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에 이어 이번 시간에는 생명에 대한 책인 프랑수아 자콥의 『생명의 논리, 유전의 역사』 앞부분을 읽었습니다. 둘 다 생명과학에 대한 책인데 자크 모노의 책은 현대 분자생물학의 발전과 그로부터 밝혀진 사실을 통해 뭔가 독자에게 아직도 조금은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생명에 대한 이상한 환상 같은 것을 버리라고 강권하는 느낌을 주는 데 반해 자콥의 책은 생물학사에 대한 설명을 중심으로 할 뿐 모노만큼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지금이야 인간의 몸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생명이 대를 이어가는가에 대해 신비가 많이 풀린 상태지만 별다른 지식이 없었던 그 옛날에는 생명이 어떻게 살아나가고 또 생명을 잇는지는 너무나 큰 수수께끼였을 것 같습니다.
『생명의 논리, 유전의 역사』에서 프랑수아 자콥은 생명체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응답을 제시합니다. 먼저 17세기의 도래와 더불어 형성된 가시적 표면들의 배치(질서I), 다음으로 18세기 말에 시작된 기관, 기능, 세포에 대한 조직화(질서II), 다음으로 20세기 초에 시작되는 염색체와 유전자 같은 세포 내의 질서(질서III), 마지막으로 20세기 후반의 모든 유기체의 구성체와 그들의 성질, 세대를 관통하는 그들의 존속 질서(질서IV).
생식의 문제는 생명의 신비 중에서도 가장 풀기 힘든 문제였습니다. 물론 “만들 수 없는 것은 이해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아직 인간이 인간을 만들 수 없으므로 생식에 대해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닙니다. 아주 옛날에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생명은 하늘이 부여한 것이라거나 신이 창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신화 같은 데에서는 인간의 머리에 말의 몸통을 한 반인반마 센타우르스나 산해경에서 나타나는 인간과 동물의 혼종 및 이상한 형태를 지닌 괴물들이 거리낌 없이 등장합니다. 인간이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조물주의 영역입니다. 조물주의 뜻을 모르니 어떤 형태의 생명체도 원리적으로는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의 뜻은 사물들 사이의 유사성을 통해 추론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눈을 치료하기 위해 비슷하게 생긴 식물을 쓴다든가 한의학에서 꽃 모양(작게 많이 피는 꽃과 크고 적게 피는 꽃 등)을 통해 식물의 기운을 파악하는 것 등이 그러한 것입니다. 루쉰의 소설에서 정조를 지키는 교미하는 귀뚜라미 한 쌍이 필요한 것도 그것이 지닌 상징되는 기운이 약재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서양에서는 이러한 유사성이 17, 18세기의 고전 시대에 들어와 표상으로 옮겨지게 되는 데 이 시대에 비로소 생명체의 외관인 가시적 구조가 분류와 분석의 대상이 됩니다. 신의 의지는 인간의 정신으로, 명상, 경전, 수수께끼의 해독은 불변의 규칙성이나 법칙성을 찾으려는 자연과학의 방법으로 대치됩니다. 그 시대에 많은 발전을 이룬 물리학의 영향을 받아, 별들과 돌멩이들이 역학의 법칙들에 복종하는 우주에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17세기는 모든 자연이 기계인 것처럼 생명체 역시 기계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에 따라 18세기 말까지 생명체와 사물(무생물) 사이에는 뚜렷한 경계가 없었습니다. 샤를르 보네에 의해 기껏 분류된다는 것이 원시적이면서도 비유기적인 존재들, 유기적이면서 죽어있는 존재들, 유기적이면서 살아있는 존재들, 그리고 유기적이면서 살아있으면서 이성적인 존재들입니다. 기계와의 비교는 심장의 경우처럼 펌프처럼 작동하는 것으로 쉽게 이해되는 측면도 있었으나 심장에 대한 펌프처럼 비교할 기계가 없는 생식의 문제 등에서는 진척이 별로 없는 결과를 나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계는 특정 목표를 위해 만들어졌으므로 오직 그 일만을 할 뿐이어서 기계의 바깥에서 원인과 목표를 찾게 만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계론은 대상들과 사건들을 둘러싸고 있는 믿음들의 무리와 객설들을 제거해내었다는 데에 의미가 있습니다. 생물체이든 사물이든 신비적이고 기적적인 것을 몰아내어 가시성과 분석 가능성으로 만들어 그들을 과학의 대상으로 변환시키는 일을 한 것입니다. 뉴턴의 인력 법칙이 우주를 구성하는 원자들 사이의 의존 망을 구성하는 것에서 힌트를 얻은 과학자들은 물질과 물질 사이에 존재하는 특성으로써 친화력이 개념을 도입하고 이 분야는 화학으로 발전합니다. 심장이 펌프 기능을 통해 피를 순환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에 이어 이제는 탄소와 산소를 소비하고 칼로리를 공급하는 호흡, 칼로리의 필요 정도에 따라 증가하거나 줄어드는 발한 그리고 호흡과 발한을 위해 상실한 것을 피에서 보상받는 소화의 기능 작용을 해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연속적이며 다양성을 가지는 생명계를 분류하고 질서 지우는 것은 인간의 상상에 의한 것으로 자연사의 목적은 자연 속에 존재하는 진정한 질서를 찾아 우연적인 것과 본질적인 것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관된 규칙의 필요성은 종의 개념을 탄생시켰습니다. 생명의 탄생은 자연 발생에 의하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데카르트는 모든 물질의 질료는 동일하기 때문에 생명체와 무생명체의 구분은 단지 그 질료들의 배열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추론하였습니다. 따라서 무생명체를 생명체로 만들기 위해서는 열이나 압력, 간단한 마찰과 같은 약간의 조작만 가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부패한 모든 물질에서 동물들, 벌레들, 곤충들이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를 검증하기 위한 엄격한 시험들이 행해짐에 따라 자연발생론은 반박됩니다. 그러나 때마침 발명된 현미경으로 인해 처마의 물속에서 식물들의 즙에서 타액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미생물로 인해 자연발생론은 폐기되지 못합니다. 이는 부모들에 의한 발생의 문제로 연결되며 눈으로 쉽게 볼 수 있는 난자와 현미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정자의 역할에 대한 여러 논의를 불러옵니다. 생명이 난자와 정자 어느 것에 더 의존하느냐는 논란은 무성생식을 하는 진디 발견으로 난자 쪽으로 기울어졌으나 개구리 실험에서 정자를 받지 못한 알은 올챙이가 되지 못하는 등 혼란을 거듭했습니다. 이 밖에 수많은 세대의 생명이 난자나 정자 속에 이미 만들어져 있다는 전성/선재 이론은 가재와 같은 생물의 잘린 부분이 재생하는 복구능력을 설명할 수 없었고 말과 당나귀의 교합시 태어나는 노새 존재를 설명할 수 없는 등 설득력을 잃었습니다. 결국 가시적 구조의 존속으로 재생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다른 접근 방법과 주변 기술의 발달이 필요했습니다.
사실을 결코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인간은 뭔가를 분류하고 추론합니다. 유전현상 같은 복잡한 현상은 몇 세기 전에는 어림짐작도 하기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많은 과학자들의 생각을 살펴보는 중에 들었습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실들이 어떤 조건들 속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당연하게 되었는지 보여주고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방대한 내용이 쏟아져서 따라가는 일이 만만치 않지만, 그만큼 각자 하고 있는 다른 공부들과도 연결되는 지점들이 많은 거 같고요. 후기 읽으며 앞부분에서 재미있었던 내용들이 다시 떠오르네요.^^ 잘 읽었습니다!
새삼, 우리가 생명이 수수께끼로 여겨지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과거에도 그 시대만의 합리성과 앎들이 항존했겠지만, 그것은 모두에게 보편적인 정답보다는 국지적이고 유동적인 형태였을 듯합니다. 과학과 전문학문들이 정답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 시대와 비교하면요. 우리는 생명, 우주, 바다의 모든 수수께끼를 품을 권리를 과학에 양도해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방대한 정보들이 파도치는 텍스트를 아주 부드러운 문체로 정리해주신 후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