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역사 10주차(4/24) 공지
이번 주엔 루쉰의 아름다운 글 3편을 읽었어요. 루쉰의 공부여정을 볼 수 있는 사소한 이야기, 루쉰의 마음 속 가장 위대한 스승 후지노 선생에 대한 추억, 도쿄에서 함께 유학하고 돌아와 뜻을 모아 시대를 건널 지혜를 내어보고자 했던 친구 판아이능 이야기입니다. 루쉰이 자신의 과거를 더듬는 이야기 속에서 어떻게 삶의 길을 만들어갔는지 엿볼 수 있었어요. 담담하기에 더 힘이 있는 그의 글쓰기에 모두 홀딱 반한 시간이기도 했구요. 루쉰이라는 거대한 산 앞에 선 소인의 어려움 때문이었을까요? 자신을 조금도 내려놓기 어려운 우리는, 변덕스런 봄 날씨와 전날의 일진(甲辰일이 무슨 죄가 있다고)을 탓하며 글쓰기의 고뇌 아닌 고뇌를 토로하기도 했지요. 끙...ㅋ 그래도 모두 글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 ‘사소한’ 훈련과 고민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란 걸 마크트웨인과 루쉰의 글을 통해 배워가고 있답니다.
그리고 이번 시간엔 스페셜한 시진들이 대거 방출 되었는데요. <루쉰, 길 없는 대지> 책을 준비할 때, 루쉰의 일본 유학 시절 흔적을 찾아 나섰던 채운샘의 젊은 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죠. 2017년 이라고 하는데 너무 앳되 보이는 소녀가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샘께 염색을 좀 권해보고 싶더라고요. 스냅 사진을 올릴까 말까 엄청 고민하다가 연구실 젊은 손을 빌려 올려 봅니다.
자기변화는 타자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루쉰, 후지노 선생, 판아이능을 잇는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나 아닌 타자에 대해 고민하고, 자기 주변 사람에 대한 애정을 놓치지 않은 사람들이 아닐까 합니다. 중국에서 일본으로 공부하러 온 루쉰에게 일본어와 독일어가 난무하는 의학 공부가 어렵진 않은지 살피던 후지노 선생, 루쉰의 노트 필기를 보고 건너 뛴 부분과 오류를 빨간펜으로 체크해 돌려주던 선생님을 루쉰은 잊지 못합니다. 그의 사진을 책상 맞은편에 붙여놓고 게으름을 피우고 싶을 때마다 등불 삼아 글을 써내려가게 하는 존재였죠.
판아이능은 세상에 깨어있는 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루쉰은 수영에 능했던 판아이능의 죽음에 대해 혹 자살이 아닐까 의문을 가집니다. 그의 죽음은 혁명을 기다리는 자의 최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씁쓸했지요. 누가 판아이능의 죽음을 알아줄까요? 채운샘은 판아이능의 고독을 이해할 수 있냐고 질문을 하셨죠. 술 한 잔 취기에 그를 뱃전에 서게 했던 그 고독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적과 동지의 구분이 무화되어 버린 시대, 누구와 무엇도 함께 할 수 없을 때, 말 나눌 상대가 없을 때, 갈 수 있는 길은 죽음 밖에 없다는 걸 판아이능이 보여줍니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내 옆에 있는 한 사람과 할 일이라는 사실이 오늘 하루의 삶을 다시 자각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루쉰은 친구를 추모하며 “여름날이 겨울밤처럼 스산”하다는 추모시를 남기기도 했지요.
루쉰이 말하는 적막도 이 고독이죠. 낯선 이들 속에서 소리쳤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 황야에 놓여 있는 것 같은 적막이 몰려온다고 하죠. 하지만 루쉰은 여기서 발을 내딛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적막을 느낄 때 창작을 하는 것’이라고 말이죠. 마음속이 깨끗할 때 창작은 탄생하지 않는다고도 했지요. 루쉰에게 적막은 타인 속으로 적극적으로 들어가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완쾌를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사람 속으로 들어감을 치유로 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채운샘은 이를 ‘보살심’이라고 하셨는데요. 고통 받는 존재가 나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 나도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마음이죠. 제자의 죽음에, 정인군자의 허위와 모순이 나와 상관 있다는 생각으로, 누구의 죽음을 참지 못해서 쓰고, 더 이상 허위가 애꿎은 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않게 하기 위해 씁니다. 나의 지식, 나의 의지가 글을 쓰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게 우리가 생각해야 할 지점 같습니다. 우리를 변화하게 만드는 것이 타자라는 사실이죠.
토론하면서, 자신이 문제를 대면하지 않고 늘 구경꾼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는 고민도 있었구요, 왜 우리의 경험은 루쉰과 같은 변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어려울까, 라는 질문도 있었죠. 같은 문제의식으로 느껴지는데요. 타자를 우리 안에 데려오는 만큼 자신이 변할 수 있다는 걸 도처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즘 기후정의 집회도 있었고, 우리 연구실과 이웃해 있는 전장연이 주최하는 행사도 있었고요, 청년들이 준비하는 청지강의에서도 이 문제를 계속 담론화하고 있지요. 이런 것들을 통해 우선 워밍업해보는 것으로 자기 확장의 작은 변화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풍요 뒤의 몰락
아직 청나라의 역사는 루쉰 시대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이번에 저희가 읽었던 부분은 청나라를 번영으로 이끈 세 황제의 시대가 지나고 내외적으로 혼란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중국역사에서 암기할 게 제일 많은 부분으로 기억되는 그때로 접어들었어요. 청나라를 둘러싼 정치 문화는 세계사의 흐름과 떼어 놓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식민지 개척으로 더 없는 풍요를 누리고 있는 유럽, 특히 영국과 프랑스와의 교역은 청나라의 역사를 바꾸어 놓게 되지요. 유럽엔 당시 동양풍의 사조가 대유행을 하고 있었다고 하죠. ‘벨 에포크’(좋은 시대) 라고 미술시간에나 들어 본 그런 시대인데요, 벨 에포크(1870~1914)는 저에겐 흥청망청의 느낌이 너무 강하긴 한데, 팽창, 번영 발전 화려함 이런 걸로 표현이 될까요? 아름다운 예술이 절정을 이루던 시기이죠. 우리가 알고 있는 화가들 마네 모네 고갱, 고흐, 르느와르 등 마르셀 프루스트, 드뷔시 등 예술가의 전성시대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이 시기는 프랑스에선 1789년 프랑스 혁명과 1871년 파리코뮌까지의 80년의 시민혁명이 마무리되고 재건이 이루어지는 시대였죠. 파리에선 만국박람회가 열리고, 에펠탑이 올라가고 계획도시들이 건설되는 등 모두 풍요와 번영의 상징들입니다.
미국은 어떨까요? 하워드진의 글에서도 보았듯이 1775년부터 8년에 걸친 독립전쟁 이후 80년 뒤, 1861년부터 4년 정도 남북 전쟁을 치르며 미국은 제국으로 성장해가고 있었지요. 청나라 사람들이 대거 금을 찾아, 꿈을 찾아 미국으로 건너가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구요. 또 인근 국가들도 보면, 서양의 문화를 적극 수용하여 메이지시대로 접어든 일본도 팽창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인근 러시아도 표트르대제가 세운 로마노프 제국이 번성하고 있었죠. 나폴레옹의 침략까지 막아내며 건재함을 과시하는 그야말로 대단한 격정의 시기입니다.
청나라는 이들을 상대하기에는 지나치게 폐쇄적이었고 순진했죠. 이들과의 관계에서 청나라는 갖가지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1차 아편전쟁으로 맺은 난징조약입니다. 홍콩을 영국에 넘겨준 뼈아픈 조약이죠. 이 외에도 외국에 광범위한 특권을 허락하는 불평등 조약인 톈진 조약도 이후 불평등 조약의 기준이 되고, 미국과 맺은 왕샤 조약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나라를 망하게 하는 적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는 법이죠. 청나라도 황금시대 지나며 도시도 발달하고 인구도 늘어나는 등 제국의 면모를 갖추게 되지만, 건륭제 말기부터 소수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혼란의 시기를 틈타 평등을 주무기로 하는 종교를 중심으로 난이 일어나는데, 태평천국의 난과 이슬람교도의 난이 그것이죠. 특히 훙슈취안을 중심으로 일어난 태평천국의 난은 황제 체제의 핵심 가치를 뒤흔드는 근본주의적 기독교와 평등주의 원칙에 근거해 왕조 전복시킬만한 잠재력을 지닌 반란이었지요. 또 떠돌이 도적떼들이 일으킨 염군의 난
은 정치적 사상이나 전략적 목표도 없고 단일한 지도자도 없이 일어나 위세를 떨친 난입니다. 하천이 범람하는 자연재해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던 사람들이 대다수로 가난한 농민이거나 떠돌이들이 일으킨 난이니 정말 살기 어려웠던 거죠. 또 이슬람교도의 반란은 과중한 토지세와 부과세에 반발해 일어난 난입니다. 이들이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했던 것이겠죠. 채운샘은 동일한 시대를 관점을 달리해 보는 훈련을 해야 다른 것들이 보이고 연결성이 생긴다고 하셨어요.
저자인 스펜스는 ‘중흥’이라는 말에 주목합니다. 대내외적인 악재로 곧 멸망할 것이라 전망한 청이 20세기까지 존속한 것을 중흥이라 묘사한 거죠. 이 말은 이전의 왕조들이 위기상황을 모면하고, 도덕과 질서를 회복한 경우에 쓰던 말이랍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중흥된 왕조들은 모두 멸망했다는 거죠. 벨 에포크 뒤를 잇는 것은 전쟁입니다. 1차 대전과 홀로코스트가 풍요 뒤의 유럽을 휩쓸지요, 그리고 중흥된 청나라는 열강의 식민지가 됩니다. 풍요 이후에는 왜 잔혹한 시대가 도래 할까요?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 걸까요?
*** 10주차 (4/24) 공지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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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책 : 《고사신편》
<하늘을 땜질한 이야기> : 지원샘, 재순샘
<달나라로 도망친 이야기> : 호진샘, 경희샘
<홍수를 막은 이야기> : 현주샘, 은옥샘, 정옥
《현대중국울 찾아서1》 : 10~11장 (262p ~ 318p)
* 과제 :
나누고 싶은 문장을 뽑고 생각을 담아 숙제방에 올립니다.
일요일 10시까지 올려주시고, 다른 샘들의 글도 읽고 참여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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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노트에 꼼꼼히 정리하며 읽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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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주차 후기 : 은옥샘
다음주에도~~루쉰과 함께~~~!
오호, 루쉰 동상 앞에서 살포시 미소를 앳된 채운샘을 글쓰기와 역사 수업을 듣는 우리만 보는 것이 아쉬웠는데... 이 사진 속 채운샘을 보고있자니 샘이 좋아하시는 조용필의 단발머리 '그 소녀'(?)가 떠오르네요.
지난 학기 크크랩에서 종교화를 글감으로 에세이를 썼는데요. 루쉰의 적막과 고독이 예수님의 그것과 닿아있는 것 같아요. 죽음을 앞두고 기도를 드리러 가던 예수님이 깨어기도하라고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죠. 하지만 제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처자'는데요. 제자들마저, 아니 제자들이 예수님의 고독과 적막을 더했겠지요. 자신의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가 닿지 않는, 혹은 가닿을 수 없는, 가닿을 수 없게 만드는 상황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루쉰의 고독과 적막은 무엇이었을까요? 채운샘이 다른 수업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길없는 대지에 길을 내며 걷는 이의 고독이었을까요? 아니면 자신의 믿음이라는 외길을 걸어가는 삶을 살려던 이의 분투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