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세미나 3학기가 시작됩니다. 3학기에는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가장 분량이 많은 3장을 읽게 되는데요, 2학기 후반부터 이미 준비작업을 하고 있었지요.^^ 3장에서 다루는 사회체 분석을 이해하기 위해 저희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을 간략하게나마 만났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에 관해 좀더 알게 되면서 그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시도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게 되었고요. 그 고민은 <안티 오이디푸스> 3장을 읽으면서도 계속 이어가게 될 것 같습니다.
3학기는 첫 시간에 클라스트르의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10~11장과 니체의 <도덕의 계보> 제2논문을 읽고, 이후 8주간 <안티 오이디푸스> 3장을 읽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10주차에는 채운샘의 정리 강의가 있습니다. 정신분석과 마르크스에 인류학까지 더해지는 3장에서 들뢰즈와 과타리는 우리를 또 어디로 데려갈지 기대되는데요. 그 전에 먼저 2학기 마지막 시간에 읽고 나눴던 부분 가운데 채운샘께서 중요하다고 하셨던 ‘이윤율 저하 경향’에 관해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자본론 공부> 8장의 내용인데요, 저자는 ‘자본’에 관한 재미있는 글을 인용하며 시작합니다. 자본주의에서 ‘이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글인 데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겹쳐져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고요. 마르크스가 <자본론> 1권에서 인용한 더닝(T.J. Dunning)의 글이라고 합니다.
“자연이 진공을 싫어하듯이, 자본은 이윤이 없거나 이윤이 매우 적은 것을 싫어한다. 상당한 이윤만 있으면 자본은 과감해진다. 10%의 이윤이 보장되면 자본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투자한다. 20%라면 자본은 활기를 띠며, 50%라면 대담무쌍해지고, 100%라면 인간의 법을 모두 짓밟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300%라면 단두대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범하지 않을 범죄가 없다. 만약 소란과 분쟁이 이윤을 가져다준다면, 자본은 소란이나 분쟁 모두를 고무하고 사주할 것이다. 위에 말한 것의 증거는 밀수와 노예무역이다.” (211쪽)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이윤율’을 설명하지만, 이윤율은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뿐만 아니라 예금 상품을 고를 때도 우리는 조금이라도 이자율이 높은 상품을 고르죠. 모두가 높은 이윤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경쟁’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경쟁은 자본주의에 작용하는 하나의 자연법칙”(강신준, <오늘 [자본]을 읽다>, 274쪽)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높은 이윤율을 얻기 위한 경쟁은 이윤율을 균등화합니다. 가령 한 자본가가 새로운 생산방법으로 보다 높은 이윤율을 얻는다면 다른 자본가도 그것을 모방하여 이윤율을 높이려 할 겁니다. 이런 경쟁의 과정에서 어느 순간 모든 자본가가 동일한 이윤을 가지는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를 ‘평균이윤율’이라고 부르는데요, 경쟁은 이처럼 “차이와 균등화라는 두 가지 상반된 얼굴”(같은 책, 같은 쪽)을 갖고 있고, 이 두 얼굴은 자본주의에서 항상 함께 작용하며 또 하나의 모순적인 법칙을 만들어냅니다. 자본가들이 만들어내는 평균이윤율이 점차 하락하는 법칙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법칙이 실제 현상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이윤율이 0% 수준까지 저하하여 자본주의가 멸망하게 될 거라는 ‘자동 붕괴론’이 유행하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그건 이윤율이 저하하는 경향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는 이윤율의 하락이 그 하락을 상쇄하는 요인들과 함께 이루어진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이 법칙을 ‘경향적 법칙’이라고 불렀습니다. 실제로 이윤율이 상승할 것인가 저하할 것인가는 두 상반되는 경향들 사이의 대결에서 현실적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윤율이 실제로 저하하더라도 이윤량이 증가한다면 자본 축적은 계속될 수 있습니다. 자본의 규모를 키우면 동일한 이윤율에서도 이윤량은 늘어나기 때문이죠. 따라서 자본가들은 이윤율의 하락을 상쇄하기 위해 자본 규모를 키우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재벌이 덩치를 계속 키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고요.
하지만 이런 식의 자본 축적이 영원히 가능하지는 않겠지요. 그럼에도 자본가들은 무엇보다 당장의 ‘초과이윤’을 얻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합니다. 자본 규모를 키우고 기계화를 도입하는 등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 듯이 행동합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1권에서 이러한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어떤 주식 투기의 경우에도, 언젠가 한 번은 벼락이 떨어지리라는 것[가격이 폭락하리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나 자기 자신은 황금의 비를 모아 안전한 장소에 옮겨 놓은 뒤에 그 벼락이 이웃 사람의 머리 위에 떨어질 것을 바라고 있다. 뒷일은 될 대로 되라지! 이것이 모든 자본가와 모든 자본주의 나라의 표어이다.” (김수행, <자본론 공부>, 221~222쪽)
‘뒷일은 될 대로 되라지!’ 이윤을 얻는 일이라면,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지금 우리의 모습이 다시 한번 겹쳐지는 구절이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는 구절이기도 했고요. <안티 오이디푸스> 3장을 읽으면서 함께 생각해봐요 샘들.
- 3학기 첫 시간에는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10~11장, 니체의 <도덕의 계보> 제2논문을 읽어옵니다.
-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발제는 윤순샘 10장, 혜원샘 11장.
- 간식과 후기는 영임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수요일 저녁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