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역사 시즌2 에세이 공지
어느덧 시즌2의 공부를 정리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음 시간이 에세이네요. 시즌 2는 ‘여행’을 주제로 괴테와 연암의 여행기를 보았고, 18세기 유럽과 조선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여행은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누구에겐 방황하는 인생 자체로, 오래된 지혜를 찾는 것으로, 자신의 습을 벗어나는 것으로, 자신을 다시 찾는 과정으로도요. 괴테는 여행을 통해 자신을 성숙시키고자 한다고 했고, 연암은 분별없음의 지점에 이르렀지요. 에세이를 쓰며 우리도 우리만의 여행에 이르면 좋겠네요. 에세이 일정부터 볼께요.
시간 : 8월 28일 10시 규문각
진행 : 10:00 ~ 11:00 암송 발표
11:10 ~ 16:00 에세이 발표
간식은 조금씩 준비해 오도록 하구요, 점심은 김밥 주문하겠습니다.
본다는 것의 허상
에세이를 쓰기 위한 샘의 조언 이후 <환희기>에 대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공교롭게도 같은 주제가 겹치면서 <환희기> 부분이 공통과제에서 다뤄지지 않아서였죠. <환희기>는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런데 본다는 것을 말하면서, 눈속임으로 하는 요술과, 질문을 하는 자가 장님이라는 상징이 매우 역설적으로 느껴졌는데요, 샘은 사람들이 요술쟁이에게 환호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먼저 질문하셨어요. 바로 “기적을 믿는 심리” 때문이라는데요, 즐거움이 있었으면 아픔과 괴로움도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건 싫고 이룰 수 없는 기적에 매혹되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원하면 뚝딱, 인과와 상관없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게 닮았네요.
<환희기>는 장님을 통해 새로운 문제 제기를 합니다. 장님일 땐 눈은 멀었지만 다른 감각들을 사용해 본다는 것에 결여가 없었고, 보이지 않던 것까지 볼 수 있었는데, 눈을 뜨고 나니 보이는 것만 보이고, 보는 것 때문에 나머지 능력을 상실해 버렸다고 불평하는 반전이 일어납니다. 눈을 뜨는 순간 하나의 세상만 보입니다. 세계는 입체적인데 우리는 한 번에 그 입체를 다 인식할 수가 없죠. 우리가 자신의 눈을 지식의 유일한 수단으로 믿는 순간 경험의 이데올로기에 갇혀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도덕과 지식, 상식에 물들어진 눈은 선입견과 편견을 만들어 자신이 본 것만 옳다고 우기게 되겠죠. 반면 장님은 마음으로 보는 자입니다. 감각이 누(累)가 되지 않아 명심(冥心)하는 자이죠. 본다는 것은 세계를 어떤 시선으로 응시하느냐의 문제 입니다.
여기서 연암의 주장이 흥미로웠는데요, 요술쟁이가 우리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눈이 속는 것’이라고 합니다. 보는 자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 인식주체의 문제라는 거죠. 그럼 어떻게 할까요, “도로 눈을 감으라”고 합니다. 남이 가르쳐준 말, 기존의 경험과 상식에 길들여진 지각에 속지 말고 눈을 감으라고요. 연암은 세상을 요술처럼 현혹되는 궁극적으로 좁은 식견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보는 것이죠. 연암에게 본다는 것은 진실한 세계를 만드는 통로입니다. 진실함이란 이 맥락에선 더 많은 것과 공감을 일으키는 것이겠죠. 공감은 자신의 눈을 감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눈을 감음으로써 더 많은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죠. 감각이 뛰어나다는 건 다양한 것을 감각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나에서 다양한 것을 찾아내는 능력입니다. 에세이를 쓰기 위해 우리 눈을 감을까요. 월요일에는 현장에서 뵙겠네요. 샘들 홧팅!!
ㅋㅋ. 채운샘의 말씀이 저에게 와서 무묭한 것이 되고 있어서 대략난감이네요. 에세이 쓰기를 앞두고 뚝딱 기적을 바라는 마음이 요동치고 있어요, 이런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