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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란 뭘까
김경택
그러나 우정은 동시에 여러 가지 목적에 이바지한다네. 자네가 어느 쪽으로 향하든 우정은 그곳에 있네. 어떤 장벽도 우정을 막을 수 없지. 우정은 결코 시기상조일 수도 없고 결코 거추장스러울 수도 없네. 그래서 우리에게는 생활필수품이라는 물과 불 못지않게 언제나 우정이 필요한 것이라네.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비록 즐겁고 유익하기는 하지만 평범하고 상식적인 우정이 아니라, 소수의 유명한 친구들에 의해 구현된 그런 종류의 진정하고 완전한 우정이라네. 우정은 행운을 더욱 빛나게 하고, 불운은 나누고 분담함으로써 더 가볍게 해준다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천병희 옮김, 숲, 118p.)
우리는 살면서 한번씩은 친구를 사귀게 되는데, 우리가 살면서 만들어낸 우정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라일리우스의 입을 통해 키케로는 우정이 물과 불만큼 사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는 왜 우정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하는 걸까? 우정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니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일텐데 우정이 도대체 어떻게 삶에 도움을 준다는 걸까? 우리 삶에 도움을 주는 것은 우정보다는 다른 것이 더 많지 않을까? 예를 들어보면 사람은 살기 위해서 음식을 먹어야 되는데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농사를 하든 회사에 다녀 돈을 벌든 일을 해야 된다. 그러니 일을 하는 것이 사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우정은 오히려 바쁘게 일해야 될 때 친구 때문에 일을 방해하게 될 것이다. 일하기도 바쁜데 친구와 만날 시간은 어디 있으며 친구에게 뭔가를 대접할 여유도 없다면 그 친구가 계속 내 친구로 남을 수 있겠는가.그렇게 손해 볼 일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만 해야 되는 상황에서도 친구가 도움이 되는 부분도 분명 있다. 일을 할 때 모르는 부분을 경험과 여유 있는 친구가 알려주거나 도와줄 수도 있는 것이다. 친구와의 우정이 진실된 것이라면 그런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친구는 일을 도와주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친구 있었기에 일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친구가 그 일을 추천해 줬을 수도 있고, 친구가 옆에서 지지해 줘서 준비를 하고 일을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우정이 있어서 일을 할 수 있게되고 그 덕분에 살 수 있는 것이다. 또 일을 하는 중에도 잠깐이라도 쉴 수 있을 때는 있을 테니 그럴 때 친구와 함께 있으면 혼자 쉬는 것보다 덜 외로워서 더욱 힘을 얻게 된다. 예를 들어서 학교에 다니다 보면 사람마다 잘하는 과목도 있고 잘 못하는 과목도 있는데 잘 못하는 과목을 친구가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쉬는 시간에도 친구들과 놀면 혼자 멍때리는 것보다 훨씬 기운이 난다. 사람이 살기위해서는 음식이나 건강 등을 챙겨야 되지만, 아무리 먹고 마셔도 우정이 없으면 고독감에 빠지고 좌절에 빠져도 헤어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은 아주 두텁고 아주 진실된 우정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그런 우정이 아니라면 친구와 사귀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다. 그러나 매우 친한 사이에서는 손해를 보더라도 서로를 꼭 만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그런 우정이라면 서로에게 뭔가를 바라면서 우정을 이어나가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진정한 우정이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 계속 친구를 만나고 있는 거라면 그것은 우정이 아니라 거래나사기로 불려야 된다. 친구와 어떻게 만났던 간에 서로 호감을 느끼고 신뢰를 쌓고 서로에게 바라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것을 내어주려는 것이 친구 사이의 감정이다. 그래서 우정은 미덕과 선의가 있어야 생긴다는 키케로의 말은 확실히 옳은 말이다. 만약 누군가의 돈을 보고 그 사람에게 접근해서 오랫동안 알고 지내도 계속 그 사람을 돈 빨아먹는 호구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런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정이라고 보기 힘들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고 선의는 어디에도 없으니 말이다. 또 첫 만남은 그런 식이어도, 오래 사귈수록 그 사람이 좋아지고 그 사람에게 좋은 것만을 주고 싶다면 그런 관계가 우정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평소에 우정의 이런 중요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정이 물과 불만큼이나 중요하다고 해도 크게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사귀고 친구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없고 나 자신만이 홀로 있는 것을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인간이나 생물의 존재를 완전히 느낄 수 없는 곳에서 말이다. 그런 곳에서 우리는 엄청난 고독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며칠만 사람을 보지 않아도 외로움에 빠지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혼자 있게 되면 친구와 전화를 하거나 카톡을 한다. 우리 할머니도 그런 이유로 전화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그리고 전화할 친구도 없는 사람은 tv나 유튜브나 사진으로 다른 사람을 보거나 라디오로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거나 동물, 식물들과 어울려 지내게 되고, 이것들이 불가능하면 윌슨 같은 사물에 감정 이입을 하며 외로움을 달래는 것이다.
그러나 왜 우정인가? 왜 우정만이 앞서 말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친구가 취업준비를 도와주지 않아도 모르는 사람이 그저 선의로 자신을 도와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필요 없이 녹색창에 취업준비꿀팁을 찾아볼 수도 있다. 또 고독한 상황에 놓여 있을 때에서도 꼭 친구를 보고 외로움을 떨쳐낼 필요도 없다. 그냥 자신의 가족들을 보거나 지나가는 다른 사람을 보며 외로움을 달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친구와 사귀어가면서 도움을 받고 외로움을 달래는 것인가? 나는 그 이유가 사람은 관심, 공감, 사랑 등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사진을 본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사진이 말을 걸어주는 것도 아니고 공감을 해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자신과 소통하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생물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이 많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닌 게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들이 자신에게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는데 일절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외로운 사람에게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주지 못하고 오직 우정만이 충분히 그것들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그의 부모는 어떨까? 그의 부모는 그와 소통하고 믿어주고 공감해줄 수 있지 않는가.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사실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는 낳고 낳아진 관계에 불과하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이 친한 경우가 많긴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서로 무관심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부모와자식과의 관계에서도 서로 친해지도록 우정이 있어야 서로 소통하고 믿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정이란 우리가 진정으로 외로움에서 빠져나오고 싶을 때, ‘서로 공감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과의 관계’인 것이다.
그렇다면 16년을 살면서 내가 경험한 우정은 어땠을까? 서로 공감해주고 사랑해주고 도움을 주는 우정이었을까? 우정이 내 삶에서 중요한 것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유치원에 다닐 때에도 친구가 있었는데 유치원에서나 유치원 밖에서나 매일 친구와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나에게 가장 중요한 ‘놀기’라는 것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라는 존재는 매우 중요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어쩌면 친구라는 존재가 나에게 더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우선 학교를 유치원보다 오래 다녀서(유치원 3년, 학교 9년) 그동안 계속 같은 아이들을 보니 더욱 친밀감이 느낀다. 그리고 학교에 다닐 나이가 되면서 서로 선물도 많이 주곤 해서 키케로가 말한 우정에 따르는 이익도 많이 얻어보았다. 그러나 학교에서의 우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 우정이 학교에 나오는 원동력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학교에 가려면 일찍 일어나야 되고 학교에 가서는 공부만 하는데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학교에 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에게서 공감을 받을 때도 꽤 있는 것 같다. 대부분 친구가 다 동갑이니까 생각도 비슷하고 하는 일도 비슷해서 친구끼리 공감해줄 수 있다. 또 친구를 사귀고 같이 놀다보면 유대감이나 소속감도 느끼게 된다. 이런 점들이 우정에 따라오는 좋은 효과들인 셈이고, 이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외롭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우정으로 외로움을 떨쳐내는 효과에 대해서만 말했다. 우정이 중요한 이유가 그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것밖에 없을까? 그렇다면 고독감을 극복하는 것 말고 우정이 주는 영향을 받는 것이 뭐가 있을까? 바로 생각나는 것은 친구가 사귀면 사귈수록 더욱 서로 닮아가는 것이다. 친구와 오래 지내다보면 서로 음식 취향도 비슷해지고 말투도 서로 닮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친구가 착한 사람이면 나도 그 영향을 받아 올곧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은근히 어두운 친구를 만나 나도 어두컴컴한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친구로부터 도박 같은 걸 배워서 온재산을 날려먹을 수도 있다. 나도 초등학교 초반기에는 욕은 일도 안 썼는데 어떤 친구로 인해 한동안 욕에 찌들어 있었다. 또 친구들이 노래를 추천해주기도 하는데, 그렇게 새로운 노래를 듣게 되면 그와 비슷한 노래도 들으며 나도 그 친구의 취향에 물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정은 서로에게 주고받는 것인만큼 자신이 받을 걸 잘 받아야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도 우정은 우리에게 정말 중요하다. 어떤 우정이냐에 따라 우리에게 오는 영향이 달라지니 말이다.
우정에 관해 많이 생각해보았는데, 그럴수록 내게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고찰해야 할 것 같은 절실한 느낌이 들었다네. 우정이 약점이나 결핍 때문에 필요한가 하는 문제 말일세. 그렇다면 사람들이 친구를 구하려는 주된 목적은 각자가 혼자 힘으로는 쉽게 이룰 수 없는 이익을 서로 봉사함으로써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기위한 것이지. 그러나 이런 거래는 우정의 특성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네. 그 기원은 오히려 더 오래되고, 더 아름답고, 더 직접적으로는 인간의 본성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닐까? 우정(amicitia)이라는 말은 사랑(amor)에서 파생되었는데. 사랑이란 이해관계를 떠나 선의를 맺어주는 것 아닌가. 우정을 가장하여 누군가에게 아부하고 순간의 필요 때문에 경의를 표함으로써 가끔 이익을 취하는 경우가 있는 것은 사실이네. 그러나 진정한 우정에는 가짜와 가장이란 있을 수 없으며, 모든 것이 진짜고 자발적이라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천병희 옮김, 숲, 122p.)
나는 바로 이 부분이 우정이라는 것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우정에는 계산이 필요 없다. 키케로의 말처럼 그냥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다. 그러면 계산을 따로 하지 않아도 서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친구를 도와주니 서로에게 해준 일은 달라도 서로간의 균형은 맞춰지는 것이다. 애초에 사람은 자신에게 좋은 일을 한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더 좋아하게 되며 더 잘해주려고 한다. 나도 나에게 잘해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더 친절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들 들어 누군가 나에게 편의점에서 먹을 걸 사주면, 나는 그 친구에게 더 호감이 생기고 친해져서 딱히 의도하지 않아도 청소하는 것을 도와주는 등 친절을 베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주 좋은 친구 한 명이라도 친해져서 자신의 모든 친절을 쏟아부으면 우리도 그것에 해당하는 것을 받을 수 것이다. 물론 그런 것들을 기대하고 친절을 베풀어선 안되겠지만 말이다. 계속 말했듯이 우리가 친구를 사랑하면 그런 것들은 저절로 일어난다. 우정은 키케로의 말처럼 미덕과 선의와 호감으로 시작하는 사랑, 배려, 헌신, 신뢰의 집합체인 것이다.
이제 슬슬 데뷔해도 좋을 것 같은 수준인데요? 항상 감탄하면서 잘 읽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잘 써버리면 다른 공부하는 선생님들은 어쩌란 말이냐...' 하는 위기감도 솔직히 들곤 합니다. ^^; 청소년 팀이 더 많이 글을 써서 나눠줬으면 좋겠네요!
우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단순히 우정이란 외로움을 떨쳐내는 효과만이 아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 우리 자신이 결국 수많은 타인들과의 우정으로 형성되어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잠시 떠올렸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