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영토적 재현
이번 주에는 <안티 오이디푸스> ‘5장 영토적 재현’과 ‘6장 야만 전제군주 기계’를 읽었습니다. ‘5장 영토적 재현’에서는 미개 원시 사회의 사회체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는지 보여줍니다. 우선, 어떤 사회체든 형성이 되기 위해서는 재현이 필요합니다. 재현은 언제나 욕망적 생산의 억압-탄압으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이루고, 사회를 구성하려면 니체가 말하듯이 인간은 약속하는 동물이 되어야 합니다. 욕망의 코드화 하지 않은 흐름들로 인하여 무질서와 혁명이 일어나는 것을 억제할 수 있어야 사회적 생산이 가능한 겁니다.
재현은 미개 원시 사회뿐 아니라 야만 전제군주 사회, 문명 자본주의 사회를 이루는 데에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욕망적 생산의 억압-탄압을 하는 건 아닙니다. 각각의 사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요. 이번 세미나에서 저희는 서로 다른 사회체마다 ‘재현’이 어떤 식으로 일어나는지 분석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들뢰즈 과타리는 말합니다. “재현 체계의 심층에는, 억압된 대표, 억압하는 재현작용, 이전된 재현내용이라는 세 요소가 있다.”(318) 들뢰즈 과타리는 앞의 세 요소의 크고 작음으로 사회체의 차이를 분석합니다. 미개 원시 사회, 야만 전제군주 사회, 문명 자본주의 사회에 각각의 요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에 집중하며 읽어나가 보겠습니다!
들뢰즈 과타리가 미개 원시 사회를 분석할 때 주목한 부분은 교환과 부채입니다. 대개 학자들은 사회를 이루는 건 교환의 체계로 봅니다. 그러나 들뢰즈 과타리는 말합니다. “욕망은 교환을 모른다. 욕망은 도둑질과 선물만 안다.”(321) 우리 시대에 교환의 논리는 자연스럽지만, 욕망의 차원에서 보면 이상합니다. 교환이라는 관념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외연을 지닌 체계를 논리적 조합으로 보는 것, 등가성 내지 평등성의 전제, 통계적으로 닫힌 폐쇄된 체계, 사회적 재생산의 순환으로 환원 등이 없이 교환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회는 교환주의적”이지 않습니다.
사회체는 기입자입니다. 기입은 억압하고 탄압하는 작용을 합니다. 들뢰즈 과타리는 기입이 부채의 체제에서부터 유래한다고 주장합니다. “부채는 결연의 단위이고, 결연은 재현작용 자체이기 때문이다. 욕망의 흐름들을 코드화하고 부채를 통해 인간에게 말들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바로 결연이다.”(319) 니체 또한 마찬가지로 <도덕의 계보>에서 원시 경제를 부채의 견지에서, 채권자-채무자의 관계에서 해석한 철학자입니다. “기입, 코드, 표시라는 원시사회의 근본 문제를 그토록 날카로운 방식으로 제기한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 인간은 강렬한 배아 내류를, 즉 집단의 모든 시도를 휩쓸어 갈 거대한 생물적-우주적 기억을 억압함으로써 자신을 구성해야만 한다. 하지만 동시에, 어떻게 인간에게 하나의 새로운 기억을, 즉 집단 기억을 가지게 할까? (...) 그 답은 단순하다. 그것은 부채이다.”(328) 채권자-채무자 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미개 원시 사회는 구성됩니다. 여기에는 교환은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영토적, 육체적 기입의 즉각적인 결과 내지 직접적 수단일 뿐입니다. 관계가 깨진 자리에는 어떻게 될까요? 니체는 ‘야기한 손해=겪어야 할 고통’이라는 섬뜩한 부채 방정식을 말합니다. 죄인은 그가 야기한 손해를 고통과 괴로움으로 갚습니다. “‘손해=고통’이라는 방정식에는 교환주의적인 것이 전혀 없으며, 이 극단적 사례에서 부채 자체는 교환과 아무 관계가 없음을 보여 준다. 단순히 말해, 눈은 자기가 관찰하는 고통에서 코드의 잉여가치를 뽑아내며, 이 잉여가치는 죄인이 망친 결연의 목소리와 그의 몸을 충분히 관통하지 않은 표시 사이의 깨진 관계를 만회하는 것이다.”(329)
6장 야만 전제군주 기계
‘6장 야만 전제군주 기계’에서는 미개 원시 사회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구성됩니다. “전제군주 기계 또는 야만적 사회체의 창설은 ‘새 결연과 직접 혈연’으로 요약”(332)될 수 있습니다. 전제군주는 옛 공동체의 방계 결연들과 확장 혈연들을 거부하고, 새 결연을 강요하며 신과 직접 혈연을 맺도록 합니다. “전제군주는 편집증자이다. 새로운 변태 집단들은 전제군주의 발명을 선전하고 이들이 세우거나 정복하는 도시들에서 그의 영광을 유포하고 그의 권력을 강요한다. 이들이 세우거나 정복하는 도시들에서 그의 영광을 유포하고 그의 권력을 강요한다. 전제군주와 그 군대가 지나가는 곳 어디서나, 의사들, 승려들, 서기들, 공무원들이 행렬의 일부를 이룬다.”(333)
저희는 들뢰즈 과타리가 전제군주를 설명하는 부분을 보며, 칭기스 칸이 부족을 통합하고, 유라시아 대륙을 정복하면서 몽골 제국을 건설하는 모습과 닮았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희가 최근에 읽고 있는 역사책에서 칭기스 칸이 정복한 나라를 잘 통치하기 위해서 했던 방법이 있습니다. 기존의 귀족/엘리트 집단을 몰아내고, 종교인을 통치자로 보내는 것입니다. 종교인은 도덕을 가르치고, 평화를 말하기에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들뢰즈 과타리가 변태 집단이라고 표현한 사람들은 칭기스 칸이 정복지에 보낸 종교인들이 아닐까 상상해봅니다.
야만 전제군주 사회의 기입은 미개 원시 사회와 다릅니다. “제국 기입은 모든 결연과 혈연을 다시 절단하고, 이것들을 연장하여, 이것들을 신과 제국군주의 직접 혈연, 전제군주와 백성의 새로운 결연 위에서 수렴시킨다. 원시 기계의 모든 코드화된 흐름은 이제 하구까지 밀려나며, 거기서 전제군주 기계는 이 흐름들을 초코드화한다. 초코드화, 이것이야말로 국가의 본질을 구성하는 조작이요, 국가와 옛 구성체들의 연속성과 단절을 동시에 측정하는 조작이다.”(342) 제국은 초코드화합니다. 초코드화란 모든 코드를 하나로 덮어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 제국은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도교를 내세우고, 노자를 신격화합니다. 일자로 코드화할 수 있어야 국가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세미나 말미에 나눈 칭기스 칸과 제국 이야기 흥미로웠습니다. 전쟁기계와 유목 개념도 더 궁금해졌고요!
코드화, 초코드화, 탈코드화의 관계는 여전히 아리송하네요. 계속 읽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