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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inar 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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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적BOOK적은 규문각에서 격월로 주제를 달리해 책을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해당 책을 읽고, 리뷰를 함께 나눠 주신 분들 중 심사를 통해 상품을 드립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BOOK적BOOK적 추천도서 2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세상 일체가 하나의 관계
무위당 장일순의 이야기 모음, 녹색평론사
나는 가끔 한밤에 풀섶에서 들려오는 벌레 소리에 크게 놀라는 적이 있습니다. 만상(萬象)이 고요한 밤에 그 작은 미물이 자기의 거짓 없는 소리를 들려주는 것을 들을 때 평상시의 생활을 즉각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부끄럽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럴 때면 내 일상의 생활은 생활이 아니고 경쟁과 투쟁을 도구로 하는 삶의 허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삶이 삶이 아니었다는 것을 하나의 작은 벌레가 엄숙하게 가르쳐줄 때에 그 벌레는 나의 거룩한 스승이요, 참 생명을 지닌 자의 모습은 저래야 하는 구나, 라는 것을 가슴 깊이 새기게 됩니다. (장일순,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녹색평론사, p.10)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의 좌우명은 ‘겸손’이었습니다. 요컨대 잘난 척하지 말라는 거죠. 이 책을 읽으면 선생님이 사람뿐만 아니라 작은 미물에게조차 자신을 낮추고 배우려는 모습을 뵐 수 있습니다. 선생님 목소리를 따라 그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스스로 겸허해져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말씀이 그분의 삶과 동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더욱 울리는 것 같습니다.
요샌 공생이라고도 하는데 본능적으로 감각적으로 편하고 즐거운 것만 동락하려고 든단 말이예요. 그런데 ‘고’가 없이는 ‘낙’이 없는 거지요. 한살림 속에서도 ‘고’와 ‘낙’이 함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더불어 함께하는 것이죠. 즉 공생하는 건데, 공생관계는 각자를 긍정해주는 것이란 말이에요. (장일순,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녹색평론사, p.82)
서양 애들이 얘기하기를 ‘피조물의 보호’ 어쩐다 하는데 말이야. 물론 그 친구들의 접근 방법이 그럴 수밖에 없기는 하겠지. 주와 객으로 언제나 사물을 보니까. 과학이라는 것이 주와 객의 설정을 통해 보는 것 아닌가. 한계가 있어. 주와 객이 초연히 하나가 되는 삶, 그런 만남 속에서 문제를 보지 않고서는 안 돼. 그러자면 무아의 상태, 곧 자네가 나고 내가 자네인 상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전 세계의 인류는 살 수가 없어. (무위당 장일순의 이야기 모음,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녹색평론사, p.275)
그러니까. 제자리를 제대로 찾자면, 자연과 인간과 또 인간과 인간 일체가 하나가 되는 속에서 ‘너는 뭐냐’가 되었을 적에, 나라고 하는 존재는 고정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조건이 나를 있게끔 해준 것이지 내가 내 힘으로 한 게 아니다 이 말이야. 따지고 보면 내가 내가 아닌 거지. 그것을 알았을 적에 생명의 전체적인 함께하심이 어디에 있는 줄 알 것이고, 우리가 연대관계 속에 유기적인 관계 속에 있으면서, 헤어질 수 없는 관계 속에 있으면서, 그러면서 투쟁의 논리가 아니라 화합의 논리요 서로 협동하는 논리라는 그런 시각으로 봤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존재할 수 있다고 하는 새 시각 속에서 우리 한살림공동체 이야기도 될 수 있겠지. (무위당 장일순의 이야기 모음,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녹색평론사, p.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