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동체생활방식의 처참한 변화
이번 시간은 일정정도 비밀에 쌓였던 러다이트운동을 한꺼풀 벗겨 본 세미나였습니다. 산업기계에 대한 폭력이 무지하고 무능한 노동자들에 의해 자연발생적이었는지? 아니면 정치적 혁명적인 목표로 배후 선동가에 의해 은밀하고 체계적으로 견지되었던 것이었는지? E.P.톰슨은 승리자들에 오염된 문서들과 무감각하게 흘러나온 자잘한 보고자료들을 중심으로 노팅엄, 랭커셔, 요크셔 세지역의 러다이트운동이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한 조직화된 운동이었음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1803년 데스파드처형후 영국의 사회분위기는 폭압적으로 냉각되었고, 민중들의 불만은 경제적이고 산업적인 것으로 이동해갔습니다. 공공연히 활동했던 자꼬뱅주의자와 페인주의자들은 사라지고 정치적토론보다는 빵가격을 둘러싼 스트라이크나 노동자의 지위를 빼앗는 공장제기계 반대와 공동체의 전통을 해치는 결사금지법에 대한 반대, 등 점차 게릴라식 같은 비합법적인 동직조합활동으로 변화합니다. 도제와 장인관계가 맞물리며 전통이 이어지고 생활이 순환되었던 공동체적 삶은 공장제노동으로 박살이 났습니다. 이전에 진보와 발전에 기여했다고 알고 있었던 노동분업화의 이면에 처참한 피눈물의 역사가 증언대에 섰습니다. 숙련노동은 기계화된 공장에서는 단순화되어 이제 숙련공의 자리는 저임금 미숙련공으로 바뀝니다. 한 집안의 가장이 저임금에 몰리면서 온 가족이 생계형 일터에 나서야 하는 비참한 현실은 여성과 어린이까지 노동시장에 내몰리게 되었고 이는 비용절감만을 따지는 고용주에게 더 좋은 선택조건이 되었습니다.
장인정신으로 전통을 이어온 랭카셔(면방직), 요크셔(모직물), 미들랜드(양말공장)등 잉글랜드 북부공업지역은 기계공업이 들어서면서 직공들의 생활방식마저 변화되었습니다. 열심히 배우고 일해서 견습공- 도제- 장인으로 몸에 익혔던 기술에 대한 자부심, 자긍심이 사라지고 일터와 공동체에서 뿌리뽑힌 생활에서 모멸감과 적개심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숙련노동자의 섬세한 손놀림이 아닌 기계에 의한 불량생산의 싸구려제품은 자본가들의 이윤창출 자유에 해당된 것이었지, 좋은 작품을 만들려는 노동자들의 삶의 관습과 경제적 자유의 가치를 송두리째 빼앗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혁명적 봉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더 놀라운 일이 아닌가!”(214) 무식한 노동자들이 산업기계를 때려부수는 사건으로 알려져 있었던 러다이트운동을 저자 톰슨은 ‘보호입법폐지’, ‘결사금지법’ 등 자유방임의 정치경제가 강요된 위기시점에 노동대중의 의지와 양심이 표출될 수밖에 없었던 사건(으로 보고있습니다. 러다이트운동은 곳곳에서 우후죽순, 동시산발적으로 일어나지만 톰슨은 이를 돌발적인 사건으로는 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노동자들의 전통적인 공동체적 정신은 여전히 남아있었고 민중의 삶에는 여전히 토마스 페인의 ‘인간의 권리’가 가치판단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죠. 노동자들을 상호책임과 의무로 공동체에 결속시켜주는 유대가 하나씩 끊어져가면서 법적보호체제 바깥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입헌적 방법은 노동자 반대쪽에 있는 귀족, 자본가의 이익을 중심으로 관철이 되었고, 결사금지법을 정점으로 점점 공동체에서 떠밀려진 노동자들은 비밀, 지하세계로 자신들의 힘을 응축하게 됩니다. 아무리 앤드류 유어와 같은 정치경제학자들이 나태와 게으름이 노동대중의 천성이고 가난이 이들의 삶인 것처럼 부르조아적이데올로기를 불어넣어도, 민중의 조직적 저항에 대한 두려움으로 더욱 폭력을 가하는 정부에 대해서도, 겪이지 않은 마음으로 페인과 셀월의 개혁정신은 세필드, 노팅엄, 남부랭커셔, 리즈 등으로 번져갔습니다.
▣ 최후의 길드장인 & 최초의 10시간노동운동가
공정가격과 공정임금의 전통은 자유방임을 자유가 아니라 ‘더러운 협잡행위’로 간주했다. 그들은 한 사람 혹은 소수 몇사람이 자기 동료들에게 명백히 해가 될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그런 자연법칙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152)
여기서 자유와 진보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상기해보게 됩니다. 이때의 자유는 어떤 수단으로도 직종의 관습을 파괴할 수 있는 자본가들의 ‘자유’에 국한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진보’가 노동자들에게는 어떤 의미에서 진보이고 자유였는지. 입장과 관점이 다른 언어를 공통성으로 묶을 수는 없습니다. 톰슨은 “생산물가격이 싸졌다고 하더라도 공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신분하락이 일어난 2,30년간의 과정을 어떤 중요한 뜻으로서 ‘진보적’이라 규정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러다이트운동을 뒤이어 일어날 차티스트운동, 즉 노동자가 입법활동, 정치적 주체가 되는 투쟁사이의 과도기적인 순간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옛 권리를 되찾고자 했던 이들의 요구는 합법적인 최저임금, 여성 어린이들의 ‘고한노동’에 대한 통제, 기계로 일자리를 잃은 숙련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줄 의무, 싸구려 모조품의 금지, 동직조합결성의 권리, 이 모든 요구는 과거지향적인 만큼 미래지향적이고 온정주의적 공동체보다는 민주적 공동체, 공업성장은 윤리적인 우선순위에 따라 규제되어야 하고 이윤추구는 인간적인 요구에 종속되어야 한다“(152) 며 톰슨은 1811-1813년을 하나의 분수령으로 봅니다. 부르조아의 자유주의가 확립되는 튜더시대방면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100년간의 공장법제정을 향해 노동자들이 투쟁하며 흘러가는 분수령입니다. 러다이트운동가들은 전통을 지키고자한 최후의 길드조합원이자 동시에 10시간노동을 요구하며 싸워온 최초의 사람들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러다이트운동은 보호법의 페기와 교역의 급격한 호전, 더 강한 억압과 스파이작전으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기계파괴운동을 통해 커다란 해머를 들었던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여 이러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가? 톰슨은 ‘민중들 스스로에 의한 운동’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러다이트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어떻게 조직화해나가고 규율과 자제력을 보여주고 있는지, 노동계급적인 문화의 시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민중의 힘에서 피어나서 독자적이고 복합적인 존재로 떠오르는 자신의 모습이지요. 미들랜드, 랭커셔, 요크셔로 연결되는 중북부 삼각지역에서 노동주체로서 동일한 본질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적 방식으로 자기 존재를 표현하고 조건을 극복해나가는 이러한 순간들이 계급적 고유성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으로 보입니다. 다음 ‘15장, 민중선동가와 순교자들’에서는 여전히 음모와 학살과 같은 강경한 진압의 내용이 예측되는데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또 어떻게 단련하고 힘을 축적하게 되는지 궁금해지네요!
수업중 참고도서
<전태일평전> 조영래 저, 아름다운 전태일, 2020 개정판
<한국노동계급의 형성> 구해근 저, 신광영 옮김, 창작과 비평, 2002
<프롤레타리아의 밤> 자크 랑시에르 지음, 안준범 옮김, 문학동네, 2021
영화 <대부1, 2>
▣ 소설 <돈>과 함께 <두 도시 이야기>를 한 주 더 읽고 간단한 에세이(2-3p)를 마지막주에 쓰기로 했습니다. 한 주가 더 늘어나게 된 것을 일정조정 하시고요~(5/31=>6/7에세이발표) 두 소설이 만만하지 않은 분량이라 조금씩 미리 읽어야할 것 같고요, 채운샘께서 소설 속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인간의 탐욕과 욕망’, ‘계급과 삶의 차이’(예시) 등 공부했던 것과 역사적 맥락에 따라 분석하고 해석해서 써보자고 하셨습니다.
▣ 다음시간은 15장 혜원샘(~⑶282쪽)과 소현샘(⑷~⑹)께서 발제와 간식을 맡으셨습니다. 후기는 혜원샘이 맡으십니다. 잘 부탁드려요~^^
이전까지는 러다이트 운동을 단순히 기계파괴운동으로 알고 있었고,
노동자가 우발적으로 기계를 파괴하는 모습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E.P.톰슨이 그러한 생각을 완전히 깨주네요^^
역시 민중의 자발성을 추적하는 톰슨의 시선은 세밀하고 따뜻합니다.
이번 시간 저는 기계의 발전이 인간에게 자긍심을 주는 것인지?
아니라면 자긍심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질문이 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