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적BOOK적은 규문각에서 격월로 주제를 달리해 책을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해당 책을 읽고, 리뷰를 함께 나눠 주신 분들 중 심사를 통해 상품을 드립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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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적BOOK적 추천도서 8 <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
“빛은 정말 필요할까?”
<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 아네테 크롭베네슈, 시공사
“빛은 정말 필요할까?”
우리의 생체 시계는 나름의 박자를 지킨다. 하지만 빛은 박자를 유지하는 진자의 위치를 일정 한도 내에서 이리저리 옮겨 놓을 수 있다. 우리의 몸은 처음에는 익숙한 시간에 맞춰 반응하지만 하루하루 지나면서 조금씩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간다. 그래서 빛을 ‘차이트게버zeitgaber’ 혹은 ‘시간 신호’라고 부른다. 빛보다는 훨씬 약하지만 식사 시간, 활동 시간, 사회적 대상의 존재 등도 시간을 알려 주는 외적 신호가 될 수 있다. (<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 아네테 크롭베네슈, 시공사, p.70)
밤이 실종됐습니다. 일몰 다음에도 우리의 밤하늘은 환하기만 합니다. 도시의 아름다운 야경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곧 불을 꺼도 방 안까지 밀고 들어오는 빛 공해로 우리의 숙면을 방해합니다. 물론 화려한 밤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밤을 밝히는 것은 즐거움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 있을지 모르는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말 밤을 밝히면 우리는 그만큼 안전해질까요? 어둠을 밝히는 빛은 정말 아무런 부작용도 없을까요? <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낮과 밤은 아주 오랫동안 지구와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의 리듬을 관장해 왔습니다. 그런 오랜 리듬을 이렇게 단기간에 흩어버리는 것은 정말 괜찮은 일일까요?
우리가 거리낌없이 밤을 밝힐 수 있는 이유는 시간을 우리가 스스로의 의지대로 관장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필요하다면 밤을 지새워도 되고,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하루의 24시간 주기는 우리 의지대로 변경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이 생겨난 이래 태양의 움직임대로 적응한, 생물학적인 리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청색광에 시도 때도 없이 노출되면서 휴식을 관장하는 멜라토닌 호르몬 분비가 엉망이 되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멜라토닌은 면역력을 강화하고 염증을 억제하고 항암작용을 하고 뇌의 활동을 보호하는 호르몬인데, 어두운 곳에서 잠들어야 분비됩니다. 즉 때가 되면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잠드는 일, 이것이 자연적으로 우리에게 내장된 건강 프로그램인 셈입니다.
야간 비행 중 새들은 지형지물과 지구의 자기장에 의존하여 방향을 잡는다. (...) 새들은 도시 위를 비행할 때 자기장에 의한 방향 감각은 잃어버리고 시각에만 의존하여 비행을 한다. 그 말은 즉, 새들이 가장 밝은 지점을 향해 날아간다는 뜻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곤충과 마찬가지로 달이 직선 비행에 가장 확실한 신호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도시에서도 이 방향 탐지법을 이용한 새들은 곧장 불을 밝힌 고층 빌딩과 스카이 빔 혹은 밝게 빛나는 주유소 바닥으로 날아간다. (<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 아네테 크롭베네슈, 시공사, p.131)
이 책을 읽는 지금이 가을이라면 눈을 크게 뜨고 도시의 거리로 나가보길 권한다. 인공조명의 영향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찬찬히 둘러보면 심지어는 한 나무 안에서도 위치에 따라 빛의 영향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광원과 가까운 나뭇잎은 아직 푸르고, 멀리 떨어진 가지는 벌써 앙상하다. 시선을 바닥으로 향하면 영향을 받는 게 비단 나무만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미 수년간 베를린에서 11월에 데이지가 피는 것을 목격해 왔다. (<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 아네테 크롭베네슈, 시공사, p.163)
무수한 생명들이 낮과 밤의 자장 속에서 살아갑니다. 새들은 지구의 자기장과 달빛과의 거리감을 재며 날아가고 곤충들 역시 빛을 중심으로 행동합니다. 반딧불처럼 스스로 빛을 내며 피아를 식별하는 종도 있습니다. 예로부터 어둠 속에서 가장 환한 빛은 달빛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인공조명이 가장 밝죠. 그로 인해 새들은 길을 잃고 곤충들은 생식을 포기하는가 하면 필요 이상으로 많은 불빛에 모여든 곤충들이 죽어나가 그 곤충을 잡아먹는 종의 생존마저 위태로워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식물들 역시 과도한 광합성으로 ‘번아웃’ 상태에 이르렀고요. 낮과 밤으로 이루어진 지구는 인간 혼자 쓰는 게 아니죠. 수많은 종들이 인공조명으로 인해 자신의 리듬을 잃고 죽어가는 그 자장 속에 인간 또한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사실 인간에게 마음대로 빛을 밝힐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환경 문제를 피하느라 다른 문제를 키울 위험에도 놓여 있다. 에너지 효율을 위해 전 세계가 조명을 강한 청색광의 LED로 바꾸면서 그 부정적인 영향이 거의 모든 생태계에 미치게 되었다. 우리 자신을 기만하지 말자. 우리의 세계는 점점 더 밝아지고 있다. 우리는 더 적은 에너지로 같은 양의 빛을 생산해 내는 대신, 같은 양의 에너지로 더 많은 빛을 만들어 내고 있다. 기후 변화를 멈추지도 못하면서 밤의 어둠을 지워 버리고 우리의 세계를 망가뜨리고 있다. (<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 아네테 크롭베네슈, 시공사, p.273)
빛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너무 밝은 빛은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LED등입니다. 경비 절감을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LED 등을 조명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적은 전력으로 밝은 빛을 낼 수 있다는 이유로 가정용 조명부터 가로등까지 LED로 많이 교체되었죠. LED 등이 선호되는 이유는 적은 에너지, 많은 빛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에게 정말 좋은 빛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많은 빛’은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공해일 뿐이라고 경고합니다.
특히 이 책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빛 공해 국가 중 하나라고 합니다. 빛 공해로 인한 질병도 심각하고요. 가장 밝은 서울은 가장 어두운 강원도의 유방암 위험률 차이가 34퍼센트에 달한다고 하지요. 서울의 야경을 보고 감탄할 때, 우리의 몸에는 그 밝기만큼의 독소가 쌓이는 셈입니다. 도시에서 야근을 하거나 교대근무를 하는 사람의 몸 역시 빛 공해로 인한 산재에 노출되어 있고요. 도시의 삶은 겉으로 보면 깨끗합니다. 하지만 자원을 낭비하거나 오염물질을 버리는 게 아닌, 단지 빛을 밝혔다는 이유만으로 공해를 유발하여 인간과 비인간 모두에게 악영향을 미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에너지 효율이 아니라 좀 더 어두워지는 것, 좀 더 부드러운 빛을 필요한 곳에 쓰는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밝은 밤에 조금이라도 이상함을 느끼셨다면 <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를 꼭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