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세미나 2학기 첫 시간에는 숀 호머의 <라캉 읽기> 1장과 2장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프로이트의 이론과 달리 라캉의 이론은 나들이 세미나에서 처음 접하는 샘들이 대부분이었는데요. <라캉 읽기>는 라캉의 중심 개념들을 어렵지 않게 설명하고 있어서 첫 만남은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물론 난해하고 복잡한 이론의 아주 일부를 압축적인 설명으로 접한 것뿐이고, 그 중에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지만요. 저희는 각자 읽거나 보고 온 자료와 영상 강의 내용까지 동원하며 1,2장에서 다루고 있는 라캉의 ‘상상계’와 ‘상징계’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상상계는 자아의 영역이며, 감각에 대한 지각, 동일시 그리고 통일성에 대한 환영적인 감각으로 구성된 언어 이전의 영역이다. 상상계에서의 일차적 관계는 자신의 신체, 즉 신체의 거울상 자체와의 관계이다.”(54~55쪽)
라캉은 <거울단계>라는 논문에서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을 다룹니다. 거울단계는 생후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에 일어나는 인간발달단계로, 주체가 자신의 이미지나 신체와 사랑에 빠지는 시기를 말합니다. 이 시기에 아이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인식하기 시작하고, 신체가 전체의 형태를 가진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거울상과 자신을 동일시하는데, 그 이미지는 아직 운동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신체의 경험과 대치된다는 의미에서 ‘소외적’입니다. 이처럼 라캉에게 자아는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소외와 매료의 순간에 부상하는 것"(47쪽)입니다. 저희는 자아와 주체의 차이가 무엇인지 조금 헷갈렸는데요. 똑부러지게 구분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저자는 라캉이 주체로부터 자아를 구별해내는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고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1,2장의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대략적으로 몇 가지는 꼽을 수 있었습니다. 자아는 상상계에서, 주체는 상징계에서 중요하게 언급된다는 점, 자아는 “통일성과 숙달된 느낌을 주는 환영적 이미지에 근거한 것”(47쪽)이며 이러한 연속성과 통솔감에 대한 착각을 유지키시는 것이 자아의 기능이라는 점, 자아는 이처럼 ‘상상적 기능’인 반면 주체는 상징계 내에서 주조된다는 점.
상상계에 관한 내용에서 또 하나 흥미로웠던 부분은 왜 주체가 이미지에 매료되는지에 관한 설명이었습니다. 라캉은 동물행동학자 로제 카이와의 연구를 차용하고 있는데요, 카이와는 작은 동물이나 곤충이 주위 환경의 색깔에 맞추어 몸의 색채를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 일반적인 설명과는 다른 주장을 내놓습니다. 그러한 변화가 포식자들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한 기능이 아니라는 겁니다. “자신들을 둘러싼 바로 그 공간에 포획되어 그 안에서 자신들을 잃어버리고 유기체와 환경 사이의 구분을 무너뜨리려고 노력”(42쪽)하는 거라고 설명하는데요. 다시 말해, 위험으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해 변화하는 게 아니라, 그 공간에 ‘포획’되어 거기에 자신을 동화시키고 있다는 겁니다. 라캉은 이 연구에서 이미지의 성질, 즉 매료시키고 포획하는 성질을 차용합니다. 저희는 이런 이미지의 성질, 그리고 그 이미지에 스스로를 동화시키는 방식이 나중에 중요한 명제(‘우리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와 관련될 것으로 추측해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담론의 회로 안으로 태어난다. 그것은 우리의 출생 전에 우리를 운명짓고 우리의 사후에도 지속될 것이다. 한 명의 인간이 되기 위해 우리는 - 언어와 담론의 체계인 - 상징계에 종속된다.”(73~74쪽)
언어 이전의 영역인 상상계가 이미지의 세계라면 상징계는 언어의 세계입니다. 라캉은 정신분석에서 언어의 역할을 특히 강조하며 ‘무의식은 언어와 같이 구조화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에게 무의식은 우리 통제 너머에 있는 의미작용 과정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언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언어가 우리를 통해 말하는 거라고 표현되기도 하는데요. 라캉에 따르면, 우리는 언어 안으로, ‘담론의 회로’ 안으로 태어납니다.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탈출할 수 없지만, 그것은 하나의 체계로서 우리를 벗어납니다. 우리는 그 상징적(사회적) 총체성으로서의 체계를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총체적 체계는 우리를 주체로서 빚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처럼 주체는 언어 안에서, 언어를 통해 구성되며, 라캉은 이런 주체를 “기표의 주체로서의 주체(the subject as the subject of the signifier)”(58쪽)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도둑맞은 편지>의 분석으로 그런 주체에 대한 명확한 예를 제시합니다.
단편의 내용과 라캉의 분석에 대해 저희 나름대로 정리해보았지만, 2장에서 설명하는 세 주체의 위치와 세 계(상상계, 상징계, 실재계)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여전히 명확히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에서 ‘진정한 주체’의 역할을 하는 것이 편지라는 점, 내용이 결코 밝혀지지 않는 편지가 기표로서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떠돌아다니며 각 주체를 형성하고 그들의 역할을 결정하고 있다는 점, 다시 말해 “편지는 의미화 연쇄를 따라 이동하며 부유하는 기표이고, 개인들은 이렇게 전개되는 상황의 의미에 대해 의식하지 못한다”(80쪽)는 점은 알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다뤄질 무의식적 욕망과 충동의 측면을 살펴보고 나면 좀더 이해가 되지 않을까요?
- 다음 시간에는 <라캉 읽기> 3장과 4장을 읽어옵니다.
- 발제는 3장: 주영샘, 4장: 재겸샘
- 간식과 후기는 민호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수요일 저녁에 뵈어요!
기표들 사이를 떠도는 기표, 그런 기표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주체... 자아가 이미지와 느낌들 사이에서 탄생했다면 주체는 코드와 언어 같은 상징들 사이에서 탄생하는 것 같네요.
여전히 자아와 주체가 어떤 차이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그래도 라깡이라는 분의 색다른 재미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