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는 인간의 무의식을 발견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의 인식이나 행동이 지각 가능한 의식에 의하여서만 결정된다는 당시의 통념을 깨고 무의식이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정신분석이라는 도구를 통하여 분석하여 그 구조를 제시했습니다. 나들이 세미나에서 읽고 있는 ‘안티오이디푸스’는 프로이트가 제시한 무의식을 활용하지만 그 사적인 분석틀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물론 향후 세미나를 통하여 탐구하고 사유해 볼 소재이지만요.
프로이트는 근대 사유에서 니체, 맑스에 비견되는 유명세를 가진 인물입니다. 그에 비하여 저에게는 선입견만이 존재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들뢰즈 – 가타리의 야심찬 기획, 즉 의식과 사회적 혁명을 동일한 지평에 놓겠다는, 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로이트의 사유의 이해가 필수 불가결합니다. 그래서 이번 세미나에서는 프로이트의 전반적인 평가이전에 그가 사유했던 개념들을 하나씩 이해해 보기로 했습니다.
1.의식, 전의식, 무의식
프로이트는 ‘의식된다는 것’은 지각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런데 의식된다는 것은 의식화 되지 않은 영역이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무의식이라는 표현을 ‘잠재적이고 의식화될 수 있는’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어떤 것은 의식적인 것이되고 어떤 것은 무의식으로 남아있는 것일까요? 프로이트는 ‘억압’이라는 가설을 가져옵니다. 의식화되지 못하는 것은 어떤 억압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여기서 프로이트는 전의식이라는 개념을 가져옵니다. 서술적으로만 잠재적인 것이 있다는 겁니다. 가령 어떤 무의식은 언제고 의식화될 수 있다는 의미의 잠재성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책상을 인식할 때 모든 것들의 의식화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 것을 ‘전의식’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하지만 의식에 작동한다는 의미에서 역동성을 가진 무의식이 존재합니다. 프로이트는 그 역동성을 가진 ‘무의식’만을 무의식으로 정의합니다. 그리고 나서 각 개인 속에 정신 과정을 일관성 있게 조직화하는 존재를 ‘자아’라고 규정합니다. 그 자아에 의식이 부착되어 있다는 추론도 가능해 집니다. 마찬가지로 ‘억압 가설’을 가져오면 일관성 있는 자아가 있고 이것에서 떨어져 나온 억압된 무의식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겁니다. 억압된 무의식을 프로이트는 ‘이드’로 정의합니다.
2.자아와 이드
무의식을 분명하게 규명하게 위하여, 무의식과 전의식의 차이점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의식은 지각되고 표상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의식은 언어로 표상할 수 있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의자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의자’라는 언어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전의식은 기억의 잔재물이고 언제든 표상화 할 수 있는 기억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실재하는 기억은 환상도 아니고 외부적 지각과도 구분이 됩니다. 언어란 결국 청각적으로 전달된 말의 잔재물입니다. (385) 언어 표상이 있어 내부의 사고 과정이 지각화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프로이트는 ‘리비도 집중’이라는 현상이 지각과정에 있음에 주목합니다. 우리는 어떤 것은 ‘쾌’하다는 감각을, 어떤 것은 ‘불쾌’하다는 감각을 갖습니다. 그리고 불쾌는 에너지의 리비도 집중을 고조시키고 쾌는 리비도 집중을 저하시키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드’를 에너지의 사용이 이루어지는 영역, 쾌 – 불쾌에 따라 리비도 집중의 고조와 저하가 일어나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자아가 ‘지각- 의식’의 매개를 통해 외부 세계의 직접적인 영향에 의하여 수정된 부분의 ‘이드’라고 해야 합니다. 즉, 이드는 쾌락 원칙을 무한히 실현하려고 하지만 자아는 현실 원칙으로 (현실과) 통합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3. 자아와 초자아 (또는 자아 이상)
이드가 쾌락 원칙에 의하여 활동하고 자아는 욕망의 현실적 조정자에 불과하다면 사회에는 종교나 도덕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요? 사회적 통합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여기서 프로이트는 ‘초자아’ 또는 ‘자아 이상’이라는 가설을 가져옵니다. 프로이트는 ‘우울증’이라는 병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보여줍니다. “상실한 대상이 다시 자아 속에 자리잡는다는 것 – 다시 말해서, 대샹 리비도 집중이 동일시에 의해서 대치된다는 것을 가정”(368)합니다. 가령 구순기에는 엄마가 대상 리비도 집중의 대상이면서 동일시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성장함에 따라 리비도 집중이 포기될 수 밖에 없는 억압 상황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여기서 프로이트는 대상의 포기를 쉽게 하기 위해서 대상 리비도 집중을 동일시로 대체한다는 가설을 세웁니다. 가령 엄마를 성적 대상으로 보지 않기 위해서 아버지와의 동일시를 하게 된다는 가설인 셈입니다. (동일시 대체 가설은) 이처럼 성적 대상 선택이 자아의 변화로 변형되게 되고 또한 자아가 이드에의 통제력을 획득하고 그것과의 관계를 심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요컨대 대상 리비도를 자기애적 리비도로 변형시키는 일은 분명히 성적 목적의 포기, 탈성화(脫性化), 일종의 승화를 암시하게 됩니다. 모든 승화는 자아를 매개로 발생하는 것 – 이 과정은 우선 성적 대상 리비도를 자기애적 리비도로 바꾸고 그 다음에는 그것에 다른 목적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게 됩니다. (370)
자아 이상(초자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후계자이다. 왜냐하면 초자아는 이드의 가장 강력한 충동과 가장 중요한 리비도적 변화 양상의 표현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아 이상을 세움으로써 자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동시에 자신을 이드에 대한 종속 관계 속에 위치시킨다. 자아가 근본적으로 외부 세계나 현실의 대변체인 반면, 초자아는 그것과는 대조적으로 내부 세계나 이드의 대변체로서 존재한다. (378) 이드 – 자아 – 자아이상의 이러한 작동을 통해 우리들 각자의 정신적 삶 속에서 가장 낮은 차원에 속했던 것들로 믿어왔던 것들이 그 이상의 형성을 통해 인간의 마음 중에서 가치 등급으로 따져 가장 높은 것으로 간주해왔던 것으로 변하게 된다.
이번 세미나를 통하여 프로이트의 사유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인간 의식을 언어 표상의 좁은 세계에서 끄집어 내어 무의식으로까지 확장시킨 그의 사유의 기초를 배울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대강만 알던 프로이트의 주요 개념들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후기로 다시 정리해주시니 좀더 이해가 되네요.ㅎㅎ 감사해요!