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문톡톡
Q-mun Talk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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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와 글쓰기, 자기 변형의 실천
“이다지도 허무하고 허구적이며 나르시시즘적이고 자신을 향해 침잠하는 이 몸짓, 다만 아침나절을 할애해 탁자에 앉아 빈 종이 몇 장을 채우는 이 몸짓은 어떻게 하루의 나머지 시간에 대한 축복이라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일까요? 어떻게 직업, 허기, 욕망, 사랑, 성, 노동과 같은 사물의 실재가, 아침나절 동안 또는 하루 중 어느 때인가 글쓰기를 했다고 해서, 변형될 수 있는 것일까요? 자, 이것이야말로 수수께끼 같은 일입니다.”(미셸 푸코, 『상당한 위험』, 그린비, 51~52쪽)
뒤로 물러나려는 마음을 돌아보게 하네요. 글쓰는 동안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기쁨이 있지요. 괴로운데 즐거운 경험이죠. 글을 읽으면서도 촉발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자신의 언어의 한계를 실험하고 싶은 열망보다 위대한게 또 있을까요? 난 없는거 같은데...
제목 푸코와 글쓰기의 의미가 왜 건화와 글쓰기로 읽히는거지?
비슷한 공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서 그런지, 이번 글은 정말 절절하게 와 닿네요.
푸코가 만났던 저 의문, 백지 앞에 앉아있는 것이 어떻게 사물들의 색채가 달라질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에 뭔가 동참하게 되네요.
이 글을 쓰면서 '글쓰기'라는 실재에 대한 색깔이 달라졌겠죠?
이 놀라운, 그러나 머리가 빠질 듯이 힘든, 연금술 같은 실천을 응원합니다. (물론 그 실천을 해가야 할 저 자신에게도 응원을 좀 보내구요...)
글쓰기 모드에 진입하는 것을 즐기게 되는 날을 기다려봅니다. 혹시 너무 많이 작동시키면 부작용이 있는 건 아니겠죠... 푸코처럼 머리가 반짝이게 된다던가...
언어의 한계를 실험하는 것으로서의 글쓰기라... 타츠루가 생각나는 표현이군요. ㅋ
글을 씀으로써 경험을 구성하고, 나를 둘러싼 실재들이 다르게 구성된다는 건 어렴풋이 알 것 같으면서도 참 신기한 말이네요. 다른 사람들이 했어도 감탄했을 것 같은데, 푸코가 했으니 역시 푸코라는 생각도 들고요. 호오. 아주 곱씹어볼 만합니다.
좀 뜬금없이 들릴 수도 있겠는데, 얼마 전에 무심히조동진 노래를 듣다가 감동받아서 오랫동안 생각을 궁글려본 적이 있는데, 건화님 글을 읽다보니 딱 그 느낌이네요. 저만 그러진 않으리라 싶은데(^^) 요새 제 고민과 맞닿아 있어서 그런지 문장 하나하나가 다 삽날처럼 들어와 꽂히네요. 글쓰기로부터 피해 달아나고 싶을 때마다 꺼내 듣고, 글쓰기 모드를 즐길 수 이또록 해봐야겠어요. 뭐, 부작용이야 겁날 거 없고~ㅋㅋ
글쓰기의 수수께끼 같은 힘, 이전과 다른 사고의 회로, 자기 언어의 한계를 실험한다는 것... 건화샘의 글을 읽으니 쪽글 과제도 힘들다고 징징대는 모습이 참 초라해 보이네요. 이 한계를 넘어갈 날이, 수수께끼 같은 힘을 경험할 기회가 있을거라 믿음시롱 숙제해야 겠어요. 고마워요^^ 좋은 글 선물로 펼쳐 보여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