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나들이 세미나 첫 시간. 오랜만에 뵙는 분들, 처음 뵙는 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시작했습니다. 올해는 기존 멤버와 신규 멤버가 거의 반반인 데다, 십대와 이십대 멤버가 절반에 가까워서, 앞으로 어떤 케미가 형성될지 궁금해집니다.^^ 인사를 나눈 후에는 올해 다시 부활한 낭송 시간으로 들어갔습니다. 다양한 목소리와 속도로 낭송되는 <천 개의 고원>의 문장들을 눈과 귀로 따라가다보니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면서 세미나를 시작하기에 더없이 좋은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알 듯 말 듯한 문장들, 눈에 들어오는 문장들을 잘 갈무리해두었다가 토론에서 함께 읽는 텍스트와 연결지어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고요. 짧지만 굵은 낭송 시간, 앞으로도 기대됩니다!
이번 시간에 함께 이야기를 나눈 텍스트는 애나 칭의 <세계 끝의 버섯>입니다. 이번 주에는 1부 ‘남은 것은 무엇인가’를 읽고 만났습니다. 이미 다른 세미나에서 읽고 토론하신 분들이 여럿 계셔서 더 풍성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다른 세미나에서 논란이 있었던 ‘오염’의 문제에서부터 우리 시대의 조건인 불안정성과 불확정성, 진보와 근대성, 배치, 냄새의 문제까지... 각자 1부에서 눈에 들어온 부분들을 끄집어 내고 함께 이야기하면서 패치들이 만들어지고 얽히고설키며 모양이 변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애나 칭은 1부의 2장 ‘협력으로서의 오염’을 시작하며 이렇게 묻고 답합니다. “어떻게 모임은 그 부분들의 합보다 더 큰 ‘사건’이 되는가? 한 가지 답은 오염이다.”(63쪽) 여기서 오염을 무엇이라고 볼지에 대해서는 다양하게 이야기될 수 있겠지만, 거칠게 요약하면 ‘변화’나 ‘변형’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애나 칭은 우리가 마주침을 통해 오염되며, 다른 존재들에게 길을 열어주어야 가능한 마주침은 우리 존재를 변화시킨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변화는 마주친 존재들의 합보다 더 큰 사건이 됩니다. 저는 세미나도 그런 오염의 장, 마주침의 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인상적으로 언급한 ‘냄새’의 문제와도 연결시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애나 칭은 송이버섯 냄새에 완전히 다른 반응을 하게 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처음에는 역하게 느껴지던 송이버섯 냄새가 지금은 마음을 설레게 하는 향이 되었죠. 저희는 이것이야말로 마주침이 일으킨 존재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애나 칭은 송이버섯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예기치 못한 것들에 자신을 열어줍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고 다양한 장소를 찾아다닙니다. 그 사건들, 그 패치들, 그 마주침들은 서로 얽히고설키며 존재를 변화시킵니다. 저희는 이것이 ‘리좀’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리좀이라고 하면 바로 덩쿨식물을 떠올리게 되면서 그 이미지에 갇혀 오히려 다르게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것도 같습니다. 후각과 배치 등도 리좀으로 생각해보니 재미있었습니다.
애나 칭은 우리를 지배하는 ‘진보와 근대화의 꿈’에 대해 언급하며, 진보라는 개념이 ‘인간’에 대한 우리 관념에 얼마나 깊이 스며들어 있는지 지적합니다. 하지만 진보와 근대화의 꿈이 아무리 강력하게 우리를 지배한다고 해도 언제나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은 부분, 사로잡히지 않을 여지 또한 함께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것들을 ‘알아차리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호기심’을 갖는 일입니다. “진보 서사의 단순화에서 해방되어 패치성의 매듭과 맥박을 탐험하는 것.”(30쪽) 그리고 “그런 발판(근대화와 진보) 없이 사는 삶에 상상력을 동원해 도전해보는 일.”(23쪽) 애나 칭은 송이버섯이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버섯에 대해 알면 알수록 놀라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고요. 계속 송이버섯을 따라가봐야겠습니다.
- 다음 시간에는 <세계 끝의 버섯> 2부 ‘진보 이후에: 구제 축적’을 읽고 메모를 적어옵니다.
- 간식은 영주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수요일 저녁에 만나요!
후각을 리좀으로 생각하는 방법은 재미난 것 같아요~
변화를 말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텐데 그 중 왜 오염이라는 단어를 써야 했을까라는 질문도 떠올려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