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쓰는 마음
글 : 규창
1.‘일어난 것’은 하나인가?
역사는 단순히 있었던 일을 시간순으로 나열한 기록물이 아니다. 역사를 풀이하면 ‘지나온 것(歷)에 관한 기록(史)’이지만, 모든 것을 낱낱이 기록한다고 역사로 인정되는 건 아니다. 모든 기록이 그렇듯, 역사를 기록할 때는 기록해야만 하는 무엇이 필요하다. 후대에 전해야만 하는 교훈이든 지금 ‘우리’가 어디서 왔고, 누구인지를 설명하기 위한 뿌리에 대한 탐구이든 과거 일반이 아닌 특정 무엇에 대한 역사여야만 한다. 이로부터 어떤 사료를 선택하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가 제기된다. 그러니까 역사는 역사가가 ‘있었던 일(事實)’을 ‘역사적 실재(史實)’로 가공한 기록물이다. 때문에 역사가의 관점은 매우 중요하며, 이는 사료를 다루는 능력과 연관된다. 마치 뛰어난 탐정이 증거와 증언으로부터 숨겨진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것처럼, 뛰어난 역사가는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사료 더미에서 사료가 말하지 않은 것까지 이끌어냄으로써 진실을 직조해낸다.
그러나 탐정의 탐구는 사건이 마무리됨과 동시에 종료되지만, 역사적 진실은 필연적으로 끊임없이 의심될 수밖에 없다. 특히 지금까지 이어지는 정치적 문제와 연관될수록 더더욱 그렇다. 대표적으로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다’는 사실과 관련된 역사들이 그렇다. 동일한 사실로부터 ‘식민지 근대화론’과 ‘내재적 발전론’이란 상반된 역사적 진실이 도출된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강점기 동안 도입된 여러 근대 문물이 이후 한국의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반면에 ‘내재적 발전론’은 조선 후기, 일본의 근대 기술이 도입되기 전에 이미 근대로 도약할 조짐이 보였으며, 일본의 식민지화는 오히려 자주적 근대화를 방해했다는 주장이다. 두 주장 중 무엇이 더 역사적 진실에 가까울까? 양측 모두 나름 일정한 사료를 바탕으로 추론해 낸 결과다. 역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이처럼 동일한 사실로부터 모순된 해석들이 도출되는 것을 자주 본다. 다수의 ‘진실들’이 난립하는 가운데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역사적 진실성을 판단할 수 있을까?
2.‘있는 그대로’의 역사 서술
근대 역사학에서 최초로 역사적 진실을 규정하기 위한 원칙을 세운 인물은 레오폴드 랑케(Leopold von Ranke,1795~1886)다. 실증사학자로서 그는 역사적 진실을 인간의 해석이 아닌 사료로 구성하고자 했다. 그가 보기에,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성실하게 역사를 서술하려 해도 역사가의 해석은 언제나 편파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편견에 사로잡혀서 진실을 왜곡하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해석에 관해 이견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도 편파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해석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랑케는 진실한 역사를 쓰기 위해 무엇보다 철저하게 ‘진실된’ 사료를 선별했고, 사료가 전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했다. 그래야만 누구에게든 납득 가능한 보편 역사를 서술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요컨대, 역사가의 주관을 소거하고 사료가 전하는 바에 따라 ‘있는 그대로’ 역사를 서술하기. 이것이 랑케가 생각한 역사적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유일하고도 필수적인 원칙이다.
문제는, 이 같은 ‘보편 역사’가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단일한 시공간을 전제한다는 데 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할 때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 이는 역사에 절대적인 방향이 있으며, 진보하는 것은 항상 옳다는 유럽 식민주의자들의 생각과 비슷하다. 실제로 유럽의 많은 지식인들이 ‘근대화는 옳다’고 생각하면서 아직 근대화되지 않은 동아시아, 아프리카 등을 억압하고 착취했다. 그들에게 식민지인의 비참한 현실은 ‘근대화’를 위해 불가피하게 용인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처럼 ‘역사에는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있다’고 믿는 순간, ‘진보’는 역사에서 절대적 선으로 설정되고, ‘진보’를 위한 인간의 부단한 노력들만이 역사적인 것으로 기술된다. 아무리 끔찍한 상처를 남겼더라도 그것은 정당한 것으로 기록된다.
하지만 한 사회에 살아도 다른 삶을 겪는 우리에게 ‘동일한 문제 진단과 동일한 해결’ 같은 게 있을까? 가령, 식민지 근대화론과 내재적 발전론은 대립되는 것 같지만, 진보, 그러니까 자본주의 국가로의 발전을 선(善)으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이들에게 ‘문제 상황’은 근대 이전의 경제이고, ‘해결’은 자본주의 체제를 갖추는 것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당시 착취당한 여성들의 삶을 주목해 보라. 이들에게 근대화 내지 ‘진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보편 역사’에서는 이들의 삶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착취당한 여성들의 삶’은 자본주의 국가로의 발전을 서술하는 데 어떤 연관도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보편 역사’는 사료의 실증성에 기반해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서술한다고 믿지만, 의도와 무관하게 목소리를 잃어버린 자들을 배제하는 지배권력의 폭력에 대해 침묵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역사적 진실인가?’라는 질문은 ‘누구의 진실일까?’라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모두에게 납득 가능한 보편 역사 같은 것도 없고, 어떤 역사 서술도 하나의 시대를 총체적으로 아우를 수 없다.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써야 할 것과 쓰지 않아도 될 것을 선별한 결과다. 아무리 ‘있는 그대로’ 역사를 서술한다고 해도, 거기에는 언제나 쓰이지 않은 게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건 아니다. 역사를 서술함으로써 기존의 권력 구도를 재생산하고 폭력을 반복할 수 있지만, 반대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폭력을 근절할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블로크의 독특함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랑케의 ‘있는 그대로’ 역사를 서술하겠다는 원칙을 자기 문제의식으로 변형했다. 그에게도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될 수 있는 한 숨겨진 동기까지 찾아내면서 기술하는 힘든 작업”이다.(38) 그러나 그는 랑케처럼 단일한 시공간으로 환원할 수 있는 ‘보편 역사’를 기술하려고 하지 않았다. 똑같이 무지와 편견에 사로잡힌 한 명의 인간으로서 역사가는 다른 인간보다 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실을 서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블로크는 살아가면서 외면할 수 없는 자기의 진실을 역사에서 추구했다.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추구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된 진실. 블로크에게 이 진실은 ‘정의’였다.
3.사료 더미를 헤집는 마음
“그 어느 때보다도 거짓말과 헛소문의 피해를 입고 있는 우리 시대에 비판적 방법이 설사 교육 프로그램의 구석에라도 실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이 방법은 이제 더 이상 연구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몇몇 작업의 단지 보잘것없는 보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비판적 방법은 자신 앞에 광대한 지평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또한 역사는 이렇게 자신의 기술을 공들여 완성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진실(le vrai)을 향한, 따라서 정의(le juste)를 향한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는 것을 가장 확실한 명예 가운데 하나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마르크 블로크, 『역사를 위한 변명』, 한길사, 163)
블로크에게 정의란 일종의 지적 양심이다. 그에게는 ‘두 개의 세계 대전에 참가한 군인’이란 독특한 이력이 있는데, 독특하게도 이는 역사가로서 진실을 추구한 결과다. 그는 역사가임에도 전쟁에 참여한 게 아니라, 역사가였기 때문에 전쟁에 참여한 것이다. 그에게는 역사가로서 역사적 진실을 탐구하는 것과 시민으로서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 구분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2차 세계대전 중에 처형당했지만, 전쟁 내내 역사가로서의 저술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1940년에 조국 프랑스의 수도 파리가 함락당한 원인을 분석한 《이상한 패배:1940년의 증언》과 실천으로서의 역사에 대한 고민이 담긴 《역사를 위한 변명》은 전시에 군인으로 활동하면서 발생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저술한 것들이다. 이 두 권의 책을 통해 블로크는 역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역사를 서술하는 행위가 어떤 점에서 유의미할 수 있는지, 역사가가 취해야 할 태도란 무엇일지 등을 고민했다. 그러니까 그에게 총과 포탄이 쏟아지는 전장에서 적군과 싸우며 조국을 지키고자 하는 군인의 간절함과 왜곡과 조작이 난무하는 사료 더미에서 진실을 탐구하는 역사가의 마음은 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는 역사적 진실은 없으며, 따라서 역사는 있는 그대로 복원된 과거의 모습이 아니다’, ‘역사적 진실은 역사가의 관점에 따라 재구성된다’ 같은 이야기들은 익히 들어왔다. 그러나 한 번도 역사적 진실을 구성하기 위해 역사가가 어떤 마음으로 사료 더미를 헤집었을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고, 때때로 모순되기도 하는 사료 더미에서 무언가를 선택하고, 그로부터 하나의 진실을 구성하는 작업이 쉬울 리 없다. 남아 있는 공식 문서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지방마다 전해 내려오는 소문 같은 것까지 사료에 포함한다면, 역사적 진실을 구성한다는 건 사막에서 구슬을 찾아 하나의 줄로 꿰는 일과 비슷하게 어려울 것이다. 때문에 내가 도출한 역사적 진실이 되려 나의 무지와 편견을 강화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역사적 진실을 탐구한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역사 바깥’으로 추방된 자들을 억압하고 배제하는 폭력을 반복할 수도 있다. 아마 이런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어떤 역사도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절대적일 수 없는 것일 테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역사적 진실을 구성하려는 데에서 어떤 절박함이 느껴진다.
‘왜 이렇게까지 역사적 진실을 구성하는 데 절박한 걸까?’라는 질문에는 과거에 대한 탐구가 지금 내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역사에 대한 냉소가 깔려 있다. 그러나 “살아 있는 것을 이해하는 능력,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가의 중요한 자질이다.”(75) 사료와 사료 사이에 필연적으로 연결돼야 할 원래의 고리 같은 건 없고, 설령 있었더라도 지금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아무리 역사가가 자신의 관점을 소거하고 사료에서 역사적 진실을 들으려 해도,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삶을 통해 굴절된 역사적 진실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다. 동시에 우리는 역사적 진실을 통해 우리의 삶을 굴절시킬 수도 있다. 역사가가 자기 삶을 걸고 역사에 뛰어들 때, 그의 삶은 “기록의 ‘쇠찌꺼기’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자석”이 된다.(97) 이때 사료들은 단순히 먼 과거의 골동품으로 보존되지 않는다. 사료가 배치됨에 따라 상상하지 못했던 과거가 재생되고, 이와 동시에 현실에서 그동안 듣지 못했던 삶의 목소리와 형태들을 듣고 보게 된다. 즉, 과거의 오래된 사료에 온기를 불어넣는 건, 현실을 다르게 이해하고, 보다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한 현재의 삶에 대한 물음이다. 과거를 다르게 이해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현재를 다른 감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4.역사에서 삶을 보다
올해 몽골을 공부하면서 칭기스 칸이란 인물에 관심이 생겼다. ‘정주민=문명’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유목민은 문명 바깥의 존재였다. 서양의 역사에서 유목민은 ‘문명적인 것’이 결핍되었다는 점에서 야만인으로 취급되었다. 실제로 칭기스 칸은 서양 역사에서 훈족의 아틸라와 더불어 잔혹한 학살자 혹은 악마로 묘사된다. 칭기스 칸에 대한 이런 식의 규정에는 야만에서 문명으로, 유목에서 정주로 향해야 한다는 우리의 편협한 시야가 전제돼 있다. 그런데 칭기스 칸을 알아갈수록 그리고 정주민의 역사를 함께 공부하면 할수록 이런 식의 전제가 얼마나 편협한 시선에서 비롯된 불합리한 평가인지 알 수 있었다.
분명 칭기스 칸이 벌인 전쟁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영지가 파괴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에 있었던 전쟁들, 유럽에서 일어난 각종 전쟁과 종교를 명목으로 일어난 여러 전쟁들을 생각하면, 사람을 죽이고 삶의 터전을 파괴했다는 비난을 칭기스 칸에게만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칭기스 칸은 인재를 등용함으로써 정주민과의 공존을 시도한 유능한 통치자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는 동서를 가로지르는 영토를 확보했고, 최초로 ‘세계’라고 할 만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이런 맥락을 다 빼고 일방적으로 칭기스 칸을 야만인, 잔혹한 학살자로 단정하는 건 너무나도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칭기스 칸뿐이겠는가. 우리는 이런 식으로 역사를 불공평하게 읽어 왔다. 근대 문명 바깥의 역사에 대해서는 무시해왔고, 그들의 삶의 여정을 역사에서 소거해버렸다. 어느 문명이나 편협한 면도 있고, 잔혹한 면도 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완벽하다’고 할 만한 문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작년부터 마이너 세계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다른 감각으로 역사를 보고, 다른 역사를 서술할 때, 우리 삶에 대해 다르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문자 역사에서 중심(Major)으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단일한 목소리만을 들어왔다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주변(minor)으로 밀려났지만 고유한 중심을 가지고 살았던 다양한 목소리들을 듣고 싶다.
역사에서 '진실'은 무엇인가? 동일한 사실로부터 모순되는 해석들이 도출되는데, 무엇을 근거로 역사적 진실성을 판단할 수 있는가? 질문이 흥미롭네요! 그리고 랑케에게 '진실'의 문제가 해석이 아니라 사료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었다면, 블로크에게 '진실'의 문제는 자신의 삶에서 정의를 실천하는 문제와 분리되지 않았다는 점이 멋있습니다! 정의로운 삶, 정의로운 사회가 어떻게 가능한지 고민하며 사료 더미를 헤집었을 블로크가 떠오릅니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과거의 사료더미들을 역사적 진실로 재구성하면서 블로크가 느꼈을 '절박감'과 그 근원의 어둠을 헤아려 보면서, 당장 자기 눈앞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자만이 생의 심연을 두려움없이 기꺼이 건너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감사해요. 글고, 유목민사에 대해 더 많은 얘기 듣고 싶네요.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