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차 돈키호테 후기입니다. 어느덧 돈키호테 시간도 한주 남았습니다. 다들 책을 주문하고 그 두께감에 놀라서 한마디씩 했는데 벌써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매주 읽어야 하는 분량이 300페이지가 넘다 보니 깊이 없이 빠르게 면치기 하듯이 ‘호로록’ 읽는 것 아닌가 의구심도 듭니다만, 뭐 그렇게 고전은 읽어나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다 같이 안 읽었으면 혼자서는 끝까지 읽을 수 없는 것, 이것이 고전의 속성인 것 같습니다.
책 두께만큼이나 그 당시 사회성과 철학적 사유가 넘쳐나는데요, 예전에 읽었던 책보다 확실히 재미있고 생각거리가 많다 보니 다양한 이야기들을 토론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제가 전혀 생각지 못한 이야기를 학인들이 끄집어낼 때 학인들의 다양한 관점을 통해 책을 더 풍성하게 읽어나갈 수 있게 되어서 책읽는 동안 재미있었습니다. 왠지 사유의 확장도 되는 것 같고. 하지만 이번 주에 은이 샘께서 쓰신 ‘몬테시노스 동굴’ 이야기는 저에겐 좀 어려웠습니다. 사실 학인들이 하는 토론 내용도 공감이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도 이 부분이 중요하다며 집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다시 한번 읽어보라고 저희들에게 당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잘 이해하셨나요? 궁금하네요. 이 부분을 선생님 강의를 기반으로 제가 이해한 만큼 정리해보겠습니다.
동굴, 이는 우리의 무의식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광기의 심연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광기의 심연이란 살면서 우리가 포착할 수 없는 것인데요. 포착하지 못했다고 그것이 없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삶이라는 것, 혹은 자연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삶 전에 펼쳐져 있는 규정할 수 없는 흐름 같은 것인데 인간들은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규정하게 된다는 거죠. 그런데 규정하는 순간 규정되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서 빠져나가게 되죠. 그렇다고 그것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그것이 무의식에 저장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죠. 그렇기에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규정되지 않은 것과도 같이 지내고 있는 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습성이 규정된 것에만 집중하게 되죠. 이 습성을 바꾸도록 훈련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왜 습성을 바꿔야 할까요? 가령, 삶을 죽음의 반대로 생각하게 되는데 이는 삶을 규정하는 순간 죽음이란 알 수 없는 것이 되고 죽음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삶 속에서 죽음을 배제 시켜버리게 되죠. 그러나 삶에서 죽음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언젠가는 마주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삶과 죽음이 하나라고 사유할 수 있다면 적어도 죽음이 두려운 것이 될 수 없죠. 또한 순간 순간 죽음을 염두하고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삶과 죽음을 분리한 사람들과는 삶의 태도를 다르게 할 것입니다. 아마도 삶을 더욱 적극적으로 살 것 같습니다.
돈키호테의 광기의 심연은 ‘죽음’이라는 금기를 건드린 거라고 말씀하셨는데요. 돈키호테는 동굴(죽음)을 체험하고 거기서 빠져나옵니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죠. 그럼 죽음을 체험하고 현실로 돌아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예수나 부처와 같은 성인들은 자신들의 체험을 통해 ‘우리도 삶 속에서 체험할 수 있다’라고 전해주고 있는데 이는 죽음이라는 것이 삶 바깥에 있지 않다는 반증입니다.(습성을 바꾸는 훈련을 반드시 해야만 할수 밖에 없는 결론이네요!) 즉 죽음의 체험이란 삶과 죽음을 불리하지 않게 되는, 규정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사유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돈키호테는 아시다시피 미쳤습니다. 동굴의 체험은 그의 광기가 만들어 낸 허구적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기도 하고 그의 사유가 확장된 것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돈키호테의 광기를 통해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과연 우리가 믿고 있는 세계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우리는 돈키호테를 광인이라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동들이 과연 광기의 돈키호테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의 질문도 더불어서 우리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지난번 연암이 언급한 ‘사이’와도 같은 맥락입니다.
동굴 체험은 허구를 믿는 돈키호테에게 현실에 대한 사유가 확장된 사건입니다. 동굴을 경험한 이후로 돈키호테의 망상은 줄어들고 사리 분명함이 드러나는 묘사가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앞으로 전개되는 돈키호테는 실재의 확장을 통해서 가상과 실재가 중첩되어진 현실 속에서 삶의 발란스를 즉 삶의 성찰, 성숙으로 맞춰가게 될 것 같습니다. 세르반테스가 ‘몬테시노스 동굴’을 2권 이야기 초반부에 배치한 것은 돈키호테의 지반에 금을 낸 의도적 장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돈키호테형을 제외한 인간), 규정해 놓은 현실만을 믿고 있는 우리는 규정되지 않은 허구의 세계를 확장해야 하지 않을까요? 허구적 세계의 확장이란 위에서 언급한 우리가 믿고 있는 이성적 세계에 대한 의심과 질문 속에서 허구의 세계를 다르게 사유할 수 있게 되는 거겠죠. 이는 우리의 또 다른 이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죠. 만약 앞에서 언급한 모든 인간이 삶과 죽음을 동시에 사유할 수만 있다면(예수와 부처같다면) 지금 일어나는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 그 안에 내재 되어 있는 가치 그것은 가치가 아니라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새로운 이성을 말이죠. 세르반테스의 시기에 무어인과의 전쟁은 계속해서 변주되어 지금도 현재형이 되어 가고 있는 듯 합니다.
은옥샘~ 제주도 인가요? 미천굴이나 만장굴에 들어갔다 나오신 체험을 한건 아닌지....ㅋㅋ 동굴이야기가 와닿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깨알같이 파고 들어가는 후기를 쓰시다니 역시 글역팀의 에이스 입니다요!! 자신이 규정한(된) 것을 찾아가며 습성을 바꾸는 훈련을 어찌할 수 있는지 함께 알아가봐요~^^ 이 훈련을 하면 뭔가 조금씩 살맛 날거 같아요...ㅋㅋ
심연이나 규정되지 않은 세계, 이런 말들이 우리를 혹하게 하죠. 자기 밖으로 한 발도 내딛지 못하면서도 말이죠. 우리의 삶이 규정되지 않은 것과 함께 가는 것이라면, 동굴이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안고 사는 힘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자기와의 불화를 견뎌야 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꼼꼼한 후기 잘 읽었어요. 올 글역 최고 수혜자 은옥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