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한 달만에 뵙는 반가운 얼굴들과 새로 합류하신 분들이 함께 한 첫 시간. 역시 책은 함께 읽어야 한다는 걸 다시금 실감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지난해에 비해 인원이 배가 된 만큼 쉬는 시간을 잊고 토론을 이어갈 정도로 풍성한 이야기가 오고가서 제가 따로 준비해간 자료는 함께 읽을 시간이 없을 정도였어요.ㅎㅎ 혼자 읽을 때는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을 여러 샘들이 끌어내주신 덕분에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는 책의 내용에 살이 두툼하게 붙은 기분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들뢰즈의 <경험주의와 주체성>을 더욱 재미나게 읽기 위해 <서양철학사>에서 ‘경험주의’와 ‘흄’에 관해 정리한 부분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합리주의는 ‘이성적 직관’을 통해 보편타당한 진리를 통찰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인 반면 경험주의는 우리가 경험한 것만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로크, 버클리와 더불어 대표적인 경험주의자로 꼽히는 흄은 오직 두 가지 인식만이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하나는 감각 지각을 통한 인식(경험)이고, 다른 하나는 개념들 간의 관계나 관습적 규칙들에 근거한 인식입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란 바로 감각을 통해 받아들이는 ‘인상’과 그 인상들이 결합되고 정리된 ‘관념’들의 다발인 것이죠.
흄에 따르면 이 두 인식을 초월하는 지식은 가질 수 없으므로 아무리 수천 번 같은 과정이 반복되었다고 해도 미래에 똑같은 과정이 일어날 거라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인과성 개념이 전제하는 이 ‘필연성’을 우리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으므로 ‘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기대’를 갖게 되고, 흄은 필연성의 관념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이러한 심리적 요소인 ‘기대’임을 지적합니다. 흄은 이성이나 이성적 직관에 의한 것이라 생각되는 경험과학이나 보편 법칙은 물론 보편적인 도덕규범 역시 이성의 산물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그는 도덕과 규범, 가치와 관련된 모든 것이 우리 감정으로부터 나온다고 보았는데, 감정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럼에도 일정한 공통의 토대를 갖는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공통된 혐오나 경탄의 감정은 규범적인 문제들에 대한 보편적인 합의를 이끌어냅니다.
그런 면에서 흄은 관습을 통해 학습한 것과 자연적 감정이 계약이나 합의보다 더 기본적이라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관습’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남지만, 저희는 적어도 흄은 관습이라는 것을 단단하고 고정된 것이 아닌, 좋은 쪽으로 수정되어 갈 수 있는 말랑말랑한 것으로 본 것 같다고 정리했습니다. 나아가 흄은 인간이라는 존재 역시 그처럼 스스로 수정해나가는 존재로 보지 않았나 하는 이야기도 나눴고요. 그 외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던 시간이었는데요, 각자 공부해온, 혹은 공부하고 있는 철학자와 역사가들의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어서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앞으로의 시간들도 기대되네요!
다음 시간 공지입니다. <경험주의와 주체성> 1장을 읽고, ‘인식’과 ‘도덕’의 문제를 중심으로 노트를 작성해 9부 출력해옵니다. 각자 자유로운 형식으로 정리해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영임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다음 주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