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에는 <안티 오이디푸스> 3장 10절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희 세미나가 원래 좀 그렇지만 이번 시간에도 분열증적인 토론(이 책의 부제인 '자본주의와 분열증'에 걸맞게!?))이 이어졌습니다(^^;) 지난 시간부터 자본주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인만큼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들뢰즈와 과타리는 1,2장에서도 ‘분열자’와 ‘과정으로서의 분열증’을 이야기했지요. 3장에서는 분열증을 언급하며 자본주의와 분열증의 관계를 들여다봅니다. 이 둘은 상당히 비슷하면서도 다른데요. 저자들이 설명하듯이, 탈코드화의 흐름들이 만나서 탄생하게 된 자본주의는 모든 사회의 극한입니다. 다른 사회구성체들이 코드화하고 초코드화했던 흐름들을 탈코드화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저자들은 자본주의의 이 극한을 ‘상대적 극한’이라고 부릅니다. 자본주의는 탈코드화만 시행하는 게 아니라 동시에 재코드화를 시행하기 때문입니다. 즉 “극단적으로 엄격한 공리계로 코드들을 대체”(416쪽)하는 거지요. 이 공리계는 “자본의 몸에 묶인 상태 속에 흐름들의 에너지를 유지”(416쪽)합니다.
반면 분열증은 ‘절대적 극한’입니다. 탈코드화화 동시에 재코드화를 시행하는 자본주의와 달리, 자본의 공리계로 포섭되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흐름들을 탈영토화된 기관 없는 몸 위로 지나가게”(416쪽)합니다. 저자들은 자본주의와 분열증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자본주의는 자신이 확장된 규모로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자본주의 고유의 내재적인 상대적 극한들로 분열증의 절대적 극한을 대체한다. 자본주의는 자기가 한 손으로 탈코드화하는 것을 다른 손으로 공리화한다. 맑스주의의 상반된 경향의 법칙은 이런 방식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그래서 분열증은 자본주의장 전체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침투해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장 전체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언제나 새로운 내부 극한들을 탈코드화된 흐름들의 혁명 권력과 대립시키는 하나의 세계적 공리계 속에 분열증의 충전(充電)들과 에너지들을 묶어 놓는 일이다.”(416쪽)
들뢰즈와 과타리는 자본주의의 공리계에 포섭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분열증에서 찾고자 합니다. 저희는 여기서 고민이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것을 현실에서 실현하는 일이 정말 만만치 않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자본의 흐름에서 벗어나려는(탈코드화하는) 시도들을 다시 그 흐름 속으로 포섭(재코드화)하는 방식은 정말 교묘하고 놀랍습니다. 명상, 미니멀리즘, 착한 소비, 심지어 인문학 공부까지... 새로운 시도들은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다시 자본주의 체계 속에 포섭되어버리기 일쑤입니다. 이처럼 무섭도록 유연하고 신속하게 극한을 이전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분열증화’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또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저희는 토론 중에 몇 가지 예를 떠올려보았는데요, <천개의 고원>에서는 결국 이것이 각자의 코드를 만드는 문제로 이어진다는 귀띔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혼자서는 불가능하므로 ‘배치’의 문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문제가 중요하게 언급된다고 하고요.
그 외에, 자본주의와 욕망에 관한 토론도 흥미로웠습니다. 들뢰즈와 과타리는 ‘욕망과 이해관계’의 문제, 즉 “사람들이 자기 이해관계에 거슬러서 욕망하는 수가 있다”(433쪽)는 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묻습니다. 여기에 저자들은 명확하게 답변하지 않지만, 저희는 자자들이 욕망의 작동방식과 자본주의의 작동방식이 같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탈영토화하면서 재영토화하고, 자신의 틀을 벗어나면서 다시 틀을 만드는 자본주의처럼, 욕망은 자신의 예속까지도 욕망하는 게 아닌가. 자신의 이해관계에 거슬러서 욕망하는 것이 욕망의 본성이 아닌가. 그렇다면 자본주의를 고장 내는 방식도 욕망에서 찾아야 하는 게 아닌가...
이렇게 저희는 마음대로 오독하며 읽고 있는 중인데요, 이제 마지막 11절까지 읽고 나면 또 정리 강의가 있으니 그때 얼마나 저희 마음대로 읽었는지 확인하게 되겠지요.^^
- 다음 시간에는 <안티 오이디푸스> 3장 11절까지 읽고, 3장 전체에서 질문들을 뽑아옵니다.
- 간식은 영임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수요일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