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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중한 분석가 프로이트
이번에 프로이트를 읽으면서 그는 참으로 신중한 분석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슈레버를 비롯하여 그가 분석한 사람들의 발병 원인을 본인의 이론으로 설명하였지만, “나는 정신분석가가 일을 하는 과정에서 전형적인 해석이 아닌 해석을 하려고 할 때는 아주 조심하고 또 자제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늑대인간」, 139p)”, “우리는 모든 종류의 편집증 환자들의 사례를 다수 조사한 후에나 가설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같은 책, 170p)”, “그렇지만 우리가 조사를 마칠 때까지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은 발표하지 않도록 하겠다.(같은 책, 174p)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는 자신의 이론을 절대적으로 신봉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환자를 꼼꼼하게 관찰하고 분석하면서 자신의 이론에 걸맞지 않은 부분이 나타나더라도 이를 회피하기보다는 계속 탐구해나갔죠. 그의 책을 읽다 보면 “그래서 결론은 뭐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결론을 매듭짓지 않습니다. <편집증 환자 슈레버>에서도 그는 슈레버의 망상구조를 자신이 편집증에 대해 분석한 내용과 거의 비슷하다고 말하면서도, 이런 말을 덧붙이는데요. “내 이론에 내가 인정하고 싶은 것보다 많은 망상이 섞여 있는지, 혹은 슈레버의 망상에 다른 사람들이 아직 믿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진실이 더 있는지는 나중에 가서나 밝혀질 것이다.”(같은 책, 189p) 기승전 남근, 기승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프로이트는 자신의 이론이 완벽하다고 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보고 해석한 부분은 더 큰 전체의 한 조각일 뿐이라고 생각했죠. 의문이 생기면 끊임없이 탐구하고 이를 피하지 않으며 최선의 노력을 한 프로이트의 연구 열정은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의 책은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자신이 본 과정을 상세하게 얘기하기에, 어렵고 재미가 없긴 합니다만.^^
# 인간을 보편적인 틀로 해석할 수 있을까?
프로이트는 임상을 통해 의식이 전부가 아니고, 말로 설명할 수도 없고 의식할 수도 없는 우글거리는 무의식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를 오이디푸스라는 가족관계로 환원하며 설명을 했죠. 그는 오이디푸스 삼각형이란 보편적인 틀로 인간을 분석했습니다. 이번에 프로이트 책을 읽으면서, “그는 무의식과 리비도를 지성으로 설명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라는 느낌도 들었는데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고, 인식할 수 없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언어화하는, 본능과 직관의 영역을 이성과 지성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만났던 부르주아 계급의 환자들(대부분 여성)을 임상하며 이론의 틀을 형성하고 다져갔는데요. 아쉬운 건 이것 또한 그 시대적 현상에 의한 것인데, 이걸 보편적인 것으로 봤다는 점이죠. 편집증, 강박신경증, 히스테리 등이 발병한 원인은 정말 다양하죠. 엄마의 사랑 부족, 폭력적인 아버지 등을 근본적인 요인으로 보기 어렵네요. 오이디푸스 삼각형 내용은 우리에게 낯설고 비합리적이라는 인상을 주기고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 어떤 시대보다도 더 오이디푸스적으로 사유하고 있는데요. 예컨대 우린 성격이 독특하거나 사고를 일으킨 자들을 사랑을 못 받았거나 가정교육을 잘못 받았다는 식으로 판단합니다. 문제의 원인을 가족이나 결핍으로 환원하는 것이지요.
프로이트는 인간에게 발달단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 발달의 중요한 요소는 성적 충동이며, 이는 발달 단계마다 특정한 성적 부위를 걸쳐가며 조직화됩니다. 심리 성욕 발달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것이기에 그 순서와 특징은 국가나 문화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다고 보는데요. 즉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복기, 성기기 이렇게 5단계*를 거치며 각 기간을 어떻게 겪느냐에 따라 정신병이 발병할 수도 있고 건강한 성인이 될 수도 있다는 거죠. 프로이트는 5단계를 거쳐 가는 동안 어느 한 단계에서 만족이 부족하거나 과도하면 그 단계에 고착이 되고 다음 단계로의 발달이 어려워진다고 봤습니다. 각 단계별 적절한 만족과 부모의 양육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인데요.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를 거쳐 잠복기를 통해 남성과 여성이 구분되며, 리비도 투자를 성기에 몰아서 자기의 성 정체성을 갖는 것이 프로이트가 보는 정상적인 발달과정입니다. 슈레버가 겪은 동성애적 환상은 4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네요.
누군가의 성격이나 가치관, 태도를 가정 환경, 어린 시절 등을 주 요인으로 설명하거나, 어릴 때 시기별로 교육받거나 훈련되어야 할 행동들이 디테일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 등을 감안하면, 우리에게 여전히 프로이트는 작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상을 보면, 그가 “역시 내 말이 맞았지?”라고 응답할 것만 같죠.^^
* 프로이트의 심리 성적 발달단계
1단계 : 구강기(0~2세), 입으로 하는 활동에 집중 (젖을 빨거나, 손락을 빨거나 먹는 것 등)
2단계 : 항문기(2~4세), 배변훈련 시기로, 리비도가 항문 주위에 집중, 배설물 보유와 방출에 쾌감을 느낌.
소유물(내안의 생산물인 배설물)에 대한 관계 발생.
3단계 : 남근기(4~6세), 리비도가 성기 부위에 집중, 성적 애착이 부모에게 향하며, 이 시기에 성격의 대부분 형성.
이 시기에는 성인과 다른 방식으로 성기를 봄.
4단계 : 잠복기(6~12세), 리비도가 무의식에 잠복하는 시기로 동성 친구나 외부세계에 관심이 집중. 수많은 충동들이 남근을 향해 조직
5단계 : 생식기(12세 이상), 사춘기, 신체적 성숙에 따라 이성에 대한 관심 증가하며, 남근을 중심으로 쾌락이 조직화
# 매맞는 아이와 마조히즘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의 문제들」에서 마조히즘에 대해 얘기합니다. 히스테리나 강박신경증으로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아이가 매를 맞는 환상을 갖고 있으며, 이 환상에는 상당히 즐거움의 감정이 수반된다는 건데요. 매를 맞는 환상이 만족을 줄 수 있다니, 이건 프로이트의 입장에서 모순되는 지점입니다. 그는 1920년 이전까지 인간은 쾌락원리, 즉 쾌락을 극대화하고 불쾌감을 최소화하는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로 생각했었는데요. 쾌락원리의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매를 맞는 것과 같은 고통을 열망하는 건 그 자체로 모순적이고 비논리적인 행위인거죠. 그렇다면 프로이트는 이걸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그는 일단 매를 맞는 환상에 따르는 즐거움이 가학적인 것인지 피학적인 것인지조차 결정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성도착의 1차적인 경향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가정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의 성도착은 반드시 평생 지속되지 않으며, 이는 나중에 억압을 받아 반동형성으로 대체되거나 승화로 바뀔 수도 있다고 프로이트는 봤는데요. 만약 이런 과정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성도착은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지속될 수도 있는 거죠. 그렇다면 누구는 승화되고 누구는 고착이 되는 걸까요? 프로이트는 그가 갖고 있는 현재 지식수준으로는 매를 맞는 환상에 대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조건 속에서 그는 답을 찾아가는데요. 그는 마조히즘이 1차적 본능의 발현이 아니라 “갑자기 방향을 돌려 자기를 습격하는 사디즘”에서 기원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사디즘이 마조히즘으로 바뀌는 것은 죄악감 때문인거고요.
매맞는 아이의 환상에서 환자는 어떤 아이가 맞고 있는 걸 봤는데, 나중에 이 때리는 어른은 아버지로 인식이 됩니다. 즉 매를 맞는 환상의 첫 번째 단계는 우리 아버지가 그 아이를 때리고 있었다는 건데요. 여기에서 승리감이 죄악감으로 역전되며,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를 때리는 걸(두 번째 단계)로 변형됩니다. 이 죄악감에 대해 프로이트는 죄악감 자체의 원인에 대해서는 정신분석학으로 밝혀낼 수는 없다고 말하며, 이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관련된다고 설명합니다. 성기 조직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예컨대 항문기 시절에 “아버지가 나를 사랑한다.(나는 아버지에게 맞고 있다.)”는 성기적인 의미로 말해진 것인데, 이것이 억압을 받게 되면 “아버지가 나를 때리고 있다.”로 바뀌는 것입니다. 매를 맞는 일은 죄악감과 성적 사랑이 수렴되는 지점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금지된 성기적 관계에 대한 처벌일 뿐만 아니라 이 관계를 대신하는 억압적인 대체물이기도 하며, 여기로부터 리비도의 흥분을 끌어냅니다. 프로이트는 여기에서 마조히즘의 본질을 찾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마조히즘과 사디즘을 하나의 공통된 중심축을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 보는 반대 방향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그리하여 어느 하나가 이 중심축을 따라 회전하면 반대 방향에 있는 다른 하나와 그대로 겹쳐질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들뢰즈와 과타리는 다른 해석을 내놓죠. 그들은 「천개의 고원」에서 “마조히스트가 고통을 추구한다는 주장은 거짓이며 특히 유보적이거나 우회적인 방식을 통해 추구한다는 주장도 거짓이다.”(291p)라고 말합니다. 마조히스트는 하나의 기관없는 몸체를 구성해서 욕망의 고른판을 뽑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고통을 이용하는 것이다. 한편, 들뢰즈는 「마조히즘」이란 책에서 프로이트가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분석한 방식을 비판하는데요. 결국 그가 지독히도 아버지-어머니-아들의 삼각형 구도에 매여 있다고 말합니다. 들뢰즈는 마조히즘이 오히려 오이디푸스 삼각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로 작동한다고 봤습니다.^^
# 편집증 환자 슈레버
많은 분들에게 영감을 줬던 다니엘 파울 슈레버가 등장했습니다. <편집증 환자 슈레버>는 다른 장보다 훨씬 재미있게 봤는데요. 슈레버의 글이 인용되어서 딱딱하고 지루한 프로이트 글에 약간의 활기(?)를 줬던 것 같습니다. 슈레버는 재판관이었고,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이라는 책을 써서 유명해졌죠. 프로이트는 물론이고, 발터 벤야민, 자크 라캉, 들뢰즈와 과타리, 카네티, 지젝 등 많은 철학자들에게 영감을 일으켰는데요. 편집증 환자로 규정해서 보니깐 그렇지, 그냥 그의 글을 읽으면 영성체험을 한 사람, 그런 자를 그린 1인칭 소설 등으로 볼 수도 있겠고요. 자신에게 떠오른 것들을 그대로 쓴다면, 뭐 슈레버의 회상록 저리 가라로 이상한 내용들도 나올 거 같습니다. 어쨌거나 편집증 환자인 슈레버는 일단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예의와 유머를 잃지 않았고 많은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고 합니다. 편집증, 신경증이란 것도, 근대 자본주의 시대에 발견된(?), 생산된 병이라고 볼 수 있을 거 같은데요. 프로이트는 부분충동들을 잘 조직화하고, 리비도를 잘 배분하여 정상적인 성인으로 살아가는 걸 바람직하게 봤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독특하게 행동하거나 특이한 걸 보는 자들을 교화의 대상으로 봤을 것 같고, 현재 우리의 모습과도 겹쳐집니다. 지금은 과연 정상적인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라는 질문이 들 정도로 ADHD, 우울증, 공황장애, 강박증, 히스테리 등을 겪는 사람들이 많죠.
다시 슈레버로 들어가면, 그는 세 번의 신경증을 앓았고, 그의 회상록에서는 두 번째 신경증까지만 다뤘습니다. 프로이트는 슈레버를 직접 만난 적은 없으나, 그의 책을 통해 그의 병증에 대해 분석합니다. 슈레버의 법원 판결문에는 이렇게 요약되어 있는데요. “그는 자기가 세상을 구원하여, 잃어버렸던 천국의 행복한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우선 여자로 변형되어야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프로이트는 슈레버를 동성애적 소망의 환상이 있는 편집증 환자로 판단합니다. 그는 남성으로서의 완전한 정체성을 갖지 못한 것인데요. 편집증과 관련하여 프로이트는 한 개의 명제를 통해 설명합니다. 그 명제는 “나(남자)는 그(남자)를 사랑한다”입니다. 이 명제에서 뭘 부정하느냐에 따라 피해망상, 색정광, 질투망상, 과대망상이 출현합니다. 과대망상은 명제 전체를 부정하는 것인데, 이는 “나는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를 의미하며, 다시 말하면 “나는 오직 나만을 사랑한다.”와 동격이죠.
슈레버는 주위 사람들과 외부 세계를 향해 있던 리비도 집중을 거두어들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그에게 무관심하고 무관한 것이 되어 버렸는데요. 이와 함께 그는 그의 세계를 다시 지었고, 망상으로 세계를 건설했다습니다. 그런데 망상은 병적이지만, 회복하려는 노력이기도 합니다. 프로이트는 이 회복의 과정에 관심을 가졌고요. 회복의 과정은 억압이 한 일을 되돌리고, 리비도를 자신이 버렸던 사람에게 다시 가져오는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피해 망상이 종교적 망상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자기 회복의 시도로 봤는데요. 결론적으로 그는 슈레버의 망상이 본인의 이론과 잘 맞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슈레버가 얘기한 해가 아버지-상징이 승화된 것이라고 여겼죠. 회복된 이후 슈레버는 해를 응시해도 아무 어려움이 없었는데, 그가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콤플렉스가 긍정적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라고 프로이트는 파악했습니다. 슈레버의 책을 읽고 그를 이런 방식으로 해석한 프로이트가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슈레버의 피해망상이라는 편집증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경험과 형에 대한 감정이 정신병원의 플레히지히 박사에게 전이되어 생겨난 동성애적 소망 때문이라고 본 것, 그 회복과정에서 아버지-콤플렉스의 긍정적 영향을 발견한 것 등이 저에게는 궤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들뢰즈와 과타리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비판하며, 슈레버를 편집증 환자가 아니라 분열증자로 봤는데, 자세한 내용은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확인해보아요.^^
실타래처럼 엉켜있던 내용을 명료하게 정리해주셨네요!ㅎㅎ 감사해요 샘!
<매 맞는 아이>는 프로이트의 저술 가운데서도 매우 중요한 논문이라고 하는데, <천개의 고원>에서는 저렇게 말하고 있군요. '마조히스트가 기관없는 몸체를 구성해서 고통을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이야기.. 흥미롭네요. 들뢰즈의 <마조히즘>도 궁금하고요.
빵빵한 간식에 빵빵한 후기! 주영샘 물심양면으로 풍요롭게 해주시네요! 프로이트는 함께 읽지 않았음 한장 읽다 졸거나 오해와 편견을 범벅해서 읽지 않을까 하네요. 졸음은 쏟아지지만 자꾸 읽어나가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