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기 2차시 후기
좋은 삶과 포스트 자본주의에 대한 상상을 펼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우리가 능동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자본주의 경제를 공부하면서 한동안 점점 더 절망이 짙어져서 이걸 어찌해야 하는지 힘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경제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공정한 분배라고 한다면 이는 반드시 경제가 성장해야 가능한 일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2부를 읽고 세미나를 하면서 다행스럽게도 이런 강박을 어느 정도 벗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코스타리카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은 낮은 GDP와 성장없는 경제 상황에서도 기대수명과 인간 복지 향상을 이루었다는 예를 듭니다. 좋은 복지에 돈이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반드시 있어야 하고 더 중요한 것은 누구라도 복지에 접근하기 쉬운 제도입니다. 저자는 분배 문제는 '보편적인 공공재에 대한 투자'(235쪽)이고 결국 '우리가 잘 살아가는 한, 중요한 것들에 대한 접근권이라는 측면에서 무언가를 살 수 있는 소득이다. 즉 소득의 복지 구매력이 중요하다.'(249쪽)고 말합니다. 그리고 '정의는 성장의 정언명령에 대한 해독제다. 그리고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열쇠다." (249쪽)라고 거듭 주장합니다.
누구라도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재를 많이 만들고 문턱을 낮추어 필요할 때 편하게 쓰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겠지요. 성장에 따른 이익이 있어야 공공 복지가 가능하다는 논리가 허구임은 성장이 가져온 성과가 누구에게 돌아 갔는지를 보면 더 확실해 집니다. 우리들 모두를 정말 놀라게 한 지표인데요, 1980년 이래 40년 동안 세계경제에서 새롭게 나왔던 소득에서 46퍼센트는 소득 상위 5퍼센트가 가져갔고, 상위 1퍼센트는 매년 19조 달러를 가져갔으며 이는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 아르헨티나, 중동 전체, 아프리카 전체를 포함한 169개국 GDP를 합친 것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과연 성장은 누구를 위한 것이고 그 이익은 어디에서 나서, 누구에게 돌아가는 것일까?' 를 심각하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적을 수록 풍요롭다»를 읽으며 계속 일리치가 떠올랐다는 얘기가 세미나에서 퍽 많이 나왔습니다. 발전 만능에서 벗어나 성장에 한계를 두어야 우리가 잃어가는 자율을 회복할 수 있다는 말이 그 예입니다. 사실 좋은 말이고 알겠다고 충분히 수긍을 하지만 실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그려보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고 제시하는 바가 상상과 실천이구나 싶었습니다. 자본주의가 사용가치가 아니라 교환가치를 중심으로 조직되는 체계이고 이는 영원한 이윤 축적을 목표로 하기에 성장 위주 체계는 어떤 면에서 보자면 욕구를 충족시키지 않고 회피하도록 의도적 낭비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방법으로 이를 막을 수 있을까요? 저자는 아주 구체적인 방법을 5단계로 제안합니다. 의도적으로 제품 수명을 줄이는 계획된 진부화 줄이기, 계획적 진부화와 얽혀 독성 강한 칵테일로 작용하는 광고 줄이기, 물질 산출을 줄이기 위해 소유권을 이용권으로 바꾸기, 식품 폐기 없애기, 생태계를 파괴하는 산업 규모 줄이기.
성장의 정언명령으로부터 우리 체제를 어떻게 자유롭게 할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는 포스트 자본주의 경제가 어떠한 모습일지 감각을 갖기 시작한다. (322쪽)
저자는 포스트 자본주의를 상상하고 그 길로 가기 위해 제시하는 위와 같은 일들이 그저 목록을 나열하는데 목적이 있지 않고, 복지에 부정 영향을 끼치지 않고도 물질 산출을 크게 줄일 수 있음을 보여 주고자 한다고, 성장에 한계를 설정하고도 좋은 삶은 가능하다는 희망적 의견을 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경제학자들이 지금까지 말한 범주 안에서는 성장을 제한하는 일이 복지를 넓히는 일과 결코 함께 만들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경제 성장 그 자체가 아니라 '성장 주의'가 인간을 어디로 내몰고 있는지를 주의깊게 살펴야 합니다. 탈성장이 모든 사람들이 함께 가난하게 사는 방법이 아닌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삶으로 길을 낸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탈성장은 끝없는 성장이 아닌 다른 경제로 전환하는 것, 즉 끝없이 자본을 축적하는 대신 인간에게 좋은 삶, 생태에 안정적인 방법 중심으로 경제를 조직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인간 본성-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바 욕망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경쟁을 선택하는 본성-이 아니라 일부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도록 구성된 사회 정치체제를 문제삼아야 합니다. 완수샘이 발제에 쓰신 것처럼 경쟁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 필요는 없는 것이죠.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 괸계가 어떠하기를 바라는가? 지배와 추출의 관계이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화혜와 돌봄의 관계이기를 바라는가?(379쪽)
포스트 자본주의 윤리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생태계가 재생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추출하고, 생태계가 흡수할 수 있는 선 안에서만 폐기하여 오염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포스트 자본주의는 성장과 확대 중심으로 이루어진 자본주의 논리를 역전시켜 치유와 회복, 통합의 논리로 바꾸어야 가능합니다. 이는 이원론으로부터 벗어나 일원론 관점을 가져야 함을 뜻합니다. '결국 우리가 경제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서로와 맺는 그리고 생명세계의 나머지와 맺는 물질적 관계' (379쪽)라고 한 저자의 말처럼 먹고 입고 쓰는 모든 것들과 어떤 관계인지 앞으로 어떤 관계를 맺을지를 틸성장이라는 관점에서 고려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본주의에 대해 비관적 시선을 가지기 쉬운 이유는 탈성장을 다르게 해석하고 실천하는 예들을 몰랐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컸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은 그러니까 인간과 자연은 모두 연결되어 사는 존재이고 인간이 다른 존재들보다 우월하는 증거도 그들과 달라야만 하는 이유도 없습니다.
경제기사 톺아보기: 택배산업 현장 '주일 근무', 이대로 사라지나/ 물류신문 손정우 기사/2023.08.29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 뙤약볕이 더해져 더욱 더 힘들었던 쿠팡 택배 노동자들의 근무에 관한 기사다. 산업계에서 주 4일 근무를 시험실행하고 있지만 쿠팡 택배 노동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여론이 만들어지던 주 5일 근무 시행마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게 될지도 모른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물류 업계는 오히려 365일 택배배송 서비스로 변경하고자 하는 요청을 어떻게 받아들여 실행할 지 고민하고 있단다. 이 기사를 읽은 우리는 비슷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 기자는 누구를 위해 이러한 기사를 썼을까? 기자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말로 에둘러 택배 노동자의 휴식과 연중무휴의 서비스 제공이 마치 같은 맥락에 놓인 선택인 듯이 말하지만 이 둘은 결코 같은 맥락에 있지 않다는 게 우리 의견이었다. 우리가 나눈 의견 가운데 힘이 실렸던 내용은 이러하다. 과연 우리에게 1년 365일 밤낮없이 빠른 택배가 필요한가?를 물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필요하지 않을 뿐더러 택배 노동자들을 죽이는 이러한 물류 업계의 고민은 전적으로 업주에게만 이로운 고민일 뿐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