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세미나 두 번째 시간에는 <안티 오이디푸스> 1장 1~3절까지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지난주보다 더 많은 분들이 함께 하게 되었는데요. 나들이 세미나 역사상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함께 하기는 처음입니다. 인원이 늘어난 만큼 과제 스타일도 다양해져서 함께 읽는 맛(?)도 더욱 커진 것 같고, 알송달송한 개념들을 다양한 방향으로 풀어주신 글들을 읽으면서 혼자 읽을 때는 생각하지 못한 연결 고리들을 발견하게 되기도 했고요.
다행히도 올해 함께 읽는 <안티 오이디푸스>는 다른 세미나와 강의로 먼저 접하신 샘들이 계셔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세미나 시간에 함께 묻고 답하면서 여러 의문들이 풀리긴 했지만, 미처 나누지 못한 내용들을 비롯해 여전히 많은 의문들이 남았는데요. 들뢰즈와 과타리는 앞으로도 계속 다르면서도 같은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 저희도 계속 머리를 맞대고 하나씩 풀어나가면 될듯합니다.
지금까지 들뢰즈의 새로운 저작을 읽어나갈 때면 그랬듯이, 이번에도 문제가 되었던 것은 낯선 개념과 용어들이었습니다. 들뢰즈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익숙한 단어들을 다른 의미로 사용하며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풀어내는데요. 1장에서는 생산, 소비, 등록이라는 용어와 이번 시간 가장 문제적이었던 ‘기관 없는 몸’, 그리고 ‘기계’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우선 '기계'라는 개념은 지난 시간 채운샘께서 설명해주신 것처럼 ‘욕망’을 주체로 환원하지 않기 위해 가져온 개념이지요. 들뢰즈와 과타리는 주체 이전에 먼저 작동하는 욕망을 ‘기계’로 표현합니다. ‘작동’하는 기계, 그것도 인간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닌, 스스로 작동하는 기계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욕망-기계들은 고유한 흐름을 방출하고 다른 흐름을 절단하거나 채취하는 작동을 통해 다른 욕망-기계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생산물-생산하기’라는 또 다른 형식도 가집니다. 생산하는 행위와 생산되는 것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건데요, “생산물에는 언제나 생산하기가 접붙으며, 바로 이런 까닭에, 모든 기계가 기계의 기계이듯, 욕망적 생산은 생산의 생산”(30쪽)이라고 들뢰즈와 과타리는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형식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바로 문제적 개념인 ‘기관 없는 몸’입니다.
이번 시간에 가장 많은 토론이 오갔던 내용이 바로 ‘기관 없는 몸이 대체 무엇이냐’에 관한 것이었던 듯한데요. 몸이라고 하니까 자꾸 어떤 형태를 떠올리게 되지만, 몸 또는 몸의 이미지와 아무 상관이 없는 ‘이미지 없는 몸’이라고 들뢰즈와 과타리는 못박습니다. 게다가 기관이 없으면서도 ‘충만한 몸’이고, “비생산적인 것, 불임인 것, 출산되지 않은 것, 소비 불가능한 것”(32쪽)이면서도 ‘알’이고, 또 ‘죽음’이고 ‘반생산’이라고 표현되기도 합니다. 저희에게 중요한 힌트가 되었던 것은 “생산 전체가 자신을 등록하는 표면”(36쪽)이라는 말, 즉 ‘등록 표면’이라는 말이었는데요. 저는 들뢰즈의 다른 개념인 ‘내재성’ ‘내재성의 평면’이 떠올랐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의 평면에 있고, 서로를 통해서만 존재하는 세계. 삶과 죽음, 생산과 반생산이 서로를 잠재적으로 품고 있는, 잠재적인 것과 현실화된 것이 동시에 존재하는 표면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도 나왔고요.
분열자와 주체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지난 강의에서 언급되었듯이 들뢰즈와 과타리는 ‘과정으로서의 정신분열증’에 주목하는데, 이는 기존의 기호 체계를 끊임없이 이탈하며 자기 변이를 이루어가는 과정입니다. 사회적 코드를 강요받고 사회적 재생산을 요구받는 사회에서 분열자들은 “그에게 제기되는 물음들을 따라, 빠르게 미끄러지면서, 한 코드에서 다른 코드로 옮겨 가고, 모든 코드를 뒤섞는다고. 또한 매일매일 똑같은 설명을 하지 않으며, 같은 계보학을 원용하지도 않고, 같은 사건을 같은 방식으로 등록하지도 않으며, 진부한 오이디푸스 코드가 그에게 강요될 때 화가 나 있지 않으며 이 코드를 받아들이기까지 하지만, 이 코드가 배제하려 했던 모든 분리를 이 코드에 다시 틀어넣기까지 한다고”(43쪽) 두 저자는 말합니다. 저희 세미나가 (약간 다르면서도 비슷한 의미로^^) 분열증적인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왔는데요, 이런 분열증적 과정이 무엇일지도 앞으로 계속 이야기 나누게 될 것 같습니다.
‘욕망 기계들 곁에서 여분으로서 생산되는 주체’, ‘잔여물, 잔여 에너지, 효과로서의 주체’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주체와 세계를 이런 방식으로 이해할 때,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는 일들, 이를테면 책을 읽고, 과제를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으로 볼 수 있을지도 생각해보게 되네요.
-다음 시간에는 1장 6절(95쪽)까지 읽고, 이번처럼 자유로운 형식으로^^ 내용을 정리해오시면 됩니다.
-간식과 후기는 영임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수요일 저녁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