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역사 2-3주차(6.12) 공지
이번 주에도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1>과 <혁명의 시대> 3-4장을 읽었습니다. 여전히 자연과 예술과 민중을 관찰하는 괴테의 세밀한 시선과 담아두고 싶은 아름다운 문장들에 매료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요즘 여행을 테마로 하는 프로그램도 많이 생기고, 유명한 여행 유투버들도 많더라구요. 엔데믹과 함께 여행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의 요구를 딱 맞춘 것이 비결이겠죠.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장소를 소개하고, 최적의 요소들로 그 장소를 즐기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같아요. 저희도 토론 중에 여행 유투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어떤 유투버는 하루에 딱 한 곳을 들르고 나머지 시간엔 숙소에서 쉬는 걸 컨텐츠로 한다고 해서 저희 사이에서도 여행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하지만 ‘여행의 목적이 일상의 무료함 또는 스트레스로 인해 떠나는 것’이어서 체험과 힐링을 넘어서지 않았다는 것에는 동감했던 것 같아요.
괴테의 여행은 무엇이 달랐을까요? 홀로 떠난 괴테의 고독한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 여행은 괴테가 능동적으로 고독을 선택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문관 자리가 괴테에게 명예와 권력을 줄 수 있었겠지만 자신은 점점 고립되어간다고 느끼지 않았을까요? 예술에서 감수성에서 탐구에서 말이죠. 자신이 발 딛고 있어야 할 장소를 상실하고 있다고 느꼈을 것 같아요. 공간이 자신과 의미 있게 관계 맺어질 때 물리적 공간은 장소가 될 텐데, 바이마르에서 괴테는 관계맺고 있는 세계와 자신이 분리되면서 엄청난 고독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그의 여행은 자신과 공간의 새로운 관계 맺기의 시도이자 새로운 고독의 시간 속으로 스스로 진입한 것이죠. 고독한 자는 자신을 정확히 알게 되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습관이 있는지, 어떤 것에 반응하는지 말입니다. 자신을 잘 알고 자신을 사랑하는 자가 사랑받고 타자도 사랑할 수 있을 테니까요. 괴테가 말하는 ‘본연의 나’는 이 고독 속에서 발견될 수 있겠지요.
이제 그의 글을 따라가며, 그가 고독 속에서 건지는 것들을 함께 찾아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그의 일상이 내지는 고독이 어떻게 글이 되는지, 그래서 우리도 끝내 스스로의 여행을 기획하는 데 이르러야죠.
혁명은 언제까지인가?
이번 강의에서 채운샘께서 너무나 놀라운 질문을 던지셨어요. “혁명은 언제까지인가?” 저에게 혁명은 혁명까지의 지난한 과정도 문제였지만, 사람들과 혁명 이후를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었어요. 온갖 무절제와 분노가 혁명 이후를 보장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죠. 혁명은 언제까지인가?라는 질문은 혁명에 대해 제가 원초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불안을 건드린 것 같았어요. 이제껏 혁명으로 명명된 몇 번의 혁명이 있었죠. 소비에트 혁명, 이슬람 혁명, 쿠바 혁명, 홉스봄이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프랑스 혁명, 파리 코뮌 등등. 그러나 혁명 이후의 공통점은 엄청난 피의 숙청의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스탈린도 호메이니도 자코뱅도 그러했죠. 나와 다른 세력들을 절멸시키는 방식으로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옹호한다면 혁명이란 얼마나 폭력적인 것인가라고 푸코도 문제제기를 했다고 하지요. 혁명 이후의 폭력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왜 혁명을 했는가? 누구를 위한 혁명인가? 혁명이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 질문이 줄을 서게 만들죠. 그리고 이 폭력의 문제는 나중에 조건이 바뀌면 반동으로 같은 과정을 반복하게 만들죠.
프랑스 혁명은 이 과정을 특히 잘 보여줍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 혁명은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국가의 감옥인 바스티유 함락을 시작으로 혁명을 이끈 루이 16세가 처형되고 로베스피에르도 동일하게 처형되고 나폴레옹이 옹립되기까지 숨가픈 10년을 말합니다. 이후 나폴레옹도 몰락하죠. 14개월의 공포정치 기간에만 공식적으로 1만 7천명이 처형되었다고 하니 혁명 전 기간을 치면 얼마나 많은 처형이 이루어졌지. 이렇게 혁명이 끝났다고 하면 종결되는 것일까요. 공포정치에 대한 다른 해석들도 있지만, 가령 혁명을 위한 총력전이었다든가, 공포정치를 선택하느냐 아니면 혁명의 파괴, 국민국가의 해체, 그리고 나라의 소멸을 택하느냐 하는 양자택일이었다 등, 그러나 혁명 다음이 끝없는 복수라면 누구와 함께 살기를 고민하는 걸까요?
또 혁명의 쟁점은 누가 주체가 되어 누구와 함께 한 혁명인가, 하는 것이죠. 프랑스 혁명의 주체는 제 3신분 (빈민층, 수공업자, 소매상인, 직인, 소기업주)입니다. 성직자,(제1) 귀족(제2신분)과는 질적으로 다른 신분이죠. 상퀼로트로 자신을 드러냈던 이들은 자연재해와 미국 독립전쟁 지원 등으로 프랑스 재정은 급속히 악화된 상황에서 귀족 계급이 관직 쟁탈전에서 성공하고. 삼부회 결과를 뒤집으려고 하자 공분합니다. 그간 억눌려왔던 사회의 여러 문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고, 계몽주의 사상으로 무장한 지식인들이 결합했습니다. 결국 부르주아들이 봉건체제를 폐지하고 국민의회를 구성해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공표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혁명의 파급력이 어마어마해 입헌군주제가 대부분이었던 유럽국가들이 체제 붕괴에 대한 두려움으로 프랑스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이 전쟁을 막기 위해 프랑스에선 시민군이 결성되고 주변국과 전쟁을 펼칩니다. 민중들이 폭도가 되게 만드는 것은 최고의 바보라고 샘은 말씀하셨는데, 고단한 모든 것이 민중들의 몫이 되어버리는 상황에서 폭도가 되지 않는 게 이상하겠죠.
홉스봄이 이중혁명이라고 말한 것이 경제적으로 영국의 산업혁명이 있었다면, 정치적으로는 프랑스 혁명이 삶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옹에 의해 혁명 종식이 선언되었지만 나폴레옹의 유럽 정벌로 오히려 혁명의 불은 지펴졌고, 유럽의 왕정이 차례로 무너지게 됩니다. 헌법을 제정하면서 프랑스의 법률 선언들을 참조했다고 하니 정치의 지형이 프랑스 혁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혁명의 여진이 21세기에 EU를 결성하는 것으로 이어진거겠죠. 혁명이 바다를 넘진 못해 영국은 민중에 의한 혁명이 없었죠. 영국의 브렉시트가 그들의 우월주의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사적 맥락 안에 있었습니다. 홉스봄의 역사가 내용도 많고 맥락을 이해하며 읽어야 해서 절대시간이 좀 많이 듭니다. 그래도 연표와 함께 정리하여 두고두고 글쓰기 재료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 3주차 (6/11) 공지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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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책
《이탈리아 기행1》 : 1권 끝
《혁명의 시대》 : 5~7장
* 과제
- 문학 : 나누고 싶은 문장을 뽑고 생각을 담아 숙제방에 올립니다.
- 역사 : 연표 정리하여 숙제방에 올립니다
* 2주차 후기 : 경희샘
월요일 줌에서 만나요~~
그렇네요. 혁명도 명명된 것이지요.
14개월 동안 1만 7천여 명을 죽이는 폭력성, 어떻게 단두대에 그 많은 사람을 올려서 죽일 수 있었던 걸까요? 단두대에 올라간 하나하나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계속 죽이는 행위를 할 수 있었다는 건데... 건화샘이 청지에서 '종과 종이 만날 때'를 통해 소개한 '죽어도 되는 것 '이 있다는 감각을 떠올리게 됩니다. 죽어도 되는 것이 있다는 감각 속에서 세상은 새로울 것도 특별할 것도 없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