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적BOOK적은 규문각에서 격월로 주제를 달리해 책을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해당 책을 읽고, 리뷰를 함께 나눠 주신 분들 중 심사를 통해 상품을 드립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자세한 공지는 이쪽에서!)
BOOK적BOOK적 추천도서 6 <밤을 가로질러>
“아름다운 비일상의 시간, 밤”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전대호 옮김, 해나무
주기적으로 돌아오므로 신뢰할 수 있는 어둠, 밤이 없고 밝음과 어둠의 상호작용이 없다면, 생명은 존재할 수 없음을 늘 되새겨야 한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생물은 까마득한 과거부터 낮과 밤의 끊임없는 교체 속에서 살며 성장해왔다. 인간과 기타 생물학적 진화의 결과물들은 그 두 조건 모두에 잘 대처하고 적절히 녹아드는 법을 터득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 모두는 새로운 낮을 맞이하기 위하여 항상 다시 밤을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낮도 다시 다음 밤으로 이어질 따름이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 <밤을 가로질러>, p.9)
이번에 추천드릴 책은, 일단 아름답습니다. 중요한 페이지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들이 적절하게 실려 있지요. 그 도판들의 주제는 하나같이 밤입니다. 우리는 해가 떠 있는 동안 주로 활동하며 그 시간의 역사를 중시하지만 사실 인류 역사의 반은 밤에 이루어졌습니다. 반드시 찾아오는 밤의 시간! 낮 동안 당연하게 보였던 것들이 자취를 감추고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낮과는 전혀 다른 질서가 지배하는 이 시간에 대해, <밤을 가로질러>는 과학적으로 문화사적으로 철학적으로 분석합니다. 우리에게 밤은 단지 ‘해가 진 시간’이 아니지요. 밤의 색깔인 ‘검은색’이 우리에게 주는 느낌이 있고, 밤이면 잠들어버리는 몸의 싸이클에 대해서도 알고 싶고, 자면서 꾸는 꿈은 무엇인지, ‘밤’ 그리고 ‘어둠’ 하면 떠오르는 ‘악’이란 무엇인지, 이 책은 의외로 무겁게 질문을 던지고 분석합니다.
근대 초기에는 하룻밤의 수면이 두 단계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게 밤을 첫째 수면과 둘째 수면으로 나누어 보내는 것은 어쩌면 진화 과정에서 인간이 획득한 기본 특징일 것이다. 첫째 수면을 영어에서는 ‘dead sleep'이라고 한다. 첫째 수면이 끝나면 깨어 있는 시간이 한동안 이어지고 그 다음에 둘째 수면이 시작되어 날이 밝을 때까지 계속된다. 이 때문에 둘째 수면은 ’새벽잠‘이라고도 한다. (...) 그들은 우선 한동안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는다. 그러다가 네 시간가량 자고 깨어나서 두세 시간을 보낸 다음에 다시 네 시간 동안 잔다. 그리고 아침에 두 번째로 깨어나서 아주 상쾌한 기분을 느낀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 <밤을 가로질러>, p.114)
16세기 기독교 문화권에서 밤은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신의 질서가 펼쳐지는 ‘낮’이 물러가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죠. 지금처럼 어둠을 몰아낼 조명을 자유롭게 쓰지 못했던 시절, 밤은 “하루 중에 악한 때”였고, 그만큼 두려운 시간이었지요.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사람들에게 밤은 어둠 속에서 꼼짝 못하고 누워서 해가 떠오르길 기다리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이 그냥 누워 있을 수만은 없었다! 밤이 유독 길었기 때문에 옛 사람들은 잠을 두 번에 걸쳐 자면서 그 사이 깨어 있는 시간에는 밤문화를 즐겼습니다. 그러면서 8시간의 수면시간을 지켰다니, 좀 부럽기도 합니다^^;; 지금 현대인들은 밤을 낮처럼 밝히고, 낮처럼 생활할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었지요. 그러다보니 ‘수면의 질’에 더 강박적이게 된 것은 아닐까 합니다. 낮의 활동을 밤까지 미룬 결과, 정작 휴식과 회복에 좋은 호르몬이 나오는 밤 시간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된 것이지요. 그 결과 현대인들은 어떻게든 짧은 시간 안에 깊은 잠을 원 없이 자 볼까 골몰하게 된 것이 아닐까요?
꿈꾸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꿈은 영화처럼 그림들의 연쇄로 나타나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 꿈을 말로 표현된 이야기로서 전달할 수밖에 없다. 물론 꿈속 장면을 스케치하여 꿈 해석자에게 제출하는 경우도 가끔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인간 뇌의 특징을 다음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뇌는 이야기를 지어내고 전달하기를 좋아한다.” 인간 뇌는 심지어 이야기를 담당하는 특별한 형태의 기억을 개발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이른바 ‘일화 기억’인데, 삶의 일화들은 일화 기억 덕분에 보존되고 보고된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 <밤을 가로질러>, p.195)
밤은 캄캄하여 ‘악’에 비견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꿈을 꾸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꿈은 여전히 우리에게 하나의 신비로 남아 있습니다. 각 문화권마다 꿈을 해석하는 방식이 전해져 내려오고, 과학은 아직도 인간이 꾸는 꿈에 대해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고 하죠. 다만 ‘인간의 뇌는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는 가설, 그리고 그런 뇌구조에 따라 인간의 무의식에 축적된 ‘집단 무의식’ 이야기는 참 흥미롭습니다. 이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뇌는, 낮의 표면적인 의식이 펼치는 활동이 끝나고 나서야 밤에 슬그머니 인류 집단의 무의식에 접속한다는 것이죠. 인간이 뿌리 내린 비가시적인 우주, 그 꿈의 세계야말로 밤의 신비를 이루는 커다란 조각 중 하나입니다.
나는 밀그램 실험이 황량한 방(실험실)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즉, 그 실험은 어떤 미적인 자극도 없는 곳에서 이루어졌다. 환경이 미적으로 우수하고 가까이에 미술품들이 있었다면, 피실험자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나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밀그램 실험을 다시 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인생의 단계들」이나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눈앞에 있다면, 어쩌면 아무도 그 위험한 버튼을 누르지 않을 것이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 <밤을 가로질러>, p.300)
<밤을 가로질러>는 밤의 질서, 잠과 꿈의 신비를 통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치 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가치 의식’이란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느낌입니다. 이는 우리가 ‘낮’의 시간에 교육받고 생각하는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이성의 힘이 아닌 좀 더 내면적인, 보다 무의식에 가까운 심미적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낮’보다는 ‘밤’에 가까울 테고요. 풍요로운 의식 활동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비일상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밤’의 비밀이 궁금하시다면 <밤을 가로질러>를 읽어보시는 게 어떨까요? 밤잠 못 이루는 여름밤 책으로 추천합니다!
사랑합니다. 규문각 사서님들. 이 코너 덕분에 볼 책 목록이 길어지고 있어요. 지난번 추천 도서 시간의 서에서 뽑은 문장도 참 아름다웠는데.
책을 읽지는 않고 탐심만 한가득입니다. 이렇게라도 모르던 책을 알게 돼서 기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