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세미나 다섯 번째 시간에는 <들뢰즈, 초월론적 경험론> 11장, 12장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분량이 많아서 이번 시간에도 12장까지는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개념들이 반복해서 언급되어 다시 이야기 나눌 기회를 노려보기로 했습니다. 이번에 읽은 부분에서도 들뢰즈가 시몽동에게서 가져온 개념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작년에 시몽동의 <형태와 정보 개념에 비추어본 개체화> 세미나에 참여한 덕분에 어렴풋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 도움이 되었습니다만, 처음 접하는 샘들께서는 새로 쏟아지는 어려운 개념들의 폭포에 정신이 없으셨을 것 같기도 합니다.
먼저 11장의 앞부분에 나오는 ‘개체화’에 관한 내용으로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읽었던 시몽동의 개체화 이론은 제 머릿속에 어렴풋하게 이미지로만 남아 있는데 대강 이렇습니다. 준안정적 평형을 이루고 있는 전개체적 환경에 뭔가가 핵으로 들어와서 결정체를 만들면서 불안정해진 환경을 다시 준안정적인 평형 상태에 이르게 하는 것. 넘나 거칠고 부정확한 표인데요.^^; 시몽동의 책을 번역하신 황수영 선생님의 설명을 가져오면, 전개체적 상태는 아낙시만드로스의 무규정자와 열역학적 비평형상태 혹은 ‘준안정(métastable) 상태‘를 결합시킨 개념으로, 에너지퍼텐셜들로 충만하며 불안정한 긴장들이 양립하고 있는 체계의 상태를 말합니다. 양립불가능한 상태들이 양립하기에 곧 폭발할 것 같은 상태, 과포화된 용액과도 같은 상태를 말하는데요, 여기에 ’핵‘이 침투하며 과포화된 용액을 갑자기 ‘굳어지게’ 만듭니다. 개체화는 이처럼 전개체적 환경 및 그 환경을 촉발하는 독특성과 더불어 작용하며, 결정체는 하나의 결과로서 모액(母液)과 핵이라는 불균등한 실재들 간의 긴장을 창조적으로 해소하는 어떤 개체화로 출현합니다. 저는 개체화 과정에 대한 설명에서, 인식 능력들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뭔가를 마주하고 오작동을 일으켰다가 다시 새로운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기 위해 작동하기 시작하는 칸트의 ‘숭고’ 개념이 떠오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사유’도 비슷한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들뢰즈는 시몽동의 개체화에 대한 분석을 비범한 것으로 보았지만, 그보다 그의 생명에 대한 분석을 더 뛰어난 것으로 보았다고 합니다. 저자인 안 소바냐르그에 따르면, 생명을 정의하기 위해 시몽동이 필요로 하는 것은 두 가지 시공간적 조건뿐입니다. 그 중 하나는 공간적 규정 혹은 위상학적 규정인 주름작용이고, 다른 하나는 주름작용의 시간발생적 귀결인 어떤 시간성의 수립입니다. 이 시간성은 생명체의 가장자리에 어떤 경로로서 주름잡히며, 상대적 내부성과 상대적 외부성으로 분화되고 분기하는데, 이 내부적인 것과 외부적인 것 간의 차이는 '체험된 내부성'과 '다가올 외부성'으로 시간화된다고 설명합니다.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주름’과 ‘막’에 대한 설명은 몹시 흥미로웠습니다.
시몽동은 생명이 특수한 화학적 구성요소들에 의존해 있는 게 아니라 물리-화학적 평면에서 지각될 수 없는 물질의 상이한 배치에 의존할 뿐이라고 보았습니다. 생명의 주체성은 ‘위상학적 배열’에 불과할 뿐이라고요. 공간적인 주름작용은 전적으로 공간적인 개체화, 즉 어떤 특수한 조직의 출현에서 기인하며, 이 특수한 조직은 ‘선별적 투과성’을 갖추고 있어 한계로서 기능하는 화학적 속성을 띱니다. 이 특수한 조직이 바로 ‘막’입니다. 이처럼 막은 어떤 물질만 통과시키고 다른 물질은 통과시키지 않으며, 막 자체로부터 출발해서 공간을 조직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속성의 출현을 용이하게 해준다는 특성도 있습니다. 막은 이로운 것을 섭취하고 해로운 것을 거부하는 ‘분극적’ 방식으로 내부 환경을 구성하는 동시에 외부 환경을 형성합니다.
들뢰즈는 내부성과 외부성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준안정적, 유동적, 관계적’인 것으로 보았고, 그것들의 표면 가장자리(막)는 그 자체로 ‘생성 중’이고 ‘관계 중’인 것으로 보았습니다. 막은 유기체 속에서 내부, 외부 환경을 증식시킵니다. 신체 내부와 외부 세계를 정적인 방식으로 대립시키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피는 신체 내부에 있지만, 분비물을 흘려보내는 여러 선 등에는 외부적인 것입니다. 외부성과 내부성은 상태로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전적으로 관계적인 것이라고 들뢰즈는 말합니다.
분극화되는 막과 ‘시간성’에 관한 설명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분극화된 막은 내부성과 외부성을 분리시켜 시간성의 흐름을 분화시키고 체험된 시간의 내부성을 창조한다.” “막의 분극화는 시간을 산출한다.” “분극화된 얇은 외피는 외부성과 내부성을 구별하며 생명체가 지닌 시간성의 가장자리를 두 개의 경로로 분리한다.” 등의 문장에서 시간이 ‘차이’를 말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과거와 미래가 함께 생성된다는 의미 같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책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도 합니다.
“현재는 이롭거나 유해한 막의 외부에서 생겨난다. 현재는 행동을 촉발하며 다가오는 미래의 방식으로 갑자기 나타난다. (...) 미래는 행동에 달려 있으며,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 유용한 것과 유해한 것 사이에서 분열된다. 다른 한편, 내부성에 분들려 있는 것은 바로 생명체의 유기적 기억, 생기적 동일성, 반복이라는 정식, 과거다. 이로부터 들뢰즈가 종종 인용하는 시몽동의 놀라운 정식이 나온다. ‘내부적 과거와 외부적 미래는 분극화된 막의 수준에서 만나게 된다.’”
그 외에도 기호와 신호의 차이, 독특성과 특이점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지만 확실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마무리했네요. 앞으로 읽게 될 부분들, 혹은 강의에서 답을 얻게 되길 기대해봅니다.
다음 시간에는 14장까지 읽고 내용을 정리해옵니다. 간식은 영주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