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부터 시작했던 경제인류학 세미나를 끝마치고 각자가 느끼고 생각했던 바에 대한 에세이 발표가 지난주에 있었습니다. 지난 시간 우리는 자본주의에 대해 역사적, 사회적, 인류학적, 생태적으로 기술된 다양한 관점의 책들을 읽으며 경제학하면 떠오르는 도표와 수치와는 다른 방식의 경제를 만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보려 했습니다. 지난 4학기를 돌아보니 자본주의경제와 관련된 13권의 책을 읽었더군요.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1학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구성되고 움직이고 있는지, 왜 우리들은 경제학을 어렵게만 느끼고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 왜 효율성을 따지며 비용과 편익의 계산에 이르는지, <차가운 계산기>는 놀랍게도 우리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지요. 물론 자본주의체제 자체도 변화하는 역사의 한 과정이라는 사실도요.
2학기는 우리가 도통 알 수 없었던 고대의 경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기존상식과 상상력조차 깨뜨렸던 것은 <석기시대 경제학>에서 언급된 풍요와 빈곤의 개념이었어요. 잉여로 인한 축적과 소유의 개념이 없기에 과로할 수가 없다는 공동체의 풍요가 저생산에서 기인한다는 점이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불균등한 교환으로 이뤄지는 호혜적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요와 공급, 균형가격, 등 합리적이라 생각했던 등가적 판단이 도리어 낯설어지고 생산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우리시대의 관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호혜와 관대성이라는 원시적 불균등교환의 미스터리는 상대를 대하는 감수성에 있다는 점이 새로웠습니다. <증여론>에서 호혜적 선물이 ‘주기, 받기, 답례’라는 삼중의 반복되는 의무에 있으며 서로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삶의 지혜라는 모스의 말은 공동체의 삶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공동체의 사회생활인 도덕, 경제, 문화, 종교 등은 정치적 기술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무역>에서 폴라니는 국가가 경제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공동체내 살림살이로서 묻어들어 있으면서 서로를 돌보고, 순환시키고, 풍요롭게 만듭니다. 시장은 이익을 얻기 위한 상품의 교환거래가 아닌 비시장적 논리로 지역내 거래에 한정하고, 위계없는 품앗이노동을 의무화하는 낯선 공간을 우리에게 들이밉니다. 자, 생각하고 상상해보라!
3학기는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특정한 방향으로 경제학을 다양하게 이론화했던 학자들의 관점을 알아보았습니다. 베블런의 <유한계급론>과 좀바르트의 <사치와 자본주의> 리카도의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를 읽으며 근대자본주의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작동해왔는지 한편으로는 생산성의 관점에서, 다른 한편에서는 본성과 소비욕망이라는 입체적인 관점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자본주의도 역사의 한 과정이라 생각한다면 변화의 가능성에 방점을 두어야 할텐데, 자본주의경제는 그야말로 우리의 욕망과 함께 촘촘히 시스템으로 작동되고 있는 현실을 보니 한편으로 막막하기도 했고, 많이 헤매기도 했습니다.
탈성장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자본주의 폐허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4학기는 다른 방식의 경제를 새롭게 실험하는 여러 이야기를 함께 읽었습니다. <적을수록 풍요롭다>, <모두를 위한 경제>를 읽으며 민주적이고 지속가능한 살림살이 경제를 실천하고 있는 공동체의 모습에서 어떤 원칙을 지켜나가야 할 것인지, 또 가능성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우리 현실에서 실천하고 있는 여러 이야기도 나눴었지요. 번개처럼 우리의 공부와 패치를 이룬 <세계 끝의 버섯>은 ‘그럼 자본주의 바깥이 없는 세계에서 우리는 어떤 식의 삶을 살아야할까?’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막막하고 무력하게만 느껴왔던 이유는 ‘출구가 보이지 않아~’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는 것. 뭔가 한 방에 변화하고 싶었던 마음, 상상력이 습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어려움 등. 변명을 하자면 이런 비슷한 말이 되겠습니다. 우리 자신의 인식을 구성하고 있는 기존개념과 사고습관에서 벗어나고자 애써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고나 할까요. 자본주의가 확실성으로 선점하고 지배하고 있는 언어습관, 개념화의 거부로부터, 불확정성의 이해로부터 뭔가가 시작될 것만 같습니다. 오염, 교란, 번역, 자유 등등..
샘들의 에세이에는 그동안 함께 했던 많은 고민과 새롭게 알아차린 기쁨에서 오는 더 깊은 고민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현정샘은 “당신의 일상을 활기로 채우는 방법”의 제목으로 증여론에 관한 생각을 풀어주셨습니다. ‘선물교환에 대한 삼중의 의무가 사회적 유대의 창출이며 유지를 위한 것이며, 우리사회의 도덕성과 공생, 경제적 생활의 향상과 서로의 안녕을 도모하기 위한 수단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라 하시면서 “함먹-혼자 말고 함께 먹자-”이라는 노년의 친구들끼리 재미난 이름의 모임을 소개해주셨지요. 코멘트로는 ‘우리 사회에서 교환이 아닌 호혜와 증여의 방식을 어떻게 확장할 수 있겠는가’, ‘나와 다른 타자들과는 증여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왜 경제의 핵심에 증여가 있어야 하는가? 물음으로 증여와 교환의 관계, 증여와 호혜성의 원리도 잘 드러나게 정리해야 한다고 채운샘께서 말씀하셨어요.
소현샘은 “소외”를 주제로 <세계 끝의 버섯>에 대해 쓰셨습니다. 폐허에서 발견한 구제축적을 중심으로 자본주의내부에서 소외된 채 살아간다고 여겼던 버섯채집자들은 그 자체로 자유로운 삶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인식의 변화 “알아차림의 기술”이 중요하게 와닿았다고 하셨지요. 채운샘께서는 자본주의시스템이 규정하는 방식대로 의미화하지 않고 사물과 얽힘의 관계에서 소외개념을 다르게 쓰고 있다는 점, 폐허에서 공유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존재하는 것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생각할 때 자본주의가치개념에서 소외, 노동, 인간과 비인간 등을 새롭게 봐야 한다고 코멘트하셨어요. 또 애나칭의 “오염, 교란, 번역” 등 기존 사고습관을 깨트리는 탈규정언어에 대한 생각이 연결되었으면 좋겠다, 등의 코멘트가 있었네요.
장청샘은 “무엇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다호메이왕국과 노예무역>과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에 놓여있는 경제관점에 대해 풀어주셨습니다. 다호메이왕국의 독푸웨라는 상호부조의 관계와 폴라니가 문제제기했던 자본주의체제의 자유시장에서 허구상품이라고 말한, 토지, 노동, 화폐에 대해 쓰셨는데 잘 섞이지 않았고, 시장과 국가가 폭력이 되지 않도록 어떤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지, 왜 다호메이왕국을 실례로 다루었는지, 샘이 의도한 자유시장의 본질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는 샘들의 코멘트를 받으셨어요. 사람들의 일상이 경제영역에 스며드는 것을 보면서 폴라니가 본 폭력적 자유시장의 모습을 잘 포착해서 쓰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현실은 왜 어떤 것은 죽이면서 어떤 것을 살리려고 하는지, 우리의 살림살이를 살리는 경제는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까요?
경혜샘은 좀바르트의 <사치와 자본주의>를 “소비라는 중력을 거스르는 힘”으로 풀어주셨는데 자본주의에서 새롭게 본 지점이 보이지 않고, 사치-과시욕망이 어떤 의미로 근대자본주의경제를 추동하게 되었는지 자료제시 설명이 아닌 좀바르트의 논리를 통해 소비와 사치의 근원을 깊숙이 분석하면서 쓰고자 하는 주제의 맥락을 돌파해야 한다는 코멘트가 있었습니다. 채운샘은 모스, 좀바르트, 베블런의 관점이 독특했던 것은 우리에게 익숙했던 수치와 계량의 경제학과 다르며 경제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경제영역으로 묻어들게 했던 낯선 지점들에서 문제의식을 가져 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하셨지요. (자본주의를 편협하게 바라보는 관점에서 나아가 좀바르트가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관점은 어떤 부분에서 새롭고 낯설게 하나? 과거의 과시욕망과는 다른 은밀한 방식으로 현재는 어떤 소비욕망을 펼치고 있나. 현재의 무엇이 그렇게 변하게 하나? )
완수샘과 저는 베블런의 <유한계급론>과 <자본의 본성>으로 글을 썼는데요. 드라이하다고 말씀하셨지만, 샘들의 코멘트가 없었던 가장 큰이유가 주제의식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샘께서 베블런이 주목한 인간본능의 분석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과 제작과 약탈로 이분화한 것은 사회의 무엇을 다르게 보기 위한 것인지, 현재에서는 어떤 의미로 분석하고 적용해 볼 수 있는지, 주류경제학과 달리 자본주의를 사회문화적, 인류학적으로 바라본 베블런의 복수적 관점을 통해 자본중심의 사고에서 비자본적인 것들, 지식과 공공재까지도 사유화되는 현실에서 자본주의 바깥이 아닌 내부에서 노동, 자본, 이익, 등등의 개념들을 다르게 보는 데서 힌트를 얻고, 자본주의시스템에 지체와 오작동을 일으키는 비자본주의적 활동과 공공성이 기업의 영리활동과 연결된 사례들이 있는 것만큼 열린 시각을 펼치면 좋겠다고 코멘트를 주셨습니다.
- 샘들이 정성껏 보내주신 후기로 경제인류학 세미나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한현정샘]
경제인류학을 공부하면서 새로운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논하는 책을 만나 매우 재미있었습니다. 빈곤했을 거라 생각했던 석기시대가 원초적 풍요사회였다고 말하는 마셜 살린스의 『석기시대 경제학』, 고대사회의 경제는 시장적 이윤이 아니라 호혜적 선물경제에 기초했다는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 자본주의의 탄생이 소비, 특히 사치에 있다는 좀바르트의 『사치와 자본주의』, 유한계급의 과시적 낭비로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이 그랬습니다. 또 자본주의의 폐허 속에서도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버섯 채집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를 통해 상상의 문을 열어보라고 권하는 애나 칭의 『세계끝의 버섯』은 감동적이었습니다. 세미나를 함께 한 식구들이 있어 올 한해 너무도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내년에도 즐겁게 공부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소현샘]
올 한 해 세미나는 자본주의에 불만이 많은 저에게 경제학적이지 않은 관점으로 자본주의를 공부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인간의 도덕적 의도에 따른 진보의 개념하에 자연을 길들이고 지배하며 무한히 팽창하던 자본주의는 이제 완전히 다른 시간에 들어섰습니다. 자본주의적으로 변형된 환경에서 진보를 버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 아니 그게 가능하기는 한가? 이런 혼란과 혼돈의 시간을 텍스트와 함께 샘들과 얘기를 나누는 것이 즐겁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고달프기도 했지만, 그 가운데 가장 강력했던 즐거움으로 답을 찾아가며 경제인류학세미나를 마무리하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자본주의 속에서도 우리의 삶을 잘 살아내도록 쭉 함께하길 바라봅니다. 샘들이 있어 올 한 해도 잘 버텨냈습니다. 고맙습니다.
[장청샘]
자본주의가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는 제도임은 분명한데 우리는 자본주의 외에 다른 사회를 경험해본 적이 없어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방식의 대안은 뭐가 있을까.
책을 읽어도 다른 세계를 상상하기가 쉽지 않아 답답할 때가 많았지요. 4학기 책들을 읽으면서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방식의 여러 사례를 볼 수 있어 답답함이 좀 가시는 듯 했고 흥미로웠어요.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하게 깨달은 건 시장경제의 문제는 최대의 이윤획득을 목표로 하는 시장경제라고 생각했는데 폴라니는 “자본주의 시장이 문제가 아니라 자유시장을 통제하지 않고 모든 걸 시장에 내맡기는 정부의 방임이 문제다.”라고 하는 거죠. 즉 정부가 제도적 장치를 통해 역할을 확장하고 자유시장을 통제해야 한다!라는 폴라니의 말이 제일 와닿았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중앙과 민간 영역이 명확하게 분리되어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 그 사례를 다호메이 왕국을 통해 보여주려 한 것일테고요
1년 동안 경제 공부를 하면서 경제가 뭔지 조금은 알게 되었는데 경제기사 톺아보기를 통해 현재 우리 사회를 돌아볼 수 있는 게 유익했어요.
내년에도 더 재밌는 경제 세미나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박경혜샘]
이렇게 또 공부 한자락이 마무리되었네요. 거의 대부분 마무리가 홀가분하지만 이번 경제인류학 세미나를 마친 기분은 좀 다르네요. 긴 동굴에 갇혀 헤매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사람이 느낄법한 기분, 희망( 이보다 더 적당한 말이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제 한계)찬 마무리거든요. 저에게 경제학이나 자본주의는 비교하자면 하늘 위에 뜬구름처럼 분명, 있는데 닿을 수 없는 그런 존재였다고나 할까요.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사방이 온통 막혀 도저히 나갈 수 없는 방이 자본주의인가 싶어 계속 자본주의경제를 배우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절망에 힘이 더 들기도 했습니다. 이건 경제를 삶에서 '뿌리뽑아' 자기들(예를 들면 자본가) 입장에 적합하게 학문화해 버린 이들 위주로 구성되어버렸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 입장에선 자본주의도 경제도 그 자체로 문제인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대단한 수확입니다. ㅎㅎㅎ
거기서 더 나아가 4학기에 읽었던 《적을수록 풍요롭다》와《세상 끝의 버섯》은 진짜!!! 안 읽었더라면 어쨌나 싶습니다. 글쓴이는 물론 프로그램에 넣은 사람 모두 어찌나 고마운지!!!
이제 내년을 준비하며 푹 쉬고 몸을 잘 보하려고 합니다. 올해 공부하는 동안 반듯하게 앉아서 책을 읽는 것조차 힘들었던 시간을 겪어보니 '체력'이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오더군요. 먹고 자고 일어나고 소소하게 움직이고 정한 시간만큼 책을 읽을 수 있는 적절하게 튼튼한 몸이 얼마나 중요한지....
함께 하는 도반들에게 걱정 끼치는 건 또 말해 뭐할까요. 함께 공부해서, 언제나 그렇듯이 덕분에 올해 잘 지났습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
[전후남샘]
올 한해 경제인류학 공부를 하면서 읽느라 부대끼고 쓰느라 끙끙대기도 했지만, 낯설게, 진하디진한 희열을 전해준 문장들이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마셜 살린스의 <석기시대 경제학>에 나오는 문장을 올려봅니다.
“풍요로움에는 두가지 길이 있다. 다시말해 욕구는 더 많은 생산을 통해 충족될 수도 있고, 조금 덜 원함으로써 ‘쉽게 충족될 수도 있다’. 우리 서구인들에게 익숙한 개념인 갤브레이스적 노선은 시장경제에 적합한 가정에 입각해 있다... 하지만 풍요로움에는 선(禪)적 노선 또한 존재한다. 이 노선은 우리 서구인들과는 다소 상이한 전제, 즉 인간의 물질적 욕구는 유한하고 작으며 기술적 수단은 변함없지만, 전반적으로 적합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선적노선을 택하면 낮은 생활수준에 입각해서 전대미문의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다.“(27쪽, 마셜 살린스, 석기시대경제학)
개인적으로 애나 칭의 버섯책을 함께 읽지 못한 게 안타까워요. 이 책이 자본주의 비판에서 오는 무기력함이 아닌, 다른 상상력을 펼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요!
샘들 고마워요. 올 한해 샘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제겐 또 더없이 풍요로움을 선사해준 소중한 선물이었네요. ^^
[김완수샘]
선생님들 올해 많이 배웠습니다. 내년도 인연이 닿기를 바래봅니다.
세미나 구성원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마구마구 느껴지는 반장님의 후기네요.
반장님의 목소리를 따라 1년 과정을 쭉 훝어보니 참 대단한 책들을 읽었구나... 칭찬하게 되네요.ㅎㅎ
반장님도 1년동안 고생 많으셨구요, 마음을 담은 후기도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완수샘과 인연도 기대해봅니다.^^
미영샘의 글에 우리의 일 년 공부가 고스란히 담겨 있네요.
사람에 대한 따뜻함을 가진 샘이 계셔서 우리 공부 공동체가 단단함 속에서 유지되었음을 잘 알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또한 조선의 선비같은 완수샘과의 만남도 뜻깊었으며 이 인연이 계속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샘이 정리하신 채운 샘의 코멘트를 읽으니 에세이 수정에 어렴풋 방향이 잡히네요. 이 역시 감사한 일입니다.
경제인류학 세미나의 일년 간의 아주 매력적인 공부 여정이 촘촘히 드러난 후기네요!!
<차가운 계산기>, <사치와 자본주의> 같은 책들은 꼭 읽어보고 싶어요...
금요일이면 화기애애하게 모여 앉으셔서 도란도란 세미나 하시는 모습이 뭔가 멋졌는데, 이렇게 잘 마무리가 되었네요!
경제 관련 기사도 함께 읽고,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현실을 날카로운 관점으로 알아가는 여정인 것 같아서, 그 마무리에 뭔가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공부에서 오는 즐거움과 고됨과 고민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미영샘의 정성스런 후기네요. 샘들의 세미나 시간이 눈에 선합니다.
내 살에 맞닿아 있지만 낯설고도 먼 얘기가 경제하고 자본주의인거 같은데 그 어려운 공부를 또 이렇게 해내심에.. 제가 다 뿌듯하고 감격스럽네요 ^^
애정과 응원을 한껏 담아 전합니다. 샘들~~~올 한해 정말 애 많이 쓰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