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에는 <들뢰즈, 초월적 경험론> 9장, 10장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두 장에서 다루고 있는 이념, 극화, 개체화, 변조, 불균등화 등의 개념들은 작년에 <차이와 반복>을 읽으면서도 어려웠던 부분들이었는데요. 저는 극화(드라마화)라는 개념을 접할 때마다 이해될 듯하면서도 여전히 애매했는데, 이번에 읽으면서 ‘사례의 유형학’ ‘이념의 현실화’ ‘이념의 행동학’ 등의 표현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책에서는 먼저 ‘개념의 극화’와 ‘사유의 극화’를 예로 들며 설명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개념을 극화한다는 것은 그 개념을 실행하게 하는 조건들을 그 개념에 결부시킨다는 의미와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진리 개념을 극화한다는 말은 진리 개념 자체에 “비판의 망치”를 휘두르는게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사유를 극화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누가?’ ‘무엇을?’ ‘어떤 경우에?’ ‘얼마나?’라는 물음으로 대체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프루스트가 관찰한 것처럼 진리는 사유자가 원할 때, 혹은 사유자가 특정한 방법을 따를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이념과 생기적인 방식으로 만날 때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란 다양한 세계, 기호, 삶의 유형들에 산재해있습니다. 따라서 ‘진리란 무엇인가’라고 물을 게 아니라 누가, 어떻게, 어떤 경우에, 어떤 상황에서 진리를 원하는지 물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극화는 이념을 본질로 간주하는 플라톤의 규정을 전복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본질의 우월성을 사례의 유형학으로 대체”하는 것이라고도 표현하는데요, 여기서 저희는 플라톤이 말하는 ‘본질로서의 이념’이 아닌 들뢰즈의 이념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아직 개념으로 싹트지 않은, 잠재적인 무언가를 말하는 것 같기는 했는데요.
저자는 ‘실재적 다양체’로 표현하기도 하고, 들뢰즈가 마이몬의 ‘이성 이념’을 받아들여 변형시킨 것으로 이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념은 더이상 이성이 지닌 자연의 빛에 의해 드러나는 정신적 개념이 아니라 자연에서 정신으로, 감성에서 사유로 가는 어떤 연속체 속에서 ‘도약하고 변신하면서 변별적 차이 관계에 놓이는 미광들처럼 반짝거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명확하게 이해되지는 않아도 들뢰즈가 이념을 다양체로 본다는 점, 그런 다양체 속에서 계속 변화하며 희미하게 반짝이는, 혹은 순간적으로 번쩍하며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기호'와는 다른 것인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보았고요.
이처럼 세미나 시간은 ‘읽을 때는 감이 오는 것 같지만 내 말로 풀어내려면 안 나오는’ 개념들을 거칠고 뭉툭하게라도 풀어내면서 좀더 이해해보려 애쓰는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분량이 많아서 세밀하게 다루지 못하고, 여전히 애매모호한 부분들이 많지만, 마지막에 채운샘 강의도 있으니까요!
다음 시간에는 12장까지 읽고 내용을 정리해옵니다. 간식은 재겸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수요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