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역사 3-12주차(12/11) 공지
오우~~일단 일 년의 읽기 대장정을 오늘로 모두 마쳤습니다. 마크트웨인, 루쉰, 괴테, 연암, 세르반테스, 그리고 이탁오까지, 세상 내노라하는 거장들의 글쓰기를 훔치는 시간이었습니다. 첫 만남엔 어렵고 어색하고 삐걱대던 글들은, 학기가 끝날 쯤에는 홀딱 빠져들어 경탄을 거듭했죠. 그러길 여섯 번,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샘들은 시원섭섭하다고 하셨는데, 아직은 몰라도 여섯 분의 작가가 우리를 어딘가로 이끌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벗뜨... 이제 에세이가 기다린다는 사실. 더불어 역사시험과 암송까지. ㅎㅎ 이 모든 게 제주 여행을 위한 프리패스라는 사실. ㅎㅎ 에세이 잘 마치고 제주로 떠나자구요~~
삶을 드러내는 글쓰기
이탁오의 강렬한 삶과, 힘 있는 글이 압축되어 있는 <분서>는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짧은 소품문이지만 이야기의 배경과 역사적 맥락을 이해해야 하고, 유불선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사유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아서죠. 샘께선 짧은 시간에 내용을 다 이해하기는 어려우니, 이탁오의 글쓰기를 중심으로 읽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팁을 주셨죠. 이탁오의 글을 이해하는 길 중 하나는 인간을 이해하는 그의 시선에서 찾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시간 부부론을 통해 보면, 그는 우주 만물처럼 인간도 남녀의 대대 관계에서 시작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부자관계, 군신 관계의 위계를 시작으로 보는 성리학과는 다른 입장입니다. 대대 관계는 자연스럽게 타자를 상정하게 되지요. 남녀의 음양론과 마찬가지로, 자연과 대대하는 한에서만 인간도 존재한다는 사유가 이탁오에게 녹아 있습니다. 소리도 음악도, 글도 우리와 대대하는 존재들입니다. 혜강의 거문고 소리는 단지 음악이 아니라 上上人인 그의 표현이고, 많은 사람들의 염불로 이탁오의 천식도 고칠 수 있었으며, 조조는 문장 하나에 아픈 몸을 일으켰다고 하지요. 다른 것들과 상호 작용 속에서 인간은 다른 인간이 되어갑니다.
그래서 이탁오의 인물평은 꽤나 위험해 인물과 역사 평전인 장서(藏書)는 금서였다고 하지요. 기존의 사회적 코드를 흩트리며, 평판 아래 가려진 것을 보게 하니까요. 조조의 인물 보는 안목을 칭찬하고, 죽림칠현으로 절친한 혜강과 산도의 절교에 관해 그럴 리 없다 하고, 굴원과 백이숙제에 대해 그들이 했을 절절한 원망을 공감하는 이탁오만의 해석이 이루어집니다. 이탁오에게 글쓰기는 절실한 삶의 질문에서 출발했다고 했지요. 글이 절실했던 것은 삶이 절실했기 때문이라고도 했었는데요, 그 절실함이 인물과 역사적 사건과의 조우를 통해 새로운 공감을 불러 일으킨 것 같습니다. <분서> 읽기가 어렵다는 말은 이 감수성의 차이이기도 하겠습니다. 결국 자신에게 절문하는 그 감수성 말입니다.
망국(亡國)이라는 리듬
이번에 역사 강의에서 저를 흔든 말이 있다면 나라가 “망했다”라는 게 무엇일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역사 발전론에서 꽤나 도주했다고 생각했는데, 역사란 한 국가가 망하고 다른 국가(왕조)가 세워지는 일련의 과정이라는 것을 아직 당연히 믿고 있었던 거죠. 망국의 한을 노래한 많은 시들과 이야기들은 나름 정절의 의미라고 내심 생각하기도 했구요. 샘은 한 국가나 시대라는 게 얼마나 상이한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을까라는 질문을 재차 던지셨죠. 생각해 보면, 상이한 속도로 진행되는 다양한 리듬이 그저 중첩되어 있는 것이 한 국가입니다. 학교의 리듬, 학원의 리듬, 회사, 병원, 지하철 안의 사람들, 버스, 시장, 이주노동자...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선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분서>에 나온 하나의 사건에도 아주 많은 선들이 교차합니다. 우리가 이번에 읽은 당귀매전이 매우 잘 보여줍니다. 한 여인의 억울한 자살이라는 스토리에는 돈만 밝히고, 다른 남자와 사통(私通)한 도덕적이지 않은 시어머니, 돈이면 형벌도 바뀌는 부패한 관리, 불의한 내역을 알면서도 입을 다문 주변 사람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듣고 글로 써 세상에 알린 양승암, 이 전체를 조망하며 다시 한 번 이야기를 상기시키는 이탁오까지 사건에서도 이야기에서도 선들의 교차가 무궁합니다.
망국은 극렬한 리듬의 혼돈을 말하겠죠. 명말을 산 이탁오, 청말을 지낸 루쉰, 중세 끝자락의 세르반테스까지 그들을 지나간 리듬은 혼돈의 도가니였습니다. 열 사람의 열 마음이, 낡은 사유 위를 지나가는 사유의 폭발들, 충돌과 분열, 이러한 리듬이 원,명 아홉 번의 기후 이변과 늪을 만든 것이겠죠. 이 복잡한 리듬의 교차 속에서 송원명청의 왕조 변천의 리듬은 단지 정치적 변화의 리듬에 불과합니다. 아날학파의 입장을 빌리면 리듬의 관점에서, 경제적 변화도, 생활 문화도 매우 느린 리듬을 가지고 있다고 하죠. 특히 사람들의 생활 습관, 멘탈은 훨씬 느린 리듬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가장 빠른 리듬이 정치의 리듬이어서 역사 서술은 대부분 정치적 속도를 따라 기록되는 것이라는 거죠. 망국은 여러 리듬 중 하나인 정치적 리듬이 바뀌면서 다른 리듬이 하나의 교차점에서 만나는 것이 아닐까요?
명의 몰락을 바라보는 사상가 황종희의 역사 서술은 하나의 리듬이 다른 리듬에 어떻게 개입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황종희는 명의 마지막 황제 승정제 조정의 실패를 명 붕괴의 핵심으로 보지 않습니다. 부실한 조정 운영과 타락에는 독재통치라는 근본 약점이 있었고, 독재 정치는 백성과 통치자 사이에 있어야 할 유대 관계를 무시했고, 재난이 닥쳤을 땐 서로를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흔히 되는 게 없다라고 하는데, 리듬이 접점을 이룬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리듬이 저의 역사 인식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리듬을 다르게 만드는 것이 속도적으로 예민한 정치 리듬에 영향을 주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재미난 이야기가 많지만 이쯤에서... 에세이가 절 부르기에. ㅋ 월요일에 뵈어요.
*** 12주차 (12/11) 공지입니다 ***
* 이번 주는 에세이 준비합니다.
각자 맡은 텍스트에서 키워드 / 씨앗문장을 뽑아, 중심 주제가 드러나게 개요를 잡아 오시면 됩니다.
* 암송은 외워주시면 될 거 같고, 다 같이 하는 부분도 외우셔야 해요.
* 역사 시험은 카톡으로 공유합니다.
* 11주차 후기 : 호진샘
여러 리듬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기도 어렵고 그 여러 흐름들을 알아차린다 해도 생각하고 싶은데로 익숙한 것으로 그것들을 단일화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망상의 삶을 살게 되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