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에는 프랑수아 자콥의 <생명의 논리, 유전의 역사> 2장 초반까지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지난 주까지 읽은 <우연과 필연>이 미시적인 차원과 거시적인 차원에서 생명체와 진화의 메커니즘을 살펴보았다면, <생명의 논리, 유전의 역사>는 16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생물학사를 유전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따라가면서 존재와 인식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노의 책과는 또 다른 어려움이 저희 발목을 잡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 정리가 되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을 다루지 못한 채 남겨두게 되었네요. 다음 시간에 이어서 이야기나눌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저희는 먼저 서문에서 언급하는 ‘프로그램’이란 개념으로 자콥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책에서 ‘미래의 유기체에 대한 건축 설계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분자 구조들을 특이화하는 명령들’ 등으로도 표현하는 ‘유전프로그램’을 말하고 있는 듯한데요. 현대 생물학에서는 생명체의 핵심적 특징으로 ‘과거의 경험을 보존하고 자신을 이전시키려는 경향’을 꼽습니다. 이는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고 후손을 통해 자신을 계속 이어가고자 하는 욕망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자콥은 프로그램의 역사뿐 아니라 생명체계의 구조까지도 정당화해주는 것이 바로 ‘생식의 목적성’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모노가 생명체의 한 속성으로 꼽았던 ‘합목적성’의 다른 말이기도 하죠. 생명체의 내재적 원리이기도 한 이 프로그램은, <우연과 필연>에서도 보았듯이, 마치 정확한 목적(종족을 보존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작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생명체의 형성에 있어서 ‘생식’이라는 말과 그 개념이 쓰이게 된 건 18세기 말에 이르러서였다고 합니다. 그때까지 생명체는 생식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 태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생식은 언제나 창조의 결과였고, 신과 같은 힘이 직접 관여해야 이루어지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고대부터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거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유기체에 관해 논할 때도 아리스토텔레스, 히포크라테스, 갈레노스의 논의를 그대로 반복했고요. 모든 물체와 동식물은 질료와 형상의 특수한 결합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별, 돌, 생명체를 만들기 위해 질료에 형상을 부여하는 것은 ‘자연’이라는 손이었지요. 토론에서 재미있게 나눈 것처럼, 유사성은 공통된 성질의 표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눈을 치료하기 위해 비슷하게 생긴 식물을 쓴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지금도 그런 믿음이 남아 있는데, 사람 모양을 하고 있어서 인삼이 몸에 좋다는 인식도 그 중에 하나죠.
또한 생명계의 질서와 우주의 질서는 하나인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모든 것은 자연이고 자연은 하나였기에, 생명체는 가시적 구조만으로 축소될 수 없었습니다. “개개의 동식물은 다른 생물이나 돌, 별만이 아니라 인간 활동에 이르기까지 확장되는 변화 무쌍한 것”(47쪽)이었지요. 가령 ‘말’이라는 동물에 관해 설명한다고 하면 그 생김새에 관해서는 약간만 할애하고, 나머지는 말의 혈통, 습관, 성질, 기억, 애정, 감사하는 태도, 충실함, 관용, 승리에 대한 열의, 속도, 괴상한 말, 놀라운 말, 전설적인 말, 역할, 역사, 신화, 문학, 그림 등에 관해 이야기하는 식이었습니다. “자연에 있어 모든 것은 연속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이는 범주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위계였”(47쪽)습니다. 이런 식으로 만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지금 우리의 시각이 얼마나 다를지 토론에서도 잠시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애나 칭이 지적한 것처럼 근대인인 우리는 세계를 얼마나 ‘요약’해서 바라보고 있는지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세계를 다양체로 바라보는 들뢰즈의 시각도 떠올랐고요.
17세기에 이르면서 생명체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생깁니다. 모든 것이 연속적으로 보이던 곳에서 ‘분리선’들을 식별해 내고, 집단들 사이에 선을 긋고,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게 됩니다. 생명계는 다섯 수준의 위계(계, 강, 목/과, 유, 종) 속에서 배열하게 되고, ‘종’의 개념은 개체들 사이의 유사성뿐 아니라 유사한 것을 생산해 내는 자연에 부합한다는 점에서도 특권적인 범주로 간주됩니다. 종의 개념은 세대들을 관통해 흐르는 영속성을 보장해주는 것으로, 그와 함께 자연적 규칙성의 한 표현이 된 것이 ‘생식’입니다. 생명체의 가시적 구조의 복잡성이 드러나면서 생명체의 ‘씨앗’을 둘러싼 논쟁들이 19세기까지 이어집니다. 생리학의 진보는 생명체들의 내부에 숨겨져 있는 하나의 질서를 알아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19세의 시작과 더불어 새로운 과학이 탄생하면서 과학의 목적은 더 이상 유기체들의 분류가 아니라 그들에 대한 인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분석 대상은 ‘가시적 구조’가 아닌 ‘조직화’가 되었고요. 2장에서는 조직화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 다음 시간에는 <생명의 논리, 유전의 역사> 320쪽까지 읽어옵니다. 발제는 정아(~227쪽), 재겸샘(228~275쪽), 영임샘(276~320쪽).
- 간식은 제현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수요일 저녁에 뵈어요!
저는 종의 개념이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했다는 것, 그러나 그것이 온갖 '이마주'들을 쳐내고 잘라낸 결과로서 당연해졌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별종, 변종 등의 말을 많이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전주의 에피스테메가 함께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