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주차 글쓰기와 역사 후기
이번 주는 열하일기 중 일신 수필 부분에 관하여 생각을 나누었다. “일신수필(馹汛隨筆)”은 말 위에서 빠르게 쓴 글이라고 하여 쉽게 생각했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은 글이었다. 서문에 나온“입과 귀에만 의지하는 자들과는 학문에 대해 이야기할 바가 못 된다.”는 문장을 가지고 배움에 관하여 토론을 하였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불행한 사고가 반복되는데 우리는 왜 사건들을 통해 배움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라는 문제가 제기되며 현재 쟁점이 된 사안인 서이초 교사 사건을 다루었다. 무거운 주제여서 조심스러웠지만, 원인과 결과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이 문제를 사회 전반에서 담론화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채운 샘은 “학교의 문제가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변신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학교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것부터 논의를 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여론이 어떤 전제 위에서 교권과 아동권을 논의하고 있는지 질문하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어떤 사건에 관해 전문가의 말을 듣고 그들의 의견을 쉽게 받아들이고 단순하게 찬반을 결정하는데 이런 행위는 연암이 비판하는 입과 귀로만 공부하는 자의 태도로서 배움이 일어날 수 없다고 한다. 전문가의 말에 의존하기보다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근원적으로 접근하고 스스로 생각할 때 배움이 일어나고 똑같은 실수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연암은 모두가 금강산이 천하의 명산이라고 말하더라도 금강산을 직접 보고 나서 도봉산이나 삼각산만 못하다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사람이다. 연암처럼 남이 하는 말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생각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훈련을 많이 해야 할 거 같다. 학인들과 토론 할 때도 직접 체험하거나 책을 읽고 나서 생각을 해본 것 들은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생각의 지평이 좁아서인지 책을 읽어도 생각을 길어내기가 쉽지 않다.
춘추대의와 이용후생
조선의 사대부 중 북벌론자는 ‘중화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치라’는 춘추대의로 무장하고 청나라의 문물을 무조건 배척하고 배울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연암은 과거의 이념을 현재에 그대로 적용하지 말고, 진실로 백성을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오랑캐에게서 나온 것일지라도 이를 수용하고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유연한 태도는 공허한 관념에 갇히지 않고 학문이란 현재에 유용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에 두고 있어서이다. 연암이 청의 문물에서 가장 감명을 받은 것은 백성들이 기와 조각과 똥 덩어리와 같이 쓸모없는 것을 버리지 않고 재사용해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수레의 폭을 똑같게 만들어 물류가 골고루 이동할 수 있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발상의 전환에 감탄한다. 이렇듯 연암은 기존의 물질이나 제도를 편리하게 이용하여 백성의 삶을 도탑게 하는 이용후생의 관점에서 청나라의 문물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연암이 추구하는 삶의 행복은 이용후생으로 물질적인 풍요를 갖추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정신적인 풍요로움인 정덕(正德)까지 구현되어야 한다. 우리는 현재 물질적인 풍요 속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물질만을 쫓고 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불행한 사회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정신적인 풍요로움인 정덕을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유학자가 천주교 신자가 되다.
18세기 조선에 천주교가 퍼져나갔다. 독특한 점은 중국처럼 하층 계급이 평등사상에 경도되어 신자가 된 것이 아니라 근기 남인 유학자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는 점이었다. 그 이유를 이들의 학풍에서 찾는다. 근기 남인들은 전통주자학에서 벗어나 원시 유학인 육경 고문을 공부하고 하은주 삼대를 넘어 전설의 시대인 요순시대에서 그들의 정체성을 찾았다. 이 전설의 시대에는 천으로 추상화하기 이전의 의인화된 상제라는 개념이 있다. 이런 배경으로 근기 남인들은 ‘상제’ 개념과 천주교의 ‘신’ 개념을 유사하게 받아들여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이처럼 우리가 무엇을 받아들일 때는 비슷한 개념이 있어야 받아들인다고 한다. 연암은 생각의 지평이 넓어서일까? 다양한 계층의 사람뿐 아니라 자연이나 사물과도 진한 접속을 한다. 연암을 통해 공부란 남의 말에 의존하지 않고 책을 읽고 질문하고 자신만의 생각을 끌어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