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들의 독자-되기, 저자-되기 프로젝트" 2탄 “우리는 만물과 함께 살아간다”가 마무리됐습니다. 이번에도 저번처럼 리뷰를 쓰고 리드해주신 튜터 선생님들(정옥 선생님, 민호 선생님, 정아 선생님, 혜원 선생님)의 은밀한 심사를 통해 혜린이가 장원으로 선정됐습니다. 혜린아 축하해~! 하지만 등수를 가린다기보다 꾸준히 결과물을 낸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꾸준히 쓸 수만 있다면 등수야 앞으로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의 글도 재밌으니 함께 읽어주세요!
혜린이 글에 대한 선생님들의 코멘트를 함께 소개할게요.
민호 선생님 : 월든 숲의 정취를 흠뻑 머금은 느낌! 도시 속 중2의 퍽퍽하고 바쁜 삶으로부터 숲의 풍요롭고 여유로운 삶을 상상하며 들었떤 마음을 솔직 담담하게 풀어놓은 글에 푹 빠져들게 되네요. 거기에 작고 현실적인 실천 방안들까지 발견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첫 월급이 저자님을 월든으로 데려다 주기를!
혜원 선생님 : 마치 소로우가 된 것처럼 월든 호숫가를 거니는 듯한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묘사에 대한 감상에 그치지 않고 거기서 배운 점을 잘 정리하고 자신에게 적용하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돋보였어요~
정옥 선생님 : 첫 문장부터 월든 숲에 함께 들어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 글. 한 폭의 풍경화를,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묘사와, 자신의 버거운 일상과 숲의 대비를 통해 월든 숲에 가고 싶은 이유를 설득력 있고 차분하게 끌고 가 좋았습니다. 숲에서 여유를 즐길 목록에서는 빵 터졌습니다.
정아 선생님 : <월든>을 읽고 난 혜린이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글이네요. 숲에서의 생활을 감상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이면까지 생각해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양하게 찾아낸 점이 인상적입니다. 언젠가 월든에 당당하게 입장할 혜린이 모습이 그려지네요.ㅎㅎ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월든》, 전행선 옮김, 더클래식
월든에서 자라난 갖가지 생각들
이혜린
《월든》을 읽고 난 뒤 나는 문득 숲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숲에 가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처럼 한낮의 여유로움을 즐기며 낚시도 하고, 친구를 초대해 함께 늦은 점심을 먹고, 숲과 호수의 편안함을 느끼며 편히 쉬고 싶었다. 바쁜 생활에서 벗어나 낮잠도 푸욱 자고 싶었다. 소로우의 약간 과격하기도 하지만 자세하고 아름다운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그 숲에 들어간 풍경이 쫘악 그려지며 당장이라도 달려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있는 숲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릴 수도 있을 것만 같이 선명하다. 어쩜 묘사를 이렇게 잘할까? 물론 내 상상력도 발휘가 됐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의 메마른 감성을 팍 터뜨려 버린 소로우의 그 묘사들 중에서도 제일 좋았던 건 바로 이 부분이다.
“따스한 저녁이면 나는 자주 보트에 앉아 플루트를 연주한다. 그리고 내가 매혹한 듯이 내 주위를 맴도는 경치를 보게 된다. 그리고, 달은 숲의 잔해들과 함께 흩뿌려지듯 나의 보트 늑골의 나무 위를 지나간다. 예전엔 이 호수를 여러 차례 찾았다. 아주 깊은 여름밤에, 친구와 함께, 물가에 고기를 끌어모아 줄 거란 생각에 모닥불을 피우고, 끈에 잔뜩 매달은 지렁이로 고기를 잡았었다. 그리곤 깊은 밤 속으로 타고 있는 목재들을 호수로 로켓이 떨어지는 양 높게 던져 버렸다. 그리곤 쉬익 하는 소리를 내며 불이 꺼지며 우리는 불현듯 완전한 암흑 속을 더듬었다. 그러곤, 휘파람으로 서로를 찾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지금은 호숫가의 나의 집이 반겨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전행선 옮김, 더클래식 출판사, 205~206쪽)
달은 숲의 잔해들과 흩뿌려지듯, 완전한 암흑 속을 더듬었다 등등. 약간은 판타지스러운 묘사들이 내 눈길을 끈 것 같다. 또 따스한 저녁에 보트에 앉아 플루트를 연주하고 친구와 깊은 여름밤, 모닥불을 피우는 모든 것이 부럽고 좋아 보였다. 나는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더 그런 것 같다. 물론 캠핑을 가거나 어딜 갈 때 모닥불을 피운 적은 많지만, 가족들과 있는 건 동생들이 내 옆에 있다는 뜻이고, 그건 곧 시끄러움과 약간의 짜증을 유발한다. 짜증을 내는 것은 내 탓도 있긴 있다. 당연히. 하지만 나도 낭만이란 걸 한 번쯤은 느껴봤으면 하는 중학교 2학년이다. 그래서 나중에라도 소로우가 살았던 월든 숲에 꼭 가서 그가 느낀 모든 것을 나도 체험해 보고 싶다. 준비할 것은 튼튼한 신체인데, 집을 직접 스스로 짓고 먹거리도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공을 배워 놓았고 아빠를 따라 정자를 같이 지어 보기도 했고, 그만큼 튼튼한 나는 딱히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하하.
숲에서 여유를 즐길 목록은 다음과 같다. 매일 매일 푹 자서 부족한 잠을 보충할 것, 하루가 다 가기 전에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딴생각을 하든 그림을 그리든 내가 그곳에서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을 아무 때나 마음대로 할 것, 한마디로 시계를 보지 않고 생활하고 싶다.
물론 숲이라고 무조건 여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도시에서 살 때와는 다를 것이다. 눈을 떴다가 일어나면 학교에 가고, 저녁에는 숙제할 생각에 머리가 빠질 것 같다. 하물며 숙제가 없는 날마저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메모지 가득 빼곡하게 할 일을 적어놓고 체크해 나가며 새벽까지 그 일을 꼭 마쳐야 하는 등 정신적으로 많이 뭔가에 쫓기듯 사는 것이 도시에서의 나의 일상이다. 이런 일상에서 벗어나 눈을 떴을 때 해가 중천에 있어도 내가 자고 싶으면 자고, 일어나서 배고프면 텃밭으로 나가 먹을 걸 따서 요리를 한다든지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텃밭을 가꾸는 것으로 인해 일이 늘어나긴 하겠지만 도시에서 살 때보다는 할 일과 시간 맞춰 물을 주고 뭔가를 외우고 하는 것은 없으니 괜찮을 것 같고, 또 남이 시키는 게 아니라 정말 내가 살려고 키우는 농작물이니까 안 해도 혼나지도 않고, 양심에 찔리지도 않고 배만 고플 거라는 점이 마음을 그나마 쫓기지 않게 해줄 것 같다.
하이고... 난 요즘 내가 선택한 거긴 하지만 여러 악기와 운동에 학교 숙제까지 (숙제는 내가 선택한 게 결코 아니다ㅜㅜ) 겹쳐 매우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또 중간중간에 치과에다가 자기 전 교정기 끼기, 성경 읽기, 할머니가 부탁하신 그림그리기, 친구랑 약속한 그림그리기, 규문 숙제하기, 방 정리하기, 공부하기 등등 머리가 아프다. 숲에서는 그런 식으로 정신없지 않고 바로바로 먹거리를 구하지 못하는 등 불편한 점도 있겠지만 여러모로 정신적으로는 편안한 삶이 될 것 같다. 내가 어른이 되면 마음의 여유를 즐기러 자주 숲을 찾아갈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학원을 끊으면 되지 않겠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차마 뭔가 끊을 수가 없다. 어쨌든 나중에 숲에서 머물게 되면 열심히 플롯을 독학이라도 해서 숲의 호숫가에 놓인 보트 위에서 달빛을 받으며 감성적으로 연주할 것이다.
그래서 내 생각에 소로우가 이곳에 온 것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손해가 아니다. 그는 몇 년간 이곳에 살면서 자연만이 줄 수 있는 여유를 잔뜩 느꼈고, 숲과 동물의 여러 행동, 요리법을 알게 된다. 대표적으로 빵은 이스트 없이도 잘 구워진다는 것이 그렇다. 학교나 다른 곳에서 억지로 배우고 끙끙대며 외우는 것보다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터득하면 더 즐겁고 재밌게 배움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살면 배움도 되고, 마음도 편해지고, 일석이조 아닌가? 정말 일 년만 이렇게 살면 어떤 일이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꼭 환경이 아니어도 내 마음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것 같다. 그걸 못해서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 지쳐가는 게 아닐까? 하지만 지금 제일 불안한 것은 내가 그렇게 쉬다가 오고 싶은 월든 숲을 포함해 세상의 많은 숲이 어쩌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너무 크게 보면서 지구 자체에만 관심을 뒀지, 숲이나 강, 이런 것은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월든》을 읽고 나니 묘사되어 있는 그 숲의 자연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난, 어느 곳보다 《월든》을 읽고 나서 숲이라는 장소에 끌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숲은 지금 무서운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하물며 어마어마하게 큰 아마존마저 지난 60년간 프랑스 면적만큼 사라졌다니 말이다. 그러니 난 더 많은 숲이 사라지는 게 현실이 되기 전에 반드시 조금이라도 노력해서 완전한 숲에 갈 것이다.
예전에 지구만 봤을 때는 너무 범위가 커서 막막했었는데, 이젠 목표가 생겼으니 좀 더 활력 있게,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주말에 캠핑을 가면 집게를 들고 가서 그 캠핑장이 위치한 숲 혹은 산을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줍고 다니고, 할머니댁에 가면 텔레비전을 적게 봐서 전기를 아끼고, 전기장판을 트는 대신 패딩을 입는 등 전보다 더 노력할 것이다. 사소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전에는 쓰레기 배출과 불 끄기 정도밖에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로서는 장족의 발전이다.
이렇게 어른이 될 때까지 열심히! 아주 열심히! 노력하고 첫 월급으로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어서 월든에 당당하게 입장할 것이다.
저도 수년 전에 월든을 읽었을 때, 바쁜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꿈을 꿨더랬는데, 그 때 일었던 감정들이 다시 상기되네요. ^^
"낭만이란 걸 한 번쯤은 느껴봤으면 하는 중학교 2학년" ㅋㅋㅋ 재밌네요. 혜린이가 언젠가 정말로 훌훌 털고 숲으로 가는 날이 오길, 그리고 당장은 떠나지 못하더라도 지금의 일상에서 숲에 있는 것과 같은 마음의 여유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프로젝트 2탄 장원글 축하해요^^
만물과 살아가며 자라나는 생각들을
고스란히 정성스럽게 볼 수 있어 참 좋아요.
에세이에 혜린이의 글을 무단 인용했음을 고백합니다. 어떠한 처분이라도 달게 받고싶진 않지만, ㅎㅎㅎ.
제 마음과 똑같은 구절이 있어 나도 모르게 그만 복사해서 붙여 버리고 말았네요.
어느 대목일까요? 물론, 놀고 싶고 쉬고 싶은 마음이죠.
재밌게 잘 봤구요. 담에 또 제 마음에 와닿는 부분 있으면 인용해도 되나요? 사전허가 예약 요청.
근데,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가 문득 생각났는데요, 월든은 미국에만 있는게 아니라는 것 같던데.
아이고 선생님 저야 영광입니다 얼마든지 ,아니 선생님이 쓰신 글이라고 해도 되요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그리고 월든이 미국에만 있는 게 ㅏ니라면 더 싸게 갈 수도 있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