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나들이 세미나가 문을 열었습니다. 다른 세미나들보다 조금 늦게 출발하는 나들이팀인데요, 새로 합류하신 샘들과 함께 올해는 또 어떤 시간들을 만들어가게 될지 몹시 기대됩니다.^^ 그 첫 시간에는 채운샘의 <안티 오이디푸스> 인트로 강의가 있었습니다. 들뢰즈와 과타리의 첫 번째 공동 저작인 <안티 오이디푸스>는 확실히 지금까지 나들이 세미나에서 읽어온 들뢰즈의 초기 저작들과는 많이 다른 느낌입니다. 과타리라는 ‘번개’의 영향이기도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프로이트와 맑스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진 것도 같습니다. 다행히 샘께서 인트로 강의로 방향을 잡아주신 덕분에 얼른 더 읽어나가고 싶어지네요.ㅎㅎ 강의에서 마음에 남았던 부분을 간단하게 적어보겠습니다.
우선 <안티 오이디푸스>는 무엇보다 ‘해방과 혁명의 전망으로 가득한 책’이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샘께서는 오래 전 이 책을 처음으로 읽으며 받았던 느낌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하셨는데요. 이토록 이해 안 되는 책은 처음이었는데도 다른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으로 가슴이 뜨거워졌다고 하셨지요. 이제 겨우 앞부분을 조금 읽은 저로서는 아직은 그 뜨거움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지만, 무슨 말씀인지 잘 알기에 기대감이 더욱 부풀어오릅니다.(이해는 안 되는데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은, 감동적인 들뢰즈의 구절들!)
해방과 혁명이라고 하면 조금 거창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샘께서는 이 두 가지가 인간이라면 포기해서는 안 되는 화두라고 하셨지요. 해방의 문제는 쉽게 말하면, ‘어떻게 우리는 능동적인 자유에 이를 수 있을까’의 문제라고 하셨고요. 현대인들 가운데 스스로를 완전히 자유롭다고 느끼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아마 대부분은 직장이든, 가족이든, 공부든, 어딘가에 구속되어 있다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샘께서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스스로 자유로움을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하셨는데요. 정말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런 식이라면 우리는 외부에서 조건이 마련되지 않는 한 영원히 자유로울 수가 없겠죠.
해방의 문제는 혁명의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가 자유롭다고 해도 주변에 누군가가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억압받지 않고 착취당하지 않는 세상, 억압과 착취가 없는 세상. 맑스주의는 그런 전망 속에서 전개되었지만 결국 실패했고, 들뢰즈와 과타리는 그런 실험과 전망이 무너진 자리에서 새로운 혁명에 대한 전망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유토피아를 위한 혁명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혁명’이 그것인데요, <안티 오이디푸스>의 속편과도 같은 <천개의 고원>에서는 ‘되기(becoming)’라는 개념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들뢰즈와 과타리는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프로이트와 맑스를 결합하면서 넘어가려는 시도를 통해 ‘과정으로서의 혁명’을 이야기합니다. 무의식적 욕망을 발견했지만 그것을 개인의 문제로 규정한 프로이트, 혁명 이론을 제시했지만 욕망을 무시한 맑스를 비판하며 이들의 한계를 넘어가고자 합니다. 들뢰즈와 과타리가 주목한 것은 병리학적 분열증과 구분되는 ‘과정으로서의 정신분열증’이라고 하는데요. 정신분열적 과정은 기호 체계를 이탈하는 과정, 자본주의가 생산해내는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말합니다. 기호 체계를 다르게 해석하는 것, 계속해서 자기 변이를 이루어가는 것, 이질적인 것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를 생산하는 것만이 이런 과정이 병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과정이 바로 ‘혁명’이고, 이런 과정 속에 있는 자가 ‘혁명가’라고요. 이처럼 해방과 혁명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안티 오이디푸스>라고 하는데요, <안티 오이디푸스>를 모두 읽고 났을 때, 우리는 이런 해방과 혁명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릴 수 있게 될까요?
- 다음 시간에는 <안티 오이디푸스> 1장 3절까지(53쪽) 읽고 내용을 정리해옵니다.
- 간식과 후기는 성연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수요일 저녁에 뵈어요!
해방과 혁명의 전망! 능동적인 자유! 두근두근하네요.
놓친 강의 내용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