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역사』 2학기 / 3번째 수업 후기 / 06.18. 이은옥
요즘 들어 TV에서나 유튜브에서나 여행 프로 인기가 많다. 나 또한 작년부터 알게 된 여행 유튜브 프로그램을 3개씩이나 업로드될 때마다 빠짐없이 챙겨 보고 있다. 일 년 넘게 시청하다보니 이들의 여행 일상이 자연스럽게 파악 되었다. 그러면서 점점 그들의 여행이 우리의 일상과 다른 것 같지 않게 느껴졌다. 이들은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한 삶을 포기하고 여행하는 삶을 살겠다는 것인데 도대체 여행을 가서 현지인과 관계를 맺는 것도 아니고 도시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도 없고 그저 음식 먹는 것에만 집중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외국으로 여행을 가지? 서울과 지방에 돌아다니면서 찍어도 될 것 같은데. 이들은 외국 여행에서 얻게 된 것이 뭘까? 외국 여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의미가 전부인가? 여행 유튜버들이 콘텐츠가 부족하구나~라고만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들 때쯤에, 때마침 괴테의 여행기를 읽게 되었다. 일단 그의 여행기에서는 음식에 대한 찬사는 없다. 오만 것들은 관찰도 잘하고 찬사를 보내면서... 괴테에게 식상이 없어서 그런가(역시 범상치 않은 지성인!!^^) 요즘 여행 스타일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괴테의 여행기를 3주간 읽어가면서 그들이(유튜버) 부딪친 여행의 한계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여행을 떠나면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고 자신을 깨닫기’를 목적해 보았을 것 같다. 괴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본연의 나 자신을 깨닫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우리(글역) 팀은 3주에 걸치면서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매번 빠지지 않고 괴테의 ‘본연의 나’를 발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했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괴테의 여행 도시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주 로마 편에서는 예술과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 ‘본연의 나’를 찾아보았다면 이번 주 나폴리와 시칠리아 여행에서는 자연의 거대함, 신묘함 그 앞에서 하나의 존재로서 ‘본연의 나’를 깨닫는 것이 뭔지 찾아보았다. 이를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괴테에게 ‘본연의 나’란 자연의 거대함을 온몸으로 감각하면서 전체 속에서 ‘나’라는 개체가 이루어져 있음이라 말할 수 있다. 채운 선생님의 말씀을 보태자면 “자연에서 만물이 서로가 연결되어 자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인데 이는 삶의 제약성 안에 살고 있는 게 인간이며 내 삶이 어떠한 조건 속에서 제한되는가를 읽어 내는 것이다. 이럴 때 인간은 겸손하게 되고 배우려는 자세를 지니게 된다. 그렇기에 본연의 나를 찾고자 하는 괴테의 여행 목적은 삶의 통찰과도 맞닿아 있다”. 배움의 자세에 (삶의) 겸손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새삼 잘 다가왔다.
그러나 아무리 겸손함이 있더라도 ‘관찰’이 약하면 배움의 깊이도 얇아질 것 같은데. 배움의 자세에서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관찰’, 이것을 어떻게 하는 걸까? 가만히 오랫동안 본다고 되는 것은 아닌데... 아니나 다를까 괴테는 참으로 뭐든지 잘 관찰한다. 괴테는 관찰과 관념에 대해서 ‘이곳에 와서 별로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된 것도 없고 아주 낯선 것을 발견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낡은 관찰, 관념도 여기서는 매우 명확하고 연관성 있게 되어서 새로운 것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212쪽)라고 말했다. 그에게 관찰이란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찾아내는 것인데 이게 새로워서 찾아낸 것이 아니라 연관성이 찾아지면서 새로운 것으로 바뀌다고 풀이된다. 여기에서 관찰의 핵심은 ‘연관성’을 찾아내는 것 같다. 연관성이라는 전제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 이상이어야 한다. 즉 하나의 관점만이 ‘나’ 안에서 머무르면 관찰될 수가 없다. 이를 위해선 내 안에 다양한 관점들이 필요하다. 다양한 관점들이란 내가 타자들에게 던져질 때 타자가 내 안에 들어오면서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자연과 내가 연결되어 있음 즉 ‘연관성’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괴테가 말하는 관찰을 위해선 무엇보다 익숙한 것과 헤어져야 한다. 낯설게 봐야 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그는 관찰을 통해 시공간을 확장하게 된다. 괴테는 시칠리아로 가는 배 안에서 ‘새로운 사상’이 찾아왔다고 말하는데 앞서 이야기한 자신과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자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다.
이번처럼 안정된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한 적은 없었다. 여태껏 나는 쉴 새없는 역풍 때문에 많이 지연된 이 향해에서처럼-심한 뱃멀미로 처음 얼마 동안은 좁은 선실 침대에 누워 있지 않으면 안 됐던 때 조차-안정된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이제 나는 마음 편안히 여러분을 머리에 떠올리고 있다. 무언가 나에게 결정적인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여행 때문이다. 자신의 몸 주변을 바다로 둘러싸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세계라는 개념도, 세계와 자신의 관계도 이해할 수 없다. 이 위대하고도 단순한 선은 풍경화가로서의 나에게 전혀 새로운 사상을 부여해 주었다.(373쪽)
다시 여행 유튜버들에게 돌아와 생각해 보자면 내가 그들의 여행에서 느꼈던 지루함의 원인은 그들은 여행하면서도 고정된 자신들의 것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음이었던 것 같다. 여행이란 낯선 것과의 만남이 당연한데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낯선 여행에서 친숙함을 찾아내는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괴테의 사주에 식상이 없어서 먹방이 어려웠을 거란 이 말에 솔깃해지는 나는 뭔지 ㅎㅎ. '자신의 몸 주변을 바다로 둘러싸 본 경험', '이 위대하고도 단순한 선'을 경험할 수 있는 상태에 내던져질만큼 살지 못하는 1인입니다. 은옥샘이 말미에 인용한 부분을 읽으면서 바다에 몸을 내맡길 수 없을 뿐더러, 그것에서 안정된 마음을 취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했는데요. 공부를 하는 까닭이 이런 신체를 얻고자 함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