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평론? ‘예술평론가 되기’라니. 그건 전문가 영역 아닌가요. 그런데 그 모르는 예술에 대한 비평을 하다니요? 예술평론가 되기 과정인 ‘크크랩’이 예알못들에게는 낯설고 어렵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책과 영화를 좋아하는데 전문가의 해석을 듣는 것으로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셨나요? 사방에 넘쳐난 콘텐츠와 OTT 서비스 등으로 예술은 우리에게 흔하고 가까이 있는 것 같지만, 우리는 예술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도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만나는 것이고, 그래서 더 알고 싶고 끌리는 마음은 넘치는데, 내가 본 영화의 느낌을 누군가와 나누고자 할 때, 좋았어/별로야/멋있어 이 말 이외에는 생각이 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죠. 우리 각자가 가진 언어의 빈곤 속에서 우리는 늘 누가 올려놓은 블로그나 영화평을 검색하고 그들의 언어에 기대어 섭니다. 우리는 예술을 향유하기에 우리 자신의 언어가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크크랩은 우리 자신의 언어를 발명하고 이로써 미래의 새로운 예술을 도래시킬 수 있는 새로운 대중이 ‘되려고’ 합니다. 더 이상 콘텐츠 소비자로서 수동적 위치에 있는 대중이 아닌, 예술을 긴장시키고 새로운 예술의 출현을 함께 만들어갈 새로운 대중되기! 크크랩은 이 창대한 ^^ 비전의 소박하지만 단단한 한 걸음입니다.
먼저 1부에서는 저희 셋(주영, 지안, 인영)의 수다, 무려 4시간 이상 떠든 수다! 영화<해피아워>의 크크랩 버전이라고 볼 수 있는 ^^ 저희의 수다를 먼저 소개하고, 2부에서는 크크랩을 기획하신 채운 선생님을 모시고 여러 궁금한 점들을 풀어보려고 합니다.
1. 예술에 대한 잡담 (주영, 지안, 인영)
- #예술 #유용/무용 #대중예술 #낯선감각 #보는법배우기
주영 : 먼저 저희 소개부터 할까요? 저 먼저 할게요. ㅋㅋ 저는 예술하고는 아주 거리가 먼 직종에 있는 회사원입니다. 2018년 ‘이미지를 사유하다’라는 강좌를 통해 처음 예술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을 해봤던 것 같고요. 그 이후에도 ‘예술인류학’ 세미나, ‘예술을 묻다 ‘ 강의를 통해 예술에 대한 무지에서 조금씩 벗어난 것 같지만(?), 여전히 꿈속을 헤매는 중입니다. ㅋㅋ 아는 것은 없지만 알고 싶다는 열정(?)으로 이번 크크랩의 매니저를 맡게 되었는데, 예술에 대한 탐사가 매우 기대되네요.^^
지안: 저는 그래픽디자이너이고 시각예술 분야에 종사하고 있어서 예술이 가깝다고도 볼 수 있는데요. 실은 그래서 더욱 예술에 대해 모른다고 느껴왔어요. 특히 철학 공부를 하면서 예술에 대해 어떤 거리를 갖게 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철학이라는 외부를 통해 예술에 대한 일종의 객관화?가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도리어 다시 새로운 눈으로 새롭게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어찌 보면 철학을 공부하면서 더욱 예술이 궁금해진 것 같아요. 그래서 몇 년 전부터 규문에서 채운 선생님이 열어주신 예술 관련 세미나나 강의를 함께 해왔고 재작년에는 남산강학원에서 들뢰즈 <천 개의 고원>을 작년에는 규문에서 니체를 문학과 함께 공부했었는데요. 들뢰즈-니체를 공부하면서 특히 예술과 철학을 함께 공부하는 묘미를 느꼈어요. 니체가 쓴 수많은 예술-예술가에 관한 글들도 대단히 인상 깊었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예술 관련 프로그램을 연다고 하셨을 때 뽀로록 달려왔죠. 그런데 매니저를 어쩌다가 맡게 되어서 부담 백배인데 – 어차피 저는 가벼운 마음으로 주영샘께 그리고 우리 세심하신 인영샘께 살짝 업혀 가려고 합니다. 하하 (농담) 열. 심. 히. 하겠습니다!
인영: 저는 우연히 채운샘의 니체 강의를 듣고 규문에서 니체 세미나에 참여한 것이 전부인데요. 니체를 읽고 쓰면서 니체의 철학을 알게 되고 이해했다기보다 나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만 처절하게 깨달았죠. 지금까지 읽고 쓰는 법도 생각하는 법도 아예 몰랐구나. 그래서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읽고 써야 하는지 배움의 필요성을 배운 셈이죠. 이번 크크랩 과정도 예술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저 자신의 편견과 싸우기 위한 시도로 참여하게 됐어요. 바사삭 깨질 준비가 돼 있습니다!
지안: 자, 우리 예술에 대해서 평소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는지부터 얘기해 볼까요? ㅎㅎ
인영: 영화를 비롯해서 예술작품을 보고 나서 누군가와 얘기할 때 이게 왜 좋은지 혹은 나쁜지 말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이러면, 내가 예술을 감상하는 것이 유명 맛집 가서 맛 평가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란 생각도 들더라고요.
주영: 어릴 때부터 예술에 대해 정말 관심이 많아서 굉장히 많은 대중예술을 봤었거든요. 근데 막상 저도 제가 느낀 것을 말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왜 다른 분야 예를 들어 과학이나 철학은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예술에 대해서는 배우려고 하지 않았을까?
지안: 저는 아무래도 창작하는 일을 하다 보니 뭘 보거나 할 때 이걸 어떻게 만들었을까라는 창작자의 입장과 감상하는 관객의 입장을 동시에 좀 가지게 되는 거 같아요. 근데 늘 느끼는 지점은 이 두 입장이 좀 분리되어 있다는 거. 그래서 큰 간극이 느껴진다는 거. 그래서 '대중'이 뭐지?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인영: 그러면 예술가의 입장에서 생산자가 대중이라는 소비자를 위해 그 예술을 창조하는 행위도 예술이라고 할 수 있나요? 소비자를 위한 생산물을 만드는 것도 예술에 들어갈 수 있나요?
지안: 생산자나 소비자로서 대중을 고려해서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아니다 라기보단, 창작자는 그것을 향유하는,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혼자서 뭔가를 하는 게 예술은 아니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그게 대중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같이 갈 수 있는 어떤 지점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인영: 영화를 예로 들면 대중한테 굉장히 외면받거나 아주 낯설거나 이럴 경우에 "예술영화"라는 말을 써요. 이해 못 하겠다거나 너무 낯설고 불편하고 우리가 구축하고 있는 가치 판단 바깥에 있는 것들에 '예술적'이라는 표현을 써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예술'이라는 편견으로부터 벗어나서 예술이라는 이 말을 좀 이해해 봐야 할 거 같아요. 우리가 보통 대중이 향유할 수 없으면 그런 무용한 게 왜 필요해?라고 말하잖아요.
주영: 근데 무용한 게 예술의 특징일 수 있거든요. 지금 상품이라든가 어떤 기준을 만족시키는 것은 저희를 계속 균일하게 만들잖아요. 예술이라는 영역이 어떻게 보면 우리가 유용하다고 하는 것들에서 도주하거나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예술이 '무용하다’는 특징이 오히려 가장 큰 장점일 수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거의 모든 분야가 생존의 유용함에 다 맞춰져 있는데, 우리에게 무용하다고 할 수 있는 이 지점이 우리를 새로운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출구가 될 수도 있겠다. 저 같은 경우는 공부하기 전에는 대중예술 쪽에 엄청 돈을 말 그대로 '쳐' 발라서 ㅋㅋㅋ
인영: 대중예술? 예를 들면?
주영: 뮤지컬. 저 완전 뮤덕이었어요 ㅎㅎ 뮤지컬이랑 콘서트 등 진짜 엄청나게 많이 봤는데요. 거의 다 보다가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뮤지컬은 인간의 모든 감각을 다 만족시키는 그런 총체적인 장르구나~~. 연기도 있어 노래와 춤도 있어 무대예술도 있고. 그런데 이게 저를 다른 사유로 이끄는 지점은 별로 없더라고요. 오히려 감각을 동일한 방식으로 사용하게 하고 이 안에서 강도만 계속 높이는 것 같았어요. 결국 질리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보기엔 예술 분야에서 실험적인 시도가 많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게 지금은 동일한 것들의 포화상태 같다는 거죠. 물론 어떤 것을 봐도 같은 방식으로 해석하는 저희들의 역량도 문제긴 하지만.
지안: 저는, 다른 무엇도 마찬가지겠지만, 예술도 확실히 고정된 상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예술에 대해 갖는 생각이 극단적인 것 같아요. 한쪽에는 그래도 대중들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게 해야, 소통이 돼야 예술이지 전달이 안되면 그게 무슨 예술이야? 또 반대로는 완전히 너무 떨어져 있는 거, 아무도 이해할 수 없고 혼자만 알 수 있는 것(아마도 예술의 무용함을 다소 오해하는 데서 오는) 혹은 오로지 예술계 내부에서만 맴도는 경향. 대중이 알아봐 줘야 하는 게 잘 된 예술이야 VS 예술계에서 인정받는 거야말로 예술이지 이런 두 양극화가 있는 것 같아요. 어느 쪽이든 예술은 늘 사람들에게 뭔가 거대한, 특별한? 그런 느낌이 있는 거 같아요. 예술이 사실 사소한 것일 수도 있는데, 우린 그런 것들을 알아보지 못하죠. 어쨌든 예술은 뭔가 다른 것, 특별한 것이라는 관념이 있어서 그런 기준에서 한 쪽에는 대중적이지 않은 것이어야 예술이다는 것도 생겨나고 또 그 반대 여파로 사람들이 알아봐줘야 / 인기가 있어야 그게 사람들하고 소통하는 예술이지 하는 것도 생겨나고.
인영: 우리가 소통에 대해 가지는 규정도 이미 강한 거 같아요. 그러니까 위로나 위안이 되는 것 = 소통 = 이런 게 사람들을 위한 예술이다.
주영, 지안: 맞아요.
인영: 만약에 그 '소통'을 뭔가 일상에서 틈을 낸다든지, 숨통을 트이게 하는 새로운 실험으로서의 소통이라고 한다면 좀 다를 거 같아요. 우리가 대중예술, 예술 이렇게 구분하는 것도. 아까 주영 샘이 말씀하셨듯이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예술이라고 한다면 그게 철학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주영: 우리가 일단 예술에 대해 가지고 있는 견고한 상/편견을 좀 깨야 할 것 같아요. 푸코도 그렇고 니체도 그렇고 항상 삶을 예술로 만들라고 할 때마다 아 우리도 우리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들어야지 하는데 결국 예술작품이 뭐고 예술이 뭔지 잘 모르잖아요. 결국 각자의 고정된 편견이나 상에 맞춰서 이해하다 보니까 삶이 예술이 되게 하라는 말이 결국은 지금까지의 자기 자신에 그대로 머물거나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우리가 예술에 대해 공부가 필요하다고 봐요. 우리의 삶을 어떻게 '예술 작품'으로 만들 것인가!
지안: 예전에 채운 샘께서 '예술을 묻다'라는 주제로 강의해 주실 때, 새로운 개념의 예술을 만들어 보자라고 하신 말씀과도 연결이 되어요. (채운 샘 인터뷰에 좀 더 자세한 내용이 있습니다.)
인영: 그렇지요. 우리가 지금까지 예술은 이런 거야라고 여겨왔던 그 규정성을 벗어나는 것으로 예술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거잖아요. 주영 샘이 뮤지컬 좋아했던 것처럼. 우리의 사고방식이 좋다/나쁘다로 이원화하는 방식이 굉장히 확고한데, 이런 게 우리가 살아오면서 이 시대의 문명을 만드는데 유용했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구축된 것이죠. 하지만 예술은 좋고/나쁨을 벗어나는 것, 우리에게 낯선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죠. 우리의 확고하게 이원화된 가치체계를 해체하는 힘으로서 예술은 기존 사유 방식에 하나의 자극제가 된다고 생각해요.
지안: 맞아요. 저는 그래서 작년에 니체를 공부하면서 삶에 있어서 예술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배우게 된 거 같아요. 니체야말로 철학을 함에 있어서 예술을 통해 자신의 사유를 많이 넓히고 말랑하게 하고 그랬잖아요. 바그너의 음악이 특히 그랬죠.
인영: 네. 니체가 철학을 비극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했으니까요.
지안: 네. 들뢰즈가 철학을 사용하라고 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니체는 예술 사용법을 잘 보여주지 않았나 그런 생각. 니체는 자신의 삶을 하나의 철학으로도 만들었지만 하나의 예술로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니체의 철학은 뭔가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는데 저는 그 원동력이 니체가 가진 예술이나 예술가의 사유방식에 대한 깊은 조예에서 나왔다고 생각해요. 예술가의 작업 방식 같은 것을 니체가 (아마도 바그너를 통해) 많이 습득하고 철학에 사용했던 덕택. 철학자인 니체가 자신의 방식으로 예술을 사용한. 예술가라고 생각해요 저는 니체가.
주영: 특히 음악이 니체 사유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 같아요. 음악은 표현 방식에 있어서 계속 변하고 머무르지 않고, 무엇보다도 음악이 흐르는 것 자체를 소유하긴 어렵죠.
인영: 붙잡을 수 없고.
지안: 네 음악은 시간(예술)이죠.
주영: 네 그래서 거기서 굉장히 많은 영감을 얻었고 그런 지점이 철학으로 승화된 게 아닐까란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인영: 우리가 삶에서 사건이나 사물을 습관적으로 바라보는 방식을 예술은 다르게 보게 만들죠. 철학자들이 사랑한 예술가들은 사물에 있어서 완성된 어떤 것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이전과 다르게 포착한 것들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바그너는 그 이전과는 다른 음악을 시도했기 때문에 바그너만의 음악에 니체가 빠져들었던 것처럼. 니체가 그리스비극을 재발견하고 재해석했던 것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주영: 예술은 무엇보다 감각과 밀접한데, 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나게 해주는 것 같아요.규정되지 않은 힘을 예술가들이 포착해서 보여주잖아요.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힘을 '드러나게' 해준다는 거죠.
지안: 네 맞아요. 예술은 드러나지 않는 것을 가시화하는 거 같아요. 그게 음악언어를 쓰든 시각언어를 쓰든.
인영: 그렇죠. 언어화하는 거죠. 자기 언어로 번역하는 것. 그래서 이 지점에서 크크랩의 필요성이 도출이 되는데 ㅎㅎ
지안: 아, 그렇죠! 이쯤에서 자연스럽게(?) 우리가 비평 얘기를 좀 해봐야 할 거 같아요.
- #비평 #안쓰면쓱지나간다 #쓰는게향유다 #자신의해석언어=삶 #비교비평
인영: 예술가들은 자신이 느낀 세계를 자기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자신만의 언어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다, 나쁘다는 자신의 쾌감에서 벗어나지 못하죠. 그 쾌감도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매우 정치, 역사적이므로 그것을 깨보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우리가 습관적인 감각을 바꾸고 자신의 언어를 갖기 위해서는 직접 글로 써 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주영: 네, 글을 써야 책도 더 잘 이해되죠 ㅎㅎ 사실 제가 여행에서 미술관도 진짜 많이 갔었는데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모네가 살았던 프랑스 지베르니에 가서도 풍경하고 그림하고 비슷하구나 ㅋㅋㅋㅋ 이 정도.
지안: 다 똑같아요. 채운 샘 정도 되어야 ㅎㅎㅎㅎ
주영: 근데 만약에 내가 비평문을 써야 돼. 모네의 작품에 대해서 ㅋㅋ 그러면 제가 그렇게 감상을 했겠냐 이런 거죠. 글쓰기는 매우 중요하다.
인영: 진짜 우리가 '향유'라는 걸 하려면 그냥 소비자로 그냥 쓱~ 지나가면 안된다...
(갑자기 쓱 지나가신) 채운 샘: 잘 되고 있어 수다가? 주영, 지안, 인영: ㅎㅎㅎ 네....네~ 인영 : 수다가 아니라 왠지 세미나가 되고 있… 샘, 왔다갔다 흐름 끊지 마시고 ㅎㅎㅎㅎ (다시 수다/세미나 모드로 ㅎㅎ)
지안: 아! 그래서, 니체도 해석이 곧 삶이다란 얘기를 하잖아요. 저는 사실 비평에 대해서 진짜 사실 관심도 많지 않고 정말 잘 모르거든요.. 어떨 때 보면 비평가들은 정말 창작의 과정을 1도 이해를 못 한다는 생각도 들고. 비평가들이 진짜 중요하긴 한데… 실제로 해보면 이런 말이 안 나올 텐데 앉아서 말만 잘한다 이런 생각이 종종 들죠. ㅎㅎㅎ 물론 그래서(모르기 때문에) 볼 수 있는 부분이 있고 그런 면에서 어떤 (생산적인) 외부로서 기능하는 거 같기도 하고. 저 스스로도 비평과 창작에 대한 분리가 좀 있었던 것 같아요. 편견이죠. 같이 가야 하고 생산적인 창작은 생산적인 비평을 수반하는데.
주영: 네. 창작과 비평아 같이 가면서 담론을 만드는 거죠. 내가 그린 네모들은 그저 낙서지만, 몬드리안이 그린 수직선과 수평선들은 작품이거든요.ㅋㅋ 몬드리안은 직선과 지각, 삼원색, 무채색만을 이용해 작품을 그리면서 신조형주의를 주창했는데, 이것은 몬드리안 혼자 힘으로 된 것이 아니죠. 이에 대한 비평과 해석이 같이 만들었다고 볼 수 있겠죠.
지안: 의미를 만들어나가는 거 같아요 함께. 근데 그게 부정적으로 작용할 때도 있고. 누군가를 스타로 만들어 줄 수 있는 방식으로. ㅎㅎ 비평가가 어떤 말을 써주느냐가 대단히 중요한.
인영: 우리가 크크랩에서 할 비평은 어찌 보면 그런 전문가들의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 예술 비평에 대한 언어를 만들어가는 그런 게 될 수 있겠네요. 해석자/생산자가 다르지 않다는. 우리 사실 아까 얘기한 대로 뭐 영화 하나 보면 좋았다/재밌었다/멋있었다 밖을 벗어나서 뭔가를 얘기할 수가 없었는데 ㅎㅎ 여기서 우리가 좀 벗어나는. 비평한다고 하면 되게 어렵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는데, 그게 아니라 예술을 향유함에 있어서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자신만의 언어를 만든다. 이런 걸 우리가 크크랩에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안: 네, 그게 설득의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ㅎㅎ (급 영업) 예술을 향유하는 법을 배우고 함께 비평하면서 내 해석을 발명한다. 내 언어를 만든다. 니체에 따르면 그것이 곧 내 삶의 고유성이겠죠.
주영: 예술과 관련해서 시각, 청각, 후각 등 감각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는데요. 그런데 저희는 굉장히 감각을 습관화된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고.. 그런 면에서 크크랩 커리큘럼에서 읽게 될 책과 작품들은 낯설게 다가오죠. 그런데 이런 것들이 익숙한 감각에 균열을 내게 하는 것 같아요.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의 삶이 좀 더 풍부해지겠죠. 뮤지컬이 질렸던 이유는 너무 똑같은 감각의 재생산이었듯이 우리에게 감각을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요.
인영: 그 얘기를 하니, 최근에 영화 <티탄>이 떠오르는데 ㅎㅎ 거기에 자동차와 섹스하는 장면이 나와요. 굉장히 충격적으로 낯설게 다가왔는데. 성행위라는 것을 어떤 관계성으로 보면 모든 관계, 인간적인 의미에 국한되었던 관계에 대한 생각 자체가 달라져요. 이런 지점은 확실히 뮤지컬이나 이런 쪽에서 대중을 위해서 어떻게 흥행할 것을 만들 것인가 이런 방향과는 완전히 다르죠.
주영: 네, 대중적인 작품들은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유토피아를 실현시켜 주는데 초점을 맞추죠. 그런데 <티탄>의 경우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꿈은 아니죠 ^^ 우리한테 되게 충격이면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인영: 우리에게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낯선 것들을 계속 보여주면서 그 낯섦 속에서 내가 사건과 사물을 습관적으로 바라보던 방식을 완벽하게 깨 버리는 것. 그래서 그 영화가 좋았냐 나빴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기존의 경험을 벗어나 다르게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될 지점을 보게 해주는 영화를 만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주영: 그게 예술의 중요한 지점인 거 같아요. 보이지 않는 것과 일어나고 있지 않은 것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그런데 보통 대중예술은 약간 케이크같이 달고 맛있는데 금방 질린다.. ㅎㅎ 혈당이 너무 올라간다. 그리고 바로 뚝 떨어진다 ㅎㅎ
주영: 그리고 비평 관련해서 우리가 좋아하는 들뢰즈 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나는데 들뢰즈에 따르면 유일하게 참된 비평이 비교 비평이라고 해요. 저희가 공부하는데 필요한 지점인 거 같아요. 철학 예술 과학이 다 따로인 것이 아니라 진짜 필요한 비평은 이런 것들이 서로 교차하는. 예를 들면 들뢰즈가 쓴 <시네마>가 그런 거 같아요. 저희도 읽지 못했지만 영화에 관한 얘기인데 철학 책인.
인영: 비교 비평이 필요한 이유가 철학, 예술, 과학의 영역이 딱 구획되어 있지 않고 서로 교차했을 때 더 풍부하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이죠?
주영: 네, 그런 면에서 철학이 풍부해지려면 예술이 필요한 거 같아요. 예술과 철학의 연결 접속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렇다면 고민하지 마시고 바로 크크랩 신청하세요.^^ (클릭! 클릭!)
2. 크크랩 인터뷰 (채운 샘과의 인터뷰)
Q. 크크랩이라는 명칭이 생겨나게 된 배경에 대해 궁금해요.
<크크섬의 비밀>을 보다가 ^^ 생각이 났어요. 예술이라는 말이 너무 고상하고 현학적이어서 좀 가볍게 만들자는 취지로 일단 이 말을 가져왔는데. 우리가 비평이 핵심이니까 크리틱(critic)의 크, 크크섬이니까 크가 하나 더 들어가야 하는데... 지금이 우리가 코로나라는 팬데믹도 겪었고 그 어느 때보다 전환의 시대잖아요 지금. 그래서 크라이시스(cricis). 크라이시스는 위기이기도 하지만 이반 일리치에 따르면 분기점을 뜻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예술 비평에 대해 다른 식의 접근을 해보자는 뜻이고 랩이니까 그런 것들을 하는 실험실을 뜻합니다.
Q. 곧 나올 선생님의 <예술을 묻다>라는 책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거기서 '묻다'의 의미가 궁금해요.
예술을 묻다. 우리말에 하나의 단어인데 뜻이 전혀 다른 그런 말들이 있죠. '묻다'가 그런 단어인데, 묻다는 '질문하다'이면서 '매장(bury) 하다'라는 뜻도 되죠. 예전에 미술사를 공부할 때부터 우리에게 예술이 뭐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한편에는 예술 강좌를 목 말라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은데 또 동시에 예술을 향유하거나 소비하는 방식이 삶과 많이 괴리되어 있다는 생각도 들고. 예술가는 작품을 만들 때 모두 자신의 시대성을 반영한 건데 왜 막상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삶/시대와 분리되어 있다고 느끼게 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가 지금까지의 예술을 매장하는 동시에 어떤 것이 미래의 예술일 수 있을까 질문하는 그런 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Q.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우리는 왜 ‘예술’을 왜 공부해야 할까요?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사람의 몸에 뼈가 핵심이겠구나. 그런 면에서 철학은 뼈와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데 뼈와 같은 것이 철학. 즉, 삶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 이 핵심이 없으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나? 그러면 이 철학이라는 뼈에 도달해야 하는데, 그런데 만약 살이 없으면? 뼈만 남으면 그건 죽음이죠. '살'이 있어야 살아 있는 것인데. 우리가 뼈만 있다고 걸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면에서 예술은 살 같은 것 아닐까. 뼈에 도달하게 해주는 살과 같은 것.
예컨대 영화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영화는 우리한테 전부를 보여주지도 않고 직접적인 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구체적인 시공간, 구체적인 캐릭터라는 이런 물질적 구체적인 것들을 통해 우리를 무엇의 본질에 접근하도록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살을 거쳐서 뼈에 도달하는 것처럼. 예술은 경험의 세계를 다루죠. 우리 각각이 갖는 경험은 한정적이에요. 자신의 기질에 의해 협소해지게 마련이고 동일하게 반복되죠. 그런데 예술은 시공을 초월해서 경험할 수 없는 차원을 경험하게 해주죠. 예술은 나의 습관적인 방식과 다른 방식의 경험을 우리에게 주는데, 그 과정에서 한번 훅 하고 다가오는 사건, 관념적이고 막연한 어떤 것들이 구체성을 얻게 됩니다. 만약 사람들이 그런 경험들(그런 나의 경험을 넘어가는 그러한)이 없다면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심지어 나 자신조차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살아간다는 것이 나의 경험으로는 채울 수 없는 본질적인 경험을 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우리가 걷기 위해서 살과 뼈가 함께 필요한 것처럼.
그런데 예술은 왜 이렇게 삶과 괴리가 되어 있는가?라고 묻게 되죠. 그건 근대 예술의 영향인데, 근대에 들어서 예술은 개인이 하는 작업처럼 생각이 되어 왔죠. 중세에는 예술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성당의 벽화 같은 형태로 존재했고 그때 예술을 경험한다는 것은 지금과는 매우 달랐을 거예요. 예를 들어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이 그림을 그릴 때 이런 것들을 고려했을 거예요. 그때는 전기가 없던 시절이니까 해가 떠있을 때만 그림을 볼 수 있고 그런 조건 속에서는 명암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게 되죠. 성당이나 제단의 어디에 그림을 그릴 것인가라는 이 맥락에 따라서도 다르고요. 예술을 체험하는 방식이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던 거죠. 당시에는 그런 맥락들이 다 함께 고려돼서 예술이 총체적으로 체험되었다면 근대 예술은 예술가 개인이 작업을 하고 향유하고 어디에 놓여 있고 이런 맥락들이 다 따로 괴리된 것을 전제로 하고 탄생했어요. 미술관을 간다 해도 별반 다르지 않죠. 근대에 이르러서 영성이 사라지고 먹고사는 문제로 존재가 다 환원되어 버려서. 예술은 기본을 충족한 다음에 하는 장식으로 전락한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경제가 충족된 다음에야 비로소 예술을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되어 버린 것. 예술이 먹고사는 문제 다음에 와야 하는 것. <플란다스의 개>에서 소년의 꿈이 뭐였나요? 루벤스의 그림을 보는 것이었죠. 그렇게 가난한 아이가 왜 예술작품을 보려고 할까? 어쩌면 인간에게 더 숭고한 차원으로 존재하는 욕망이 있지 않을까. 감각적인 현존을 통해서 영적인 차원으로 실어 날라주는, 인간이 인간을 넘어가는 지점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종교나 철학처럼 예술도 감각을 매개로 하지 그것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감각을 매개로 인간에게 영적 차원을 열어주는 것이 예술이죠. 어찌 보면 그렇기 때문에 대중하고 괴리될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겠죠. 근대 예술의 출발이 그런 것도 있고 한편으로는 모두가 영적인 차원을 넘어가고 싶어 하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대중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역시 약간 다르게 물어야 하는 거 같아요. 즉 ‘나는 어떤 대중이 되고 싶은가?’ 영화나 그림도 잘 팔리는 것들도 있겠지. 어느 시대나 있어왔고. 예술과 대중의 괴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 지금은 접근성이 너무 좋죠. 온라인으로 누구나 다 볼 수 있어요. 이미지도 구글이나 유튜브에서 다 볼 수 있죠. 그렇게라도 볼 수 있게 된 것은 참 좋은데. 문제는 그렇게 쉽게 보고 끝이라는 점이죠. 예전에는 어렵게 어렵게 찾아가서 힘들게 봤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땐 여러모로 할 얘기가 있는데, 우리는 지금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는데 다들 각자가 가진 언어가 없어서 뭘 봐도 항상 다 의견을 검색하고 찾기 바쁘죠. 왜 우리는 더 많이 누리게 됐는데 더 수동적이 되지? 예술뿐 아니라. 우리는 다른 대중이 될 수 없을까? 다른 대중이 다른 예술을 추동합니다. 다른 대중이 돼야 다른 예술이 만들어지죠. 보고 느끼는 것에 담론을 형성하고 예술가들을 긴장시키고,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자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예술을 향유하는. 그리고 예술영화 대 대중영화의 구분이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대자본 영화와 소자본 영화의 구분이 있을 뿐. 각자 자기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예술'을 붙이는 경향이 있는데... 그게 아니라, 그것을 벗어나서 예술 자체를 개인화, 고립시키는 배치를 흔드는 실험들, 그런 공부가 필요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요.
Q. 2학기에 공부할 <신경미학>이라는 책이 좀 낯선데 이 책을 선정하시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예술을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까 하다가 감각으로 다가가자란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감각의 시대인데 감각을 우리는 너무 개인화하는 경향이 있어요. 모든 것을 '내가 그렇게 느꼈다'라고 하면 끝인 거죠. 느낌을 공유하는 것이 좋았어 혹은 별로였어가 그냥 끝이에요. 해석이 풍부해 지지 않는 거죠. 감각을 사유화해 버리고 취향도 사유화해 버리고. 그래서 감각 자체를 감각이 이루어지는 지평을 좀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책을 좀 찾아봤는데 감각의 사회적 지평에 대한 책이 별로 없었는데. '신경 미학'은 요즘 미학 중 하나인데 이 책은 뇌과학하고 연결해서 우리한테 감각은 어떤 메커니즘으로 전해지지? 신경 체계와 예술적 감각을 결부시켜서 얘기하는 내용이에요. 우리의 감각에 대해서 미학을 주관화하지 않고 객관화시키는 일이 필요하겠다. 감각의 체계를 공부. 우리 자신의 감각을 거리를 두고 조금 떨어뜨려서 이해해 보는 과정. 죽 논문들로 되어 있는데 나도 같이 튜터로서 같이 읽어가면서 공부하는 형식으로 할 거예요. 돌아가면서 발제하고 거기에 그림들도 나오는데 같이 보고 얘기해 보면서.
Q. 우리가 매 학기 9주 차에 글을 쓰게 되는데 이때 쓸 비평글이 우리가 생각하는 비평가가 하는 비평과 어떻게 다를까요?
저는 지금 시대에 비평이 있나?라는 생각을 해요. 예전에 직장 다닐 때 몇 년. 그때 유일한 낙이 <키노>라는 영화 잡지 보는 거였는데. 당시에 <키노>는 아주 영화 비평으로 혁명적인 잡지였어요. 그 이후에 이제 <씨네 21>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근대는 기본적으로 비평가가 중요하던 시대죠. 대중과 예술이 분리되다 보니 비평가가 필요했는데, 지금은? 일단 영화 언어가 너무 옛날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고, 담론을 그냥 겉으로만 두르거나 짜깁기한 것들이 많고 전혀 삶에 와닿지 않는 비평이 되어 버렸죠. 유튜브에 영화 비평이 되게 많은데 대부분 줄거리 요약이고 비평의 수준도 개연성이 있냐 없냐 이런 것을 말하는 정도라. 아니 그러면 관객들은 비평의 이런 문제조차 못 읽나란 생각도 좀 들고...
유튜브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글을 읽지 않아요. 그런데 비평은 말이 아니라 ‘글’입니다. 글을 써야 하면 관점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비평을 쓴다는 것은 그 자체가 공부에요. 비평은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술은 그런 식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해석’을 할 수 있어야 해요. 어떤 영화에 대한 자신의 경험. 자신이 감각으로 느낀 경험. 본 내가 던져야 하는 질문들. 스스로 모두 비평가가 돼야 하는 시대입니다. 내 경험을 왜 남에게 묻습니까? 그런 면에서 비평가라는 전문가에 대해 저는 회의적이고. 특히 지금 같이 모든 정보를 모두가 볼 수 있는 시대에. 예술에 대한 자기의 경험을 나누면서 삶에 대해 녹여낼 수 있어야 해요. 대중지성처럼 대중의 예술. 대중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고 탄생되는 예술. 그런 공부를 하지 않으면 다 콘텐츠 바보가 되어 버려요. 뭘 많이 보는데 할말은 별로 없는. 글을 꼭 써야 합니다.
우리가 쓸 예술비평 글쓰기에 대해서 좀 더 설명을 하면 우선, 작품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해요. 예를 들면 사진은 카메라, 프레임 그런 물질적인 것들에 대해 알아야 하겠죠. 이 분야를 어떻게 보는 건지 알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분석하는 법을 공부하고, 그것을 우리가 직접 예술작품을 감상하며 적용해 보는 것. 먼저 보는 것을 배우고 각자의 비평 연습을 하는 것이죠. 여러 다른 장르를 접함에 있어서 보는 법을 배우는 것. 우리는 뭘 보고 뭘 듣는 것인가?
1학기 때는 문학 비평을 넣었는데, 특별히 '문학' 비평이라기보다는 비평에 대한 총론을 배우는 것에 가까워요. 김종철 선생님의 문학 비평은 생태적 관점이라는 자신의 관점- 근대문학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비평 자체를 바라보는 고유한 관점이 있어서 그런 것들을 배울 수 있어요. 예술에 대해 탈근대적 관점을 갖는다는 게 무엇인가. 비평에 대해 무언가에 대해 관점을 갖는다는 게 무엇인가. 이런 지점. 예술에 도덕성은 뭐지? 왜 사람들은 예술의 허구에 선악의 단죄를 개입시키고 그것에 쾌감을 느낄까? 예술은 허구인데, 그 허구의 힘이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실제이고 싶어 할까 예술을 비평하는 데 있어서 관점을 가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울 거예요.
이상으로 2022년을 화려하게 열 크크랩 소개를 마치며... 한 가지 빅뉴스를 투척하고 사라지겠습니다. 앞서 잠깐 언질을 드렸지만 우리 크크랩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글도 쓰고 그렇게 해서 함께 여행도 갑니다! 코로나와 기타 등등 국내외 상황이 어떨지 모르지만! 크크랩 과정 후, 영국, 스페인 미술관 여행! 갑니다! 가서 작품들 실물 영접하는 것으로!
인생은 실전이다!
가자! 배우고 보고 체험하자! 아자아자!! 어여들 오세요!!! ^____________^
예술은 즐기고 향유하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이건 굉장히 수동적인 자세였네요.
내 삶의 살과 같은 예술에 대한 공부, 글쓰기를 통한 새로운 '대중되기'가 와닿았지만,
무엇보다도 빅뉴스가 가장 맘에 듭니다...ㅎㅎㅎㅎㅎㅎㅎㅎ
무지하게 만났던 작품들, 이젠 지푸라기라도 알고 만나기~~~~ 씐나씐나 ㅋㅋ
코끼리공장
2022-02-05 21:52
글을 꼭 써야 한다는 문장이 가슴팍에 꽂힙니다만 ㅋㅋㅋㅋ 여러모로 기대되어요! 특히 과정 후 여행? ㅋㅋ
예술가-되기
2022-02-06 18:48
철학은 뼈이고 예술은 살...
ㅋ 저 살이 너무 없었다는거를 실감하며
내몸을 살찌우기를 목표로 해야겠어요
크크랩다이어트
2022-02-07 21:36
살이 차라리 없으면 찌우면 되는데, 푸석푸석한 살은 빼기가 어렵다는 말씀드리고 싶네요. 크크랩에서 다이어트하기!! 단단한 뼈에 알맞게 붙은 살을 소망하면서~~^^
예술은 즐기고 향유하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이건 굉장히 수동적인 자세였네요.
내 삶의 살과 같은 예술에 대한 공부, 글쓰기를 통한 새로운 '대중되기'가 와닿았지만,
무엇보다도 빅뉴스가 가장 맘에 듭니다...ㅎㅎㅎㅎㅎㅎㅎㅎ
무지하게 만났던 작품들, 이젠 지푸라기라도 알고 만나기~~~~ 씐나씐나 ㅋㅋ
글을 꼭 써야 한다는 문장이 가슴팍에 꽂힙니다만 ㅋㅋㅋㅋ 여러모로 기대되어요! 특히 과정 후 여행? ㅋㅋ
철학은 뼈이고 예술은 살...
ㅋ 저 살이 너무 없었다는거를 실감하며
내몸을 살찌우기를 목표로 해야겠어요
살이 차라리 없으면 찌우면 되는데, 푸석푸석한 살은 빼기가 어렵다는 말씀드리고 싶네요. 크크랩에서 다이어트하기!! 단단한 뼈에 알맞게 붙은 살을 소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