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역사 2-11주차 (8/14) 공지
예상보다 순한 태풍에 모두가 안도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비가 그친 아침이 더욱 고요하네요. 주변 모두 무탈하시죠? 공지가 많이 늦어졌습니다. 마음의 태만이 생겨 몸도 생각도 정지해 버린 한 주여서 말이죠. 불안과 불편함으로 지내다, 세미나 하며 나눈 이야기들이 아까워 빨리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늘 동일한 공지 먼저 할께요. 《열하일기2》는 분량 때문에 태학유관록 부분을 나누었어요.
읽을 부분
《열하일기2》 : 막북행정론, 태학유관록 일부(~283p)
《18세기 왕의 귀환》 : 3부 2~3장 (212p ~ 257p)
후기는 현주!
소설 공통과제와 역사 정리본을 숙제방에 올려주시면 됩니다. 참고로 8/28일이 에세이 및 암송일이더라구요. 이렇게 바싹 다가왔네요.
중화주의를 넘어
이번 주에 읽은 <관내정사>에는 그 유명한 <호질>이 실려 있습니다. 지은이가 연암인지 다른 누구인지부터 설왕설래가 많은 작품인데요, 연암은 친구들을 배꼽 잡고 웃게 하려고 상점의 벽에 씌여진 것을 베껴 적었다고 말합니다. 북곽자기라는 선비의 위선적 행태를 호랑이가 꾸짖는 내용이지요. 저희는 ‘인성과 물성이 하나’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생태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나누어봤습니다. 호랑이의 입을 통해 인간의 행태와 인간 문명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인간과 비인간의 위계를 무화시킵니다. 또한 인간 자신을 보는 관점을 바꾸게 하지요. 첫 시간부터 이야기되던 ‘사이’가 이러한 관계의 확장이 아닌가라는 얘기가 있었구요.
연암은 인간과 비인간을 경계 짓지 않습니다. 채운샘께서는 이것을 정치적 문제와 연결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당시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 人物性同論과 人物性異論이 맞서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조선의 성리학은 주희가 말한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버리자는 '존천리거인욕(存天理去人欲)'의 논리가 중심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천리(天理)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공동의 규칙이고, 인욕은 개인의 이익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외부적)의 요인으로부터 평정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죠. 천리가 인간에게 있고 인간은 이를 잃지 않도록 잘 다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만의 천리를 실현하는 길이 있다고 보았다는 겁니다. 반대로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우주 자연의 본성을 동일하게 타고났다는 동론이 맞서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동론의 입장을 확대시켜 나가다 보면, 인간과 비인간, 인간 사이의 위계, 한족과 오랑캐라는 위계가 사라지게 되죠. 모두 하늘로부터 같은 천성을 부여받고 있으니까요. 중화사상을 놓고 북학파와 북벌론자가 대립하고 있던 당시의 정치 지평을 생각하면 한족과 오랑캐를 동렬에 세우게 되는 연암의 호질은 매우 도발적인 소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통치를 잘한다는 것
또 하나 정치에 관한 신선한 관점은 통치를 잘한다는 것에 대한 연암의 생각입니다. 임금이 성인에게 통치에 대해 물었들 때, 성인의 말로만 한 것이지 시행한 것은 아닙니다. 더러 시행되고 말로만 남은 것도 있죠. 그러다 후대 임금들이 성인보다 학문적으로 훌륭하지 않은 데도 성인의 말씀을 시행합니다. 이건 중화 민족만 그런 게 아니라, 중원에서 임금 된 자는 모두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임금은 자고로 백성들이 잘 살게 실제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게 연암의 주장이죠. 그래서 후대에 '무정하다' 악평을 받는 임금일지라도 그들이 시행한 제도와 통치의 영향을 후대에서는 모두 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쯤에서 샘은 ≪사기≫의 <여태후본기>를 예를 드셨는데요. 여태후가 고종이 죽은 후 왕위에 올라 고종의 측근들을 모두 숙청하는 잔인한 행보를 보였지만, “궁궐 밖 백성들은 잘 살았다”라고 평하는 대목입니다. 마지막 문장에 ‘찢었다’ 소리가 절로 나오지만 그보다 ‘권력 투쟁과 백성들의 좋은 삶’은 다른 지평에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중국이라는 국가는 이런 3천여 년 간의 모든 제도와 역량이 모여 이룩된 것이지, 특별히 명나라가, 한족이 만든 것은 아닙니다. 명이랄 것도, 청이랄 것도 없는 역사의 흐름 만이 있지 '중화'라는 실체는 없는 것이라는 게 연암의 주장입니다.
우리가 현재 우리의 역사를 평가할 때도 많이 빠지는 함정입니다. '산업 발전'과 '민주화'를 지극히 나누어 입장으로 삼기도 하구요. 일명 '국뽕'의 한계는 한 면의 역사를 단편적으로 부풀리게 됩니다. 역사는 혼종이고, 우리는 그것들을 빠짐없이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역사에 대한 연암의 유연한 관점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우리도 역사서를 읽고 있지만 선입견이 먼저 작동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데요, 연암의 유연한 관점에 스스로의 읽기를 돌아보게 되네요.
오늘은 동시대 가장 유명한 화가였던 김홍도의 산수화를 보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풍속화가로 더 알려진 김홍도지만 당시엔 산수화로 더 유명했다고 하지요. 김홍도의 병진년 화첩에 있는 "사인암도"와 "경포대" 입니다. 세밀함에 놀라게 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