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에는 <안티 오이디푸스> 1장 4~6절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여전히 많은 부분이 장막에 가려져 있는 느낌이지만, 토론 중에 머리를 맞대고 저희나름대로 의문점들을 풀어보고 있습니다. 이번에 읽은 부분에서도 욕망, 기계, 주체, 기관 없는 몸에 관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먼저 5절에서 이야기하는 ‘기계’ 개념에 관한 이야기로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5절에서 들뢰즈와 과타리는 기계를 ‘절단의 체계’로 정의합니다. 기계 개념은 주체를 제거한 욕망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가져온 개념이니 욕망의 작동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모든 욕망-기계는 ‘연속된 물질적 흐름(휠레hylé)’과 관련을 맺으며 채취-절단, 이탈-절단, 잔여-절단을 수행합니다. ‘절단’이라는 말 때문에 자꾸 뭔가를 잘라내고 분리하는 작용처럼 느껴는데, 그보다는 어떤 규정되지 않은 흐름과 관계하며 뭔가를 규정하는 작용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모든 기계는 자기 고유의 흐름에 따라 세계를 해석한다’는 설명을 떠올려보면 그렇습니다. 눈-기계가 모든 것을 ‘보기’의 견지에서 해석한다는 말은 ‘보기’라는 채취-절단을 수행한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고요.
이탈-절단은 코드화와 탈코드화 작용과 연결시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일단 모든 기계는 자기 안에 코드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코드들은 “여러 기표 사슬”(77)을 감고 있는데, 이 사슬들은 “사방으로 일어나는 이탈의 끊임없는 소재지”(79)입니다. 토론 중에 ‘코드화’가 무엇인지에 관해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나눴는데요. 저희는 먼저 코드화를 어떤 ‘관계’ 또는 ‘결합’으로 생각해보았습니다. 왜 어떤 것들은 더 잘 결합하는 반면 다른 것들은 그렇지 않은가. 이런 밀쳐냄과 끌어당김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먹는다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음식과는 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돌과는 그렇지 않지요. 아마도 오랜 관계 속에서 상호 변형되면서 뭔가 계속 이탈하고 다시 규정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된 게 아닐까 추측해보았고요. 이처럼 코드와와 탈코드화는 서로를 가능하게 하면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작용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코드화는 무엇보다 사회적이고 강제적인 작용과 관련된다는 지적이 있었고, 뒤쪽에서 다시 자세히 언급된다고 하니 그때 다시 이야기나누기로 했습니다.
절단의 세 번째 양태인 ‘잔여-절단’은 “기계 곁에 하나의 주체를”(80) 생산합니다. 지난 시간에도 욕망 기계들 곁에서 여분으로서 생산되는 주체에 관한 언급이 있었지요. 이처럼 주체는 생산 과정에서 생겨나는 잔여일 뿐인데 우리는 그것을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분으로서의 주체에 관해서는 생산, 등록, 소비의 과정으로도 설명되는데, 이 말은 결국 사건과 정동이라는 말로 바꿔 볼 수 있다고 설명해주신 샘도 계셨고요. 사건을 겪으면 정동이 발생하는데 우리는 그 정동을 주체로 생각한다는 겁니다. 여전히 명확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지만, 일단은 절단의 세 양태가 각각 연결 종합, 분리 종합, 결합 종합과 관련되며, 이것이 바로 욕망의 현실적 작업(‘생산하기’)이라는 점을 기억해두고 넘어갑니다.
욕망에 관한 이런 설명들은 들뢰즈와 과타리가 새로운 ‘욕망 이론’을 정립하기 위한 밑작업일 텐데요. 이제 겨우 첫 걸음을 떼기 시작한 저희는 아직 많이 어리둥절합니다.^^; 그밖에 욕망에 관해 나눈 이야기들 가운데, 사회적 생산과 욕망적 생산은 현실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는 점, 둘은 체제의 차이만 있을 뿐인 유일하고 동일한 생산이라는 점, 그리고 체제 차이는 처음이 아니라 끝에 있다는 점, 거기서 윤리적 차원을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이 기억에 남습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프로이트를 읽게 되는데요, 두 주간 읽은 내용들을 연결시켜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다음 시간에는 프로이트의 논문 <자아와 이드>를 읽어옵니다. 발제를 맡은 여섯 분은 내용을 정리해 오시면 됩니다.
-간식과 후기는 재겸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수요일 저녁에 만나요!
안티 오이디푸스를 처음 만났을 때 욕망, 주체 , 기계에 대한 들뢰즈와 과타리의 해석에 공감하면서도 놀라웠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번에는 그들이 무엇을 비판하고, 이로부터 개념을 어떻게 비틀고 만들었는지를 보는게 재밌었는데요. 욕망을 사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욕망을 결핍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정신분석학과는 다르게 욕망은 생산할 뿐이라 결핍이나 필요마저도 생산된 것이라는 지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우린 이미 욕망은 무한하고 자원은 희소하다는 경제학적 논리에 익숙하여, 결핍에서 사유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나 불만, 고통, 부족함도 생산된 것이라는 사실!! 우리는 뭘 어떻게 생산해 나갈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