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문톡톡
Q-mun Tal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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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를 넘어 자기-공유의 삶으로
황리
1. 인트로:나의 개인주의를 말하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후배 교사가 물었다. 나름 열의를 다해 수업하고, 아이들을 위해서 다양한 행사나 활동들을 기획하는가 하면 또 잘 이해하고 어울리려고 노력하는 교사인 것 같고, 다른 선생들하고도 좋은 관계 유지하면서 유쾌하게 잘 지내시는 거 같다고, 근데, 정작 학교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문제들 앞에서, 함께 맞서 대응하고 해결해야 할 상황에서는 참 주저하시는 거 같다고, 그게 불만이니 어쩌고 하다가, 술자리가 길어지면서는 좀 비겁한 거 아니냐는 말까지 쏟아냈던 거 같다. 평소 때 같으면 무슨 쌍팔년도도 아니고 어쩌고 하면서 가벼이 눙치는 것으로 끝냈을 텐데, 진지한 표정 앞에서 말없이 듣고만 있던 나는, 글쎄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는지도, 선생들하고도 잘 맞는 건지 모르겠고, 그저 내게 주어진 역할이거나 내가 내 몫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그냥 성실하게 할 뿐이고, 그래서 내가 비겁한지도 사실 잘 모르겠고 그냥 그게 나인 것 같다고 낮은 소리로 응수한 적이 있다. 물론 그게 나였고 그런 나를 인정하려고 오랜 기간 애써오기도 했지만, 그런 자신에 대해 답답함 같은 걸 늘 안고 살아왔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몇 해 전 근무 중인 학교가 교회 재단으로 넘어가고 미션 스쿨이 되면서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예상하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학교 정체성과 학생 교육의 방향 전환 과정에서 기독교적 마인드나 가치를 무리하게 도입, 정착시키려고 하는 데서 생겨났다. 없던 채플이 공식 과정으로 대다수 학생들에게 강요되다시피하고, 새로 생긴 교목실 앞에는 오예스(오예수)나 마이쮸(나의주) 같은 간식꺼리들이 구호물자처럼 박스째 쌓여 아이들을 기다리고(쉬는 시간이면 애들은 문전성시를 이루고ㅜㅜ), 교목은 마치 사제 권력처럼 정신적 지주 행세를 하며 학생과 교사들 위에서 군림하려 들었다. 그밖에도 소소하게 비윗장 거슬리게 하는 일들은 이 자리에서 열거하기가 벅찰 정도다. 교육적 대의 같은 것은 둘째치고 당장 눈꼴이 시어 견디다 못한 나는 적당한 기회를 이용해, 자신을 타고난 부디스트라고 거짓 커밍아웃까지 해 가며, 그럼 나 같은 교사는 앞으로 학생 교육의 일선에서 물러나 적당히 찌그러져 버티다 퇴직하라는 거냐고 항변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봤자 고상한 ‘분노의 외침’은 못됐고, 가여운 악다구니 수준이었다. 그런데, 앞서도 말했다시피 이런 일조차도 내겐 정말 드문 케이스였다. 정작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비슷한 문제로 인해 마음이 편치 않은 사람들이 간간이 나를 찾아오는 일이 생겨나더니, 급기야는 안티크리스트의 선봉장인양 이런저런 일들에 나를 끌어들이려고 했다. 내 공부며 집안일 건사하는데도 시간이 부족한 판에 뭐 이런 일까지라는 생각에 내심 귀찮기도 하고 피곤하기조차 했다. 젊은 친구들에겐 내심 미안하기는 했지만, 약간의 자책 또는 후회와 더불어 다시는 나서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이 나를 사로잡았다. 역시나 공동체 전체를 위한 책임감이나 대의명분 같은 건 나랑은 거리가 멀다는 자기 확신을 공고히 하면서 말이다.
나잇값 못하고 아비 탓을 하려는 건 아니다. 우리 아버지는 농사꾼으로 살아오면서 참 놀랍다 싶을 정도로 당신의 바운더리를 벗어나본 적이 없는 양반이다. 지독하리만큼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했지만, 그저 남들에게 욕 안 먹고 가족 챙기는 걸 인생 최고의 임무로 여기고 살아온 만큼, 이웃들에게 친절하긴 했지만 깊은 교류는 없었고 남들 앞에 나서기를 절대적으로 꺼려해서 친구라고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옆에 없는 그런 삶을 살았다. 어린 눈에도 그런 게 참 싫고 답답해 보여서 나는 그렇지 않게 살려고 했지만, 그런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탓인지, 성장하는 동안 나의 모습 또한 아비에게서 멀지 않다고 느낀 적이 많다. 이후로도, 훨씬 다른 환경에서 더 훌륭한 교육을 받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살아왔지만 참 벗어나기가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다른 사람들과 길고 깊은 관계를 맺는다거나 함께 힘과 마음을 모아 뭔가를 해 나가는 일이 참 어려웠다. 언젠가 말한 반장 건과도 통하리라 싶은데, 사실 나는 ‘티목’을 요구하는 운동 같은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어쩌다 무리 속에 끼어서 뭔가를 해 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시간 지나면 맞지 않은 옷을 입고 나댄 것 같은 어색함과 후회감에 사로잡히기 일쑤였다. 그런 일들은 결국 내 안에서 한때의 치기나 객기의 소산으로 폄하되는 걸로 정리됐다. 교사가 돼서도 친한 동료들이 조심스레 가입을 권유하고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기도 했지만 결국 교사 단체에 가입하지 않았던 것도 ‘대동(大同)’의 큰 그릇에 나를 맞추는 일에 버거워하다 오래 가지 못하고 나가떨어질 거라는 경험주의적 확신 때문이었다. 이런 나를 의식할수록, 내 삶은 나 자신과 주위의 직접적인 관계들을 챙기고 지키는데 나름 성실과 최선을 다하는 방향으로 견고하게 움츠러들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런 나를 변화시키고자 여러 시도들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혼자서 또는 몇이서 여행을 다니기도 했고, 지금까지 연극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도 나름의 안간힘이자 자구책이랄 수 있다. 규문에서의 공부 또한 그 과정에서 만났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도 내가 갖고 있는 개인주의적 기질을 벗어버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참 못 변하고 있다고 느낀다. 어쩌면, 이런 나의 안간힘들이 오히려 그런 성향을 더 강화시키거나, 스스로를 아예 남과 다른 사람으로 설정하고 정체화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외부적 감응력의 끝판왕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장자>를 읽으면서도 나는, 단지 세속적인 가치에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자신 중심을 지키고 살아가는 ‘고독한 아웃사이더(獨有之人)’의 이미지에 더 매료됐던 것 같다. 몇 해 전부터 <중용>이나 <주역>을 읽으면서도, 수신이나 절제 같은 자기 단속을 강조하는 말들에서 공부의 방향을 찾으려 들었지, 정치론이나 현실, 문명의 문제와 같이 그 너머로 확장되는 차원에서는 재미를 거의 못 느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수신’이 단순히 개인적 차원에 머무를 수 없고, 역동적인 관계성 속에서만 의미가 있는 말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았다. “<중용>에서는 고독(獨)마저도 ‘주위와의 연속’ 속에 위치지워져 있는 것”이라는 도올의 말에 얼마나 공감했던가 말이다. 그럼에도…….
돌이켜보면 참 많은 것들이 이런 식이다. 자식 키우는 문제에서부터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하고 직장 내 권력 관계로 인해 벌어지는 많은 일들에 대처하는 태도, 나아가 크고 작은 사회적 문제나 정치적인 현안 등에 대한 입장을 드러내는 일에 이르기까지, 나는 나만의 주견을 갖고 주위의 분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초연한 자세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상황 변화에 쉽게 동요하거나 격하게 감정을 드러내며 당장 그게 아니면 안 될 것처럼 구는 사람을 보면 속으로 혀를 차며 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일쑤였다. 그리고, 나는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것을 나름 공부 또는 수신(修身)의 덕이라고 자부하기도 했다.
이런 내 모습에 새삼 강한 문제의식 또는 위기감을 갖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나의 개인주의가 결국 나의 이기주의나 위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나 또한 내가 시시하게 여겨왔던 치들과 한 치 다를 바가 없다는 걸 뼈아프게 인정해야 하는 순간들과 자주 맞닥뜨리게 됐다는 거다. 쪽팔리다 생각해 속으로 혼자서 근심하고 신경쓰고 지냈으면서도 남들 앞에서는 아닌 것처럼 굴었다는 생각에 자기 환멸이나 혐오감마저 끌어안게 되는 경우까지도. 최근 집값이 천정부지로 솟구치면서 3,40대와 모이는 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화제가 아파트 값 문제다. 전문성 부족한 정부 정책의 아마추어리즘을 성토하는 데까지는 입을 모으다가도, 이야기가 길어지면 결국 많은 빚을 내서라도 운 좋게 아파트를 구입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의 묘한 거리감과 신경전이 생겨나는 걸 눈치채기 어렵지 않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주로, 제때 월급 받고 이변이 없는 한 연금까지 보장된 사람들이 까짓 집 갖고 뭔 걱정들이냐며 잘난 소리를 지껄이거나, 나랑 상관없는 문제인양 초연한 태도를 취한다. 아니나다를까, 강남 살고 가평에 별장까지 있으니 이런 데 관심 없거나 한가한 소리 한다는, 부러움인지 비아냥인지 모르겠는 말이 조심스럽게 돌아온다. 굳이 나는 운신 못하는 장모 모신다는 구실로 처가살이하는 처지인데다 가평 집 또한 친구네와 공동 소유에 불과하니 어쩌니 하는 변명 같은 소리를 내뱉지는 않지만, 순간 나의 노후며 자식들 미래에 대한 걱정스러운 마음에다 불안감까지 슬쩍 얹히는 것을 어쩌지 못한다. 여태껏 아파트 아파트 하는 사람들을 가소롭게 여기며 살아왔건만, 아파트 소유 여부에 마치 인생의 성패가 걸린 것처럼 돼 버린 이런 분위기에서 나는 더 이상 호기를 부리지 못하고 속으로 노심초사하게 된 거다. 열심히 일하고 돈 벌었어도 오십 넘어 서울에 집 한 채 갖지 못했다는, 결국 남들에 미치지 못한 빛 좋은 개살구 신세로 살아가게 될 거라는 생각에 패배감마저 스며들 때는 참으로 고약하기 그지없다. 별 생각 없이 집값 동향과 관련된 기사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을 때는, 나의 위선과 허위를 뼈아프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작년 올해 코로나 기간 동안에도 나는 큰 걱정 없이 잘도 먹고 지냈다. 비대면 수업 시스템에 적응하는 게, 마스크 끼고 목청 높여야 하는 현장 수업이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고 엄살 부려가며 전에 비해 훨씬 헐거워진 학교생활을, 학생들에 대해 신경 써야 할 일이나 수업 부담이 줄어든 것을 내심 즐기고 기뻐하기까지 했다. 그러느라 내 학생들과 가족들이 처한 경제적·정신적 곤경에 눈 감거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의 안온한 삶을 떠받쳐주고 있던 불안정한 노동들을 자주 잊었고, 배달 음식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비닐봉지나 플라스틱 용기들을 보고 잠시 끔찍하다 생각했을 뿐 그 생활 쓰레기나 폐기물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지구나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딴 나라 얘기로만 받아들였다. 올 한해 주역을 공부하면서 팀원들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자폐적 개인주의에 바탕한 내적 위기의 정도가 어떤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느꼈고, 어떤 식으로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을 내게 되었다. 이 에세이에서는 ‘수풍정(水風井)’ 괘와 그것을 둘러싼 몇몇 괘들을 살펴보면서 이제까지 ‘길~게’ 살펴본 나의 문제들의 원인 및 실상, 그리고 해체·극복 방안 등에 대해 탐구해 보고자 한다.
2. 두레박을 깨트리니 흉하다
건·태·리·진·손·감·간·곤(乾兌離震巽坎艮坤), 8개의 신성한 자연 상징들, 이 소성괘들을 놓고 그것들의 덕이나 성질들 중에서 나의 성향과 근접하다 싶은 것들을 하나하나 꼽아 본 적이 있다. 일단 굳건하게 리드하는 ‘건(乾)’의 강한 힘이나 ‘진(震)’의 액티브한 움직임은 나와 거리가 좀 멀다 싶고, ‘산(艮)’의 육중하게 멈추는 힘 또한 소망하는 바일 뿐이다. ‘물(坎)’ 또한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로만 보면 나와 가깝지 않은가 싶은데, 험함과 어려움의 이미지는 나의 순탄한 인생 역정(?)과는 또 거리가 멀다. 가까스로 제외되지 않고 남는(그나마 붙들고 싶은) 게, ‘태(兌)’와 ‘리(離)’와 ‘손(巽)’과 ‘곤(坤)’이다. 아다시피 모두가 음의 괘들. 그렇다. 나는 이끌기보다는 따르고, 펼치기보다는 닫거나 끌어안는 편이고, 내·외적으로도 강건하기보다는 음유한 기질의 소유자다. 어려서는 지나치게 여성적이어서 주위에서 걱정을 하거나 놀릴 정도였고, 자라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스스로를 드러내려 하기보다는 누군가를 돋보이게 하는 것을 나의 역할로 알고 만족하며 살아왔다. 해서 지나치게 과감하고 허황한 짓으로 주위의 눈총을 사지도 않았지만, 내 한 몸과 주위 사람들 근심하느라 머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공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쪽으로 딱히 힘을 쓰지 못하는 그런 사람, 양(陽)적인 측면으로 설명하기가 참 어려운 인간이 바로 나였다. 그러다 보니, 주역을 읽는 중에 음(陰)적 힘이 과하게 뭉쳐 있는 상태에 대한 경계의 말들은 바로 귀에 쏙 들어와 박힌다. 더구나 나이 먹어가면서 소통력이 저하되거나 자칫 추해질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 땐, 이게 음의 응집력 때문이구나 싶어 마음의 고삐를 바짝 다잡아보게도 된다. 아, 다음과 같은 왕부지의 말들.
“사람에게서 마음이 죽어버리는 것보다 더 비참한 일은 없다. 마음이 움직일 수 없으면 어떤 선함도 생기지 않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추악함만 쌓여간다. 그리고 욕구들은 서로 친해지고 이로움들은 서로를 옭아매며 습기(習氣)는 서로 파고들며 안일에 빠지게 한다. 이 모두가 ‘음’이 중첩하여 응체한 기(氣)가 사람을 살리는 이치를 폐쇄시켜 버린 결과다. 그래서 혹은 물(物)들에 내맡긴 채 마음 편해하면서도 ‘고요해지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이는 사실 마음의 움직임을 제지함으로써 나가서 물(物)들과 교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칙칙한 어둠 속에 틀어박힌 채 그 신명을 잃어버린 것일 뿐이다” - 왕부지 <주역내전>, 1244p
그렇다고 음에 비해 양을 더 고귀하거나 높이 치는 건 아니다. 둘 모두 위계 없는 잠재적 생명 에너지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양적 에너지가 만물의 하나됨을 가능케 하는 비가시적이면서도 근원적인 원리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면, 음적 에너지는 개체성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양태적 존재들이 스스로를 유지·보존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따라서 양이 외부로 퍼져나감으로써 소통·연결하는 힘으로 작용한다면 음은 대개 내부로 끌어안거나 수축·종합하는 힘으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이 둘의 동시적인 상생 상극 운동 가운데서 생명의 지속적인 허밍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주역의 세계관이다.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는 것, 개체성과 전체성의 부단한 상호작용, 나아가 그 둘의 분리 불가분성이 우주적 항구성의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변화 과정 속에서 한 힘이 우세하거나 두 힘이 소통하지 않는 모습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이 또한 무궁한 변화의 일시적인 국면에 불과한 것일 뿐이다.
이같은 우주 자연의 일부이자 그 특정 양태로서의 우리 인간 개개인의 물리적, 정신적 삶의 차원 또한 마찬가지다. 앞에서 말한 바 나의 음적 성향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 인간인 내가 그렇다고 이해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닐 뿐더러, 그마저도 지속적인 변화의 한 가운데서 일시적으로 그렇게 드러나 보이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렇게 기존의 자아상에서 벗어나 그것의 해체 및 변화 가능성을 모색해 볼 여지가 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 에세이의 중심축으로 삼고자 하는 ‘수풍정(水風井)’은, 일단 음양이 고른 비율로 섞여 있는데다, 음이 위와 아래에서 양들을 품어 안아 기르고 있는 형상을 갖고 있는 괘라는 점에서, 그 같은 내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기에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그뿐은 아니다, 처음 접한 순간, 이 ‘정(井)괘’ 한 방이면 끝이겠다 싶었던 나름의 직감도 크게 한몫한 게 사실이다(ㅋ).
‘우물’은 ‘솥(鼎)’과 더불어 인간 문명의 산물이면서도, 여타의 주역 괘들에 제시된 다양한 우주적 변화 계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류 문명사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위상이나 의미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것만큼 자연의 은택과 인간의 역량이 잘 결합되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데 사용돼 온 기물이 없다는 것. 어릴 적 생각을 해 봐도, 우물은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구성원들을 먹여 기르고 일상적 삶의 네트워크를 확인하게 하는 공간이었다. 중국 고대의 이상적 토지제도였다고 하는 정전제 시스템 하에서도 우물은 언제나 마을의 센터에 자리 잡았고, 사람들이 마실 물을 긷는 것이나 농작물에 물을 대는 것 모두를 여기에 취했다고 한다. 그런 만큼, 흉년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마을이 파괴되고 사람들이 모두 흩어지는 상황이 와도 우물은 그 자리를 지키는 게 당연했고,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훼손되거나 사라지게 두어서는 안 됐다. 한 마디로, ‘개읍불개정(改邑不改井 : 고을은 바꾸어도 우물은 바꿀 수 없다)’이다.
그런데 우물의 쓸모는 이와 같은 직접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물의 깊은 속을 떠올려 보라. 속내를 알 수 없는 어두움 가운데서 맑고 검푸르게 찰랑거리는 물은, 아무리 퍼내도 줄어들거나 내버려두어도 늘어나지 않는 채로(無喪無得) 일정한 수위를 이루고 있다. 땅속 수맥을 기운차게 흘러다니던 물들이 한 자리에 모여 쉼 없이 자기 조절 운동을 지속하면서도, 고요한 모습으로 하늘을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이라니, 이는 어쩌면 위대한 영혼의 형상이 아닐 수 없다. 어린 내가 번번이 지청구를 들어가면서도 허리까지 접어 우물의 더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자 했던 것도 그것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 때문이었으리라. 그뿐인가. 계사전에서도 명시하고 있는 바, ‘자기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새롭게 변화시켜가는(居其所而遷)’ 우물의 속성은, <중용>에서 말하는 ‘성(誠)’의 완벽한 표상이라 할 만하다. 우물(井)을 하나의 괘명으로 삼을 생각을 했던 복희씨께서는, 여기 이 우물에서 근원적인 도(道)의 운행를 눈으로 직접 보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이같은 우물의 덕과 그 쓰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괘가 바로 수풍정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괘사의 끝은 ‘흉(凶)’이다. 井, 改邑不改井, 无喪无得, 往來井井, 汔至亦未繘井, 羸其甁, 凶(우물은, 고을은 바꾸어도 우물은 바꿀 수 없으니, 잃는 것도 없고 얻는 것도 없으며, 오고 가는 이가 모두 우물을 사용한다.).
왜 흉하다고 하는가. 두레박이 거의 올라왔는데 그 줄을 우물 위 마지막까지 끌어올리지 못하고, 두레박을 깨트려버려 그렇다는 것이다. 왜 줄을 끝까지 길어올리지 못하거나 두레박을 깨트리는 것을 이토록 염려한 것일까. 응당 그 결과는 물을 마실 수 없게 된다는 것이고, 이는 물이 아무리 좋아도 우물이 우물로서의 제 쓸모를 다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일 터다. 정이천의 주석대로 ‘항상성의 덕으로 물(物)을 기름에 다함이 없는 우물은 오직 ’제용(濟用)‘을 공으로 삼는데, 물을 퍼올릴 수 없거나 없게 되는 상황은 모두에게 흉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사태는 바닥이 진흙으로 덮힌 채 오랫동안 방치되어 짐승 하나 기를 수 없는(井泥不食, 舊井无禽) 상태가 된 초육효의 우물이나, 위로 솟아오르지 못하고 골짜기로 새버려 붕어에게나 물을 대주는(井谷射鮒, 甕敝漏) 꼴이 된 구이효의 우물의 상황과 사정이 별반 다를 바 없다. 우물로서의 존재 가치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처럼 이 괘는 괘사와 효사들 모두를 통해 어떤 존재의 진정한 쓰임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우물이 갖는 쓸모의 원천이 되는 것은 바로 ‘샘(泉)’이고, 샘은 부단한 순환과 생성 작용 가운데서 만물을 빚어내는 자연 역량의 산물이자 그 자체이다. 이는 모든 존재들이 생득적으로 타고난 내적 본성과도 같은 것으로, 외적 조건이나 상황, 관계의 지속적인 변화 속에서도 스스로는 변치 않는 그 무엇이라 할 수 있다. 우물의 항상성은 바로 그 같은 샘을 품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샘물이 아래에 고여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위로 샘솟아 올라야 생명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니, 우물 위로 끝까지 올라오지 못하거나 바닥에 고여 썩어가는 상태에서는 제 쓰임을 다할 수 없다. 유학에서는 인간의 본성 속에 내재한 ‘샘’을 ‘명덕(明德)’ 또는 ‘선성(善性)’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 또한 타고난 밝은 덕을 끊임없이 밝혀감(明明德)으로 세상을 구제하여 이롭게 할 수 있어야 타고난 소임을 완성하는 것이 된다. 그렇지 않고 변화의 동력을 상실한 채 습관과 타성의 진흙더미에 갇혀 더 높은 자리로 삶을 고양시키지 못하거나, 사적인 욕망이나 이해관계에 매몰돼 덕의 샘물을 헛되이 누수시켜 버린다면 본성적인 쓸모와 역량을 온전히 발휘할 수가 없게 됨은 물론이다. 이는 개인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공동체 전체에도 흉한 일이 될 것이다. 바로 이런 흉한 꼴이 나의 개인주의의 현주소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어떻게 될까. 두려워라, 우물이 뒤집혀 샘이 완전히 고갈되어 버린, 하여 어떤 존재에게도 자연의 은택이 베풀어질 수 없는 ‘택수곤(澤水困)’의 상황이다. 수풍정의 도전괘(倒顚卦)다. 왕부지에 따르면, 곤(困) 괘는 하늘의 운행이 아니라 오로지 사람의 일에서만 상징을 취한 것으로, ‘각기 그 만난 때와 마음씀 및 자질로 말미암아 그렇게’ 곤한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곤한 상황은 인간이 스스로 초래하게 마련이라는 것. 그러면서 이를 일 개인의 측면에서 보면 양으로 대변되는 선한 본성과 자질이 사적인 욕망과 이익에 의해 가려져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사회적 측면에서 보면 음유한 소인에 의해 양강한 군자의 도가 엄폐되어 막히는 상황을 의미한다고 덧붙인다. 이야말로 반자연이고 비윤리의 삶이 아닐 수 없을 터, 현재 나에게서 이미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그 고립과 피폐의 기미를 과감히 잘라내고, 우물 위로 솟구쳐 올라야 하리라. 지금까지의 상식적 성견과 욕망들, 습관으로부터 이탈·분리됨으로써 자연이 부여한 나의 쓰임, 나의 자연성을 나의 실존으로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기까지, 우물의 그 낮은 바닥에서 샘솟아올라 목마르게 기다리는 것들(?)에 나를 풀어놓을 수 있기까지 거쳐야 할 것이 있다. 수풍정 괘에서 지금의 내 꼬라지를 확인하고 또 이 괘를 통해 스스로를 새롭게 조형해가고자 하는 나, 이제 이 괘의 내면으로 들어가 어쩌면 피하고 싶었던 과제와 마주해야 한다는 거다.
3. 차이에 대한 이해 없이 대동(大同)은 없다
‘수풍정’이 품고 있는 것과 감추고 있던 것들을 까보니, 무의식인양 깊이 갇혀 있었던, 그동안 알고도 모르고자 했고 또 알고자 했으나 알 수 없었던 내 모습이 보인다. 교호괘인 화택규(火澤睽)가 그것. 이 글을 쓰면서도 신기한 것이, 나는 이 괘가 내 팔자와 관련이 있으리라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해서 그간 여러 괘들을 공부해오면서도 저만치 밀쳐두고 다시 볼 일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화택규는 어긋남과 갈라섬의 상황을 보여주는 괘다. 단전에서는, 성질상 못물은 아래로 흐르고 불은 위로 타오르기에 둘은 나가는 방향이 반대가 되고, 또 둘째 딸(火)과 막내 딸(澤)은 한 집안에서 자라지만 결국 다른 집으로 시집을 가게 되기 때문에 이같은 상징을 갖게 되었다고 하면서, 여기에 더해 이 괘가 갖는 심원한 우주적 의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천지가 다르나 그 일이 같으며 남녀가 다르나 그 뜻이 통하며, 만물이 다르나 그 일이 같으니 규(睽)의 때와 용(用)이 크다(天地睽而其事同也, 男女睽而其志通也, 萬物睽而其事類也, 睽之時用大矣哉)”고. 그렇다. 우주의 운행은 힘들의 차이와 불균형으로 인해 이루어진다. 질서와 평형 상태를 일관되게 고집한다면 그 가운데서는 어떠한 변화도 불가능하기에 이 우주는 살아있는 상태를 유지할 수 없거나, 적어도 정체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자연의 항상성이라는 것 또한 일정한 상태의 지속이 아니라 이질적인 힘들 간의 부딪침을 통한 끊임없는 차이화의 운동 속에서 가능하다. 뇌풍항 괘의 초효에서 고집스럽게 항상됨을 추구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浚恒, 貞凶, 无攸利). 그런 점에서, 규 괘에서 말하는 반목이나 대립은 우주 만물의 존재 조건이자 활동 역량에 다름아닌 것이다.
앞서 말한 바, 규 괘가 나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건 타자와의 갈등이나 대립을 내 삶에서 지우려고 했거나 삶의 조건으로서 마땅히 감당하지 않고 살아온 탓이다. 누군가와의 반목이나 갈등의 소지가 있는 상황을 가급적 피하려고 하거나 어쩔 수 없이 발생한 경우에는 상대와 나의 다름을 일찌감치 인정해버리고 결국 나의 문제로 귀속시켜버린다. 부딪쳐야 할 때 부딪치지 못하니 나의 내부에도 정서적인 동요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자기성찰 또는 의 마음다스림의 몫으로 남겨지게 된다. 그러다보니, ‘겸겸군자’와는 한참 거리가 먼 주제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자주, 관용이나 포용력으로 대변되는 사람으로 평가받거나, 심지어는 ‘세상에 공부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까지 들을 지경이 됐다(칭찬인지 욕인지, 선배 교사가 내게 했던 말). 그런 과정에서 어차피 ‘기쎈 사람’은 못 될 바에 아주 이쪽으로 밀어붙이자는 생각에 ‘좋은 사람’으로의 이미지 메이킹이 이루졌던 것이고. 물론 거기에는 무능을 역량으로 바꿔치기하는 자기기만까지 더해졌다. 공부 과정에서 루쉰이나 니체처럼 가차없이 적과 싸우고, 적과의 동침을 통해 나날이 스스로를 갱신시켜가는, 그야말로 전쟁 같은 정신과 사유 능력의 소유자들에게 깊은 매력을 느꼈지만, 그 이상 들어가지 못하고 매번 문 앞에서 멈췄다. 부단한 싸움의 긴장을 견딜 능력이 없고, 다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확인할 용기가 없는 나의 삶 속으로 그것들을 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들어올 수가 없었다고 해야 옳겠다.
규 괘 대상전에서는, 같음을 추구하면서도 다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君子以同而異). 이는 만물의 존재론적 동일성을 바탕으로 나와 타자의 다름을 인정하라는 것일 텐데, 역으로 모든 존재는 다 다르다는 인식의 전제 위에서만 ‘큰 하나됨(大同)’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생각해 보면, 타자와의 갈등과 반목을 견디지 못하고 서둘러 봉합하기를 일삼았던 것은 타자와의 다름과 차이에 대한 지나친 무감의 소치가 아니었을까. 타자도 내 마음과 같으리라고 쉽게 단정짓고 너그러이 이해하거나 포용하려 들었던 것은 어쩌면 오만하기 그지없는 자기동일화의 욕망이 아니었을까. 자신만의 고유한 리듬과 운동성을 지닌 존재들간의 진정한 차이나 다름은, 쌍방이 서로 부딪치고 무너지는 피흘림의 과정을 관통해야만 제대로 확인되는 법이 아닌가. 그러니, 스스로가 깨지는 게 두려워서였건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게 마음쓰여서였건, 그간 내가 대립 없는 상태를 편안하게 여겼던 것은, 모든 존재의 차이지는 사태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없었던 지적·정서적 무능의 결과로밖에 볼 수 없다. 이런 나에게 전체성을 향한 시야나 공적 사유의 물꼬가 트일 리 없었던 건 당연한 노릇이었다.
아니나다를까 규괘 효사들에서는, 갈등과 대립의 상황에서 자기와 어긋나고 다른 상대라도 피하지 말고 서로 소통해야 허물이 없을 것이라(初九,~~見惡人, 无咎)고 한다. 나아가 위아래에서 잡아채고 흔들어대는 바람에 물러날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극단적 반목과 불화의 상황에서도 창조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六三 見輿曳, 其牛掣, 其人天且劓. 无初有終) 기꺼이 ‘강자(지혜로운 자)’와 만나 그 힘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象曰, 无初有終, 遇剛也)고 말한다. 이 가르침들이 내게는, 이질적인 힘들과의 대면을 피하고서는 고립된 개인주의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말로 귀에 꽂힌다. 그런데 이같은 만남과 부딪침은 나와 다른 상대와의 관계에서만 문제가 아니다. 규의 상황에서 나를 도와주려는 사람이라도 이제까지의 습관적인 만남에서 벗어나 더 곡진하고 절박하게 만나(遇主于巷, 无咎)야 하고, 불안과 고립감을 느낄 때는 뜻이 맞는 친구를 만나 성실한 마음으로 교유할 수 있어야(九四 睽孤, 遇元夫, 交孚, 厲无咎) 그 뜻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 한다(象曰,交孚无咎, 志行也). 그 과정에서 가까운 누군가가 깨물듯이 내 안으로 깊이 들어와 오랜 편견이나 습속들을 까발겨 깨트리고자 한다(九五 厥宗噬膚, 往 何咎)면 ‘기쁘게 그 지혜 어린 충고를 받아들일(說而離乎明)’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내적으로는 스스로에 대한 자기 진실성을, 외부를 향해서는 두려움 없는 정신으로 적과 친구 모두를 향해 열려있어야 할 것을 요구한다. 이제 보니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규 괘만큼 부단한 만남과 부딪침(遇, 見, 交)을 통한 자기 변화를 강조하는 괘가 또 있을까 싶다.(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거 같기도 한데, 이런 대목을 보면 주역의 통찰이 참으로 놀랍다 싶다)
결정적인 것은, 상구효의 효사다. “괴리된 채 고독함이요, 돼지가 등에 잔뜩 진흙을 지고 있는 것과 귀신이 수레 한 가득 실려 있는 것을 보고, 먼저는 활시위를 당겼다가 나중에는 당기던 활시위를 슬그머니 놓는다. 적이 아니며 혼인을 청하러 왔던 사람이다. 가다가 비를 만나면 길하다(睽孤, 見豕負塗, 載鬼一車, 先張之弧, 後說之弧, 匪寇, 婚媾, 往 遇雨則吉.).” 뭔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사실적인 장면이 혼재한 한편의 클립 영상처럼 다가오는 멋진 구절인데, 역시 해석이 쉽지 않다. 대립과 반목으로 인한 고립의 상황에서 우리는 흔히 상대방에 대해 헛된 망상과 의심, 오해에 사로잡히기가 쉬운데, 그럴수록 해당 상황의 전개 과정과 조건들을 이성적으로 점검함으로써 사태의 본질을 포괄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고 나서야 공격의 활을 내려놓고 기쁜 마음으로 진정한 하나(大同)로 화합할 수 있어 모두가 좋은 삶을 누릴 수 있으리라는 것이고.
우물을 가운데 두고 오가는 무수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진(往來井井) 공동체 내부에 분란과 갈등이 없을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공동체의 역량을 더 강화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분열이나 갈등이 소모적인 것으로 귀결되고 마는 것은, 상구효사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개개인의 무지나 욕망이 빚어낸 두려움과 불안의 정념들, 집단적 이해에 기반한 미신적 환상에서 우리가 쉽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성적 인식을 바탕으로 그같은 정서적 예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때, 적(寇)이 친구(婚媾)가 되고 나아가 적과 친구의 구분조차 의미가 없어지는 진정한 공동체가 형성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이 모든 것들이 수풍정이 내부에 숨기고 있는 비밀 아닌 비밀일 터, ‘같음과 다름(同而異)’, ‘분열과 조화’, ‘부분과 전체’에 대한 동시적 통찰의 토대 위에서야 비로소 우물의 뚜껑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을, 안고 안기는 두 괘의 관계가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화택규 괘는, 갈등과 분열의 상황에 대처하는 군자의 도를 말하면서, 나, 그리고 우리가 우주 자연으로부터 공평하게 품부받은 우물의 덕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 힘겹게 통과해야 할 스텝과 미션들을 놀라우리만큼 정확하게 열어보이고 있다.
4. 나, 수풍정. 열린 우물을 위하여
다시 수풍정으로. 앞에서 본 바, 정(井) 괘가 품고 있는 규(睽) 괘의 전언을 온몸으로 감당하지 않고서는 초육·구이효와 상육효 사이의 그 아득한 간극을 단번에 뛰어넘을 수 없다. 우물물을 맑게 유지하기 위해 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려 외벽을 보수해 나가는 것처럼,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일상의 재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것이, 주역의 주석들을(상전) 채우고 있는 수신(修身)의 언사들이다. 여러 괘들에 등장하는 ‘반신수덕(反身修德)’, ‘자양(自養)’, ‘수성(修省)’이라는 인간적 과제는, 자아를 별도의 시공간에 고립시켜 남과 다른 독립적이고 이상적인 존재로 만들자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다. 우리가 닦고 바로잡아야 할 몸이란 것은, 천지자연의 한 가운데서 음양이 부단히 갈마드는 교차로이자 그 살아있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신이란 자연의 이치와 원리에 비추어 내적 올바름(正)과 상황에 맞는 적절함(中)을 모색·실천하는 것이고, 나아가 분열과 조화, 투쟁과 화해가 반복 순환하는 공동체적 삶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말과 행동, 그리고 그것들의 기반이 되는 마음의 장을 예리하게 연마해가는 일이다. 다름 아닌 공적인 삶의 회복 과정 및 실천이 바로 ‘수신’이라는 것인데, 이야말로 공부한다고 그토록 오랜 기간 연구실을 드나들면서도 자주, 어쩌면 아주 잊어왔던 바이기도 하다.
이제 내 고유의 陰적 에너지들이 시간의 더께와 결합해 더 단단하게 체질화돼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벗어나, 나와 무관한 양 외면해 온 온갖 혼돈과 대립을 끝까지 응시하고 마주할 수 있는 힘을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하여 생생불식(生生不息)하는 이 우주자연의 한복판에서 나라는 한 개체가 세계 내 모든 개체들과의 연계와 연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인식하고 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미 늦었다고? 수풍정의 이면(배합괘)은 ‘화뢰서합(火雷噬嗑)’이다. 벼락(불)과 우레의 에너지를 통해 지혜롭고도 위엄 있는 모습으로 내부의 문제 상황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괘 말이다. 주역의 관점에 따르면 서합(噬嗑)괘를 이루는 ‘불(火)’과 ‘천둥(雷)’은, ‘물(水)’과 ‘바람(風)’의 심층 기억이자 미래의 사건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나의 현재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해 온, ‘수풍정’의 초육·구이 효가 있는 ‘풍(風)괘’의 음양을 변환하면 ‘진(震)괘’가 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진(震)’이라니, 바람처럼 스며들어 공손하게 사는 것을 나름 미덕으로 알고 살아온 나의 신체와 정신의 깊은 곳에, 전혀 다른 힘이 잠재해 있으면서 언제든 천둥처럼 진동하면서 뚫고 나올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요는 드러나지 않은 그 힘들을 긍정하면서 언제라도 그 힘이 특정 조건과 만나 현실화될 수 있도록 스스로에 대한 고정된 규정에서 놓여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인트로에서 언급했던 ‘안티크리스트’ 운동(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다ㅋ)은 목하 진행 중이다. 나를 포함해 몇몇 교사들이 적당한 기회에 이사장을 찾아, 현재 학교의 기독교 교육의 방향(이걸, 건학이념 구현 교육이라 한다)과 교목실의 운영 방침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고, 그 내용과 이사장의 답변들을 정리해서 전체 교사들 앞에서 보고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구체적인 얘기를 하자면 끝이 없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나서서 자료를 준비하고, 찬반의 의견들로 분분한 교사들 앞에서 그간의 경위에 대해 발표를 했다는 거다. 마침 반 애들 수능성적 결과가 나오는 때이기도 해서 맘도 어수선했고 또 오랫동안 나를 길들여온 회의주의가 불쑥 고개를 내밀기도 했지만,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을 피하지 않고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사실 이 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기도 해서 더 힘을 써볼 염을 낸 것이기도 할 터, 글쓰기를 계기로 내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진(震)’의 힘이 밑바닥에서 치고 올라온 덕분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우물이 위로 올라올수록 물이 맑고 쓰임에 가까워지듯이, 정 괘의 효사 또한 위로 올라올수록 말씀들이 아름답다. 구삼효는 충분히 세상에 쓰일 만한 덕을 지니고 있음에도 인정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를 보여준다. 다만 현명한 조력자를 만나다면, 그 한계를 극복하고 쓰임을 이룰 수 있는 자리다. 井渫不食, 爲我心惻, 可用汲, 王明並受其福(우물이 깨끗한데도 사람들이 먹지 않는다. 내 마음이 슬퍼서, 끌어올려 쓸 수 있으니, 왕이 현명하면 함께 그 복을 받는다). 그럼에도 정이천의 말대로, ‘쓰이면 나서서 행하고, 버려지면 스스로를 감출 줄 아는 자’는 못되는 것이다. 여기서 더 올라간 구오효는,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 내면의 덕을 지키기 위한 지난한 노력의 과정(六四, 井甃 : 우물에 벽돌을 쌓는다)를 통과한 이후다. 그래서 탁월한 덕과 인품을 바탕으로 널리 쓰이고 베풀어질 수 있는 자리이되, 그에 대한 어떤 자의식도 완전히 정화시킨 지선(至善)의 상태를 보여준다. 九五, 井洌, 寒泉食(우물이 깨끗하여 시원한 샘물을 먹을 수 있다). 깊은 땅속을 흐르던 샘물이 스스로를 상승시켜오다 바야흐로 우물의 상부에서 맑고 깨끗하게 찰랑대고 있는 모습이라니, 이제 누구라도 그 물로 갈증을 해소하고 스스로를 기르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사대부의 시대에 공부깨나 했던 선비라면 누구라도 동경해 마지않았을 경지다. 과연 퇴계의 시에 <열정(冽井>이 있다. 書堂之南(서당의 남쪽), 石井甘冽(돌샘의 물이 달고도 시리도다), 千古煙沈(천년 세월을 안개에 잠겼으니), 從今勿冪(이제부터는 덮지 않으리). 자연의 도와 덕에 근접한 중(中)하고 정(正)한 삶의 자리를 그는 이토록 개결한 시를 빌려 소망했다. 이렇게 구오효의 우물물은 자연의 충만한 생명력과 그에 기반한 ‘제용(濟用)’ 역량을 풍요롭게 내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신을 통해 도달한 드높은 인격적 성취의 한 단면을 상징한다.
그런데 퇴계의 시에서도 보여지듯, 샘물의 여정이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그 샘물은 끝내 우물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늘 열려있어야 한다. 상육 효에서는, ‘그 우물물을 다른 이가 떠 마실 수 있도록 덮개로 닫아두지 않으니, 이는 항상됨으로 변치 않는 것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크게 기뻐할 일’이라고 한다. 井收勿幕 有孚 元吉(우물을 길어올려 뚜껑을 덮지 않고, 오래 지속하는 믿음이 있어 매우 좋고 길하다). 여기에는 인간적 욕망에 대한 마지막 경계가 담겨 있다. 개별자로서 우리가 끝내 내려놓지 못하는 것, 자신의 사유화에 대한 욕망과 집착 말이다. 여기에서 벗어나, 우리가 나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최후의 것인 자기의 덕이나 능력마저도 자연의 은택과 증여의 산물이라는 것을 받아들여, 스스로를 공공의 것으로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이 효사에 담겨 있다. 이는 많이 가진 자가 자신의 부유를 타인에게 베풀고 나누는 식의 인간주의적 미담은 물론이고 기부나 원조, 복지와 같은 우리 시대의 정책이나 담론들과도 그 결이 한참 다른 얘기라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게다 그것들은 자기현시나 권력욕, 나아가 획일주의나 폭력성으로부터도 자유롭지 않다. 빌헬름의 말처럼, 본성의 깊은 곳에서 길어올린 덕(역량)은 자신의 것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나눠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 없이는 불가능한, 실존 자체로써 온전히 타자에게 쓰임이 되고 구원이 될 수 있는 삶의 상태가 바로 자기 공유의 삶이다. 도달하기 힘들기에 희유하지만 이보다 복될 수 없는 그런 삶. 공자께서는 그같은 본성 속에 내재한 덕성의 완전한 이룸을 두고, ‘크게 이루는 일이(大成也)’라며 상찬하고 있다.
여기까지 이르고 보니, ‘이건 또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고지, 근사한 로망 하나를 머릿 속에 건설해 놓고 잘난 척 혼자만의 착각 속에 빠져 있겠다는 거 아님? 이거야말로 너의 장기가 아니었던가’ 하는 비웃음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도 하다. 하지만 초육효부터 상육효까지의 여섯 효가 하나의 괘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변화 양상을 나타내듯이, 각 효사의 일들 또한 모두가 매 순간 우리의 몸과 마음이 겪고 내보내는 변화무쌍한 사태들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내가 바로 수풍정이고, 수풍정이 나라고 해서 안 될 건 없다는 것. 그러니 지금 나의 알량한 개인주의조차 고정불변의 상수가 아니라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 그 뉘앙스를 계속 달리해 가며 변화의 도중에 있는 그 무엇이라는 것이다. 하여 우리의 삶이란 것이 다른 존재들과의 공생·공존의 결과물임을 인식하고, 나를 끌어 올려줄 수 있는 크고 작은 힘들에 기꺼이 반응하고 또 부딪치는 일상적 경험의 과정 속에서, 매번 다른 식으로 상구효는 나를 통해 드러나리라는 것이다. 상구효는 결코 고정된 완성태나 종착점이 아니다!
‘음(陰)’을 다시 생각한다. 나의 개인주의를 고착화하고 사적 욕망에 집착하게 만드는 원흉으로 지목당해온, 내 유구한 신체성의 상징. 그 음들이 양강중정(陽岡中正)한 정신적 에너지(구오효)를 위 아래에서 지키는 파수꾼이자, 비워낼 줄 아는 넉넉한 덕으로 우물의 뚜껑을 열어 누구에게라도 자신을 베풀 수 있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정(井)괘는 보여준다. 나아가 오랫동안 붙들려온 내·외적 욕망 체계들이나 관습으로부터 나를 풀어 외부를 사유할 수 있게 하거나, 규(瞡)의 상황에서 만나게 될 장애나 고통들을 인내하며 묵묵히 나아가게 하는 힘 또한 음의 힘이 아닐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잊어선 안 될 것이, 음적인 것을 형성하는 힘 속에는 언제나 음으로만 환원, 포획되지 않는 다른 힘(양)이 내재해 있다는 사실이다. 하여 ‘음(陰)’은 어두움이기도 하지만 그만큼의 밝음일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그렇다. 이 세계가 무죄인 것처럼, 음 또한 그 자체로 무구하다(양도 물론~~ㅎ). 다만 우리의 인간적 분별과 판단이 있을 뿐인지도…….
그동안 음과 양의 대별되는 성질들을 두고 양이니 어떻다 음이니 저떻다고 규정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신경을 써왔구나 싶다. 그런데 그보다 더 긴요한 일이 지금 내 앞에 있다. 그건 음양 두 이질적 힘들, 동·정(動靜)과 강·유(剛柔)들이 오직 ‘상마상탕(相磨相碭)’하는 가운데 이 세계라는 것이 현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좀 더 민활하게 감각하고, 그 신묘한 변화 가운데서 변이와 생성을 거듭하는 내 심신의 국면 국면들을 더 밝게 알아가는 노력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이 ‘궁신지화(窮神知化)’의 철학적 수련의 과정에서 현재 내게 주어진 이 공부의 장, 그리고 학인들과의 관계야말로 나를 변화시킬 가장 큰 힘이라는 것을 심호흡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 이것이 당분간 나의 과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끝)
이 집 물, 참 달고 시원하니 맛집이네 ~ 한잔 더!!!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고백록(?)이네요! '수신'에 대한 점검부터 현재 진행형 '안티 크리스트'까지 고민한 흔적이 사무치네요. 누구나 무상무득의 맑은 물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걸 길어 올리기 위해서는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내년 활약이 기대되는 에세이네요! ㅋㅋ
"드러나지 않은 그 힘들을 긍정하면서 언제라도 그 힘이 특정 조건과 만나 현실화될 수 있도록 스스로에 대한 고정된 규정에서 놓여나는 일"
얼마 전에 본 <드라이브 마이 카>가 생각나네요. 낯선 상황과 다른 존재들에게 운전대를 내어줌으로써 자신의 삶에 대면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거든요.
주역에 관한 건 거의 못 알아들었지만 키득거리며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저 또한 또 한 명의 (젊은?) 개인주의자로서, 올해는 샘과 함께 공부하며 자기-공유의 삶을 실험해보고 싶으네여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