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에는 <안티 오이디푸스> 3장 5,6절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원시 영토 기계에서 야만 전제군주 기계로 넘어가는 부분이어서 둘을 비교하며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먼저 5절의 제목인 ‘영토적 재현’에서 '재현'의 의미가 무엇인지 짚어보며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만일 재현이 언제나 욕망적 생산의 억압-탄압이라 해도, 그것은 해당 사회구성체에 따라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그러하다. 재현 체계의 심층에는 억압된 대표, 억압하는 재현작용, 이전된 재현내용이라는 세 요소가 있다. 하지만 이것들을 실효화하는 심급들 자체는 가변적이며, 체계 속에는 이주들이 있다.” (318쪽)
5절의 첫 문장인데요, 여기서 재현의 의미는 사회체(기계)의 작동이나 작용 정도로 보입니다. 욕망이 욕망 기계, 즉 작동하는 것이라면, 사회도 사회 기계, 작동하는 것이죠. 사회 기계의 작동은 늘 욕망 기계의 억압을 동반하고, 억압 장치와 억압의 방식은 각 사회 기계마다 다릅니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원시 영토 기계의 억압 장치는 ‘결연’입니다. 결연은 ‘억압하는 재현작용 그 자체’이고, 이 결연의 단위는 ‘부채’입니다. 욕망의 흐름들을 코드화하고 부채를 통해 인간에게 말들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 바로 결연이지요. 부채는 억압 위에서 외연을 지닌 체계를 형성하기 위해 확장 혈연들로 결연들을 조성합니다. 들뢰즈와 과타리에 따르면, 사회는 교환주의적이지 않으며, 사회체는 기입자입니다. 저자들은 부채를(그리고 기입들 자체를) 보편적 교환의 간접적 수단이 아니라 원시적 기입의 직접적 귀결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달리 원시 사회는 교환주의적이지 않으며, 본질적인 것은 교환하기가 아니라 기입하기, 표시하기임을 보여줍니다. 저자들은 구르마족의 예를 언급하는데, 그들의 이데올로기에서 “여자는 주어질 수 있을 뿐이거나, 아니면 빼앗기거나 납치되거나, 따라서 어느 모로는 도둑만을 뿐인 듯 모든 일이 벌어”(321쪽)집니다. 직접적인 교환의 결과라는 것이 명백하게 보일 수 있는 모든 결합은 사회에서 금지는 아니어도 널리 부인됩니다.
이처럼 교환이 “쫓겨나고 처박히고 엄격히 구획되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까닭에 대해 저자들은 “그 어떤 거래 가치도 시장경제라는 악몽을 도입시킬 교환가치로 발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321쪽)라는 답을 내놓습니다. 토론에서 이야기 나눈 것처럼, 사회체는 마치 악몽이 현실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흐름들의 탈코드화’와 ‘사회체 위의 기입 양식의 붕괴’를 초래할 것을 결사적으로 막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6절에서 이야기하는 전제군주 사회가 돈의 순환과 상업을 엄격하게 통제하여 자본주의 사회의 탄생을 막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사회체가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 헷갈렸어요. 사회체가 의지를 가진 존재처럼 느껴지기 때문인데요. 개인적 욕망과 사회적 욕망이 하나라는 점, 욕망 기계들이 사회 기계들 속에서 기능한다는 점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전제군주 기계 또는 야만적 사회체의 창설은 ‘새 결연과 직접 혈연’으로 요약될 수 있다.”(332쪽)
저희는 6절에서 소개하는 야만 전제군주 기계의 특징들을 주목해서 보았습니다. 저자들이 요약하고 있듯이, 전제군주는 새 결연을 강요하고, 신과 직접 혈연을 맺습니다. 영토 기계 대신에 국가라는 ‘거대기계’, 즉 기능적 피라미드가 생겨납니다. “이 피라미드의 꼭짓점에는 부동의 모터인 전제군주가, 측면에는 전동 기관으로서 관료 장치가, 바닥에는 노동 부품으로서 마을 사람들이”(335쪽) 있습니다. 거주가 고정되고 부채가 폐지 또는 변형되면서 모든 원시 혈연이 전제군주 기계에 종속되고, 국가에 대한 한없는 복무의 의무를 지게 됩니다. 이제 부채는 ‘실존의 부채’가 됩니다. 국가는 무한한 채권자가, 신민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무한한 채무자가 됩니다.
전제군주 기계의 또 하나의 특징은 초코드화입니다. 옛 체제의 코드화된 흐름들은 초월적이고 우월한 통일체인 국가에 의해 초코드화됩니다. 옛 기입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국가의 기입에 의해, 국가의 기입 속에 벽돌처럼 쌓여 있습니다. 토론 중에 초코드화란 기존의 것에 덧씌워지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으니 의미가 좀더 와닿았어요. 이렇게 야만 전제군주 기계와 첫 만남을 가졌는데요, 다음 부분에서는 이 기계의 작동에 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게 될 듯합니다.
- 다음 시간에는 <안티 오이디푸스> 3장 7절을 읽고 내용을 정리해옵니다.
- 간식과 후기는 혜원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수요일 저녁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