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는 역시 진리입니다!! 올해 나들이 세미나에서 읽은 책들 중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텍스트를 접하고 쩔쩔매고 있습니다만, 매번 모여서 뭔가 떠들고 나면 그래도 한결 나아져 있네요.ㅎㅎ 모두가 열성회원인 나들이 세미나 회원님들 덕분에 들뢰즈가 들려주는 ‘베르그손식 세상 바라보기’에 점점 더 빨려들어갑니다.
이번 시간에는 <베르그손주의> 3장과 4장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3장은 ‘기억’에 대해, 4장은 다시 ‘지속’에 대해 논의를 풀어냅니다. 3장을 시작하며 들뢰즈는 기억이 지속과 동일하다는 점을 언급하고 물음을 던집니다. ‘어떻게,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지속은 사실상 기억으로 될까? 권리상 있는 것이 어떻게 자신을 현행화할까?’
들뢰즈는 3장에서 그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는 듯한데 역시 세부적인 내용들은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속으로서의 기억을 생각할 때 중요한 점이, 우주 최고로 어려운, 그리고 매시간 저희의 과제이기도 한, ‘시간의 공간화에서 벗어나는 일’이라는 점은 알 것 같았습니다. 이를테면 토론 중에 이런 질문이 있었지요. 기억이란 대체 어디에 저장되어 있다가 떠오르는 것일까? 이런 물음은 공간화된 우리 생각의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마치 기억이 ‘어딘가’에 보존되어 있다가 필요한 순간에 소환되는 것인 양 생각합니다. 들뢰즈는 이것이 지난 시간에 보았던 ‘가짜문제’ 즉 ‘잘못 분석된 복합물’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자체로서, ‘즉자적으로 자신을 보존하는 기억(회상)’을 마치 어딘가에 보존되어야만 한다는 듯, 가령 뇌가 그것을 보존할 수 있다는 듯이 구는 거니까요.
들뢰즈에 따르면, 우리가 ‘과거의 즉자적 잔존’을 생각하는 게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과거를 더는 없는 것, 있기를 그친 것’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있음’과 ‘현재임’을 혼동해왔다는 겁니다. 하지만 현재는 있지 않고 작용합니다. 반면 과거는 작용하기를 그치고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현재는 매순간 ‘있었다’가 되지만, 과거는 ‘영원히 모든 시간에 걸쳐 있다’고 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베르그손은 과거와 현재가 순차적인 두 계기가 아니라 공존하는 두 요소를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현재인데 그것은 끊임없이 지나가고, 다른 하나는 과거인데 그것은 끊임없이 있으며 그것을 통해 모든 현재가 지나간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순수 과거, 일종의 ‘과거 일반’이 존재한다”(67쪽) 각각의 현재와 공존하는 것은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과거, 우리 ‘과거 전체’입니다. 그리고 저 유명한 ‘원뿔의 비유’는 공존이라는 이 완전한 상태를 표상합니다. 원뿔의 단면들 각각은 그 자체로 잠재적이며, 과거의 즉자 존재에 속합니다. 이 단면 각각은 항상 ‘과거의 총체’를 담고 있습니다. 다소 이완되고 다소 응축한 하나의 층위에서 이 총체를 담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순수 과거, 순수 회상, 순수 잠재는 어떤 ‘도약’을 통해 자신을 ‘현행화’합니다. 그렇게 어떤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지난주에 이어 설탕물 비유에 대해서도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지난주 화면 속에 갇혀 계셨던 황리샘께서 본인도 모르게 멋지게 설명해주시는 바람에 여러 명의 인상에 남았던 그 비유의 지속에 관한 설명이, 저는 다음 구절을 보며 떠올랐습니다. “나의 지속은 본질적으로 다른 지속들을 드러내고, 그것들을 병합하고, 자신을 병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93쪽) 그런데 바로 뒤에 이런 문장이 따라옵니다. “하지만 이 무한한 성찰과 주의가 지속의 진짜 성격들을 지속에 되돌려주고 있다는 점은 끊임없이 잊지 말아야 한다. 지속은 단순히 나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나눔의 아주 특별한 스타일을 갖고 있다. 지속은 단순한 계속이 아니라 매우 특별한 공존, 흐름의 동시성이다.”
4장에서 들뢰즈는 ‘지속이 하나일까 여러일까?’라는 질문을 던지지요. 그러고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비록 같은 잠재적 전체에 필연적으로 참여하는(제한된 다원론), 무수한 현행적 흐름이 있을지라도(일반화된 다원론), 유일한 시간만이 있다(일원론). (...) 잠재적 다양체들은 유일한 시간을 내포할 뿐 아니라, 잠재적 다양체로서의 지속도 이 유일무이한 ‘시간’이다.”(95쪽) 매우 특별한 공존, 흐름의 동시성, 유일무이한 시간으로서의 지속.... 아...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습니다.
이렇게 저희는 이번 시간에도 우리 내면에 깊이 각인된 세계에서 벗어나서 베르그손과 들뢰즈가 보여주는 세계를 느껴보고자 안간힘을 썼는데요. 쉽지 않지만 묘하고도 흥미롭습니다. 이제 마지막 장만을 남겨두고 있는데 어떻게 마무리가 될지 궁금하네요.
다음 시간에는 <베르그손주의> 5장을 읽고 내용을 정리해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영임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다음 주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