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역사 2-9(7/31) 공지
날이 무척 덥습니다. 한여름인데도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린다고 하니 건강 잘 챙기셔야 할 거 같습니다. 줌에서 만나는 우리 팀도 지난주부터 환자가 속출했어요. 몸살감기에 코로나까지. 건강관리 잘 하시고 다음 시간엔 씩씩하게 뵐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번 주엔 <열하일기> 성경잡지(盛京雜識) 부분과 <18세기 왕의 귀환>은 영조의 치세와 2부 1장 북학파 부분을 읽었습니다. 성경잡지는 필담부분을 따로 빼 놓았고, 영조의 위민정책들을 보았습니다. 간단히 공지할께요.
타자를 수용하는 방식
지난주 일어난 ‘초등교사 사건’과 ‘묻지마 폭력’은 전 국민을 우울에 빠지게 만들었죠. 저희도 수업을 시작하며 애도와 한탄을 했는데요. 사람 사이의 관계를 두려움으로 만들고 타자에 대해 극도의 경계심을 갖게 만드는 상황이 당혹을 넘어 말을 잊게 만듭니다. 여행은 기본적으로 타자를 만나고자 하는 욕망으로 떠나는 것이죠. 낯선 것들과의 조우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요즘, 열하일기를 통해 한 줌 지혜를 구해볼까 합니다. 이번에 읽은 <성경잡지>편에는 난생 처음 낙타를 보고 묘사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술 취해 말 위에서 깜빡 졸다가 낙타가 지나는 걸 보지 못한 연암을 위해 창대가 설명해줍니다.
그 꼴이 어떻게 생겼더냐?
참말로 형언하기 어렵습니다요. 말인가 하면 굽이 두 쪽이고, 꼬리는 소처럼 생겼고, 소인가 하면 머리에 뿔이 없는 데다, 얼굴은 양같이 생겼고, 양인가 하면 털이 꼬불꼬불하지 않은 데다 등엔 두 봉우리가 솟았으며, 게다가 머리를 쳐들면 거위 같기도 하고, 눈은 꼭 청맹과니 같더군요.(열하일기 p.206)
처음 보게 되는 낯선 타자를 우리가 어떻게 수용하게 되는지 아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처음 보는 것을 묘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보지 못한 것을 말할 수는 없기 때문에 본 것을 토대로 말하게 되지요. 그것도 소인 것 같은데 뿔이 없다는 식의 네거티브한 방식으로 말이죠. 낯선 것을 수용하는 것도 알고 있는 것을 근거로 해서 구성되기에, 우리의 앎을 잘 구성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얘기를 나누었죠. 내가 알고 있는 것에서 출발해 타자도 수용되는 것이니까요. 특히 유학에서 자신의 덕을 넓혀 세상을 통치하는데 이르러야 한다고 보잖아요. 자신을 조형하고 세우는 것이 낯선 것과의 경계를 허물 수 있게 하는 토대가 된다는 것도 이야기를 나눈 것 같습니다.
토론 주제 중에 우정이라는 테마가 있었는데, 우정도 이질성과 관련해 생각해 보았어요. 우정은 관계의 지속이나 정서적 동일성을 확인하는 관계가 아니라, 계속 이질성을 촉발시킬 수 있는 관계여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동연배의 우정을 넘어, 세대와 시대와 텍스트와의 관계에서도 구성될 수 있는 것이라는 얘기를 했었구요. 연암이 촉나라에서 성경으로 와 골동품 장사를 하는 장사꾼들과 나눈 필담도 연암이 우정을 나누는 다양한 방식을 볼 수 있었구요. 배움의 자세로 장사꾼들과 만나는 것은 물론이고, 연암 자신이 유교적 통념에 갇혀있다는 것도 스스로 확인하게 되었죠. 내가 무엇을 전제하고 있는지 많은 생각들이 오가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20대인 현주샘의 경우 친구들과의 관계가 아주 중요한 삶의 부분인데, 열하일기를 읽고 토론하고, 짧은 시간이지만 글역팀과 함께 여행을 하며 새로운 우정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 했는데요, 현주샘이 제기하는 문제와 생각이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함께 변화되어 간다는 걸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도는 삶 속에 있다
채운샘은 강의 때마다 유학은 그 자체로 실학이라는 걸 강조하십니다. ‘실학’이 조선 후기에 특별히 개념화된 것이 아니란 거죠. 조선에서도 16세기 후반 이황, 이이 등에 의해 조선 성리학의 이론이 성숙되었고 17세기로 넘어오면서 지봉유설로 유명한 이수광 등에 의해 실용성이 더 강조되는 흐름이 있었습니다. 형이상학적 공부가 아니라 삶과 밀착되어 있는 것이 학문이자 ‘도’라는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이수광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도는 백성이 이어가는 나날의 삶 속에 있다. 여름에 베옷 입고 겨울에 가죽옷을 입으며,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는 것이 도다. 이런 것을 빼고 도를 말하는 자는 틀린 것이다.(왕의 귀환, p.108)
호란과 왜란을 겪으며 붕당의 담론이 대립하는 가운데 중요한 역사적 결정이 이루어져서인지 우리 역사에서는 형이상학적인 이론이 더욱 표면화되는 것 같습니다. 북학파들은 이런 삶의 모습에 천착하는 전통을 지켜나가며 공부하는 그룹이었던 것이구요. 연암이 연행에서 중요하게 기록하는 것도 백성들이 살고 있는 모습이죠. 그들이 사는 집, 먹는 음식들, 도로, 시장의 풍경 등 삶과 밀착된 실제적인 것들입니다.
영조 대왕이 실시한 준천(濬川) 사업도 백성들의 삶의 터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지요. 17세기가 되면서 시골에서 상경한 사람들로 서울의 인구가 급속히 늘게 되었고, 삶의 터전 잃은 빈민들이 개천가에 자리잡으면서 생활 하수 등으로 하천은 자주 막히고 범람하게 되었죠. 준천은 공공 사업을 통해 빈민도 구제하고 그들의 삶의 터전도 안전하게 마련하는 구민(救民)의 핵심 사업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사대문 안 청계천 변은 벼슬한 양반들과 빈민들이 함께 기거하는 공간이었어요. 복개 공사로 청계천을 덮어버리고 도로를 내고 주변엔 공장을 설치했던 때, 복원 사업으로 개천을 다시 열었으나 인공 펌프로 물을 흘리고 주변을 조성한 지금, 우리는 누구와 그 곳에서 살고자 하는지 물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요즘 채운샘도 많이 던지는 질문이긴 한데요, 누구와 어떻게 함께 할 것인지, 공부를 하면서 저도 아주 어려운 부분인 것 같습니다. 내가 나의 구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날이 더워서인지 저도 매우 산만한 일주일을 보내고 말았는데요, 대서도 지나고 말복을 앞둔 여름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재순샘 몸살 회복하시고, 은옥샘 코로나 털어버리고, 지원샘 원기회복하셔서 월요일에 줌에서 또 신나게 이야기해 보아요.
*** 9주차 (7/31) 공지 합니다 ***
* 에세이 주제가 나왔습니다. “여행과 배움”입니다.
과제하면서 미리 조금씩 생각을 보태놓으면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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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책
《열하일기1》 : 일신수필
《18세기 왕의 귀환》 : 2부 2~3장 (126p~165p)
* 과제
- 문학 : 나누고 싶은 문장을 뽑고 생각을 담아 숙제방에 올립니다.
- 역사 : 연표 정리하여 숙제방에 올립니다.
* 8주차 후기 : 은옥샘
월요일 줌에서 만나요~~
실학은 조선 후기 갑자기 등장한 개념이 아니라고 했던 말씀이 기억에 남아요. 우리 시대에 실학사상이 성리학의 다른 개념들과 특히 중요한 것으로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다면 그 것이 전제하는 것은 무엇인지 물으셨지요. 당연한 듯 여겼던 실학에도 힘들이 작동하고 있는거구나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