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호빵맨
글 / 난희
1. 붕괴 그 이후
평생 인연이 없을 것 같았던 ‘장애인’이 내 피붙이라니! 있는 그대로? 동생의 모습을 어떻게 ‘있는 그대로’ 긍정하란 말인가. 사고 후 3년이 흘렀다. 정기검진을 위해 섬에서 나온 동생을 본 순간 나는 가슴이 내려앉았다. 저게 내 동생이라고? 동생은 호빵맨이 되어 있었다! 물렁한 살덩어리와 불균형한 체형을 본 순간 즉각적으로 연상되는 이미지는 관계가 끊어진 후미진 방에서 외로운 시간을 꾸역꾸역 채우는 잉여 인간이었다. 평생 살이라고는 안 붙을 것 같던, 약간 마른 몸매의, 싹싹하고 활기 넘치던 동생, 유능하고 유머러스했던 동생, 서글서글한 미소가 매력적이었던 동생은 간 곳 없고 내 앞에 있는 동생은 전에 없던 딴사람인데, 어떻게 그를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겠는가.
지주막하출혈. 목 뒷덜미 부근 거미줄처럼 얽힌 혈관들 중 실낱 같은 지류들, 몇 가닥 혈관이 터져서 피가 고이고 시간이 경과하는 만큼 응고되어 뇌기능이 부분적으로 마비되는 현상을 말한다. 3년 전 겨울, 동생은 양산부산대 병원 근처 PC방에서 나무토막처럼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긴박한 느낌의 둥둥둥둥, 쿵쿵쿵쿵, 혹은 세포들이 서로 비상 신호를 보내며 재배열될 때의 착착착착. 사람들이 일어서고 의자가 끌리고 구급대를 부르고 “이보세요! 정신 차리세요!” 웅성웅성. 그날의 난리는 이런 사운드를 동반한 한 장의 사진 속 푼크툼으로 나를 찌른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다. 사흘 만이었다.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은 것은 천운입니다.” 그보다 더 나빴을 n개의 경우의 수가 있었다. 이를테면 울릉도에서 배를 타고 나오다가, 혹은 울릉도에서, 출장 나와 묵는 모텔에서, 대학병원과 멀리 떨어진 수천의 장소에서, 또는 출퇴근 시간에, 응급실 상황이 여의치 않았을 경우 등등. ‘살았다’는 것은 천우신조(天佑神助), 인간의 손을 넘어 계량할 수 없는 무수한 인연들이 작용했다는 의미다. 이를테면 그때 통신이 두절되지 않았다는 것, 앰블런스들이, 그 바퀴가, 응급실 수술대의, 의사들의 손가락이, 모든 사물들이 일사분란하게 작동했다는 것. 미소한 것들의 동맹에 한 부분이라도 잡음이 발생했더라면 어땠을까. 사주명리를 공부하는 친구한테 동생의 그 해 운세를 물었더니, 동생의 명(命)줄은 짧은데 어릴 때 죽은 우리 막내 동생이 형에게 자기 몫의 명을 줬다고 한다. 무슨 의미일까. 우리는 각자의 목숨을 할당받아 나온 게 아닌가?
1년간 재활병원 신세를 지고 동생은 울릉도로 들어갔다. 출장 중 사고였던지라 직장에서는 2년여의 휴직 기간을 줬다. 나는 동생이 한직(閑職)이라도 붙잡고 직장 생활을 계속 이어갔으면 했다. 그 길이 사고 후유증을 극복하고 속절없이 가라앉지 않을 마지막 끈이라 생각했다.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던 탓일까. 몸은 좀 망가졌어도 씩씩하게 직장을 다니는 일상 속 재활인의 활기찬 일상, 장애를 ‘극복’하고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시련 후 얻는 삶의 지혜’는 그의 삶을 이전보다 더 풍성하게 해줄 것이다. 우리는 터널을 지나고 있고, 굳은 의지로 이를 악물고 통과해야 할 이 기간은 밝아올 새벽에 대한 악몽의 어둠이다. 동생, 파이팅!
하지만 동생이 28년간 종사했던 금융업계에서 물러나기로 했을 때, 나는 동생의 ‘다음’에 대한 꿈을 접었다. 아니, 솔직히 그 다음을 상상하기 싫었다. 왜냐하면 직장이라는 네크워크마저 끊기고 났을 때 동생이 꾸려갈 하루하루가 너무도 뻔하게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재활은 유야무야되고 마지못해 찔끔찔끔하는 ‘운동’으로는 마비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그 다음은? 장애인의 낙인이 영구히 찍히겠지. 아, 저 몸을 어찌할 것인가. 몸을 서로 바꾸지 않는 이상 그 몸의 세계를 가족인들 알겠는가. 얼굴 왼편이 마비되어 눈이 찌뿌둥해지고 그쪽 입술이 마비되어 입꼬리가 쳐지고 혀바닥도 잘 돌아가지 않는다. 뭉개지는 발음으로 총무는커녕 데스크에 앉는 것조차 무리였을 그 몸으로 복직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완벽한 대칭의 얼굴은 없다지만 동생의 비대칭 비율은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다. 신경들이 재배치되면서 귀에는 소격 처리되어야 할 소음이 전면에 돌출하고, 형상들은 흔들리다가 둘로 보인다고 했다. 동생에게 세상은 매 순간 불쾌하게 닥쳐온다. 자동차 백미러를 보면서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이라는 글귀를 명심해야 하는 것처럼 기억을 더듬어 흔들리는 사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동생에게 세계는 더 이상 1 더하기 1이 2가 되는 자명한 세계가 아닌 것이다.
생각해보면, 바다의 수심과 자신의 숨길이를 직관하는 것은 그 몸의 주인이다. 가족도 타인이다. 나는 그 몸을 가로질러 간 광풍과 그 이후 변화된 관계를 받아들이고 긍정하기까지 오랜 시간 뒤척여야 했다. 나는 두려웠던 것이 아닐까. 동생의 삶을 진단하고 모종의 대비책 내지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그게 여의치 않았을 때 마치 동생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질 것처럼 전전긍긍했던 예언자적 자세는 어떤 무의식적 욕망의 발로였을까.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조금씩은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더군다나 나이 드는 신체는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는 선이 불명확하다는 것을 날로 일깨워준다. 그렇다면 동생이나 나나 도낀개낀인 것은 매한가지 아닌가. 그렇다면 동생의 현재를 부정하는 이 시선 아래 감춰진 해석체계는 뭔가. 무엇보다 의심스러운 것은 나는 왜 그렇게 동생의 장애에 이토록 마음이 쓰이는가 말이다.
2. 무너질 것은 무너지리니
동생을 만나면서 이상형에 대한 나의 집착이 얼마나 뿌리 깊은가를 통감했다. 통과해온 지난 시간들이 모두 좋았던 것은 아닐 거다. 그때는 그때대로 불완전했고 결핍감을 느꼈겠지만, 그것은 ‘좋았던 시간’으로 표상된다. 그때는 좋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동생을 만나지 못했다. 자꾸 눈물이 쏟아지면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회한에 몸부림쳤다. 이상세계와 덧없는 감각의 세계를 나누고, 정말 좋고 참된 것은 이 세계에 없다고 한 플라톤주의적 정서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덧없는 감각세계는 지조 없이 다른 것들과 접속하며 끊임없이 바람을 피우고 모습을 바꾼다. 이런가 하면 저렇고 저런가 하면 이런, 규정하기 어려운 것들에 대한 경멸과 원망. 한때 김이 무럭무럭났던 생의 전성기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의 정서 속에 비치는 우리의 감각적 현실은 덧없는 가상이다. 꿈이요 아지랑이요 환영이다. 저것은 거짓이다! 그러나 이런 정서는 “허무주의이며 절망하여 죽을 정도로 지쳐있는 영혼의 징후”(니체, <선악의 저편> 1장 10)일 따름이다.
여기 그 배후에서 오직 ‘진리에의 의지’만을 들을 뿐 그 외에 더 이상 아무 것도 듣지 못하는 사람은 확실히 가장 예민한 귀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이 형이상학자의 공명심은 언제나 한 수레 가득한 아름다운 가능성보다 궁극적으로 한 줌의 ‘확실성’을 선호한다.(니체, <선악의 저편> 1장 10)
그날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관계들의 배치가 전면적으로 바뀌었다. 뒤에 가려져 있던 것이 전면에 부각되고,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가 작정하고 들으란 듯이 볼륨을 높인다. 그동안 나는 변화를 무엇이라 생각하고 있었을까. 변화를 사유한다는 것은 ‘관조’가 아니다. 계절이 순환하고, 있던 것이 없어지고 없던 것이 생긴다는 식의 상식적 관점은 시간에 따른 존재물의 위치 이동을 이미지화한 것일 뿐이다. ‘인생이 무상하다’거나 ‘일체가 공(空)하다’고 할 때도 결국은 이런 류의 상식이 지닌 허망함의 이미지일 것이다.
변화의 다른 말인 생성 역시 우리에게는 파릇파릇한 찬란함의 이미지와 등치된다. “때때로 생명은 지복이라기보다는 공포로서 경험되고, 잠재적인 것의 충만함이라기보다는 철저히 의미 없는 공백으로 경험”(제인 베넷, <생동하는 물질>, 148쪽)된다는 점을 우리는 간과하는 것이다. 변화와 생성을 사유한다는 것은 한 줌의 ‘확실성’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과 관계있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 그 ‘한 줌의 확실성’이란 무엇이었을까.
한 번의 사건으로 하나의 질서는 흩어지고 예측가능하다 믿었던 미래는 불투명해졌다. 어디로 한발을 내딛어야 하는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변화 속에서 나는 내가 세운 질서가 ‘옳음’을 주장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음에 분노하고 좌절하고 실망했다. 아사리 난장판이 된 집안의 질서를 바로잡는 수호자, 해결사의 역할을 자처했던 나의 무의식적 욕망은 한 줌의 ‘확실성’, 내가 나이고자 할 때 딛고 설 근거를 원했던 것이 아닐까. 나는 사건을 ‘겪은’ 것이 아니라 “사건의 배후에서 진리에의 의지”만을 들으려 했던 것이 아닐까. 사건의 와중에서 내 옳음을 기준으로 현실을 질서화하려는 의지는 한사코 보고 싶지 않은 것을 외면하고 듣고 싶지 않은 소리에 귀를 막았다. “한 줌의 확실성을 선호”하는 “형이상학자의 공명심”이야말로 내 마음의 초상이었다. 부끄러운 것은, 그 ‘한 줌의 확실성’이 상상했던 것만큼 그렇게 고급진 것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사고 이후 나는 섬에 발길을 끊었다. 엄마는 운영하시던 모텔을 동생과 올케에게 넘겼다. 어느 비 오는 봄날, 엄마가 “이제 나이 들어 여관 운영도 힘들어 동생한테 경영권을 넘겼다”고 했을 때 들끓던 그 감정을 생생히 기억한다. 부모님이 평생 일군 재산을 ‘사회적 명함’을 잃어버린 당신의 자식, 그 ‘아픈 손가락’에게 주겠다는데, 나는 왜 실망하고 화가 났을까. “아들 다 소용없고 역시 딸이 최고”랄 때는 언제고, 상속 문제에서 딸은 항상 ‘출가외인(出嫁外人)’ 취급을 받는다는 원망심이 앞섰다. 엄마도, 올케도, 동생도, 심지어 죄 없는 조카들까지 한통속으로 미웠다. 엄마의 전화 한 통에 그간 내가 기울였던 ‘가족사랑’의 민낯을 마주하는 것 같았다. 그간의 평화를 나는 ‘좋은 본성’들의 상호 협력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각자에게 주어진 본분을 다하고 제자리를 지키는 정적인 질서를 평화라고 생각하고 있었던가. 올케의 ‘선(線)을 넘은’ 언사에 충격을 받았던 나는 동생의 사고로 불거진 불화의 원인을 ‘그런 줄’ 몰랐는데 ‘알고 보니’ 성질이 ‘더러운’ 올케 탓이라 단정지었다. 그런데 애초에 넘을 수 없는 견고한 선이라는 것이 존재했던가? 도덕의 지구는 둥글다. 즉 “도덕적인 현상은 없다. 현상에 대한 도덕적인 해석만 있을 뿐”(니체, <선악의 저편> 1장 108)이다. 우선의 필요와 우선의 이익을 향한 맹목의 지향은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 뜨거울수록 맹렬하다. 불화의 장, 아사리 난장판이야말로 욕망들이 상충하는 삶의 현장이 아닌가.
일련의 사건들이 지나간 후 내게 삶은 난바다를 떠가는 배의 이미지와 겹친다. 그전까지 내게 삶이란 물 샐 틈 없는 배를 타고 한바다를 유유히 항해해 목적지에 다다르는 이미지였다. 또는 물 샐 틈 없이 든든한 한 척의 배를 마련하여 풍파에도 아랑곳없이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었다. 이거야말로 망상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대체 목적지는 어디고 출발점은 또 어디로부터인가? 은연중 우리는 삶의 디폴트를 ‘행복’에 두는데, 이때 행복이란 ‘안정’과 ‘별일 없음’이다. 그러나 ‘내 몸’이라 해도 내 것이 아니고 ‘내 생각’이라 하지만 한순간도 그 생각을 통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안정이 아니라 불안정이야말로 삶의 기본값인 것이다. 구멍 뚫린 허술한 배에 쉴새 없이 물이 차오르고 여기를 퍼내면 다시 저기에 물이 새는 걸 열나게 퍼내면서, 그래도 아무튼 어찌어찌 노를 저어 가는 것, 이것이 삶이 아닐까.
니체는 우리가 붙잡고 있는 ‘확실성’이 ‘한 줌’이라고 한다. 니체는 ‘확실성’이 필요 없다거나 무가치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진짜 하고 싶은 말은 확실성을 담보하는 것은 ‘없으며’ 설사 있다고 해도 임시적일 뿐이라는 것, 설상가상 그것은 모호한 것들과의 관계 속에 겨우 뿌리내리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간절히 전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확실성을 담보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라는 역설! 제군들이여, 믿으려면 차라리 불확실성을 믿어라!
니체는 껍질이 벗겨진 맨살의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맨살을 직면할 용기가 없다. “붕괴에 대한 이야기에서조차 진보에 대한 개념이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이다.(애나 로웬하움트 칭, <세계 끝의 버섯>, 94쪽) 이를테면 시련을 ‘극복’하라, 그러면 그 시련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거름이 되리라, 성장에는 아픔이 따른다 등등의 뻔한 수사학. 이 또한 확실성의 구도를 변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니체가 말한 “한 수레 가득한 아름다운 가능성”의 세계는 지금과 다른, 언젠가는 도달할 ‘저 먼 곳’이 아니다. 그것은 “한 줌의 확실성”을 포기하는 순간 펼쳐지는 세계이다. 전에도 있었지만 정말 그런 줄 몰랐던, 미미했던 주변머리들의 세계가 들고 일어나는 세계다. 그런 점에서 변화무쌍한 현실은 이상세계에 대한 가상도 아니고 본질에 대한 현상도 아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한다는 것은 나의 질서, 나의 진리, 나의 옳음이 그 자체의 무게를 띤다는 믿음을 폐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래, 무너지는 것은 무너져야 했던 것이다.
3. 다시, 한 수레 가득한 아름다운 가능성의 세계로
동생을 만났을 때 위로한답시고 오래전 베스트셀러였던 ‘오체불만족’ 이야기를 했다. 사지가 몽땅하게 태어난 오토 다케가 ‘그 몸’으로도 얼마나 씩씩하고 활기차게 살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뜻있게’ 살려고 노력하는지를 비장하게 설교했다. 동생은 내 말을 들었을까? 그 귀는 내 말을 소음 처리했을지도 모른다. 왜? 내 입을 통해 날아간 소리는 현재 동생의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은 진부한 구도에서 나온 말이었기 때문이다. 가소롭게도 그 말은 결국 ‘네가 지금 비록 장애인이지만 힘내서 살아라’는 뜻이 아닌가. 뜻이 그럴진대 아무리 좋은 말과 위대한 사례로 포장한들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는 선이 무너지겠는가. 묵묵히 듣고 있었던 동생의 심정이 어땠을까를 생각하면 참혹해진다. “걱정마, 누나.”라고 말해줬던 동생이 차라리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총체적으로 도판을 뒤집어야 한다. 영원, 불변, 완전의 상 아래 존재를 질서지우는 고리타분한 세계의 이미지는 가라! 하지만 그 상 아래의 질서와 의미를 폐기처분한다고 무의미로 떨어져서는 다시 그 구도에 종속되고 만다. 그렇다면? 의미에 대한 무의미 따위의 구도에 포획되지 않는 지평에 서는 것이다. 들뢰즈의 말을 빌리면 “한 종류의 이미지에 맞서서 다른 종류의 이미지가 갖는 권력의 가치를 높이는 일”(<들뢰즈가 만든 철학사>, 47쪽)에 뛰어들기. 그것은 니체식으로 말하면 한 줌의 확실성에 금을 내고, 명확하게 그어놓은 선을 지우는 일이다. 전투다. 이때 전투란 ‘자기극복’이며 자기 규정을 폐기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가능성의 세계란 행위 이전에 선험적으로 주어진 규정들을 괄호치고, 장애도 비장애도 애초에 구분이 없는 ‘삶의 차원’에서 매순간 살아있음에 감동하는 세계가 아닐까.
“각각의 인간은 경이롭게 생동하는 동시에 위험스럽게 생동하는 물질로 이루어진 이질적인 합성체다.”(제인 베넷, <생동하는 물질>, 58쪽)
장애를 왜 상실로만 보는가? 이상적인 신체라는 기준을 제거해 버리면 저마다 다른 신체만이 있을 뿐이다. ‘상실’이 아니라 ‘변환’이다. 아니, 변환은 뭔가를 잃어버린다는 의미에서 ‘상실’임과 동시에 새로운 무언가의 ‘획득’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내동생 ‘호빵맨’은 전혀 새로운 존재로 출현한 것이다. 그는 ‘정상’에 비해 ‘덜 떨어진’ 몸이 아니다. 온전한 몸에 대해 ‘격하된 사본’도 아니다. 나아가 그 몸은 뭔가를 잘못해서 받은, ‘죄’에 대한 ‘벌’도 아니다. 그는 ‘그 모든 것들’ 덕분에 살았고, 그 ‘덕분에’ 호빵맨이 되었다. 우리를 살리는 것은 내가 아닌 ‘나 아닌 것들’이다. 호빵맨, 너를 살린 무수한 힘들을 잊지 마! 그것과 한순간이라도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마. 몸은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복수적인 힘들이 교차하는 장이요 “생동하는 물질로 이루어진 이질적인 합성체”라는 사실을 잊지 마. 인간의 의식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생의 차원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맹렬한 작용-반작용의 교신들이 오고 가고 있는 중이다.
베르그손은 “적응한다는 것은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응답하는 것”(베르그손, <창조적 진화>, 104쪽)이라 했다. 우리가 흔히 적응이라고 할 때 떠올리는 두 가지 오해는 인간과 환경, 능동과 수동의 이분법을 벗어나지 못한다. 베르그손에게 적응이란 이미 주어진 것으로 전제되는 이항 대립(개체와 환경, 부분과 전체...)의 변증법적 해결이 아니다. 우리의 몸은 의식의 수준보다 더 아래에서 존재와 비존재, 필요와 불필요의 경계를 매순간 넘나들면서 거리를 재고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린다. 물질과 정신을 가르는 선은 흔들린다. “경이롭게 생동하는 동시에 위험스럽게 생동”하는 세계인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이미 경이로운 응답인 것이다. 동생은 죽었다 다시 살아났다. 창조적 부활, 호빵맨! 격하게 환영한다!
바쁘신 와중에, 샘께서 겪으신 중대한 사건을 이렇게 멋진 글로 승화시켰네요. 샘 글을 읽으면서, 고통이나 사건을 너무 관념적으로 접근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너질 것은 무너지는데, 이걸 직접 겪었을 때 어떻게 받아들일지~~ 공부를 하면서 내가 붙잡고 있는 확실성은 무너지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그런일이 발생하겠냐고 믿고 있지요. 마지막에 인용하신 베르그손의 “적응한다는 것은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응답하는 것"이라는 말이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마음을 울리고 깊은 통찰을 일깨우는 글 감사해요.😊 3화도 기대됩니다.
호빵맨! 이 주의를 끄네요. 얼마전 읽은 고흐의 편지엔 위험한 바다로 뛰어들어가야한다.. 그 위험지역이 오히려 안전하다! 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장애라는 것도 우리가 사회가 바라보는 관습적인 것 중의 하나겠지요. 그런 시선에서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수 있을까 싶어요. 장애가 상실이 아닌 "변환"으로 본다는 부분이 와닿네요. 신체의 변화가 그 변화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삶의 진정한 긍정일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병과 함께 살아가기... 병에 응답하기?? 여러모로 생각하게 하네요. 2번째 글 잘 읽고 갑니다^^
서울행 기차안에서 단숨에 읽었습니다. 가슴을 치고 둔탁한 정신을 깨우네요. 나 스스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마음속에선 금방 표준에 대한 욕망이 일어납니다. 진리를 구하는 일조차도 확실성을 바라면서 이데아로 가는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불확실성과 혼돈을 관념이 아니라 온 몸으로 겪고 받아 들여야 한다! 피를 토하듯 써내려간 글에 감사해요 ^^
이질적인 합성체로서, 응답하는 삶.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이질적인 것의 합성체, 해체의 경험을 더 자주 그리고 강도 높게 경험하는 시간인 것 같기도 합니다.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이 아니라 이질성의 합성체를 경험하는 강도로 우리 삶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이 해체를 더 자주 강하게 경험하게 된다는 차원에서도 나이듦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게 됩니다.
동생분에게 일어난 사고를, 난희쌤께서는 사건으로 겪으셨군요! 공부하면서 '변화', '생성' 같은 단어들에 찬란한 이미지를 입히면서 마치 '좋은 것'처럼 포장할 때가 많죠. ㅋㅋ;; 그런데 실제로 우리 삶에서 일어난 변화와 생성에 대해서는 정작 '변화'이고, '생성'이라 긍정하기보다 무작정 자책하거나 외부를 탓하기 일쑤죠. 그런 점에서 생각들을 분석하면서 도달한 '무너져야 할 것은 무너져야 한다'는 문장이 가슴에 닿네요. 그나저나 평소 난희쌤의 내공도 상당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와중에 난희쌤을 위로하는 동생분의 내공도 상당할 것 같군요..!
샘의 글은 읽으면 바로 댓글을 달 수가 없어 매번 하루를 묵이게 되네요. 파토스의 강을 건너 호빵맨을 격하게 환영하기까지 마음 안에서는 많은 것이 세워졌다 무너지길 반복했을텐데요,
동생분이 살아있다는 것이 변화와 생성에 대한 경이로운 응답이듯, 함께 살아가는 것도 재응답이겠죠. 잘 읽었습니다~~^^
호빵맨! 주말에 삼촌 얼굴을 보고 나도 호빵맨을 떠올렸어.
삼촌이 부정확한 발음으로 말할 때, 얼굴 근육이 제멋대로 찌그러질 때 마음 한켠에서 울컥하는 것이 자꾸 올라오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 숨기며 웃었지.
사실 삼촌이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해도
나나 내 엄마 아빠 동생일이 아니라서 그런가 한 다리 건너 마을 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현실감이 없다고 해야할까?
정말로 내 턱밑까지 닥친 일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
엄마의 글은 예방접종 같은 거라 할 수 있겠다.
예고 없이 닥칠 수 있는 사고나 언젠가는 올 수 밖에 없는 노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변화의 다른 말인 생성 역시 우리에게는 파릇파릇한 찬란함의 이미지와 등치된다. “때때로 생명은 지복이라기보다는 공포로서 경험되고, 잠재적인 것의 충만함이라기보다는 철저히 의미 없는 공백으로 경험”(제인 베넷, <생동하는 물질>, 148쪽)된다는 점을 우리는 간과하는 것이다. 변화와 생성을 사유한다는 것은 한 줌의 ‘확실성’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과 관계있는 것이 아닐까."
깊이깊이 담아두고 싶어요! 응답의 문제, 무척 묵직해요!
난희쌤의 글은 2번째 연재인데 인기가 많으네요.. 다 이유가 있겠죠? 흐흐흐~~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 규문이라는 공간에서의 몸과 현실세계에서의 몸은 큰 차이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내 몸은 규문의 문을 넘어서는 순간, 세상의 규정성의 상자로 낑겨 들어가거든요.. 그건 가족과도 회사동료와도 친구와도 우연히 마주치는 낯선 이들과의 만남에서도 내 감각이 달라진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마치 쌤이 가족과의 갈등을 겪었던 것처럼 저도 매번 세상과의 갈등에 어떻게 대응할지 난감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사소한 일로 생기는 오해에서조차도 인간의 정의를 묻게 되는 이 피곤함.. 살아있다는 것, 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신비롭고 경이로움의 차원이 아닌 공포로서 경험되고 의미없는 공백으로 경험된다는 것이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사유를 더욱 진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무한의 비관에서 무한의 낙관까지를 왔다갔다가 하는 출렁이는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그저 그 파도와 함께 표류할 뿐이겠지요. 쌤 글 진하게 잘 읽었습니다. 숙제해야 하는데 댓글다는 딴짓!! 다음글도 기다리겠습니다..
자신이 누려왔던 정신적, 물질적 기반을 스스로 없애거나 포기하는 일은 매우 드물 것입니다. 대부분은 피치 못할 외적 요인(사건, 사고, 질병 등)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상실하게 되죠. 오랫동안 척추, 신경 통증으로 아픈 몸을 살고 있는 나로서는 질환이나 통증의 두려움 못지 않게 상실에 대한 두려움도 큽니다.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에게 아픈 사람으로 낙인되어 가는 동안 나는 나의 질환과 통증에 도무지 잘 적응되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시간에 대한 댓가처럼 견디거나 치루어 낼 뿐이죠. 잉여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또는 좀 더 나은 잉여인간이 되기 위해... 그런 의미에서 주변 질서의 변화에 무력할 수 밖에 없는 동생의 "걱정 마"는 아마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을 것입니다. 그 무엇도 살아있음에 대한 최선의 화답이겠죠.
부끄럽지 않아야 할 것들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머릿속으로 백 번을 되새겨도 매번 남 눈치를 보며 기준을 맞춰사는 '정상성'을 꿈꾸는게 제 자신이었던 거 같네요. 선생님께서 선생님의 감수성을 끝없이 돌이켜보고, 한계도 느껴보시고, 그럼에도 다짐하시기를 반복하시는 이 글이 제게 위로를 주는 이유는 정곡을 찔렸기 때문 같습니다. 난희쌤의 글에는 제가 잊고 있었던 어떤 의지(생명력?)들이 가득합니다. 역으로 제가 의지를 잊어버렸을 때 '맞아 이런 태도가 있었지.'하면서 많이 배우게 되는 거 같습니다. 여러 번 읽었지만 오늘에서야 정리가 되어 댓글을 남깁니다. 너무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