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두 번째 시간 후기.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두 번째 시간에서는 채운 선생님께서 몇 가지 콕 찝어서 설명해주셨는데요, 사실 우리에게 생각할 내용 거리를 던져 주신 것 같습니다.
1.“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한 법이지. 서양 사람들은 기하학의 한 획을 반증하면서 선 하나를 가지고 가르쳤다네. 그런데도 그 미세한 부분을 다 변증하지 못해 ‘빛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경계’라고 말했어. 이건 바로, 부처가 말한 ‘닿지도 떨어져 있지도 않는다’는 그 경지일세(중략)”(49쪽)
인간의 욕망이 도를 가리고 있음이다. 도란 삶의 맥락과 마음을 읽어 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물론 이것은 공부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고) 우리의 세상은 ‘선’과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세상 관계를 그렇게 경계 지울 수 없다. 부처가 말한 ‘닿지도 떨어져 있지도 않는다’ 의 경계를 ‘사이’라고 말하는데 모든것은 실선의 경계를 갖고 있지않지만 우리가 세상을 경계지어 놓음으로서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게 된다. 하지만 그 ‘사이’에 사람의 윤리와 만물의 법칙인 길이 있다고 말한다. ‘사이’란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는 것으로서의 정답이 아니라 우리가 사물에 대한 근원을 따져 묻기 위한 다양한 측면의 질문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삶의 윤리와 법칙은 이런 질문들 속에서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라는 것도 욕망에 대한 다양한 질문 속에 길을 찾아 낼 수 있지 않을까.
2.‘이용’이 있은 뒤에야 후생이 될 것이요, 후생이 된 뒤에야 정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롭게 사용할 수 없는데도 삶을 도탑게 할 수 있는 건 세상에 드물다. 그리고 생활이 넉넉지 못하다면 어찌 덕을 바를게 할 수 있겠는가.(77쪽)
이용, 후생, 정덕 이라고 말할 때 이용, 후생의 최종 목적이 정덕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이 내용을 개인으로 가지고 와서 생각해볼 수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고 그것에 풍요로워졌다면 그다음 자신의 역량을 풍요롭게 해야 하는 것인데 지금 우리는 자신의 역량을 풍부하게 하려는 사유가 없다. 아마도 우리는 모든 사건을 매번 먹고 사는 문제로 끌어 않고서 존재론적 사유는 다루지 않는 습성을 지적하고 있음이다. 저는 이 말씀이 개인적으로 잘 다가왔습니다.
3.나는 우리 서울의 도봉산과 삼각산이 금강산보다 낫다고 생각해 왔다. 무엇 때문인가. 금강산은 그 골짜기가 이른 바 1만 2천봉이나 된다. 기아하면서도 험준하고 웅장하면서도 깊지 않은 곳이 없다.(중략) 지금 기이하고 우뚝 솟아난 이 산의 형세가 비록 도봉산이나 삼각산보다 높긴 하지만, 허공에 떠 있는 빛과 기운은 한양의 여러 산에 절대 미치지 못한다.(62쪽)
금강산에 대한 연암의 느낌점인데 여행을 하는 자의 역량을 보여주는 예이다. 무조건 주류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때로는 직접 텍스트를 찾아보고 실질적으로 본 것을 따져 묻고 본질을 보려 하는 객관적 태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 여러 중요한 말씀을 하셨지만...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양한 측면의 질문. 은옥샘 글을 읽으며 새삼 참 어려운 일이다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