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서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훌륭한 문장이란 병든 자를 일어서게 할 수가 있으니,
이는 천하의 양약이란 목구멍에서 넘어가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는 것임을 증명한다.
병든 몸이 문장을 읽고 일어섰으니, 천하의 진약이야말로 생긴 형상을 보고 구해선 안 되며 오직 정신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권5 독사(讀史) 맨 앞에 역자 혹은 편집자가 픽한 문장입니다. 이 문장은 조조의 인재 사랑(曹公二首)의 글에서 또 하나의 일화(又)에 나오는 문장입니다.조조를 치기 위해 원소의 가신이었던 진림이 작성한 격문을 보고 조조가 자신의 병을 낫게 하고 병을 고쳤다고 한 말에 대한 이탁오의 생각입니다. 이것은 천하의 좋은 문장이 아무리 많더라도 그것을 읽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어떤 책이나, 문장, 글 혹은 누군가의 말일 수도 있는 것들을 만났을때 누군가는 그냥 흘려보낼 수 있고, 어떤이는 고민하고 자신의 문제와 연결지어 생각을 밀고 나가기도 할 것입니다. 흘려보낸다는 것은 나의 문제나 내가 의식하고 있는 것과의 마주침이 일어나지 않은 것일테니 그냥 흘려 보내면 됩니다. 어쩌면 흘려보낸다는 사실을 모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많은 문장과 글을 만나고 말도 들을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따지고 들라치면 오우~ 상상하기도 버겁네요ㅋㅋ. 중요한 건 마음에 혹은 정신에 와 닿는 문장이나 글을 만났을 때 입니다. 어! 좋네~ 좋은 말이야.. 으.. 이건 아닌거 같은데라며 끝내고 스윽 뭉개고 넘어갈때가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뭐가 좋은지 그것이 나에게만 좋은 것인지, 지금 어떤 상황에서 좋은 것인지, 이전에도 좋았는지, 전에 비슷한 문장을 봤을 때, 혹은 말을 들었을때와 상황과는 뭐가 다른지 등등 함께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아니라고 여겨지는 문장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렇게 하다보면 내 병이 하나씩 나아지기도 하고 또 다른 병들이 생겨나기도 하겠지요? 그런데 이것을 혼자 할라치면 엄두가 안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매주 자신의 글을 가지고 모여 생각을 나누는 과정을 어렵지만 하고 있는 것일테지요. 이번주 독사부분이 읽기가 어려워서(배경 지식의 부족으로) 혹은 에세이는 남았지만 공통과제가 끝났다는 기쁨의 표현인지 주저리 주저리 서두가 길었네요. 이제 본격적으로 분서 마지막 토론 시간에 대한 후기를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토론은 당귀매전으로 시작했습니다. 양승암 선생이 쓴 효열부 당귀매전을 읽고 이탁오가 평하는 내용입니다.
귀매라는 여인이 시집을 갔는데 성깔도 사납고 음탕한 시어머니가 부자 장사치와 사통한 뒤 그 장사치가 며느리를 마음에 들어하자 뇌물을 받고 며느리에게 몸을 팔라고 하지만 며느리는 끝까지 말을 듣지 않지요. 그러자 시어머니는 불효하다는 죄목으로 며느리를 관가에 고발하고 판결을 할 수 있는 모옥이라는 자는 뇌물을 받고 형벌을 이중으로 가합니다. 죽을 지경에 이르는데도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일을 발설하지 않습니다. 장사치가 여전히 흠모했기에 시어머니를 교사하여 며느리는 풀려나게 됩니다. 집으로 돌아온 며느리는 왜 사실을 말하지 않았느냐는 친척들의 말에 그렇게 해서 내 명예를 보전하고 우리 시어머님을 더럽히란 말이냐며 자살을 하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들은 시어머니는 통곡을 합니다. 통곡을 하는 이유는 며느리가 죽어서 상인이 뇌물 준 것을 되찾아 갈 것이니 두려워서 입니다. 시체는 사흘 동안이나 나무에 걸려 있었는데도 안색이 마치 살아 있는 사람 같았고, 그 사건의 담당자는 부정한 청탁을 받은 관리 모옥이 연루되어 있어 그녀의 절개를 거론하지 못했습니다. 이 글을 쓴 양승암의 장인은 이 이야기를 듣고 조문하더니 전기를 지어 후세에 그 사적을 전하라고 당부하고 그 고을의 행정 책임자가 직분을 다하지 못한 것이 슬프고도 안타깝다고 전기를 지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탁오는 선왕의 교화가 평소 글공부를 하지 않는 아녀자에게는 시행되고 글공부해서 백성들의 윗자리를 차지한 군자들에게는 시행되지 않음을 말합니다. 며느리가 자백하지 않았던 것은 시어머니에 대한 효 때문이었고 (시어머니만 아니었다면 그 장사치를 고발했다는 취지) 관청은 이런 원통한 죽음을 밝힐 때 형세와 힘을 따진 후 밝히려고 하는데 양태사(이 글을 쓴 사람)는 당대 제일의 명사였으니 그에 힘입어 후 세까지 알려질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그녀도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모옥이라는 관리는 자손이 없다면 그만이지만 아들이 있고 손자가 있다면 필시 그들이 아버지나 할아버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모옥은 많은 돈을 모아 그 자손에게 물려줌으로써 자손들의 감사를 받을 셈이었겠지만 그것 때문에 후손들의 인정을 받지 못할것이라고 하지요.
토론할 때 여러 관점과 시점에 대한 이야기가 이루어졌습니다. 우선 며느리는 왜 관아에서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느냐라는 문제 제기에서 지금 우리시대 내부 고발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샘이 계셨습니다. 개인적 경험으로 가족 혹은 어떤 집단 내부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일을 외부로 알리는 것이 당사자와 외부에서 보는 사람간의 입장 차이가 분명하게 있다고 언급하셨습니다. 외부에서 보는 입장에서 분명 부조리한 것 같은데 개입의 어렴움을 토로 하기도 하셨지요. 그 시대를 생각하면 내재화된 것이 있어 시어머니에게 반기를 들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 근거로는 당시 불효하다는 죄목으로 관가에 고할 수 있었다는 것인데요. 반대로 불효하다는 죄목이 있다면 자식혹은 며느리를 제대로 못키운 것에 대해 고하면 그것도 처벌의 대상이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생과 사과 다르지 않다는 것과 연결하여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행위가 옳든 그르든 자신의 정절을 지키고 시어머니의 행위를 발설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하여 자신의 의로움을 지킨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네요. 며느리의 자살에 포커스를 맞추어 논한다면 우리가 흔히 자살을 택한 사람들에 대해 갖고 있는 전제는 삶과 죽음 중에 그래도 살아야지라며 삶을 죽음보다 낫다고 보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런 경향성으로 인해 편견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당귀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 뒤 죽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다음은 조공의 인재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애꾸눈인 정연을 사위감으로 인정하는 조조의 사람을 알아보는 눈에 대한 이탁오의 평입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 혹은 한번 크게 각인 된 모습을 가지고 편견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생각꺼리를 던져 줍니다. 어떤 사람을 봤을 때 자신이 못마땅하게 여기는 모습이 발견되고 계속 거슬리면 다른 모습을 볼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많은 점들은 보지 않으려 하고 혹은 보이지 않고 자신에게 각인된 모습만으로 계속 그 사람을 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다양한 모습을 하고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하나의 관점만을 고집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 못마땅한 것은 상대의 문제일 수도 있고 자신이 사람을 보는 관점에서 집착하는 것이 있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이와 맞물려 거문고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중국 위(魏)진의 정권 교체기에 부패한 정치권력에 등을 돌리고 대나무 숲에 모여서 거문고와 술을 즐기면서 세월을 보낸 7명의 선비(죽림칠현) 중 (완적, 혜강, 산도, 상수, 유영, 완함, 왕융) 혜강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이탁오는 마음이 다르면 손놀림이 다르고 손놀림이 다르면 소리가 달라진다고 이야기 합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의 마음 자세에 대한 이야기일 텐데요. 연주하는 사람이 마음을 담아도 듣는 사람이 그것에 담긴 마음을 느낄 수 없다면 그때는 어찌해야 할까요? 연주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정성된 마음!)을 담았으면 그것으로 족하고 듣는 사람은 듣는 사람의 마음으로 들으면 되는 것 아닐까요? 이 마음을 어찌 알 수 있을지 고민하다보면 머리에 지진이 날때가 많습니다. ㅋㅋ
이밖에도 〈양승암집을 읽고〉에서 책의 서문에 대한 이야기, 〈시화〉에서 요체에 대한 이야기, 〈조조론〉에서 때를 읽는 다는 것과 술수에 대한 이야기 등등 심오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자세히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ㅋㅋ 에세이가 남아있지만 과제도 끝나고 후기도 다 쓰고 나니 이렇게 홀가분 할 수가 없네요! 잠시 이 여유를 즐기다 에세이 모드로 진입해야겠습니다. 에세이가 끝나면 제주도가 기다리고 있으니 기쁜 마음으로 에세이를 즐겨야겠습니다!
전 에세이를 준비하며, 이야기를 최대한 복잡하게 만들라는 샘의 주문이 떠나질 않네요 . 과제도 끝나고 후기도 다 쓰고 나니 이렇게 홀가분 할 수가 없네요, 라고 신나하는 샘의 낙천성을 좀 배워야할 듯 ㅋㅋㅋ 그래도 제주도는 신나. 놀려고 에세이 쓰는 글역샘들 ㅋㅋ
ㅋㅋㅋ 공통과제와 후기까지 끝내서 신나하는 샘의 세러머니가 온몸으로 전달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