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역사 3-3주차 후기
매주 책 속에 푹 빠져서 들게 하는 돈키호테의 흡인력은 무엇일까? 아마도 좌충우돌 모험 이야기와 함께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풍성하게 더해져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아서 푹빠지게 되는 거 같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돈키호테가 몇 달 동안 모험을 한 것인 양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고작 17일간의 모험이었을 뿐이었다. 현주샘이 이렇게 시공간을 잊게 하는 ‘이야기의 힘’에 놀라워하며 이것을 토론 주제로 가지고 왔다. 돈키호테 주변에 항상 사람들이 넘쳐나고 돈키호테를 사람들이 도와주게 되는 힘의 저력은 이야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하였다. 이 이야기의 힘은 나와 다른 관점을 이해하게 해주고 다른 삶의 해법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요즘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을 내지 않고, 보이는 단면만 보고 판단하는 경향이 크다는 말이 마음에 다가왔다. 나 또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행위에 심한 피로감을 느끼며 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솔한 이야기를 하려면 마음을 열고 상대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해야 한다. 그런데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관점으로 재단하여 판단하고 충고하려 든다. 나의 관점만을 고집하는 이런 행위가 피로감을 유발하며 다른 사람의 관점을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막는다. 상대의 이야기를 평가하지 않고 그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다른 사유를 끌어내어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을 때 나에게도 이야기의 힘이 발휘될 것이다.
돈키호테 소설의 다양한 목소리
돈키호테를 읽을 때 당황스러웠던 점은 이야기가 재미있어지는 순간 실제 작가가 아니며, 번역자가 있고 자신은 편집자라는 내용을 밝히는 대목이었다. 이것이 검열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이해하고 넘어갔으나 이번 주에는 그것이 다양한 목소리가 뒤섞여 하나의 시선으로 정리할 수 없게 만드는 돈키호테 소설의 특이성이라고 배우게 되었다. 저자가 정해져 있지 않고, 주연인 돈키호테와 조연인 산초의 말이 대등하게 섞이고, 모험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돈키호테와 산초가 청자가 되고,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들어있는 구성으로 인해 다양한 목소리가 여러 겹으로 겹쳐져 돈키호테는 한두 줄로 요약할 수 없다. 이렇게 유한한 텍스트이지만 무한하게 해석의 가능성이 열려있어서 다양한 읽기가 가능한 책이 좋은 소설의 특징이라고 알려주셨다. 이런 특성 때문일까? 토론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책을 읽고 생각한 자신의 관점을 서로 나누었다. 사회의 관념, 모방, 자유와 평등, 광기란 무엇일까? 줌은 가상인가? 허구와 현실이 명확히 구분되는가? 객관적 시선이란? 진실이란? 돈키호테와 산초의 변화 등 그야말로 이야기들이 와글거렸다.
정상성과 광기
돈키호테가 기사도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마을을 떠날 때 난 그 용기에 감탄하였다. 실행이 늦어질수록 손해라며 새벽 동트기 전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떠나는 돈키호테의 모습은 무언가 시도해보라고 내 무의식을 건드리고 있었다. 당시 노인에 해당하는 돈키호테의 나이를 보면 아직 늦지 않았다고 더욱 나를 자극하였다. 그러나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들을 추구하며 안정된 중년의 삶을 사는 지금 나의 기반을 다 던지고 돈키호테처럼 떠날 수 있을까? 난 아직 꿈을 위해 현재의 기반을 다 포기하고 떠날 용기가 없다. 어쩌면 다 버리고 떠날 정도의 강렬한 꿈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단지 마음속으로만 모험을 떠나는 돈키호테에게 심한 감정 이입을 하고 있었다. 죽기 직전에 사람들에게 후회되는 일이 뭐냐고 물으면 ”대부분 모험(여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대답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왜 그렇게 모험을 동경하는 것일까? 시대에 맞지 않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모험을 하는 돈키호테는 미친 것일까? 샘은 어느 시대에나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의 범주에 갇히지 않고 뛰쳐나간 독특한 사고방식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공자도 그 시대에선 돈키호테라고 하셨다. 유교의 공자라면 고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공자가 그 시대의 돈키호테라니! 뭔가 어긋나는 느낌이다. 그러나 돈키호테가 지나간 시대의 기사도 정신을 현실에서 실천하려고 한 것처럼 공자도 그 시대에 과거의 주나라 문화를 세우는 것이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행하려고 한 점에서 돈키호테와 같다고 한다. 공자가 돈키호테형 인간이라니! 전혀 연관시켜보지 못한 캐릭터라 어리둥절하지만 재미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그 시대의 정상성에서 벗어난 모험이 인간의 삶에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을 샘은 융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주셨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사회적 코드에 의해 사회적 자아를 형성하지만 우리는 그것만으로는 환원되지 않는 인류의 무의식을 가진 존재라고 한다. 우리는 이 세계를 다 알 수 없으며 인간의 사회적 자아 뒤에 숨은 본성(내 안의 그림자)를 배제하지 않아야 균형감 있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사회적 코드에서 벗어난 세계를 혐오하고 배제하면서 사회적 자아가 전부라고 생각하면 사회적 자아에 질식해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돈키호테가 무의식의 세계를 보여주며 사회적 정상성의 편협함을 깨뜨리고 유연한 삶을 살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회적 코드로만 무장된 내게 돈키호테의 광기는 꼭 필요해 보인다. 1권 끝부분에서 섬이라는 물질적 욕망을 찾아 떠났던 산초가 모험 자체를 즐길 줄 알게 된 장면이 나온다. 돈키호테의 광기로 함께 모험하면서 산초가 변하였다. 이젠 자발적으로 돈키호테에게 먼저 두 번째 모험을 떠나자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돈키호테는 내 무의식도 건드려 예전에 포기했던 걸 다시 시도하도록 만들었다. 이번엔 돈키호테처럼 두들겨 맞고 이가 빠져도 결과에 상관하지 않고 나아가는 광기를 발휘하고 싶다.
돈키호테가 맘브리노 투구를 쓰고 로시난테를 타고 잿빛을 탄 산초와 함께 샘의 무의식을 헤집어 놓고 있구만요~ 이미 두들겨 맞고 이가 빠지는 광기를 발휘하고 계신 것 같은데 ㅋㅋ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언제나 '떠남'과 '시도'를 욕망하고 계신 재순샘~ 우리는 욕망하는 걸 하게 돼 있잖아요. 글역에서 시작해 선생님과 함께 할 시도들 기대하고 있습니다. ㅎ
차분하고 진솔한 후기가 마음을 다잡게 만드네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