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은 마르크스의 대표 저작이면서 그가 연구해왔던 자본주의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의 종합된 저작이다. 「자본론」은 그의 사회 변혁론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도 자본주의 경제 분석은 유효해다는 평을 받고 있다. 물론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의 기원을 마르크스 이론으로부터 찾는 등 다양한 비판에 직면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본론」을 통과하지 않고 자본주의 경제 현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하지는 못할 것이다.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한 후 마르크스는 한 동안 철지난 이론쯤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현재의 사회는 민주주의의 위기, 금융자본에 의한 경제의 위기, 기후 위기를 겪고 있으며 현재 경제체제를 기반에 둔 기후위기는 식량전쟁으로 이어지리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세계 공황, 그로벌 금융 위기 등을 맞아 자본주의는 유연하게 변신해왔다. 그러나 현재 전지구적인 위기 상황에서는 그 본질을 변혁하지 않고는 사회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들이 도처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마르크스를 다시 한 번 소환한다.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 한 이후에는 우리는 ‘마르크스’를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지난 「정치경제학비판 요강 서설」 세미나에서도 확인한 바와 같이 그의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마르크스에게 인간은 사회적 관계들의 앙상블(통합체)이다. 인간은 생산하고 분배하고 소비하고 교환, 유통하는 존재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그 사회에서 주어진 생산 관계 양식에 따라 인간은 규정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 – 임노동자’로 규정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사회를 복잡하게 얽혀있는 하나의 유기체, 즉 ‘사회구성체’로 보았다. 사회적 토대는 경제 영역이다. 그 토대는 생산력과 생산관계로 구성된다. 또한 그 생산관계로부터 이데올로기가 생성된다. 법률, 정치, 사회적 의식 등이 이데올로기의 형태로서 상부구조를 이룬다. 그에 따라 사회에는 계급이 존재하고 그 사이에는 계급 갈등이 벌어지게 된다. 사회 변혁의 원동력도 ‘계급들 사이의 투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리카도, 아담 스미스의 경제적 통찰을 계승하면서도 몇가지 지점에서 비판하여 자신의 경제학을 구성해 낸다. 그의 자본에 대한 정의로부터 설명해 보자. 마르크스는 화폐 중에서 ‘자기의 가치를 증식시키려는 화페’를 자본이라고 부른다. 자본주의는 인간 생활에서 필요한 거의 모든 부분을 상품화 해 왔다. 재화는 물론 서비스, 교육, 보험(상호부조), 리스크, 시간 등 등. 마르크스는 화폐 등장의 기원을 상품으로부터 찾는다. 사회적 교환의 기준이 되는 상품이 화폐인 셈이다. 우리가 돈을 욕망하는 이유를 살펴본다면 그 범용적 교환성에 있을 것이다. 돈이라면 거의 모든 것으로 바꿀 수 있다. 그의 유명한 공식 M –C – M'를 발생시키는 돈이 자본이다. 그렇다면 ‘상품의 가치는 어디로부터 생산되는가?’라는 의문에 남게 된다. 원료와 생산수단, 노동으로 생산되는 상품은 원료인 상태와는 다른 가치를 내포하게 되고 또한 다른 상품으로 교환할 수 있는 가치를 가지게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원료 + 생산수단 + 노동’으로 생산되는 가치는 무엇으로부터 생산되는가? 여기서 마르크스는 노동으로부터 모든 가치가 발생한다는 주장을 한다. 그는 원료와 생산수단을 죽은 노동으로 표현한다. 정치경제학 비판의 용어에 따르면 ‘과거의 대상화된 노동’이다. 채굴 노동이 되었던 기계를 만드는 노동이 되었던 말이다. 따라서 ‘상품의 가치 = 불변자본 C + 가변자본 V + 잉여가치 S’이다. 불변자본은 감가상각 등의 형태로 상품의 가치를 이전한다. 반면 가변자본인 노동은 (노동)시간을 투여 하며 가치를 생산한다. 따라서 잉여가치는 노동으로부터 발생한 가치 중 지불하지 않은 가치에 해당한다. 이 단순한 분석에 의하여 자본주의에서 자본의 몫에 대한 주장의 허구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자본이 고용하는 것은 ‘노동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노동력은 생산수단 이나 방법에 따라 생산력이 달라진다. 그리고 그 생산력은 그 사회에서 평준화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마르크스가 노동가치설에서 주장하는 노동은 한 개인의 노동도 한 회사의 노동도 아니다. 사회적 노동, 결합된 노동인 것이다.
마르크스를 통과한 후의 자본은 그 자체가 가치를 증식 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규명되었다. 노동자가 투여한 노동력에 의하여 가치가 창출되고 노동자가 지불받지 않은 부분이 잉여가치인 셈이다. 자본가가 가진 자본은 전부 노동자의 잉여노동의 적립된 것, 다르게 표현하면 노동자의 영여노동의 응고물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적 요소인 상품, 화폐, 자본이 사라진 사회 형태가 성립할 수 있을까? 어떤 대안을 우리는 생각할 수 있을까? 마르크스가 프로레타리아트와 변혁하여 생성하고자 하는 사회는 국가 사회주의도 프로레타리아트 독재의 사회도 아니었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association)이 도래할 것이라고 보았다. 시민들과 노동자들이 협의하여 생산하고 분배하는 사회, 필요한 만큼 소비하고 능력만큼 생산하는 사회를 그는 도래할 사회로 보았다.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한사람으로서 사족을 붙이자면 그 것은 마치 협동조합 사회의 이상과도 같다. 협동조합은 사업체(enterprise)이기 이전에 결사체(association)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로운 개인들이 연합하여 조직을 만들고 협의하여 운영하는 협동조합이 그가 꿈꾸는 이상적 사회의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마르크스 이후의 사회주의의 행보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회에서 협동조합의 행보는 그가 희망했던 이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앞으로 2번의 세미나를 통하여 마르크스의 문제의식에 더 귀를 기울여 보자.
'자본론 공부' 첫 세미나 후기 올립니다. 수요일에 뵙겠습니다.
협동조합에서 일하고 계신 샘께서는 마르크스의 문제의식이 더 남다르게 다가올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마르크스의 희망과는 거리가 멀었던 '마르크스 이후의 사회주의의 행보와 자본주의 사회에서 협동조합의 행보'가 바로 들뢰즈와 과타리가 지적하는 마르크스주의의 한계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일단 마르크스를 잘 따라가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