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자리를 생각한다
1.‘이념’을 넘어서기
모르겠다. ‘한때’ 정치적 무관심을 표명했던 청년들이 정치에 왜 이리 극성인지도 모르겠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실시간 투표 결과를 확인하는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어머니가 ‘유권자의 권리와 책임’을 강조하실 때만 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나였는데, 어떻게든 한 표를 행사하려고 30분 동안 줄 서서 사전투표를 했고, 그 결과가 궁금해서 새벽 3시에 눈을 뜨고 말았다. 자연에서 동물들의 급격한 집단적 행동 변화는 도래할 큰 사건의 징조라고 하던데, 우리는 도대체 어떤 변화를 목전에 두고 있는 걸까?
천천히 복기해보자. 일단 나는 정치적 무관심을 표명했던 청년들 중 하나였다. 나에게도 ‘대통령 선거일’은 수많은 공휴일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투표를 했던 것은 오랫동안 시민 운동가로 활동해오신 ‘진보’ 성향의 부모님을 위한 효도의 일환이었다. 나와는 다르지만, 나처럼 생각 없이 투표했던 청년들이 적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 그들 역시 선거철마다 쏟아져 나오는 가짜뉴스의 홍보에 영향을 받을 새도 없이 후보자를 결정했으리라. 이랬던 ‘우리’가 왜 갑자기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청년세대는 기성세대처럼 이념으로 정치를 논하지 않는다. 기성세대의 이념은 크게 좌와 우, 진보와 보수로 구분된다. 목표하는 바가 다를지언정 그들이 청년이었을 적 경험과 문제의식을 토대로 정리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또한 당시의 청년이었던 기성세대가 참을 수 없는 문제들을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그러고 보면, 모든 시대의 모든 청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고민하고 자기 나름의 실험을 시대 속에서 감행한다.
정치는 그러한 고민과 실험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현장일 것이다. 그동안 기성세대의 고민과 실험은 ‘이념’이라는 키워드로 정리됐다. 청년들이 갑자기 정치에 관심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자신의 고민과 실험이 비로소 수면 위로 드러난 것뿐일 테다. 그렇다면 청년은? 아직 모르겠다. 모르겠어서 막막하다. 그렇다고 해서 고민하고 실험하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다. 시대는 달라졌다. 청년세대는 기성세대의 이념을 이해할지언정 수용할 수는 없다. 이념은 더이상 지금 시대의 청년들에게 울림을 주지 못한다.
앞으로 청년세대는 어떠한 키워드로 자신의 문제들을 정리하게 될까? 이념의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것은 청년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증명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지금 청년들의 실존을 요약하는 키워드가 도출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갈 조건과 이 시대에서 마주하게 된 문제들 속에서 우리 스스로 무언가를 규정하고 정리해야만 한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2.길을 잃었을 때 자연을 관찰하는 이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청년으로서 자신의 실존을 고민하면서 느낀 이 원초적 무지(無知)와 무능(無能)은 어머니 뱃속에서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하다. 아마도 그때 나는 “응애-!”하고 힘차게 울면서 세상에 신고식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함으로써 실존을 해결했을 것이다. 상황은 그때와 비슷하다. 나는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들을 어떻게 제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내 나이 29살. 아무리 새로운 세계 앞에 무지하고 무능하다고 해도 갓난기 때처럼 “응애-!”하고 울어버릴 수는 없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사람들은 자연에서 길을 찾았다. 사막을 횡단하는 상인들은 별자리를 읽었고, 고기 잡는 어부와 작물 키우는 농부는 습도와 기온, 구름의 형태와 바람 등을 읽었다. 공자에 따르면, 《주역(周易)》을 지은 성인도 하늘을 관측하고 땅을 고찰함으로써 막막한 시대를 헤쳐나갈 지혜를 얻었다. 《주역》의 64괘(卦)는 성인이 자연을 관찰하고 그로부터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우주적 사건을 상징화한 거대한 서사시다.
성인이 64개의 괘에 담은 메시지는 특정 문제적 상황에 딱 들어맞는 정답이 아니라 하나의 문제적 상황을 다각도로 조망할 수 있는 관점을 담고 있다. 〈계사전(繫辭傳)〉을 보면 하늘과 땅을 읽는 성인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하늘과 땅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무언가가 생겨나고 자라나고 쇠하고 흩어지는 자연의 운행을 의미한다. 즉, 성인이 하늘과 땅을 관찰하는 것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과 삶이 자연의 운행 원리에 따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소소하게 울고 웃는 것부터 사회적 혁명의 성공과 실패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자연의 운행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천산둔괘(天山遯卦)를 보자. 둔(遯)은 ‘은둔’의 ‘둔’자로, ‘물러나다’, ‘달아나다’를 뜻한다. 둔괘는 한 사람의 생에서 보면 ‘은퇴’이고, 사회적으로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소인들이 득세하는 혼란스러운 시대의 초창기라 할 수 있다. 《주역》은 이런 상황에서 이전의 영화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때(時)를 읽고 물러나라고 한다. 때를 읽었기 때문에 물러날 줄 아는 인간은 동시에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안다. 반면에 때를 읽지 못한 사람은 물러나야 할 때에도 자리를 고집하면서 버틴다. 때를 읽는 사람이 새로운 시대에 새롭게 자신의 능력을 펼칠 준비를 한다면, 자리를 고집하는 사람은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을 따르지 못한 자신의 무능력함을 탓하거나 좌절감을 맛본다.
《주역》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적어도 자신의 능력을 발현하고자 한다면 자연의 운행을 관찰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성인들이 64괘의 상을 세우고(立象) 거기에 말을 달아놓은(繫辭) 이유는 괘와 효의 의미를 통해 삶의 길을 찾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의 괘는 여섯 개의 효(爻)로 이루어졌는데, 괘가 하나의 국면을 의미한다면 여섯 개의 효는 그러한 국면을 겪는 여섯 개의 다른 자리들을 의미한다. 이때 하나의 괘는 다른 63개의 괘와 면해있고, 하나의 효가 차지하는 자리는 다른 효들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즉, 모든 괘와 효는 다른 괘들과 효들과의 관계 속에서 고유한 자리(位)를 차지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살아가는 인간도 다른 만물과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고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면, 우선 자신이 어떤 자리에 놓여있는지를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주역》에서는 자리를 판단하기 위해 정(正), 중(中), 승승비응(承乘比應)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우리가 놓인 모든 자리는 항상 관계망 속에 있다. ‘청년’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청년은 앞서 청년이었던 기성세대와 앞으로 청년이 될 세대와 동시에 관계를 맺고 있다. 과거 기성세대가 겪었던 청년 시절과 지금 청년세대가 겪을 시절은 너무나도 다르다. 그들이 그 당시 설정한 중요한 관계항 중에서 기성세대가 있었을까? 있었다면 그것은 지금 청년세대가 기성세대와 맺고 있는 관계와 같을까, 다를까? 청년세대의 자리는 어떤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조명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입체적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놓인 자리가 어떤 관계망 속에서 규정되는지를 파악하지 않는 한 아무리 필사적으로 발버둥쳐봤자 갓난아기가 “응애-!”하고 울어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동일하다.
3.초효(初爻)의 출사표
지금 ‘청년’이 살아가는 시대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청년에 대한 판에 박힌 이미지를 점검할 수는 있겠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열정적이지만 미숙한 청년’이다. ‘열정적’이라는 말은 ‘아직 세상의 쓴맛을 덜 봐서 새롭게 일을 기획하고 실행할 의욕이나 힘이 넘친다’는 뜻이다. ‘미숙한’이라는 말은 ‘기성세대인 자신과 비교할 때 경험이나 기술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은 먼저 태어난 자신의 입장에서 나중에 태어난 청년세대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노하우나 연륜이 없다는 점에서는 ‘미숙하다’는 지적이 꼭 틀린 것 같지는 않다. 아직 숙련될 바가 아득하기 때문에 ‘열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는 능력이 부족한 건 아니다. 오히려 기성세대와 다른 감각으로 문제를 특이하게 포착하고 제기한다는 점에서는 기성세대 못지않게 탁월하다. 종종 또래 청년들이 자신의 문제를 제기한 글을 보곤 하는데, 질투가 날 정도로 잘 쓴 글이 많다. 어느 글에서도 기성세대보다 뒤떨어진다고 단언할 수 없다. 이는 한 괘의 여섯 효들의 관계를 봐도 알 수 있다.
한 괘의 여섯 효 중에서 무엇이 가장 좋고 나쁜지, 어떤 자리가 가장 출중하고 미숙한지 등을 그 자체로 비교할 수는 없다. 괘를 그릴 때는 아래에 있는 초효부터 위로 그리는데, 그게 곧 초효와 상효 사이에 시간적 선후나 경험의 양, 역량의 위계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여섯 개의 효가 자리 잡지 않으면 괘는 성립하지 않는다. 즉, 초효부터 상효(上爻)까지 모든 효들은 동시에 성립된 것이고, 각자의 자리에서 동등하게 읽어내야 한다. 〈계사전〉 하 2장에 “다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窮則變 變則通 通卽久)”는 구절이 있다. 《주역》만큼이나 유명한 이 구절은 모든 자리를 관통하는 의미심장한 진리다. 모든 자리는 자연의 운행에 따라 잘 풀릴 때도 있고, 막힐 때도 있다. 그것은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초효부터 가장 위에 있는 상효까지 동등하게 겪어야 할 필연이다. 각자는 자신이 막힌 자리에서 새로운 국면으로의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필연 속에서 발휘되는 능력은 비균질적으로 동등하다.
나는 ‘청년’을 괘의 가장 아래에 있는 초효(初爻)의 자리에 놓고 싶다. ‘나’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그만큼 수많은 문제를 겪으며 살아간다. 이 모든 것을 ‘청년’이란 정체성으로 겪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 꽤 많은 문제들은 ‘청년’으로서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나는 내 문제를 얘기하는 데서 매우 미숙했다. 나름대로 나의 실존을 관계 속에서 고민한다고는 했지만, 대체로 개인적 자기 수양에 그치고 말았다. 정말 자신의 실존적 문제를 고민했다면 자신이 놓인 자리, 자신을 둘러싼 것들과의 관계를 얘기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나’를 통해 내가 맺는 관계를 통해 나의 자리를 조망해보고 싶다.
따라서 ‘초효의 정치학’은 글 쓰는 ‘청년’인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에 무언가를 외치고, 요구하고, 때로는 싸우려 하는 또 다른 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아직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은 초효들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라 확신한다. 나는 나처럼 자신의 실존을 고민하는 데 애먹는, 그러나 기존의 정치 셈법으로는 환원되지 않을 고민을 갖고 살아가는 또 다른 청년들을 응원하고, 나 역시 응원을 받기 위해 이 글을 쓰려고 한다. 이제 남은 과제는 지금 청년의 자리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주역’ 연재 팀이 생겼습니다~!
2022년 규문톡톡 사용 설명서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 혜원누나, 태욱샘과 정옥샘이 주역으로 코너를 진행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주역으로 쓰는 사람들이 팀을 이루어서 자체적으로 서로의 글을 봐주면서 쓰자고 했죠. 그런데 혜원누나의 연재 계획이 달라져서 '지구력' 연재는 중단하고 다른 코너를 기획 중입니다. 저, 태욱샘과 정옥샘 셋의 글은 약간 연재 주기만 바꾸고 올라갈 거예요.
한 사람의 글이 한 주에 한 편씩, 3주에 걸쳐서 총 3편이 올라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한 주 저희끼리 좀 더 치열하게 치고받는 시간을 갖고 다시 3주에 걸쳐서 3편을 업로드할 계획입니다. 다음 주에는 정옥샘의 글이 올라오겠죠?^^ 혹시 저희의 안 좋은 얼굴을 보신다면 그건 글이 잘 안 풀려서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응원 부탁드립니다. 당 가득한 물질이나
수다를 빙자한 코멘트는 언제든 환영이에요!
주역을 전혀 모르지만 이번 주역팀 연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함께 관계 맺고 있는 삶의 운행을 숙고해 볼 수 있는 소중한 배움이 될 것 같아요. 주역 연재팀, 모두 힘껏 써 주세요! 감사히 읽고 자연의 이치를 배워 나가겠습니다~~
팀주역에서 연재가 시작되었다니 무척 반가운 소식입니다. 주역이라는 학문을 널리 알릴 기회이기도 하고 팀주역 학인들의 공부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획인 것 같습니다. 많은 관심 갖겠습니다. 이번에는 천산둔괘가 나왔는데.. 샘들마다 괘를 달리하여 쓰시는건가요? ㅋㅋ 기대됩니다.~^^
많이 경쾌발랄해진 샘의 첫걸음, 제 마음이 다 홀가분해지는군요. ㅋ 초효의 정치성을 입체적이면서도 싱싱하게 풀어 보여줄 거라는 기대가 막 솟구치는 듯합니다 ㅎ. 그나저나, 제목 굿!!! 나도 흉내내서 함 써볼까? 육오의 교육학??!!! ㅋㅋ
오! 규문당 청년대표 규선배께서 주역으로 세상을 향해 출사표를 던지셨군요.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실지 두근두근 기대만발입니다!
오호 동양 깜깜이로서 처음으로 궤의 구조를 엿보게 되네요!
또한 정치 깜깜이로서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기대하게 됩니다.
초효라는 자리 참 좋네요. 젊음의 특권...?
조급하게 나대고 날뛰기 쉬워, 초장부터 이빨뽑히고 주리를 틀려야하는 잔혹한 자리이기도~~ㅋㅋ
오오... 썩 좋기만 한 자리는 아니네요, 역시 주'역'인가
'청년들의 정치적 무관심'이라고 퉁쳐 오던 현상을 '기존의 정치 셈법으로는 환원되지 않는 고민'으로 이해한 부분이 공감 가네요. 앞으로 어떤 정치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