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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적BOOK적은 규문각에서 격월로 주제를 달리해 책을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해당 책을 읽고, 리뷰를 함께 나눠 주신 분들 중 심사를 통해 상품을 드립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BOOK적BOOK적 추천도서3 <굶주리는 세계>
식량과 자유
프란시스 무어 라페 외, <굶주리는 세계 - 식량에 관한 열두 가지 신화>, 창비
이 책에서 우리가 보여주려는 것은 이러한 민주주의의 기본개념-어떤 결정을 내리면 그에 따라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자들에 대한 책임-이 경제생활에 결여되어 있는 한, 사람들은 무력한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가정이나 마을, 그리고 국가 수준에서, 나아가 국제적 상업, 금융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경제생활의 모든 측면에서-생명체들이 먹고살기 위해 재배하고 분배해야 할 것, 즉 식량에 관해서도-의사결정이 계속 집중되고 있음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빈곤과 굶주림은 해마다 수백만명의 삶을 파괴할 것이며, 그보다 더 많은 수억명의 삶에 상처를 입힐 것이다. (p.17)
<굶주리는 세계>는 굶주림에 대한 열두 가지 ‘신화’를 해명합니다. 우리는 굶주림이 일부 나쁜 정치인이나 기업 때문에, 인구가 너무 많아서, 자연재해 때문에, 우리가 이득을 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원체 식량 생산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에 일조하는 것은 갈라지는 땅바닥과 무력하게 늘어져 죽어가는 기아 이미지를 보급하는 미디어의 힘도 한 몫 하지요. 하지만 이 책은 우리가 ‘기아’ 하면 떠올리는 그 무력한 사람들이, 굶주렸기 때문에 힘이 없는 게 아니라 무력화되었기 때문에 굶주렸다는 것을 밝혀 인과를 바로잡습니다. 식량위기는 단순히 식량대비 인구의 문제가 아닙니다. 식량에 대한 결정권, 경제생활에 대한 책임이 결여된 인구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요인들이 인간 자신을 자연의 변덕에 더욱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가뭄에 취약한 한계토지로 밀려나거나 아예 토지를 빼앗기면서, 수확물의 대부분을 요구하는 대금업자와 지주들에게 빚을 지면서, 일자리가 없거나 임금을 제대로 못 받아서 아무것에도 의지할 수 없게 되면서, 그리고 만성적인 굶주림으로 약해지면서 수백만명이 굶어죽는다. 자연재해가 원인이 아니다. 다만 최후의 일격을 날릴 뿐이다.(p.39)
공익 캠페인, 목표수치, 그리고 교활한 강요가 만들어낸 아마도 가장 슬픈 결과는 뿌에르또리꼬의 경우일 것이다. 미국이 1898년 스페인에게서 이 섬을 빼앗은 이후 미국 설탕기업들은 소농들을 몰아내고 재빨리 거대한 농장들을 세웠다. 1925년까지 2% 미만의 인구가 토지의 80%를 차지했으며 인구의 70%는 토지를 갖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에서 밀려나고 생계의 위협을 받으면서 뿌에르또리꼬는 급속하게 미국의 식민지관려들이 주장한 '인구과잉' 문제를 안게 되었다. (p.73)
<굶주리는 세계>는 현재 ‘낭송&필사 클럽’에서 읽고 있는 책입니다. 월, 금요일 아침마다 이 책을 읽고 모여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필사해서 낭송하고 있는데, 구절을 뽑아 낭송하는 얼굴이 썩 좋지는 않습니다. 먹거리는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하는 엔터테인먼트인 한편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식량’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식량이 없어서 만성적인 기아에 시달리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를 아침마다 읽고 있으니, 마음이 상쾌할 리가 없지요.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식량이 어떻게 생산되고 보급되며, 어떤 경우에 제한되는지 아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식량위기는 단순히 일부 국가의 극단적인 사례도 아니고, 자연재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초래되는 우연도 아닌, 엄연히 정치적인 ‘인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자유에 대한 정의에 있다. 가장 기본적인 질문 하나로 시작해보자. 누구를 위한 자유이고,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 자유는 우리의 생각을 말하고, 함께 뭉치고, 억압과 착취, 부당한 차별에서 벗어나고, 굶주림에서 해방되는 것 아닌가? 아니면 자유라는 것이 다른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그리고 서른 가지 씨리얼과 스무 가지 샴푸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뜻하는가? 굶주림을 끝내는 것은 절대로 첫 번째 유형의 자유와 대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두 번째 유형의 자유를 제한할 필요는 있다. (p.296)
이 책에 나오는 사례들은 기아가 인간의 책임이 아니라고 하는 신화들을 하나씩 반박합니다. 대부분 자연재해보다는 식량 접근권이 정치적 이유로 제한된 사람들이 무력해지고 비참한 일을 겪는 사례들입니다. 이런 책을 읽으면 ‘알겠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다’고 하면서 무력감을 호소하게 됩니다. 하지만 적어도 하지만 민주주의가 흔들릴 때 반드시 동반되는 것이 식량위기라는 인재라면, 우리는 굶주림을 '할 수 없는 일', '무력한' 일이라며 다른 동네 이야기로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서른 가지 씨리얼을 고를 자유’를 위해 가장 중요한 권리를 위한 관심과 연대를 멀리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지금 나는 어떤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굶주리는 세계>, 추천합니다~
오늘 읽은 부분에서는 유독 필사한 내용이 많이 겹쳤어요. 희망을 확인(발견은 아니지요, 이미 기차는 출발했으니까)해서 무력하다고 호소하면서도, 꽤 두근거리며 읽었다고나 할까요. 내가 무지해서 기차의 장애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불편해서 세계를 마주보는 용기와 성실함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제주에서 발랄할 목소리로 말씀 주시는 은옥 선생님의 '1일 1빵' 고백은 제게도 힌트가 되는 것 같아요. 저는 겨울마다 도시가스를 너무 쓰는 것 같아서(탄소 배출을 많이 하니까) 쇠고기 섭취라도 줄여보자고 다짐했거든요(그러고 보니 2주 전에 햄버거를 사먹고 말았네요.). 내 혀끝의 감각을 다른 식으로 재배치하는 것도 기차의 장애물이 되지 않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