메인은 아니고요, 메인을 꾸며주는 정도의 강의라고 할 수 있죠. 스님께서 앞서 인터뷰에서 말씀하시길, <구사론>은 불교의 가르침을 친절하게 설명해놓은 도서관과 같다고 하셨는데요, 도서관에 앉아 이 보배 같은 가르침을 찬찬히 새기면서 가끔 한 눈을 팔아보자는 겁니다.^^
<구사론>이 쓰인 4세기는 서양에서 이미 기독교가 승인된 이후지만, 기독교 철학이 서유럽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이교의 논리와 투쟁하기도 하고 모방하기도 했거든요. 기독교화 이전 그리스, 로마의 사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다양하고 풍부했습니다. 풍부한 신화들이 있었고, 노래(서사시)들이 흘러다녔죠. 거기에 이른바 '자연철학자'들이 기원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하고, 소크라테스-플라톤을 필두로 세계와 존재, 앎과 윤리에 관한 사유가 본격적으로 담론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무와 유, 존재와 생성, 윤리와 실천 등에 대해 질문하고 논리화하는 방식을 '곁들여' 이야기해보면, 불교의 가르침이 더 입체적으로 보이지 않을까요? 서양과 동양을 기계적으로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사유의 조건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니까요. 어디까지나 <구사론>을 중심에 두고, 다른 방향에서 그 중심을 바라보면 뭐가 어떻게 다르게 보이는지 관찰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과 입과 마음에 새겨나가는 것이 올해 불교철학 공부의 목표라 하겠습니다!^^
2022년 임인년 '수요 불교철학'은 2월 16일 개강합니다.
불교 개념의 정수를 만나고 싶으시다면? 불교철학과 서양철학이 궁금하시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신청하세요~! (링크)
오오 구사론이 어떤 책인지 전혀 몰랐는데, 스님의 설명을 들으니 매우 기대가 되는군요! 올해는 구사론을 공부하며 관계에서도 공부에서도 기준을 세울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