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세미나 ‘들뢰즈와 흄’ 첫번째 시간 후기
‘나들이 세미나’ 시즌 2는 몇 분의 새로운 멤버로 참여했습니다. 뉴페의 참여로 시즌 2는 어떤 세미나가 될지 궁금했습니다. 시즌 1은 소수 정예가 편안한 분위기로 서로를 이끌어 주어 한 명의 이탈자 없이 5명 모두 완주하며 ‘차이와 반복’을 읽어냈습니다. 시즌 2는 들뢰즈가 사유를 만들어갔던 시기로 돌아가서 그 저작을 읽는 세미나입니다. 들뢰즈가 자신의 언어를 만들기 위하여 사숙했던 철학자들의 사유를 읽어내고 그를 (들뢰즈가) 어떻게 읽어 내는지를 공부하는 시간들일 것입니다. 마치 들뢰즈의 손에 이끌려 흄, 칸트, 베르그송, 프르스트를 사유해보는 시간일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공부하고자 하는 것은 그 철학자가 정리한 결론이 아니라 그 사유의 방법일 것입니다. 시즌 2에 뉴페 들의 참여로 영점에서 다시 배울 수 있는 세미나의 배치가 만들어졌습니다. 배치가 바뀐다는 건 어쩌면 다른 배움이 시작된다는 의미이니까요.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 모두 조급해 하지 말고 천천히 자기 사유하는 법을 배우는 세미나였으면 합니다.
첫 세미나는 ‘서양철학사’ (군나르 시르베크, 닐스 길리에)에서 ‘경험주의와 인식비판’을 읽고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들뢰즈가 읽은 ‘흄’을 읽기 전에 철학사의 맥락에서 그를 읽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흄’은 철학사에서는 ‘경험주의’ 철학을 한 사람입니다. ‘합리주의’가 ‘이성적 직관’을 통하여 보편타당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경험주의’는 오직 우리가 경험하는 것을 벗어난 진리는 없다고 봅니다. 이성주의자라면 ‘무엇이 실재(real)하는가?’의 질문에 이성에 의하여 자명한(self evidence) 명제라면 진리라고 답할 것입니다. 반면 경험주의자는 ‘관찰가능하고’ ‘경험적으로 검사 가능할 때’에만 그 것이 분명히 실재한다고 답할 것입니다.
흄은 인상 (impression)과 관념 (ideas)을 구분합니다. 인상은 감각경험과 심리적 경험으로 만들어 집니다. 관념은 그 인상을 결합하고 연합함으로써 만들어 집니다. 인식은 감각적, 심리적 경험과 그 경험으로 발생한 인상들을 연합한 ‘관념’의 다발입니다.
흄은 ‘실천적 지식’이라는 언어를 사용합니다. 우리의 사회적 지식에 해당하는 ‘도덕’이나 얻어진 지식은 어떤 경험 실천으로부터 만들어진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 경험들이 인상을 만들고 그 인상들을 연합하여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합이 습관 이 되는 것입니다. 연합하는 방식이 사회적인 습관이 되어야 그 것이 보편성을 가지는 지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필연성은 부정하지만 A 뒤에 B가 나온다는 기대가 우리의 지식이 된다는 것입니다. 가령 ‘아침이면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지식은 과거 모든 변수를 다 경험한 결과가 아니고 미래에는 어떤 다른 경험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필연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침 – 해 – 동쪽’을 보편적 지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흄은 했던 필연성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연속되고 접촉하여 반복적으로 일어난 현상을 기대하는 보편적인 사실(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필연적인 진리는 없다는 것입니다.
흄은 감정이 지식을 만든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도덕규범’이 어떤 이성적 직관으로부터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개인 마다 다른 감정이 도덕규범을 만들 수 있을까?’하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렇다면 감정이라는 것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요? 흄에 의하면 우리에게 유용한 것, 우리로 하여금 생존하게 하고 행동하도록 동기부여 하는 것은 쾌감을 유발하고 그 반대의 경우는 불쾌감을 유발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감정은 공통의 토대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회적 공통 조건으로부터 공통 감정이 유발되고 그 것이 보편적인 도덕규범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최근의 페미니즘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판단이 이성에 의한 것이 기 라기 보다는 어떤 조건에서 만들어진 집단 감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흄의 철학에는 두 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관습이나 규범이 그 사회속에 속한 사람들에게 유용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라고 인식한다는 측면에서 그의 사유는 공동체적이지만 보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것이 경험으로부터 만들어지고 또 그 인상으로부터 연합이 반복되면서 형성된다는 측면에서 수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규범이나 상식을 사유할 때는 어떤 전제에서 그러한 사회적 통념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지 질문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흄 철학의 철저성에 대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합리주의자는 물론 버클리와 같은 경험주의자들은 어떤 가정을 전제한 철학을 합니다. 반면 흄은 물리적 실체를 부정할 뿐 아니라 인상을 통일 시켜주는 자아도 필요 없다고 합니다. 자아 역시 일관되게 함께 나타나는 속성들의 연합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흄의 사유는 우리의 경험지평에서 철저하게 출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민호 샘은 흄의 뚝심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들뢰즈의 철학을 ‘초월론적 경험론’이라고 합니다. 그 경험론을 흄으로부터 배웠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유는 실제 경험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는 철저성을 배웠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첫 시간에는 흄의 사유를 맛보면서 그 철학의 지평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들뢰즈가 흄을 어떻게 읽고 무엇을 가져오는지를 배워보게 됩니다.
새로운 배치, 다른 배움의 시작...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이번 세미나에서 샘 말씀처럼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자기 사유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간략하게나마 흄의 사유를 만나보고 나니 들뢰즈가 어떻게 풀어낼지 더 궁금해지네요. 차근차근 따라가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