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역사 1-9주차(4/17) 공지
읽기의 중요성
우리는 언제 과거가 떠오르는가? 채운샘이 강의 중 툭 던진 질문에 전 오히려 편안해지는 느낌이었어요. 당시 루쉰의 상황이란, 살던 집을 떠나 한 자리에서 머물러 있을 수 없었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고, 언제 붙잡힐지 모르는 절박한 삶의 순간을 지나고 있었죠. 그 순간에 쓰고 있는 글이라고 생각하니 더 의미를 찾으며 읽게 되더라고요.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열 번은 돌려 읽었던 거 같아요. 몇 년 만에 다시 펼친 루쉰에서 뭘 발견해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거든요. 문제는 여러 번 읽는 것이 이러저러 다른 관점으로 보는 게 아니라, 내가 짐작하고 있는 것을 더 강화하는 방식으로 읽었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나로 돌아와 가볍게 던져보는 질문이 오히려 꽉 막혀 있던 읽기에 길을 내준 것 같았거든요. 너무 의미를 찾으며 하지 말고 가볍게 어떤 얘기를 하고 있는지 찾아보라는 말씀이었어요. 의미를 찾으려 하기 때문에 오히려 어려워지는 것이라고요. 그래서 글을 읽으면서는 위와 같은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우리를 다른 곳으로 데려다 줄 거 같았어요. 어떤 일을 당해 답답할 때,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자신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듯이 말이죠.
저희는 루쉰의 어린 시절 기억이 오롯한 <조화석습>을 읽고 있습니다. 물기 머금은 과거의 꽃을 오늘에 ‘줍고’ 있는 루쉰의 마음을 사실 알 길이 없습니다. 가볍게 읽으라 하셨지만 루쉰의 상황이 호락호락 하지 않은 건 사실이지요. 샘도 루쉰의 과거 회상이 죽음을 강하게 느끼고 있던 ‘루쉰의 주마등’처럼 느껴진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게요. 절박한 순간엔 그 순간을 넘기기 위해 애써 과거에 기대보게 되는 거 같습니다. 너무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는데, 가슴이 저린, 반대로 너무 슬픈 이야기를 했는데 깔깔대고 웃을 수 있게 되는 게 시간의 힘인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 루쉰은 글을 썼다는 것이죠. 왜 한가롭게 글을 쓰고 있냐는 질문에, 글을 쓰지 않으면 뭘 하냐고 했다지요. 우리는 어려운 상황일수록 가장 못하는 게 글쓰기라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글쓰기만 아니면 다른 세미나 다 할 수 있다고도 말하죠. 그러나 샘은 글을 쓰려고 고심하는 만큼 경험을 자기화하는 것에 깊이가 생긴다고 조언하셨어요. 시대는 달라도 나의 삶과 루쉰의 삶이 어디서 만날 수 있는지를 계속 고민해 보라고요. 가벼운 톤으로 읽을 때, 가볍게 자신을 열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희 모두 이번 주 4편의 글이 어려웠던 것 같아요. 해서 산문의 설명을 샘께 부탁드렸죠. 예교를 따지는 것의 허울(오창묘 제놀이), 참다운 벗은 인정이 있는 사람(무상), 무지에 대한 후회 (아버지의 병환) 등으로 정말 쉽고 경쾌하게 짚어주셨어요. 근데 샘의 독법(讀法) 중에 저에게 독특한 지점은 산문에 언급된 책들이 루쉰이 읽은 책이고, 좋아했던 책이라는 거였어요. 「오창묘제놀이」에 나오는 <수호전> <요재지이> <감략> <천자문> <백가성>, 「무상」에 나오는 <옥력초전>, 「백초원과 삼미서옥」의 <비적소탕록><서유기> 등이 그 책들이죠. 루쉰이 전통이나 과거에 대해 그리움과 비판적 시선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전 이런 책들도 모조리 부정적으로 읽었거든요. 지난주 <산해경>처럼 극찬하는 책이 아니었으니까요. 읽기의 중요성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주엔 자신이 루쉰을 만난 바를 잘 적어오면 좋을 거 같습니다.
오랜만에 루쉰 아름다운 산문을 나누어 볼까 합니다. 「백초원과 삼미서옥」의 한 대목인데요. 루쉰이 ‘나의 낙원’ 이라고 말하던 백초원에 대한 묘사입니다. 루쉰의 글이 맞나 싶었어요. 긴장된 상태로 책을 읽던 저에게도 낙원을 선사한 대목입니다.
새파란 남새밭이며 반들반들해진 돌로 만들어진 우물, 키 큰 쥐엄나무, 자주빛 오디, 게다가 나뭇잎에 앉아서 긴 곡조로 울어대는 매미, 채소꽃 위에 앉아 있는 통통 누런 벌, 풀숲에서 구름 사이로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날랜 종다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정원 주변에 둘러친 나지막한 토담 근처만 해도 끝없는 정취를 자아낸다. 방울벌레들이 은은히 노래 부르고 귀뚜라미들이 거문고를 타고 있다. 부서진 벽돌을 들추면 가끔 지네들을 만나게 된다. 때로는 가뢰도 있는데, 손가락으로 잔등을 누르면 뽕하고 방귀를 뀌면서 뒷구멍으로 연기를 폴싹 내품는다. 하수오 덩굴과 목련 가지들이 뒤섞여 있는데 목련에는 연밥송이 같은 열매가 달려 있고 하수오 덩굴에는 울룩불룩 뿌리가 달려 있다. 어떤 사람의 말에 의하면 하수오 뿌리는 사람 모양으로 생겼는데 그것을 먹으면 신선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늘 그 뿌리를 캐곤 했다. 그것이 끊어지지 않게 뻗은 대로 파 들어가다가 한번은 한 번은 담장까지 무너뜨린 일이 있었으나 사람 모양 같이 생긴 것은 끝내 캐내지 못했다. 만약 가시만 겁내지 않는다면 복분자딸기도 딸 수 있었는데 아주 작은 산호구슬들을 뭉쳐 만든 조그마한 공 같은 그 열매는 새콤하고 달콤하며 색깔이나 맛이 모두 오디보다 훨씬 나았다. (루쉰 전집3, p173~174)
*** 9주차 (4/10) 공지 합니다 ***
* 읽을 책 : 《조화석습》 : <사소한 기록> ~ 끝
《현대중국울 찾아서1》 : 7~9장 (175p ~ 261p)
* 과제 : 나누고 싶은 문장을 뽑고 생각을 담아 숙제방에 올립니다.
일요일 10시까지 올려주시고, 다른 샘들의 글도 읽고 참여해 주세요.
* 역사 : 노트에 꼼꼼히 정리하며 읽어봅시다.
* 8주차 후기 : 호진샘
다음 주에 건강하게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