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로 한 주 쉬어가는 여유로움을 만끽한 뒤 만난 이번 시간은 돈키호테 2권으로 출발했습니다.
1605년에 돈키호테 1권이 출판되었고 2권은 1615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세르반테스에게는 1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1편이 3만부나 인쇄된 베스트셀러 작가였으나 당시 워낙 가난하여서 애초에 판권을 인쇄소에 넘겨주었기 때문에 세르반테스는 개인적 이득은 얻지 못하였다고 하네요. 1609년에 세르반테스는 수도회에 들어가고 1613년 테르세라 교단의 수사가 된 후 1613년 12편의 중편소설집 〈모범소설〉을 출간하고 그해 시집인 〈파르나소로의 여행〉과〈8편의 희극과 8편의 막간극〉이 출판됩니다. 2권을 발표하기 전까지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고 있었네요.
2권은 돈키호테가 집으로 돌아온지(1권이 끝나고) 한 달 뒤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세르반테스는 자신의 책이 널리 출판되고 알려졌다는 10년의 기간을 염두해 두고 소설을 써내려갑니다. 이 부분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삼손 학사의 입을 빌어 1권의 내용에 관한 세간의 평을 합니다. 집에 돌아온 건 한 달인데 세상 사람들은 돈키호테의 모험을 다 알고 있다는 설정 자체가 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토론은 돈키호테와 산초가 바쁜 와중에 누군가의 무의식을 방문하여 휘젓고 다니고 있었으니 바로 그 주인공인 재순샘의 용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17장 돈키호테 전대미문의 용기가 닿고 도달 할 수 있었던 최후의 극점과 행복하게 끝난 사자의 모험이 밝혀지다 에서 사자에게 들이대고 사자의 무반응에 무사히 목숨을 건진 우리 돈키호테는 자신을 슬픈 몰골의 기사에서 사자의 기사라고 불러 달라며 용기란 비겁함과 무모함이라는 극단적인 두 악덕 사이에 놓여 있는 미덕이라고 말합니다. 참 멋진 말입니다만 우리는 어떤 것을 볼 때 참 무모하다거나 비겁하다고 생각할 때의 전제들이 있습니다. 조용히 있는 사자를 굳이 왜 들쑤셔서 위험을 자초하냐는 의견도 있었고 그런 행위가 허세처럼 느껴졌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사자가 아니고 어떤 악습을 보거나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일들이라고 의미를 확장해보면 그런 상황에 놓였을 때 개인이 취하는 어떤 행동을 말하는 것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생각만 하지 말고 실행해보라는 의미로 말입니다. 자신을 제외하고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라고 한다면 그건 무모함일까요? 예라고 답하는 사람들 중에도 아니오라고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분위기에 휩쓸려 혹은 사심으로 인해 차마 그리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이런 사람들 중에는 아니오라고 얘기한 사람으로 인해 해방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을까요?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이게 과연 무모함인지 비겁함인지 여러가지를 고려해야 그 사이를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사자 얘기에서 개인적으로 재밌었던 부분인데요. 우리를 미소짓게 하는 현주샘이 사자우리를 열었는데 왜 사자는 자유를 찾아 밖으로 나오지 않았냐며. ㅋㅋ 사자가 나오지 않아서 돈키호테는 용기를 얻은 사람이 되었다고 용기는 그래서 뭔가 한발 짝 앞으로 나가야 되는 것 아닌가? 라는 말을 했습니다. 미처 생각치 못한 사자의 관점에서 잠시나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모두의 심금을 울리게한 심장막 이야기입니다. 산초가 삼손학사의 종자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돈키호테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입니다. 나는 그 분을 내 심장막 만큼이나 좋아하게 되었고 아무리 터무니없는 짓을 해도 그 사람을 버리고 갈 수가 없게 되었단 말입니다. 새벽 감성으로 써서 그런지라는 포장을 하셨습니다만 작년 이맘때 심장막 같았던 이를 마음으로 담아 둘 수밖에 없는 일을 겪어서 일까요? 글을 읽으며, 읽고나서 울컥 하셨지만 담담하게 진행해 나가던 우리의 반장님!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씩씩하고 멋지게 일상을 이어 나가시는 것 같다는 느낌에 더욱 응원의 마음을 보냅니다!! 자연스럽게 산초와 돈키호테의 우정은 과연 뭘까? 라는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물리적인 시간으로 그리 길지 않은데 이 둘은 어쩜 이리 끈끈해졌을까요? 그런데 이 끈끈함은 위에 심장막 같다고 심금을 울리더니 사자우리를 열때 우리의 산초는 주인이 죽는 것은 슬프지만 자기는 살겠다고 잿빛을 채찍질하며 사자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집니다. ㅋㅋ 이건 뭘까요? 버리고 갈 수가 없다고 하더니만 버리고 가버리는 이 행위를 어찌 해석해야 하는 걸까요? 하지만 더 나가서 은이샘께서 말씀하신대로 산초가 그리 도망쳤다고 돈키호테가 서운해 했을까요? 산초 이노무자식이 날 버리고 가다니 괘씸하다고 여겼을까요? 아마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명절 전후 멜랑콜리 상태였고 본의 아니게 역사 시험으로 모두를 맥이려다 채운샘께 되치기를 당한 재영샘! 이번 한 주 16-18세기 유럽의 역사에 빠져서 허우적 대실걸 생각하니 샘이 외롭지 않게 숙제를 하지 말고 샘과 한 배를 타야 하나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습니다. 그런데 샘과 한 배를 타주실 분이 분명 한 분도 안계실거 같아 저 역시도 비겁하게 나 살고자 숙제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것이 함께 공부하는 학인으로 돈키호테와 산초의 우정에 버금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응원합니다.! 샘~^^
ㅋㅋㅋ 산초처럼 숙제를 재촉하여 시험으로 부터 최대한 멀어지고 있는 호진샘 ^^.
아주 많은 얘기가 오간 토론을 이렇게 경쾌하게 정리하기 있기없기?! 토론의 관점이 조금씩 달라지는 지점을 잘 포착해 주셨네요. 유머포인트 찾는 기술을 잘 배워야겠군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