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안티 오이디푸스> 3장 1,2절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역시... 들뢰즈 텍스트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확실하게 실감되는 한 주였어요. 처음 읽으면서, 어쩌면 그렇게 여전히 외계어 같은지(1,2장도 아니고 3장까지 왔는데도!)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첫 부분이라 앞으로 나올 이야기들을 압축적으로 하고 있어서 더욱 그런 것 같기도 한데요. 다행히 반복해서 읽고 세미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쪼끔 나아지긴 했습니다. 여전히 이해 안 되는 것투성이지만 이야기 나눈 부분들을 위주로 조금 정리해보겠습니다.
“욕망을 코드화하는 것 - 또 탈코드화된 흐름들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코드화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회체의 일이다. 나중에 보겠지만, 자본주의는 탈코드화된 흐름들 위에서 구성된 유일한 사회 기계로, 생래적 코드들을 화폐 형식을 띤 추상량들의 공리계로 대체한다.”(245쪽)
3장에서 들뢰즈와 과타리는 ‘사회’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세 형식의 사회체(원시 사회, 전제군주 사회, 자본주의 사회)를 살펴보게 되는데, 모든 것을 ‘작동 중인 기계’로 바라보는 이들에게 사회체는 ‘사회 기계’입니다. 따라서 ‘원시 영토 기계’ ‘야만 전제군주 기계’ ‘문명 자본주의 기계’라고 부르는데요. 모든 기계가 그러하듯이 사회 기계도 흐름들을 절단하고 채취하며 작동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사회 기계는 그 흐름들을 ‘코드화’하는 것을 최고 임무로 삼습니다. 코드화란 아마도 흐름들을 규정하는 작업, 그러니까 흐름들에 코드(법, 제도, 규범 등)를 부여하는 작업을 말하는 듯한데요. 흐름들을 코드화하는 일은 “흐름의 채취, 사슬의 이탈, 몫들의 할당 따위”(248쪽)의 조작을 내포합니다.
이처럼 사회 기계들은 욕망의 흐름을 코드화하지만, 자본주의라는 사회 기계는 조금 다릅니다. ‘탈코드화된 흐름들’ 위에서 구성된 사회 기계이기 때문인데요, 다른 사회 기계들에게는 이것이 악몽이지요. 흐름들을 코드화하는 것을 최대 임무로 여기는 사회 기계들은 늘 탈코드화된 흐름들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공포와 불안을 코드화하는 것도 사회 기계의 일이죠. 그런데 자본주의 기계는 코드화된 흐름들을 탈코드화하며 작동합니다. 그리고 그 코드들을 ‘화폐 형식을 띤 추상량들의 공리계로 대체’한다고 하는데, 무슨 의미인지 아직은 이해가 안 되지만 화폐로 모든 게 수렴되는 현상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부동의 모터인 토지를 지니고 있는 원시 영토 기계는 이미 사회 기계, 즉 거대기계이며, 이 기계는 생산의 흐름들, 생산수단의 흐름들, 생산자들 및 소비자들의 흐름들을 코드화한다. 여신 대지의 충만한 몸은 자기 자신 위에서 지배 가능한 종들, 농업 도구들, 인간 기관들을 집결한다.” (249쪽)
이번에 읽은 부분에서는 사회체의 첫 번째 형식은 원시 영토 기계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들뢰즈와 과타리는 이 사회체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순환을 본질로 하는 교환의 터전이 아니라 표시하고 표시되는 것을 본질로 하는 ‘기입의 사회체’라고 주장합니다. 지난 주에 읽었던 클라스트르의 글에서도 원시 사회가 모든 구성원의 몸에 원시의 법을 새겨넣어 기억하게 한 사회였음을 강조했지요. 그런 식으로 흐름들을 코드화한 원시 영토 기계는 ‘기관들의 집단 투자’를 실행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흐름들이 코드화된다는 것'은 흐름들을 생산하고 절단할 수 있는 기관들 각각이 확실하게 부분대상으로 분배되고 제도화되어 작동하는 한에서 가능하기 때문이죠. 이와 대조적으로 현대사회들은 ‘기관들의 방대한 사유화’를 실행합니다. 이 사유화는 추상적인 것이 되어버린 흐름들의 탈코드화에 상응한다고 들뢰즈와 과타리는 설명합니다.
원시 영토 기계는 “토지의 몸 위에서 결연과 혈연을 직조”(256쪽)하며 작동합니다. 저자들은 혈연(혈연적 재고)을 불변 자본에, 혼인으로 연결되는 결연(이동 부채 블록들)을 순환 자본에 비유하며, 혈연은 행정적이고 위계적이지만 결연은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특징을 지닌다고 설명합니다. 주어진 영토성의 표면 위에서 결연들이 어떻게 혈연들과 함께 구체적으로 구성되는가를 보여주는 예로 ‘지역 가계(local lineages)’를 드는데요. 지역 가계는 혈연 가계와는 구별되며 작은 분파의 층위에서 작동합니다. 같은 지역 혹은 이웃 지역에 거주하며, 결혼을 도모하고, 구체적 현실을 형성하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혈연 체계 및 추상적 혼인 계급보다 훨씬 구체적인 단위를 말합니다. 지역 가계는 ‘코드의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토론에서 ‘코드의 잉여가치’가 무엇인지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여전히 알듯말듯 하네요. 두 가지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서로 다르게 코드화된 흐름들이 결연으로 만나면서 생겨나는 잉여가치를 말하기도 하고, 책에서 모스를 인용하며 들고 있는 예처럼, 증여된 선물의 비평형성을 만회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잉여가치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러한 코드의 잉여가치 역시 원시 영토 기계의 조작들을 실효화하는 요소입니다. ‘사슬에서 절편들을 이탈시키고, 흐름에서 채취들을 조직하고, 각자에게 돌아오는 몫을 할당하기.’ 이건 모든 기계의 기본적인 기능이기도 한데요. 모든 기계는 기본적으로 고장나며 작동합니다. 기존의 흐름을 채취하고 절단하면서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죠. 기능 장애들이 그 기능 자체의 일부를 이룬다는 점은 사회 기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능 장애나 고장이 일어나는 층위나 방식에 있어서는 각 사회 기계마다 다르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 토론 말미에 나왔는데요, 앞으로 읽어나가면서 함께 생각해보아요.
- 다음 시간에는 <안티 오이디푸스> 3장 3절을 읽고 내용을 정리해옵니다.
- 간식과 후기는 영주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수요일 저녁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